217화
“이 사장, 내가 주문했다고 하 면 어떡해?”
죽은 사람인 자신이 음식을 주 문했다는 말에 김흥수가 놀라 묻 는 것에 강진이 통을 강향숙에게 내밀었다.
강향숙이 전이 담긴 통을 받자 강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정중 하게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음식을 싸온 총각이 갑자기 사 과를 하자 강향숙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뭐가?”
“저희 할머니께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셨는데, 그분이 돌아가시 고 지금은 제가 맡아서 하고 있 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오 년 전 김홍수 어르신께 주문을 받으셨습니다.”
강향숙에게 전을 만들어 주라는
김흥수의 부탁을 받은 후, 강진 은 고민을 해야 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전을 보내준다? 의아해할 것이다. 그 래서 누가 보냈다고 해야 편히 드실 수 있을지 고민한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남편인 김훙수가 보낸 것이었다.
‘생각대로만 되면…… 제대로 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강향 숙을 보았다. 강진의 시선에 강
향숙이 물었다.
“우리 영감이 무슨 주문을 했다 는 거지?”
“주문 내용은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인 23일에 잔칫상같이 푸짐 하게 전과 부침개를 해 보내주라 는 것이었습니다.”
“영감이?”
강향숙의 물음에 옆에 있던 할 머니가 의아한 듯 말했다.
“오 년 전에 주문한 것을 왜 지 금 가져와?”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오 년 전에 주문을 맞춰 드렸 어야 하는데, 그때 저희 할머니 께서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주문 을 취소하려고 전화를 드렸는데 없는 번호로 나왔습니다.”
이건 짐작이지만 맞을 것이다. 김홍수가 죽은 것이 5년 전 2월 이니 12월까지 핸드폰을 유지하 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김홍수의 핸
드폰은 그때는 이미 해지되어 있 는 상태였다.
“그럼 이건 어떻게?”
강향숙이 손에 쥐어진 통을 보 자 강진이 말했다.
“저희 할머니께서 그것이 많이 걸리셨는지 돌아가시기 전에 저 에게 주문을 한 종이를 찾아보라 고, 꼭 음식을 보내 주라고 당부 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머니 돌아가신 뒤 가게를 뒤져서 그 종이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
습니다.”
강진의 말에 강향숙이 전이 담 긴 통을 보다가 말했다.
“그게…… 그러니까 5 년 전에 주문을 했다는 건가? 우리 영감 이 나 먹으라고 음식을 부탁했다 고?”
강향숙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왜 오늘이지? 오늘 은…… 아무 날도 아닌데?”
“연말이고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이니 즐겁게 지내시라고 한 것이 아닐까요?’’
강진의 말에 옆에 있던 할머니 가 말했다.
“그럼 내일 보내지? 크리스마스 에 받으면 더 좋잖아.”
“그날은 저희 가게가 바쁘니 좀 한가한 전날로 예약을 해 놓으신 것이 아닐까 짐작이 됩니다.”
강진의 말에 강향숙이 전을 보 다가 뚜껑을 열었다.
통 안에는 동그랑땡과 김치전, 동태전, 꼬치전들이 예쁘게 담겨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있네.”
강향숙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김훙수가 전을 부탁하면서 강향숙이 좋아 하는 것들을 이야기했으니 말이 다.
그래서 이 전들은 강향숙 맞춤 이었다.
“김흥수 어르신께서 할머니 좋
아하시는 것들로 주문을 하셨습 니다. 드셔 보세요.”
강향숙이 동그랑땡을 하나 집어 입에 넣고는 미소를 지었다.
“청양 고추 많이 넣었네.”
“매운 동그랑땡을 좋아하신다고 하셔서요. 하지만 많이 드시지는 마세요. 속이 불편하실 수 있습 니다.”
강진의 말에 강향숙이 한숨을 쉬었다.
“이 나이에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으면…… 그게 어디 사는 건 가?”
말을 하며 동그랑땡을 하나 더 집어 입에 넣고 씹은 강향숙이 쓰게 웃었다.
“그 사람은 매운 것을 잘 못 먹 어서 매운 동그랑땡 만들면 화를 냈었는데……
“매운 것 못 먹는 거 뻔히 알면
서 맵게 만드니 그런 거 아냐.
매운 것 안 좋아하는 거 알면
서……
투덜거리던 김흥수가 강향숙을 보았다.
“달래 많이 먹어.”
강향숙을 향해 달래라 부르는 김흥수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따 라 했다.
“달래 많이 먹어.”
강진의 말에 강향숙이 그를 보 았다.
“방금 뭐라고 했나?”
“김흥수 어르신께서 주문지에
이렇게 적어 주셨습니다. ‘달래 많이 먹어.’라고 말을 꼭 전해 주 라고요.”
강진의 말에 강향숙이 멍하니 그를 보았다.
“나쁜 영감…… 자기 죽을 때 알고 있었나 보네.”
강향숙의 말에 옆에 있던 할머 니가 말했다.
“뭔데?”
“처녀 때 남편이 달래라고 불렀 거든요.”
“달래?”
“달래꽃 닮았다고……
작게 한숨을 토하는 강향숙의 말에 할머니가 그녀를 보다가 한 숨을 쉬며 그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도 영감이 최고네. 자기 없을 때 배고프지 말라고 이렇게 음식까지 주문해 놓고 가고.”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정말 부러 움이 가득했다. 자식들이 음식이 나 과일을 가져다주는 것하고 영 감이 가져다주는 것은 달랐다.
게다가 영감이 죽기 전에 자신 을 위해 음식을 주문해 놓고 갔 다니…….
“찌그러지고 녹 쓸어도 내 영감 이 최고지.”
옆에 있던 다른 할머니도 부럽 다는 듯 강향숙을 보았다.
“언니 정말 부럽다.”
두 할머니의 말에 강향숙이 전 을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음식 먹어요.”
“그래.”
두 할머니가 통을 하나씩 집자 강향숙이 힘들게 몸을 일으키고 는 보행 보조차를 잡고는 아이스 박스를 보았다.
“총각, 전 좀 여기다 올려줘.”
보행 보조차는 유모차와 비슷하 게 생겼는데, 힘없는 노인들이 잡고 의지해 걸을 수 있게 해 주 는 것이었다.
“다른 분들 주실 거면 제가 들 게요.”
“그래 줄래?”
웃으며 강향숙이 병실을 나서자 강진이 아이스박스를 들고는 그 뒤를 따라갔다.
몇 개만 들고 가도 되지만 강진 은 굳이 아이스박스를 통으로 들 었다.
강향숙이 사람들에게 자랑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강진을 데리 고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간 강향 숙이 간호사들에게 웃으며 말했 다.
“전 좀 먹어.”
“전요? 막순 할머니 가족 분들 오셨어요?”
전이라는 말에 간호사가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앞에 놓인 아이 스박스와 그 안에 있는 통들을 보고는 놀란 듯 말했다.
“세상에, 무슨 전을 이렇게 많 이?”
“막순 언니가 아니라 우리 영감 이 보냈어.”
“할머니 남편 분요?”
강향숙의 말에 간호사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강향숙 할머니 의 남편이 죽었다는 것은 그녀도 아는 것이다.
‘치매기가 있으신가?’
간호사가 그런 생각을 할 때, 강향숙이 웃으며 전이 담긴 통들 을 세 개 집어 카운터에 올렸다.
“우리 영감이…… 죽기 전에 주 문을 해 놓고 갔대.”
“네? 죽기 전에요?”
무슨 말인가 싶어 보는 간호사
를 보며 강향숙이 웃으며 말했 다.
“그 영감탱이가 자기 죽을 날 알았는지 죽기 전에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음식 해서 보내 주라 고 이 총각한테 부탁을 했다네.”
자신에게 부탁한 것은 아니지만 강진은 말없이 웃으며 간호사에 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어머!”
강향숙의 말에 간호사가 놀란 눈으로 강진을 보았다.
“ 진짜요?”
“네, 진짜입니다. 강향숙 할머니 남편이신 김흥수 할아버지께서 5 년 전에 오늘로 음식을 예약하셨 습니다.”
“어쩜…… 돌아가시고 5년 후에 음식을……
간호사가 놀란 눈으로 강향숙을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너무 좋으시겠어요.”
“좋기는…… 죽고 나서 이런 것 해 줄 거면 자기 살아 있을 때나
좀 잘해 주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강향숙의 얼굴은 밝았다.
“동그랑땡은 좀 매울 거야.”
“그래요? 저 매운 것 좋아해 요.”
간호사가 웃으며 통을 여는 것 에 강향숙이 환하게 웃었다.
“내가 동그랑땡에 청양 고추 많 이 넣어서 맵게 먹는 것 좋아하 거든. 우리 영감이 주문할 때 내 취향도 말을 한 모양이야.”
“할아버지 너무 자상하세요.”
“맛있게 먹어.”
“고맙습니다.”
“아! 장 선생하고 오 선생한테 전 준다고 내 병실로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부러 워요.”
“부러워?”
“할아버지가 할머니 얼마나 사 랑하시면 가시면서 이런 주문도
해 놓고 가셨겠어요.”
간호사의 말에 강향숙이 웃으며 몸을 돌리더니 다른 병실을 다니 며 전들을 돌렸다.
다른 층에 있는 사람들까지는 몰라도 같은 층에 있는 노인들은 얼굴도 알고 먹을 거 나눠 먹는 사이다 보니 음식을 돌리는 것이 다.
그리고 음식을 돌릴 만큼 양도 많고 말이다.
“우리 영감이 죽을 날 알았는지
음식을……
“내 취향대로……
“좋기는……
강향숙은 사람들에게 같은 이야 기를 계속했다. 남편이 죽기 전 에 자신에게 음식을 주문해 줬다 는 내용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할 때마다 다른 할머니들의 부러움을 받을 수 있 었다.
부러움을 받을 때마다 강향숙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던 강진
이 슬쩍 핸드폰 시간을 보았다.
‘올 때가 됐는데……
강진이 알기로 오늘 10시쯤에 박정철의 아들 박명구가 온다고 했었다.
그에 강진이 슬며시 아이스박스 를 들고는 복도로 나왔다. 그리 고 병실 쪽을 볼 때 한 오십 대 되어 보이는 남자가 강향숙의 병 실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그에 강진이 김흥수에게 다가가 손을 툭 치고는 복도로 나가자,
김흥수가 그 뒤를 따라 나왔다.
그리고 병실 앞에 서 있는 남자 를 보고는 말했다.
“ 명구다.”
박정철의 아들, 박명구가 왔다 는 말에 강진이 병실로 들어가 강향숙에게 말했다.
“병실에 손님이 온 모양인데 요.”
“그래? 그럼 맛있게 먹어.”
“부럽네.”
한 할머니의 말에 강향숙이 웃 으며 보조차를 끌고 자신의 병실 로 향했다.
아이스박스를 들고 그 뒤를 따 라간 강진은 박명구가 강향숙에 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볼 수 있 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명구 아니야?”
“안녕하세요.”
“여기를 어떻게 다 왔어.”
“사는 것이 바빠서 자주 찾아뵙
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이렇게 와 주니 얼마나 고마운데.”
웃으며 강향숙이 냉장고에서 음 료수를 하나 꺼내 주다가 강진을 보았다.
“전 하나 줘.”
강진이 전을 꺼내 내밀자, 그것 을 받아든 강향숙이 박명구에게 내밀었다.
“이거 하고 같이 먹어. 이거 우 리 영감이 나 먹으라고 보낸 거
야.”
“삼촌이 요?”
박명구가 의아한 듯 강향숙을 보다가 얼굴이 굳어졌다.
‘치매기가 있으신가?’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신 분이 음식을 보냈다 니…….
‘내가 너무 뜸했구나.’
자책을 하는 박명구였다. 어렸 을 때 그녀가 맛있는 것도 자주
해 주시고, 잘 해 주셨는데…… 먹고살기 힘들다고 자주 찾아뵙 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 박명구를 보며 강향숙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이야기 를 들은 박명구가 강진을 보았 다.
“삼촌이 음식을요?”
“그렇습니다.”
강진의 말에 박명구가 그를 보 다가 강향숙을 보았다.
“어머니 통장 있으세요?”
“통장? 통장 있지. 그런데 통장 은 왜?”
강향숙의 물음에 박명구가 웃으 며 말했다.
“오늘 아무래도 삼촌이 어머니 에게 선물을 주시는 날인가 보네 요.”
“ 선물?”
강향숙이 의아한 듯 박명구를 보자 그가 들고 온 서류 가방에 서 신문지 뭉치를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건?”
“저희 아버지가 삼촌에게 빌리 신 돈입니다.
“정철 오빠가?”
강향숙으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5년 전 죽은 사람들끼리 무슨 돈을 빌리고 빌려줬다는 말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