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219화 (217/1,050)

218화

의아해하는 강향숙을 보며 박명 구가 입을 열었다.

“어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리고 삼촌 이름 이야기하면서 아 버지가 육백만 원을 빌리셨다고 하셨어요.”

“그 사람이 누군데?”

“서신대학교 심리학과 임상옥 교수입니다.”

“임상옥 교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 던 강향숙이 물었다.

“그 사람은 그걸 어떻게 알았 대?”

“저도 그걸 어떻게 아셨냐고 여 쭤봤는데, 설명하기 어렵지만 여 차여차 알게 됐다고 하시더군 요.”

박명구의 말에 강향숙이 물었 다.

“그럼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의아해하는 강향숙을 보며 박명 구가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돈 을 갚는다고 육백만 원을 찾아오 라고 하셨는데…… 돈을 찾아와 보니……

잠시 말을 멈춘 박명구가 한숨 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주무시는 것처럼 편히 가신 뒤 였습니다. 장례 치르고 경황이 없다가, 나중에 아버님 물건 정

리하던 중 돈을 봤습니다. 아버 지가 생전 마지막으로 하려던 일 이라, 뒤늦게나마 제가 하려 했 는데 누구에게 빌렸다는 말을 안 하셔서 돈을 갚지 못했습니다. 설마하니 돌아가신 삼촌께 돈을 갚으려 했다는 생각은 못 했습니 다.”

“아......"

“그런데 임상옥 교수가 정확하 게 육백만 원이라는 말을 하더군 요. 그리고 삼촌 이름 말하는 데…… 알았습니다. 그날 아버지

가 육백만 원을 누구에게 가져다 주려고 했는지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강향숙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 억을 더듬다가 말했다.

“그런데 임상옥이라는 사람은 처음 듣는데……

“저도 처음 듣는데…… 예전에 두 분하고 몇 번 만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박명구는 임상옥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임

상옥이 말발로 잘 설득을 해 놓 은 모양이었다.

박명구가 강향숙의 손에 쥐여진 신문지 뭉치를 가리켰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찾아온 돈입니다.”

박명구의 말에 강향숙이 돈 뭉 치를 보다가 말했다.

“이걸 안 쓰고 가지고 있었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부 탁하신 거라 쓸 수가 없었어요.”

웃으며 돈 뭉치를 보던 박명구 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을 이제야 들어주게 되니…… 아버지 생각 이 나는 것이다.

그런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안 아 주는 강향숙을 보며 박명구가 입을 열었다.

“집에서 이 돈을 볼 때마다 아 버지 생각이 나고, 그분의 마지 막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해서 마 음이 좋지 않았는데……

박명구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마음이 편하네요.”

환하게 웃는 박명구를 보던 강 진이 흠칫했다. 어느새 박명구 옆에 박정철이 모습을 드러낸 것 이다.

“그래, 아들…… 너무 고맙다. 네 덕에 내 마음이 아주 가벼 워.”

환하게 웃으며 박명구를 보는 박정철의 모습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마음의 짐이 저거였

구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김 흥수는 웃으며 박정철을 보았다.

“5년이나 지나서 돈을 갚는데 그렇게 좋나?”

“좋지. 너한테 빚져서 내가 죽 어서도 눈을 못 감은 거잖아.”

두 귀신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김흥수가 강진을 보았다.

“고마워.”

김흥수의 말에 강진이 작게 웃 었다. 그러던 강진의 눈에 박정 철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화아악!

박정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역시……

박정철이 사라지는 것에 미소 짓던 강진이, 연이어 벌어진 일 에 놀란 얼굴이 되었다.

박정철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김흥수의 몸도 빛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두 귀신의 모습이 거의 동시에 사라지자, 강진의 눈빛에 의아함 이 스쳤다.

박정철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 었다. 하지만 김홍수도 승천을 하게 될 줄은 생각을 못 했던 것 이다.

‘김흥수 할아버지는 왜? 친구와 의 약속이 이행이 되어서 가신 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그의 앞에

종이가 세 장 떨어지기 시작했 다.

펄럭! 펄럭!

그에 강진이 슬쩍 종이를 잡아 서는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다가 문득 강진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을 보았다.

‘이 종이, 사람들 눈에 보이는 건가? 아니면 내 눈에만 보이는 건가?’

자신의 눈에야 종이로 보이지 만, 어쨌든 이 종이는 우에서 직

통으로 날아오는 것이니 저승의 물건이다.

자신이 귀신을 보는 것처럼 이 종이도 자신에게만 보이는지, 아 니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 는지 궁금한 것이다.

‘나중에 확인해 보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박명 구와 강향숙을 보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을 보며 강진이 아이스박스를 보 았다.

아이스박스 안은 많이 비어졌 고, 전이 담긴 통은 이제 여덟 개 정도만 남아 있었다.

그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저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 니다.”

“오늘 고마워.”

“아닙니다. 그리고 5년 동안 약 속을 못 지켜 드려서 죄송합니 다.”

“아니야. 이렇게라도 약속 지켜 줘서 내가 더 고맙지.”

“아닙니다. 그리고 자주는 약속 을 못 드리지만 가끔 전 만들어 오겠습니다.”

“정말?”

“5년이나 늦은 음식 배달인데 이 정도는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정말 고맙지.”

강향숙의 말에 박명구가 그를 보았다.

“음식점 명함 있으면 하나 주시 겠습니까.”

박명구의 말에 강진이 주머니에 서 명함을 하나 꺼내 주었다. 박 명구가 명함을 받자 강진이 아이 스박스에서 남은 통을 꺼내며 물 었다.

“이건 어디에 둘까요?”

강진의 말에 강향숙이 냉장고 위를 가리켰다.

“냉장고 위에다 둬. 이따가 정 리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통들을 냉장고 위에 올린 강진

이 마지막으로 강향숙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그래. 고마워.”

강향숙이 웃으며 강진의 손을 잡았다. 쭈글쭈글한 피부와 바짝 마른 듯한 손의 감촉…….

강진이 웃으며 그녀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올린 뒤 맞잡아 주 었다. 그런 강진의 손을 쓰다듬 으며 강향숙이 말을 했다.

“또 와.”

“알겠습니다.”

재차 고개를 숙인 강진이 아이 스박스를 들고 병실을 나섰다.

요양병원을 나온 강진이 트렁크 에 아이스박스를 싣고는 주머니 에 넣어 둔 종이를 꺼냈다.

종이는 세 장이었다.

지급자: JS 금융

6,000,000원 (금육백만원정)

이 수표 금액을 이강진, 임상옥 에게 지급하여 주십시오.

발행인: 박정철〉

지급자: JS 금융

3,500,000원 (금삼백오십만원

정)

이 수표 금액을 소지인에게 지 급하여 주십시오.

발행인: 김흥수〉

두 장의 수표 중 강진은 박정철 이 발급한 수표를 보았다.

“지급을 나하고 임상옥 교수님 둘로 해 놓으셨네.”

생각을 해 보면 박정철의 한 풀 어주는 데 임상옥도 한 일이 있 다.

아니, 임상옥이 거의 다 하기는 했다. 박정철 아들 박명구에게 가서 그에게서 돈을 갚게 했으니 말이다.

강진은 계기만 만들어 줬을 뿐 이었다. 그러니 박정철이 돈을 두 사람에게 나눠 지급해 달라고 수표를 쓴 것이다.

김흥수는 자신에게 수표를 써줬 고 말이다.

어쨌든 두 귀신이 써 준 수표를 보던 강진이 세 번째 종이를 보 았다.

〈이 사장, 고마워. 자네 덕에 승천도 하고 정말 좋고만.

일단 자네에게 보내는 돈은 다 른 것이 아니고, 우리 달래 가끔 씩음식 좀해 줘.

선입금 했다 생각해 줘. 이 돈 JS 내 전 재산이야. 그럼 잘 부 탁해.〉

김홍수의 편지에 강진이 웃었 다.

“귀신 생활 5년을 했는데 소에 돈도 있고. 홍수 할아버지도 살 아서 나쁘게 살지는 않으셨나 보

네.”

귀신으로 살게 되면 알게 모르 게 JS 잔고가 줄어들게 된다. 저 승식당에서 밥과 술을 먹는 것도 돈이 빠져나가고, 귀신으로 살면 서 하는 나쁜 행동들에도 잔고가 빠져나간다. 그런데도 돈이 350 만 원이나 있어 수표를…….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아니…… 돈이 있으면 그걸로 저승길 노잣돈을 하셔야지, 이걸 다 보내시면 어떻게 해?”

강진이 알기로 저승길은 무척 힘들다. 살을 자르는 검수림, 똥 통에서 튀겨지는 변탕지옥, 생살 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추운 한 빙지옥까지…….

그런 지옥을 대비해서 노잣돈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그 돈을 다 보내다니?

김홍수가 쓴 편지를 보던 강진 이 주머니에 편지와 수표를 넣고 는 차에 올라탔다.

米 *  米

덜컥!

문을 열고 나온 강진은 JS 금융 으로 걸음을 옮기며 강두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사장님.]

반갑게 전화를 받는 강두치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말했다.

“저 JS 금융인데, 잠시 은행 업 무 좀 보고 싶은데요.”

[JS 금융 업무요?]

“제가 수표를 받았는데 아무래 도 받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음…… 알겠습니다. 그럼 JS 금 융 들어오셔서 172번 창구 쪽으 로 와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JS 금융 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강진은 길게 늘어서 있는 귀신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빚이 많아서 JS 금

융에 잡혀 온 귀신들이었다.

그런 귀신들을 보며 강진이 창 구를 보았다. 창구에는 1번부터 번호가 써져 있었는데 직원이 있 어야 할 자리는 모두 비어 있었 다.

1번 창구를 지나 순서대로 가던 강진은 66번 창구에 직원이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기는 하겠 네.’

JS 금융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귀

신들의 업무를 이 직원 한 명이 처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귀신들은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류를 냈다가 처리가 안 되면 다시 뒤 로 가서 줄 서서 자기 순서 기다 리고 말이다.

배용수가 치를 떨며 했던 말을 떠올리며 66번 창구를 지나가자 100번 창구가 보였다.

100번 이상의 창구에는 직원들 이 있었다. 다만 100번과 101번 창구 사이에는 직원들이 라인을

쳐 놓고 일반 귀신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강진이 라인에 다가가자 직원으 로 보이는 정장 입은 사람이 줄 을 뽑아 그가 지나갈 수 있게 해 주었다.

“고맙습니다.”

“업무 처리 도와드릴까요?”

친절한 웃음을 보이는 JS 금융 직원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저 었다.

“강두치 씨와 약속이 되어 있습

니다.”

“강두치 대리님은 172번 창구에 계십니다.”

고개를 숙인 직원이 다시 라인 을 치자 라인 너머에 있는 귀신 들이 부럽다는 듯 강진을 보았 다.

그러다가 귀신 한 명이 슬며시 강진처럼 라인을 넘어가려 하자 직원이 그 앞을 막았다.

“나도 여기서 일 좀……

“손님의 일은 이쪽에서 보시면

됩니다.”

“귀신 차별하는 겁니까!”

귀신의 외침에 직원이 그를 보 다가 입을 열었다.

“차별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더 말을 하지 않고 라 인을 지키는 직원의 모습에 귀신 이 떨떠름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다시 줄로 가서 서려 했다.

그러자 줄을 서 있던 귀신들이 급히 자리를 좁혔다.

“뒤로 가요.”

“방금 전까지 여기가 내 자 리……

“줄 나갔으면 끝이지. 뒤로 가 요.”

“이봐!”

“뭐!”

고함을 지르는 귀신들의 모습에 직원이 한숨을 쉬고는 줄을 빠져 나갔던 귀신의 목덜미를 손으로 잡았다.

“악!”

“줄을 서세요.”

“여기가 내 자리였는데……

“가서 줄을 섭니다.”

그리고 자신을 밀어 버리는 직 원의 모습에 귀신이 뭐라 말을 할 듯 입을 달싹였다가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맨 뒤로 가서 줄을 서기 시작했다.

한편, 1()1번 이후의 창구에는 모두 직원들이 한 명씩 앉아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손님들은 몇 되지 않아 서 대부분의 창구는 비어 있었 다.

‘빈익빈, 부익부라……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1〔)1번 이후 창구 직원들과 손님들로 가 득 찬 1번대 창구는 분위기부터 가 많이 달랐다.

101번 이후 창구 직원들은 몇 되지 않는 손님에게 서넛이 붙어 서 이야기를 하고 상담을 진행하 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

이승에서도 있는 사람 없는 사 람 차별이 있는데…… 저승은 그 것을 노골적으로 더 심하게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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