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착하게 살자는 생각을 하며 걸 음을 옮기자 172번 창구에서 강 두치가 일어나서 손을 들었다.
“이 사장님, 여기입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그에게 다가갔다.
“여기는 되게 한가하네요.”
“101번 이후 창구는 VIP 손님 전용 창구입니다. 이승 은행도
VIP 전용 창구는 한가하잖아요. 그것과 같습니다.”
“어? 그럼 저도 VIP인가요?”
“아직 VIP 되기에는 금액이 좀 부족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VIP 되실 저승식당 오너이니 편의를 좀 봐 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은 사무실이 아니 시네요?”
“저희도 가끔은 창구 업무를 봅 니다. 일종의 휴가죠.”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자신을
보라는 듯 웃던 강두치가 힐끗 저 멀리 있는 1번대 창구 쪽을 보았다.
“대신 운 나쁘게 저쪽으로 배정 되면 정말 끔찍하죠.”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수많은 귀신들을 상대하는 창구 쪽을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 정도 귀신들을 혼자 상대하려면... 피곤하기는 하겠
네.’
줄을 서 있는 귀신들도 힘들겠
지만, 저 많은 귀신들에게 일일 이 서류를 받고 살피는 직원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는 점심시간은 있나?’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에게 강 두치가 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시죠.”
강진이 자리에 앉자 강두치가 말했다.
“음료 뭐로 드릴까요?”
“서천꿀물 주세요.”
저번에 먹어 본 서천꿀물 맛이 괜찮았다.
강두치가 책상 밑으로 고개를 숙여서는 서천꿀물 캔을 꺼내주 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수표 업무시라고요?”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수표를 꺼내 내밀었다. 수표를 받은 강 두치가 컴퓨터로 시선을 돌려서 는 숫자를 입력했다.
“둘 다 정상 발급된 건데……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요?”
“여기 김흥수 씨가 발급해 준 수표, 혹시 그분에게 다시 보내 줄 수 있습니까?”
“그럼 발급 취소 업무시군요.”
“네.”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말했다.
“그럼 이 박정철 씨가 발급한 수표는?”
“그건 입금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임상옥 님과
이강진 님 두 분에게 300만 원 씩 입금을 하겠습니다.”
타타탓! 타타탓!
강두치가 키보드를 두들기다가 말했다.
“이 사장님 거래 내역 중 서신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임상옥 님 이 계신데 이분 맞으신가요?”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저 키보드를 두들기는 강두치
를 보던 강진이 물었다.
“제 계좌에 교수님과 거래 내역 이 있나요?”
강진의 물음에 강두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승 은행에서 거래를 하면 상 대 계좌가 최근 사용한 목록에 남는 것과 같습니다.”
말을 한 강두치가 강진이 아직 의아해하는 것 같자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JS 금융의 거래 내역은 자신이
만난 사람들과 어떤 행위를 했느 냐에 따라 출금과 입금 같은 거 래 내역이 남습니다. 그리고 여 기에 임상옥으로 된 이름은 그분 하나뿐이네요.”
“그렇군요.”
강진이 이해를 했다 싶은지 다 시 키보드를 치던 강두치가 말했 다.
“임상옥 씨와 이 사장님에게 각 각 삼백만 원씩 입금했습니다.”
“네.”
“그럼 이제 김흥수 씨가 발급한 수표 취소인데…… 잠시만요.”
컴퓨터에 뭔가를 빠르게 입력을 한 강두치가 화면을 보았다.
헬톡! 헬톡!
화면을 보고 있을 때 뭔가 이상 한 소리가 들렸다.
‘헬톡? 설마 깨톡 JS 버전인 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강 두치가 핸드폰을 꺼내 보고 있었 다.
‘진짜네.’
이승을 너무 많이 반영한 것 아 닌가 싶을 정도의 카피율에 강진 이 강두치를 볼 때, 강두치가 말 했다.
“본사 쪽에 문의를 해 봤는데 김흥수 씨가 수표 괜찮다고 쓰라 고 하십니다.”
“저승에서 노잣돈 없으면 힘들 텐데……
“김홍수 씨의 전언이 있는 데…… 직접 보시겠어요?”
강두치가 핸드폰을 내밀자 강진 이 그것을 받아 보았다.
〈몸으로 때우는 거면 어디 가도 자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 리고 내가 어디 흉악한 놈도 아 니고 나름 착하고 사람 도우며 살았다 자신하는 놈이니까 걱정 하지 마.
지옥이야 나쁜 놈들이나 겁을 낼 곳이지, 내가 어디 나쁜 짓 한 것도 없는데 겁을 낼 이유가 없잖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우리 마누 라나 가끔씩 찾아봐 주면 좋겠 어.
아! 내 변호사가 부른다. 나 지 금 재판 들어가야 하니까. 다음 에 또 보자고.〉
김흥수가 보낸 문자를 보던 강 진이 피식 웃었다.
‘다음에 또 보자근}…… 악담을 하시네.’
김흥수를 다음에 보게 될 때는
자신이 죽어서이니…… 그리 좋 은 말은 아닌 것이다.
강진이 핸드폰을 강두치에게 주 며 말했다.
“그럼 못 보내는 건가요?”
“받으실 분이 안 받으신다고 하 니…… 방법이 없습니다.”
강두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문득 그를 보았다.
“그런데 돈이 없으실 텐데 변호 사는 어떻게……
“이승도 돈이 없어도 국선 변호 사가 맡아 주잖습니까. 저승에도 돈이 없는 사자들을 위해 무료 변호인들이 있습니다. 물론 돈이 있으면 비싼 변호사를 쓰는 것을 추천하지만요.”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연말인데 회식 한 번 하러 오 세요. 제가 잘 해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웃었다.
“죄송한데 이번 연말 회식은 경
상도 저승식당으로 예약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요?”
“저희 부장님이 상어고기를 좋 아해서요. 연말에는 경상도에서 상어고기로 회식을 합니다.”
“스도 부장님 식성 따라 회식이 잡히나 보네요.”
“소나 이승이나 직장인들이 어 디 가겠습니까.”
웃으며 강두치가 말을 했다.
“더 필요한 것 있으십니까?”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럼 또 오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난 강두치가 웃으 며 고개를 숙이자 강진도 인사를 하고는 JS 금융올 나섰다.
* * *
저녁 장사를 마친 강진은 2층에 서 잠시 잠을 자고는 9시쯤 밑으 로 내려왔다.
TV를 보고 쉬고 있는 배용수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육개장은 잘 되고 있어?”
“준비 완료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솥에 서 육개장이 끓고 있었다.
“잘 됐네.”
오늘 김소희가 오기로 한 날이 라 그녀가 좋아하는 육개장을 준 비를 한 것이다.
끓어오르는 육개장을 보던 강진 이 닭발을 꺼내 음식 준비를 마 저 하기 시작했다.
10시 반이 될 무렵, 황민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띠링! 띠링!
풍경 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황 민성의 모습에 강진이 홀로 나왔
다.
“오셨어요?”
강진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던 황민성이 크게 기침을 했다.
“에취!”
“감기 걸리셨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냄새 많이 맵네.”
코를 문지르는 황민성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소희 아가씨가 매운 닭발하고
육개장을 좋아하셔서요.”
“많이 매워?”
“많이 맵지만 맛은 있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며 주방을 보자 강진이 말했 다.
“음식 내 드릴까요?”
“아니야. 지금은 따뜻한 차나 한 잔 줘. 음식은 그 여자 오면 먹을 테니까.”
아가씨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 듯, 여자라 말하는 황민성 을 보며 강진이 주방에서 석청을 컵에 덜어 뜨거운 물을 타 내왔 다.
“따뜻한 꿀물이에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잔을 받 아 한 모금 마셨다.
“달달하네.”
“꿀이니까요.”
“용수 서운해하지 않던?”
조금 그렇기는 했는데 이해했
어요. 어머니가 정신 드셨는데 가서 봬야죠. 어머니는 괜찮으세 요?”
“다행히 정신 오래 드셨더라고. 차도 한잔하고 이야기 좀 하다가 잠드셔서 다시 올라왔어.”
“잘됐네요.”
“가끔씩 정신 들었다는 연락 받 고 가면 다시 멍하실 때가 많았 는데 이번에는 운이 좋았어.”
웃는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고 개를 끄덕이고는 슬며시 말했다.
“소희 아가씨가 말을 좀…… 하 대 위주로 하시는 분이니 그건 좀 양해를 해 주세요. 그리고 꼭 존대해 주시고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본 것은 아니지 만 한 번 대화했을 때 확실히 느 끼기는 했으니 말이다.
“그건 이해를 해야지. 그런 쪽 사람들이 원래 말을 하대하거 rz ”
“그런 쪽 사람들요?”
“무당 말이야
“소희 아가씨 무당 아닌데.”
“그래? 복장이나 말하는 것 보 면 딱 무당인데?”
“아가씨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알았어.”
꿀물을 마저 마시던 황민성이 말했다.
“용수는 오늘 안 오나?”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서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어머니 요즘 기력 많이 좋아졌더라.”
“그러세요?”
“너하고 다녀온 후에 밥도 잘 드시고, 잠도 잘 주무시고 잘 지 내신대.”
“다행이네요.”
“고맙다. 네 말대로 음식 직접 하시게 했던 것이 좋게 작용했나 봐.”
“가끔 가서 음식 같이 하고 그 러면 더 좋아지실 거예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잠시 망 설이다가 말했다.
“너 바쁘지 않고 하면...... 가끔 같이 갔으면 하는데.”
“가끔이면 시간 못 낼 것도 없 죠. 그리고 형이 일당도 두둑이 챙겨 주시는데 못 갈 이유가 없 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다.
“그래. 형이 아주 가끔 부탁할
게.”
“말이 그렇다는 거죠. 언제든 편하게 말하세요. 제 시간만 맞 으면 저도 경치 좋은 곳 가서 밥 먹고 오는 데 나쁠 게 없으니까 요.”
“그래. 고맙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형수님하고는 언제 같이 오세 요?”
“그 사람은 바빠서……
“아무리 바쁘셔도 식사할 시간 없겠어요? 아! 크리스마스가 이 틀 후니 그때 오세요. 제가 음식 제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음…… 한 번 물어볼게.”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힐끗 시간을 보았다. 이제 곧 11시인 것을 본 강진이 일어났다.
“곧 오실 테니 저는 음식 준비 할게요.”
“오면 하지 그래?”
“시간 약속은 철저하신 분이라 서요. 11시 되면 바로 오실 겁니 다.”
주방으로 들어간 강진이 매운 닭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띠링! 띠링!
풍경 소리에 고개를 내민 강진 은 김소희가 들어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강진의 인사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이 늘 앉는 자리 로 가서는 앉았다.
스륵!
그리고는 작게 입을 열었다.
“소주 주게나.”
“알겠습니다.”
강진이 소주와 잔을 가져와 놓 고는 말했다.
“안주는 육개장과 매운 닭발로 준비했습니다.”
“고맙네.”
소주를 들어 잔을 채우는 김소 희의 모습에 강진이 황민성을 보 았다.
황민성은 김소희를 보고 있었 다. 그녀가 들어오면서 분명 자 신을 봤을 텐데 시선도 주지 않 으니 아는 척을 하지 못할 뿐이 었다.
그런 황민성을 강진이 김소희에 게 슬며시 말했다.
“황민성 씨 오셨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황민성을 향해 시선을 주고는 말없이 소주 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일단 안주 가져오겠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주방에서 미리 준비를 한 안주와 육개장을 덜어 서 가지고 나왔다.
스윽!
육개장과 매운 닭발을 내려놓은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황민성 씨와 같이 하시겠습니 까?”
“옆에 한 상 차려 주게나.”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 다.
“형,여기 앉으세요.”
강진이 김소희 옆에 있는 탁자 를 가리키는 것에 황민성이 입맛 을 다셨다.
‘자리도 따로 해야 하는 건가?’
조금 떨떠름하기는 하지만 황민 성이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김소
희의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 사이 강진이 황민성의 탁자 에도 육개장과 매운 닭발을 가지 고 왔다.
“형, 소주 드릴까요?”
“줘.”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소주를 가져와서는 그의 잔에 따라주었 다.
쪼르륵!
잔에 소주가 채워질 때 김소희
가 입을 열었다.
“할 이야기가 무엇인가?”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이 몸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
“전에 저에게 하신 말, 무슨 의 미인지 알고 싶습니다.”
“무슨 의미인지는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는가?”
“제가 말입니까?”
“알고 있으니 나를 보자고 한
것이 아닌가?”
말을 한 김소희가 잔을 들어 소 주를 마시고는 고개를 돌려 황민 성을 보았다.
김소희의 시선에 황민성이 침을 삼켰다. 김소희의 눈이 마치 자 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 낌을 줬기 때문이었다.
“자네가 이때까지 한 고생이 안 쓰러우니 내 한 가지 질문에는 답을 해 주겠네.”
“한 가지 질문?”
“한 가지뿐이니 신중하게 말하
게.”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이 그녀를 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눈을 응시할 때, 황민성이 재차 침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해야 하는 것입니까?”
“생각해 보게.”
그러고는 김소희가 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자 황민성이 심각한 얼 굴로 소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