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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228화 (226/1,050)

227화

11시가 되자 귀신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놀란 듯 그들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 텅 비어 있던 가게 가 한순간에 꽉 들어차니 말이 다.

“단체 예약이 있었어?”

한 번에 우르르 들어오는 사람 들을 보니 단체 예약인가 싶은 것이다.

“그건 아닌데…… 저희 가게가 저녁 장사 이후에는 11시부터 술 장사를 해서요. 그래서 기다렸다 가 손님들이 들어오세요.”

웃으며 강진이 입구를 보았다. 귀신들과 함께 배용수가 따라 들 어오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배용수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들이 들어오기 전, 강진은 배용수에게 귀신들의 입단속을 부탁했었다.

황민성이 있으니 귀신이나 저승 관련한 이야기는 좀 자제해 달라 고 말이다.

“용수야.”

반갑게 손을 드는 황민성의 모 습에 배용수가 그에게 다가갔다.

“오신다는 이야기 듣고 바람처 럼 왔습니다.”

“형이 저번에 약속 못 지켜서 미안했다.”

“괜찮아요. 어머니 이야기 들었 습니다.”

“그래. 이해해 주니 고맙네. 아! 형이 양주 좀 가져왔는데, 양주 좋아해?”

“없어서 못 먹죠.”

환하게 웃는 배용수를 보던 황 민성이 웃으며 그 어깨를 툭 쳤 다.

그런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귀 신들을 보았다. 귀신들은 강진이 만든 케이크를 보고 있었다.

“케이크 이쁘네.”

“하긴, 크리스마스에는 케이크

가 어울리지. 나도 크리스마스 때는 애들하고 먹으려고 케이크 샀었는데.”

“우리 아버지가 크리스마스 때 크림 케이크하고 바나나 사온 것 생각나네.”

“여기서 케이크는 처음인 것 같 아.”

귀신이 돼서 케이크는 처음 보 는 것 같았다. 아니, 길거리에서 파는 케이크를 보기는 했을 것이 다.

다만, 자신들이 먹을 수 있는 저승식당 케이크를 보는 것은 오 늘이 처음인 모양이었다.

귀신들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웃 으며 말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라 케이크를 좀 준비했습니다. 혹시 ‘내 종교 와 맞지 않아’ 하시는 분이 계실 지도 모르겠지만, 기독교라고 석 가탄신일 날 안 쉬는 것은 아니 니까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다. 불교라

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모처럼 손님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즐기려고 케이크를 만들었습니다.”

“그럼 오늘은 다른 음식 못 먹 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크리스마스 하면 또 맛있는 음식 아니겠습니까?”

강진이 주방을 가리켰다.

“대신 오늘은 따로 음식 주문은 받지 않고 미리 만들어 놓은 음

식들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저도 오늘은 여러분들과 크리스마스 기분 좀 내고 싶어서요.”

그러고는 강진이 주방에서 커다 란 반찬 통들을 홀과 주방 사이 의 칸에 올려놓았다.

“베스트 메뉴로만 만들어 놨으 니 마음에 드실 겁니다.”

반찬 통에는 그동안 귀신들이 와서 주문한 음식들 중 베스트 메뉴라고 할 만한 음식들이 담겨 있었다.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계란말 이, 매운 닭발볶음, 김치찌개와 육개장, 계란찜 등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괜찮으시죠?”

“이 정도면 훌륭하지요.”

귀신들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초를 가져왔다.

“촌스럽기는 하지만 케이크 하 면 또 초 아니겠어요? 하나씩 드 릴 테니까, 마음에 드는 케이크 에 꽂으세요. 그리고 소원 같은

것도 하나씩 빌어 보시고요.”

그러고는 강진이 초들을 뭉텅이 로 귀신들에게 나눠 주었다. 초 들을 서로 나누어 가지는 귀신들 을 보며 강진이 케이크에 초를 하나 놓고는 불을 밝혔다.

“불은 이걸로 붙이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황민성에게도 초를 하나 내밀었다.

“형도 하나 꽂으세요.”

그러자 황민성이 어색하게 초를 받았다.

“이런 거…… 정말 안 하는데.”

“누구는 하나요? 저도 정말 오 랜만이에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고는 케이크가 있는 곳을 보 았다.

곧 황민성이 얼굴에 살짝 놀람 이 어렸다. 사람들이 초에 불을 붙이고는 소중하게 그것을 쥔 채 눈을 감고 소원을 빌고 있었다.

‘술집에서 하는 이벤트에 뭘 저 렇게……

너무 진지한 사람들의 모습에 황민성이 슬며시 초에 불을 붙였 다.

‘소원이라……

잠시 중얼거린 황민성이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건강…… 아니, 행복 하셨으면 합니다.’

속으로 소원을 빈 그는 눈을 뜨 곤 조심스레 케이크에 초를 꽂았 다. 초를 다 꽂은 황민성이 뒤로 물러나자 어느새 케이크에는 초

가 여럿 꽂힌 채 빛나고 있었다.

“자! 그럼 하나, 둘, 셋 하면 동 시에 후 하면서 끄기로 해요. 하 나! 둘! 셋!”

강진이 크게 후 하고 부는 것과 함께 귀신들도 크게 바람을 불었 다.

그리고 황민성도 주위 분위기에 조금은 어색하게 후 하고 바람을 불었다.

촛불이 꺼지는 것과 함께 강진 이 초를 케이크에서 뽑아내고는

말했다.

“그럼 메리 크리스마스 하시고 음식과 케이크는 알아서 가져다 드시면 됩니다. 오늘은 저도 주 인 말고 손님처럼 좀 즐기겠습니 다.”

“고마워요.”

한 귀신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같이 즐기는 거죠.”

그러고는 강진이 황민성이 가져 온 양주병을 가리켰다.

“그리고 여기 있는 황민성 씨가 오늘 모임에 양주를 지원해 주셨 습니다. 드시고 싶으신 분들은 드시면 됩니다.”

강진의 말에 양주를 좋아하는 귀신들이 양주병에 다가가다가 놀란 듯 말했다.

“이야! 이거 좋은 건데……

“이거 이백만 원도 넘는 건 데……

“로얄…… 이게 몇 살짜리야? 아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네.”

귀신들이 놀란 얼굴로 양주를 구경하는 것을 보던 강진이 안주 들올 담아서는 황민성과 함께 자 리에 앉았다.

“형, 술 어떤 걸로 하시겠어 요?”

“용수 먹고 싶은 걸로 가져와.”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양주를 하나 들고 왔다.

“시바스 리갈 좋아해?”

“전 이게 맛있더라고요.”

그러고는 배용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이것밖에는 안 마셔 봐서 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바스 리갈을 상자에 서 꺼내며 말했다.

“냉수하고 미온수 좀 가져다줄 래?”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물 컵에 냉수와 미지근한 물을 따라왔다. 그 사이 시바스 리갈 뚜껑을 열

은 황민성이 잔을 세 개 놓고는 그 안에 술을 따랐다.

쪼르륵! 쪼르륵!

“술 마시는 방법 알아?”

“그냥 마시면 되는 거 아니에 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방법이 따로 있는 것 아니에 요?”

“그것도 정답.”

“정답이 많네요.”

웃으며 말하는 강진을 보며 황 민성이 말했다.

“요리하는 사람들이니 음식이 개인 취향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 지.”

“내가 맛있어도 상대의 취향과 다르면 맛은 다르게 느껴지는 거 니까요.”

“술도 마찬가지야. 스트레이트 로 먹거나 얼음, 냉수, 미온수 뭘 섞어 먹냐는 것에 따라 맛이 조 금씩 변하거든. 그냥 먹어보고, 냉수, 미온수 이렇게 먹어봐서 자신한테 가장 맞는 맛으로 먹어 보는 거야.”

“형,술 잘 아시네요.”

“사업하다 보면 술이 빠지기도 어렵거든. 그래서 조금이라도 맛 있게 마셔 보려고 하다 보니 알 게 된 거지. 참고로 나는 미온수 살짝 타 마시는 게 좋더라.”

“보통 얼음 아니에요?”

“내가 맛있으면 그것이 정답 아 니겠어?”

“그것도 그러네요.”

웃으며 강진이 잔을 들었다. 가 게에 양주잔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술이 따라진 것은 소주 잔이 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황민성이 잔을 들고 내밀자, 배 용수와 강진도 잔을 들고는 내밀 었다.

“메리 크리스마스요.”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가볍게 잔을 부딪친 세 사람이 웃으며 술을 마셨다.

셋이 술을 마시는 동안, 혜원이 건자두가 올라간 케이크 조각을 보고 있었다.

“혜원 씨, 드세요.”

최호철의 말에 혜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포크로 건자두를 살

짝 찍어서는 입에 넣었다.

곧 그녀의 눈이 살짝 경련을 일 으켰다. 깔라만시 소스의 상큼함 이 입에 차는 것이다.

그에 눈을 찡그리고 있던 혜원 이 몇 번 더 씹었다. 그리고 미 소를 지었다.

“어때요?”

최호철의 말에 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감이 조금 다르기는 한데 맛 은 자두하고 비슷해요.”

“많이 먹어요.”

최호철이 자신의 케이크에 있는 건자두를 그녀의 접시에 놓아주 었다. 그 모습에 혜원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자두 케이크를 먹 기 시작했다.

“맛있네요.”

아팠을 때는 몸을 위로해 주는 맛이었다면…… 지금은 마음을 위로해주는 맛 같았다.

‘엄마......"

아픈 자신을 업고 시장을 걷던

엄마가 사 주던 자두의 맛이 가 슴을 따스하게 만들었다.

‘보고 싶다.’

* * *

12시가 넘어가면서 귀신들의 웃 음소리와 이야기 소리는 더욱 커 졌다.

그런 귀신들 사이에서 황민성과 강진도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

시고 있었다.

그리고 술은 어느새 소주와 맥 주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에는 호기심 삼아 양주를 마셨지만 역 시 소주와 맥주가 좋다는 강진의 말에 주종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황민성도 딱히 양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양주를 좋아했다면 이렇게 많은 양주가 집에 남아 있지도 않을 테고 말 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렇게 마음 편히 있는 것도 처음이네.”

“앞으로는 같이 보내요. 아! 아 니지. 다음에는 형수님하고도 같 이 오세요.”

물론 이 시간 말고 저녁 장사 때 말이다.

“하! 그러고 싶지만 나도 바쁜 사람이야.”

“안 바쁘실 때 오면 되죠.”

“그건 그렇지.”

말을 하며 황민성이 배용수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배용수 가 잔을 들자, 황민성이 말했다.

“요즘 일은 어때?”

“ 일요?”

“아직도 쉬는 중이야?”

배용수가 쉬고 있다는 말이 아 직도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아…… 가끔 강진이 일 도와주 고 있어요.”

“도와주는 것과 일하는 것은 다 르지.”

“그건…… 그렇죠.”

“형이 너 좋게 봐서 그런 것도

있지만, 네가 만든 음식들 맛도 좋고 센스가 있더라.”

“감사합니다.”

“아니야. 진짜로 어지간한 호텔 한정식집 음식보다 간이나 맛이 좋아.”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 다.

“제가 또 요리를 잘하기도 하고 잘 배우기도 했습니다.”

배용수는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리고 운암정에서 음식을

배웠다는 것에 대한 자존감도 있 고 말이다.

그래서 음식에 대해서만큼은 겸 손하지는 않았다. 배용수가 자신 있게 하는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놀기 귀찮아지면 이야기해. 자 리 하나 알아봐 줄게. 아니 면……

황민성이 강진을 보고는 가게를 보다가 말했다.

“형이 투자할 테니까 너희 둘이

가게 좀 넓혀 보던가.”

“가게를 넓혀요?”

“형이 좋은 곳에서 음식들 많이 먹어봤는데 너희 음식처럼 괜찮 은 곳은 운암정 정도뿐이었어.”

“에이! 어디 저희 음식을 운암 정에 비교해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어떤 면에서는 운암정 보다 여기 음식이 더 괜찮아.”

“그럴 리가요. 운암정 음식은 최고예요.”

배용수가 눈을 찡그리며 하는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운암정에 아는 사람 있어?”

“그건…… 아니고, 그냥 운암정 하면 한국 요리사들의 자존심 같 은 거니까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지. 한정식 하면 운암정이니 까. 하지만 너희는 손님들의 입

맛에 맞는 요리를 만들잖아. 손 님이 원하는 음식과 취향대로 말 이야.”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다.

운암정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만 들지, 손님 하나하나의 취향은 맞출 수가 없다.

“그리고 마음이 따스해지는 음 식…… 너희 가게는 좋은 가게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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