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호텔 10층은 전체가 사우나였 다. 황민성이 안으로 들어가며 카드를 내밀었다.
“어서 오십시오.”
“두 사람입니다.”
여직원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카드를 받고는 열쇠를 두 개 주 었다.
“갈아입을 옷 좀 올려주세요.”
“옆에 분은 어떻게 해드릴까 요?”
여직원의 말에 황민성이 강진을 위아래로 보다가 말했다.
“내 옷 입어도 사이즈 괜찮을 것 같은데.”
“저는 이거 입고 가도 돼요.”
“개운하게 씻고 그거 입으면 다 시 안 개운해지겠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편한 추리닝 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편하게
입는 거라 더럽다고는 못 해도 깨끗하다고도 하기 어려웠다.
강진을 보던 황민성이 여직원을 보았다.
“제 옷으로 두 벌 올려 주세 요.”
“알겠습니다.”
황민성이 강진을 데리고 사우나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이 공손하
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황민성 이 고개를 마주 숙이고는 구두를 벗고 올라가자 강진도 신발을 벗 었다.
그리고 신발을 주우려 할 때, 황민성이 말했다.
“그냥 두면 돼.”
“네?”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잠가야 하지 않나 강진이 생각을 할 때, 직원이 두 사람이 벗은 구두와 운동화를 집어서는 어딘가로 가
지고 갔다.
“어?”
“갈 때 다시 줘.”
“따로 관리해 주는 거예요?”
“구두는 닦아주고, 신발은 건조 기로 건조해서 방취제 뿌려 줘.”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가는 황민 성의 뒤를 따라간 강진은 사우나 가 고급스러운 것에 살짝 놀랐 다.
‘동네 목욕탕하고는 차원이 다
르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황민 성을 보았다.
“그런데 옷을 올려 주라는 건 무슨 말이에요?”
“여기에 형이 쓰는 룸이 하나 있어. 거기에 형 옷이 몇 벌 있 으니 갈아입게 가져다 달라고 한 거야.”
“룸이 있어요?”
“일하다가 늦거나 술 많이 먹으 면 여기서 자고 가거든. 가끔 직
원들하고 여기서 회의도 하고 기 획도 하고…… 그래서 룸이 하나 있어.”
“그럼 안 쓸 때는요?”
“비워 두는 거지.”
“안 쓴다고 돈 안 내는 것은 아 닐 텐데…… 아까워요.”
“투자지.”
웃으며 말을 한 황민성이 탈의 실로 가서는 옷을 벗기 시작했 다.
스윽! 스윽!
옷을 벗은 황민성이 마찬가지로 옷을 벗은 강진을 보았다.
“몸 좋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형 몸이 더 좋은데요.”
“술 먹어서 많이 죽었지. 형 옛 날에는 10킬로 정도 더 나갔는데 그때는 장난 아니었다.”
웃으며 황민성이 걸음을 옮기자
강진도 그 뒤를 따라갔다.
사우나 안으로 들어간 강진은 어쩐지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일반 목욕탕은 조금 눅눅하고 습 한 공기인데, 여기는 상쾌한 느 낌이 었다.
“좋네요.”
“시설 좋다고 했잖아.”
웃으며 황민성이 샤워 부스에 가서는 물을 틀었다.
촤아악!
가느다란 물줄기가 강하게 뿜어 져 나왔다.
‘샤워기도 좋은 건가 보네. 음이 온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물을 틀은 강 진이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샤 워를 마치고 황민성이 뜨거운 탕 으로 들어가자 강진이 그 옆에 슬며시 들어갔다.
“아! 좋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미소 를 짓는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돈 벌어서 잘 했다, 싶은 순간 이 여기서 목욕할 때야.”
기분 좋은 얼굴로 탕에 머리까 지 담갔다가 나온 황민성이 강진 을 보며 슬며시 말했다.
“용수 어디 아파?”
“용수요?”
“요리도 잘하는데 오래 쉬는 것 같아서.”
“그건 아니고…… 그냥 지금은 좀 쉬고 싶대요. 열심히 살았거 든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하긴 사람이 좀 쉴 때도 있기는 해야지. 너무 빨리 달리기만 하면 지치니까.”
스륵!
이야기를 나눌 때 엘리베이터서 본 강 이사가 탕 안으로 슬며시 들어왔다.
“음! 좋다.”
들으라는 듯 살짝 목소리를 올 린 강 이사가 슬며시 황민성에게 말을 걸었다.
“올해도 다 갔습니다.”
강 이사의 말에 황민성이 작게 한숨을 토하고는 고개를 끄덕였 다.
“네.”
“그, 며칠 후에 저희 회사에서 연말 파티를 하는데 황 사장님 시간 되시면……
“약속이 있어서 안 될 것 같습 니다.”
황민성의 말에 강 이사가 웃으 며 물을 손으로 떠서는 얼굴을 훔쳤다.
얼굴을 훔치는 순간 강 이사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개자식! 날짜도 이야기 안 했 는데……
마치 여자 친구한테 아직 개봉 안 한 영화를 같이 보자고 했는 데, ‘미안. 나 그거 이미 봐
서…….’라는 답이 온 것과 같았 다.
자신을 철저히 무시하는 듯한 황민성의 모습에 강 이사가 속으 로 이를 갈 때, 강진은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유는 딱 하나, 강 이사의 옆 에 붙어 있는 수호령 때문이었 다. 귀신이기는 해도 여자인 데…… 그 앞에 발가벗고 있으니 말이다.
꾸루룩!
슬며시 물속에 몸을 담그며 고 개를 숙이고 있던 강진이 힐끗 여자 귀신을 보았다.
여자 귀신은 안타까운 눈으로 강 이사를 보고 있었다.
‘이거 불편하네.’
나가지도 못하고 물에 몸을 담 가 두고 있을 때, 황민성이 몸을 일으켰다.
촤아악!
“냉탕 가자.”
황민성의 말에 강진도 급히 물 에서 나오며 몸을 돌렸다. 앞을 보이는 것보다는 엉덩이가 낫다 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황민성이 냉탕으로 풍덩하고 뛰 어들고는 가볍게 수영을 하기 시 작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냉탕 에 뛰어들었다.
작게 진저리를 치며 위아래로 몸을 첨벙첨벙한 강진이 가볍게
물을 가르며 몸을 움직였다.
‘부자들 다니는 사우나도 별거 없네.’
냉탕에서 수영하는 것은 부자든 가난하든 다 똑같았다. 첨벙거리 며 냉탕을 오가던 강진이 슬쩍 온탕 쪽을 보았다.
강 이사는 온탕에서 이쪽을 힐 끗거리고 있었다. 그런 강 이사 를 보던 강진이 말했다.
“근데 저 사람 누구예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힐끗
강 이사를 보고는 말했다.
“강상식이라고 오성화학 이사.”
“오성화학? 오성그룹요?”
“맞아. 거기 강 회장님 손자.”
“오…… 금수저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강상식 쪽을 보고는 말했다.
“금수저는 금수저인데…… 중간 에 금이 좀 갔지.”
“금요?”
“오성그룹에서 내놓은 개차반이
거든. 그러니 계열사 중에 가장 떨어지는 오성화학, 그것도 사장 도 아니고 이사로 박아 놓은 거 지.”
마음에 안 든다는 의미가 강한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저 사람 형한테 친한 척 많이 하던데요?”
“개차반이라도 멍청한 것은 아 니니까.”
황민성이 냉탕 난간에 팔을 올 리고는 몸에 힘을 빼 축 늘어지
며 말했다.
“성격 나쁜 주제에 욕심까지 많 은 놈이니 자신을 배제한 회사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드는 거지. 그래서 자신한테 힘을 실어 줄 사람들에게 친한 척하며 다가가 는 거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형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대단?”
“오성그룹이면 한국에서 최고인
데 저 사람한테 형이 도움이 된 다는 거잖아요.”
“내가 대단하다기보다는 나한테 투자를 한 사람들의 돈이 대단한 거지.”
그리고는 황민성이 강 이사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야.”
“성격 안 좋아 보이기는 하네 요.”
“안 좋지.”
황민성이 냉수에 몸을 한 번 담 갔다가 일어났다.
“사우나 들어가자.”
황민성이 냉탕을 나와 사우나에 들어가자 강진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사우나를 마치고 나온 강진은 조금 어색한 얼굴로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보았다.
강진이 입고 있는 것은 황민성 이 입은 것과 비슷한 스타일의
정장이었다.
위아래 모두 명품이었고 벨트와 넥타이, 양말까지도 명품이었다.
강진이 입은 것을 보던 황민성 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리네.”
“집에 가서 드릴게요.”
“됐어. 너 입어라. 잘 어울리 네.”
“이거 비싼 것 같은데……
비싸 봤자 옷이지. 가자.”
강진이 급히 자신이 벗어 놓은 옷을 챙기려 하자 황민성이 말했 다.
“그냥 둬.”
“옷을요?”
“두면 직원들이 회수해서 세탁 해서 내 룸으로 가져다 놓을 거 야. 형이 다음에 가져다줄게.”
“저는 그냥 집에 가서 빨면 되 는데.”
“그게 편하면 그렇게 해.”
그리고는 황민성이 직원에게 쇼 핑백을 하나 받아와서는 건네고 사우나 입구로 향했다.
두 사람이 사우나 입구로 나오 자 직원이 구두와 운동화를 가져 왔다.
정장과 운동화의 언밸런스에 황 민성이 피식 웃었다.
“구두도 하나 줄까?”
“요즘은 정장에 운동화도 잘 신 더라고요.”
황민성이 구두를 신고는 나가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 나왔다. 호 텔 로비로 나온 황민성이 카운터 로 향했다.
“카드 하나 더 발급해 주시겠어 요?”
“알겠습니다.”
직원이 서류 하나를 주자 황민 성이 사인을 하고는 돌려주었다. 그러자 직원이 카드를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직원이 카드를 주자 황민성은 그걸 받아 강진에게 내밀었다.
“뭐예요?”
“뒤에 보면 방 호수 있거든. 거 기 룸 카드인데 사우나도 이걸로 이용할 수 있어. 사우나 하고 싶 을 때나 애인 생기면 이거 써.”
말을 하며 황민성이 어서 받으 라는 듯 카드를 재차 내밀자 강 진이 일단 카드를 받았다.
“이거 형한테 계속 받기만 해 서.”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다.
“나는 너한테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아서 오히려 미안하다.”
“제가 뭘 준 것 있나요?”
“마음을 줬잖아.”
“마음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어색하 게 웃었다.
“남자끼리 이런 말 하니 민망하 다.”
더 말하기 민망하다는 듯 황민 성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VIP 카드는 아닌데 VIP 엘리
베이터 사용 못 하는 것 빼고는 똑같으니까 편하게 써.”
“음…… 감사히 받는다고 해야 겠죠?”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 민성이 호텔을 나섰다.
* * *
집에서 옷을 갈아입은 강진은 조금 늦은 흰둥이의 도시락을 들
고 공원으로 서둘러 가고 있었 다.
‘흰둥이 배 많이 고프겠는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은 걸음 을 재촉했다. 그리고 공원에 들 어선 강진은 바로 정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정자에 도착한 강진이 밑을 보 았다. 정자 밑에는 밥통 두 개와 물통이 놓여 있었다.
강진이 오질 않으니 이강혜가 와서 사료를 두고 간 모양이었
다.
‘연락이라도 할 것을 그랬나?’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이라도 할 걸, 하고 생각하며 강진이 정자 밑으로 고개를 숙였다.
“흰……
흰둥이를 부르려던 강진의 얼굴 에 의아함이 어렸다. 흰둥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
강진은 급히 고개를 들어, 놀람
과 걱정 어린 눈으로 주위를 둘 러보았다.
흰둥이는 지박령이라 이곳을 떠 나지 못하는데 사라졌으니 말이 다.
“승천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주위 를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김소희, 김소희, 김소희!”
마지막 이름을 강하게 말하자, 그의 옆에 김소희가 모습을 드러 냈다.
김소희라면 흰둥이가 어디로 갔 는지 알 것 같았다. 요즘 그녀는 흰둥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니 말 이다.
스으윽!
그리고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나타난 김소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잘못 불렀나?’
그녀의 기분이 나쁠 때 부른 것 이 아닌가 싶을 때, 김소희가 강 진을 보고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아가씨.”
“따라오게나.”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일단 그 녀의 뒤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