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김소희의 뒤를 따르며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흰둥이가 안 보입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앞을 보 며 말했다.
“있고자 했던 곳에 있네.”
“있고자 했던 곳에요?”
“흰둥이가 자리를 비웠다면 이 유는 하나가 아니겠나?”
김소희의 말에 강진의 얼굴이 굳어 졌다.
“주인을 만난 것입니까?”
말없이 걸음을 옮기는 김소희를 따라가던 강진의 귀에 익숙한 울 음소리가 작게 들려오기 시작했 다.
멍! 멍!
“흰둥이?”
흰둥이 짖는 소리에 강진이 걸 음을 재촉했다. 곧 공원 한쪽, 눈 이 쌓인 곳에서 흰둥이를 볼 수
있었다.
새하얀 눈 위를 뛰어다니는 흰 둥이는 큰 소리로 짖고 있었다. 공격이나 위협적인 울음이 아닌 즐겁고 밝은 울음이었다.
그리고 흰둥이가 울음을 토해내 는 대상은…… 어린아이였다. 아 장아장 걷는 아이가 눈밭을 뛰어 다니며 웃고 있었다.
그런 아이의 주위를 돌며 흰둥 이 역시 울음을 토하며 뛰어다니 고 있었다.
뛰어다니다 갑자기 바닥에 드러 누워 배를 깐 채 짖기도 하는 흰 둥이를 멍하니 보던 강진이 고개 를 돌렸다.
아이가 노는 곳 옆에서 젊은 부 부가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 다.
“잘 노네.”
“감기 걸리면 어떻게 해?”
“약 좀 먹으면 되지.”
“애한테 약이 얼마나 독한데.”
“그렇다고 집에만 있으면 갑갑 하잖아. 어릴 때는 눈싸움도 하 고 그래야지.”
아이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부부를 보던 강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평화로운 가족의 모습이었다.
눈을 좋아하는 아이와 그런 아 이의 노는 모습을 보는 부부
하지만 강진은 예쁘게만 볼 수 가 없었다. 지박령인 흰둥이가 정자를 벗어나 이곳에서 뛰고 있
다는 것은…… 저기 있는 남편이 흰둥이의 주인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흰둥이는…… 자신을 버 린 주인의 아이를 좋다고 반기며 놀고 있었다.
그것을 본 강진은 슬픔과 함께 화가 났다. 자신을 버린 주인의 아이에게 꼬리를 혼들며 좋아하 는 흰둥이의 모습이 가련하고 슬 펐다.
반면 흰둥이를 버린 곳에 아이 와 함께 놀러 나온 남자의 모습 에 분노가 생겼다.
“나쁜 놈……
작게 욕을 뱉으며 강진이 걸음 을 옮기려 하자, 김소희의 손이 그의 앞을 막았다.
“하지 말게나.”
“이건 아닙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강진이 입을 열었다.
“흰둥이를 버린 곳으로…… 어 떻게 가족과 함께 놀러 올 수가 있습니까. 최소한…… 여기는 아
니어야 했습니다.”
여기는 아니어야 했다. 여기를 저렇게 놀러 왔다는 것은…… 저 남자의 머릿속에 흰둥이의 기억 이 없다는 것이었다.
최소한 양심이 있다면 자신이 기르던 강아지, 아니 가족을 버 린 곳으로 다른 가족들과 놀러 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찌 하려는 건가? 때 리기라도 할 셈인가? 아내와 아 이가 보는 앞에서?”
“그……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김소희 말대로 아내와 아이가 보는 앞에서 남자에게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강진을 보던 김소희가 흰 둥이를 보았다.
“그리고…… 흰둥이가 즐거워하 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흰둥이를 보았다. 흰둥이는 아이에게 달려
들었다가 떨어졌다가, 이번에는 남자에게 뛰어가 그 앞에서 팔짝 거리며 정신없이 꼬리를 혼들고 있었다.
멍! 멍! 멍!
자신을 봐 달라는 듯 크게 짖으 며 앞에서 뛰었다가 마치 기지개 를 키는 것처럼 몸을 숙이며 앞 발을 주욱 피는 흰둥이의 모습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좋니?”
자신을 버린 주인의 아이와 노
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을 강진이 아련한 눈으 로 볼 때, 김소희가 말했다.
“흰둥이에게는 자신이 버려진 것이 아니네. 그저 주인하고 잠 시 떨어져 있던 것일 뿐…… 그 러니 좋을 수밖에…… 가족이 온 것이 아닌가.”
작게 중얼거린 김소희가 슬며시 몸을 낮추고는 흰둥이가 있는 곳 으로 손을 내밀었다.
“흰둥아. 흰둥아.”
김소희의 부름에 흰둥이가 그녀 를 보았다.
멍! 멍!
몇 번 김소희에게 나 재밌다고, 너무 즐겁다고 하는 것처럼 짖던 흰둥이가 다시 아이에게 달려가 이리저리 팔짝팔짝 뛰며 그 주위 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 모습에 김소희가 서운한지 내밀었던 손을 거뒀다. 그런 김 소희를 보던 강진이 흰둥이 쪽으 로 고개를 돌렸다.
한참을 아이와 남자 사이를 오 가며 뛰어다니던 흰둥이가 멈췄 다.
“애 춥겠어.”
여자의 말에 남자가 웃으며 고 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만 갈까? 준석아, 가 자.”
남자의 외침에 아이가 웃으며 아빠에게 뛰어가다가 흰둥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헤!”
해맑게 웃으며 아이가 흰둥이에 게 뛰어가 그 몸을 잡으려 했다.
“어? 아이가 흰둥이를 보는 겁 니까?”
“어린아이들은 아직 영적으로 닫혀 있지 않지.”
“그래도 무서울 텐데요.”
무서운 귀신들의 모습은 아이들 에게 감당이 되지 않을 텐데? 라 는 생각을 할 때 김소희가 고개 를 저었다.
“무서움이라는 것은 살면서 얻
은 지식에 의해 생기지. 호랑이 와 사자가 뭔지 모른다면 아이들 눈에는 그저 복슬복슬한 털을 가 진 동물일 뿐이네.”
“아......"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이는 자 신과 놀아주던 흰둥이를 만지려 했다.
하지만 아이의 손은 흰둥이의 몸을 통과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손을 흰둥이는 연신 혀를 내밀어 핥으려 했다.
물론 그 혀도 아이의 손을 뚫고 지나갔지만 말이다.
안타까운 듯 더 혀를 날름거리 는 흰둥이의 옆에 남자가 와서 몸을 숙였다.
“더 놀고 싶어요?”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 아님에도 흰둥이가 크게 짖었다.
멍! 멍!
“헤!”
밝게 웃는 아이의 몸을 들어 올
린 남자가 품에 안고는 여자에게 말했다.
“ 가자.”
그리고는 걸음을 옮기자 아이가 크게 울며 버둥거리며 흰둥이에 게 손을 내밀었다.
“으아앙! 으아앙!”
멍멍! 멍!
아이가 울자 흰둥이가 급히 남 자의 발치로 따라가며 크게 짖었 다.
그런 흰둥이에게 손을 내밀며 버둥거리는 아이의 모습에 남자 가 웃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더 놀고 싶은 모양인데?”
“애 감기 걸려. 내가 안을게.”
아내의 말에 남자가 아이를 그 녀에게 넘겨주었다. 아이를 안은 아내가 달래기 시작했다.
“우리 애기 왜 울어. 다음에 또 놀러 오면 되지. 여기가 좋아?”
“으아앙! 으아앙!”
울음을 그치지 않고 연신 흰둥 이에게 손을 내미는 아이의 모습 에, 흰둥이가 몇 번 짖다가 눈밭 에 뒤집어져선 네 발로 버둥거렸 다.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네 발을 흔드는 것이 무척 귀여웠다.
“에헤!”
그 모습에 아이가 웃자 이번에 는 흰둥이가 눈밭을 데굴데굴 구 르기 시작했다.
“꺄악! 꺄악!”
의미 모를 소리를 내며 좋아하 는 아이의 모습에 흰둥이가 벌떡 일어나서는 뱅글뱅글 돌기 시작 했다.
마치 자신의 꼬리를 물려는 것 처럼 말이다.
멍! 멍!
꼬리를 향해 연신 짖으며 뛰는 흰둥이의 모습에 아이의 웃음소 리도 더욱 커졌다.
“까르륵! 까르륵!”
그 모습에 아이가 웃자 흰둥이
가 더 열심히 꼬리를 물려는 것 처럼 뱅글뱅글 돌았다.
거기에 흰둥이가 점프를 해서 바닥에 떨어지는 묘기도 하기 시 작했다.
마치 아이의 웃음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멍! 멍!
“헤헤헤헤!”
흰둥이의 재롱에 아이가 웃었 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뒤를 따 라가며 재롱을 부리던 흰둥이가
멈췄다.
마치 자신이 더는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런 흰둥이를 향해 아이가 손 을 흔들었다. 그런 아이의 손짓 에 흰둥이가 크게 짖었다.
멍! 멍!
그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서 보 던 강진이 한숨을 쉬며 눈을 손 으로 훔쳤다.
어느새 강진의 눈가에는 눈물이 차 있었다. 손으로 눈가를 훔치 던 강진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 다.
공원을 나서고 있는 가족들을 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는 흰둥이 에게 다가간 강진이 그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좋았어?”
헥 헥 헥!
흰둥이는 혀를 길게 내민 채 웃 었다. 개가 웃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은 모르지만, 지금 딱 흰둥이의 얼굴일 것이다.
“따라가지 그랬어.”
강진의 말에 흰둥이가 여전히 헥헥거리며 멀어져 가는 가족들 을 보았다.
그리고 가족이 사라지자 흰둥이 의 귀가 뒤로 젖혀지며 잔뜩 힘 이 들어가 있던 꼬리가 축 늘어 졌다.
그대로 잠시 멍하니 있던 흰둥 이가 눈밭에 배를 깔고는 누었
다.
그 모습에 강진이 싸온 도시락 을 급히 꺼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흰둥 이한테 도시락을 먹이지 못할 것 같았다.
“흰둥아, 이거 먹자.”
그래서 식사라도 마저 해서 보 내고 싶었다.
강진이 도시락을 내려놓자 흰둥 이가 그것을 지긋이 보았다. 평
소라면 보자마자 입을 들이댈 흰 둥인데…….
흰둥이는 그저 도시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몸을 일으켜서 는 강진의 손을 혀로 핥았다.
할짝! 할짝!
마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감 사합니다.’라고 하는 듯한 흰둥이 의 모습에 강진이 손으로 그 머 리를 쓰다듬었다.
“다음에는…… 내 가족으로 와. 내가 네 가족이 되어 줄게.”
강진의 말에 흰둥이의 입가가 좌우로 벌어졌다. 웃는 듯했다. 그러고는 흰둥이가 김소희에게 다가갔다.
흰둥이가 다가오자 김소희도 무 릎을 구부려 그 머리를 쓰다듬었 다.
“그곳도 좋은 곳이니…… 외롭 지 않을 것이다.”
김소희의 말에 흰둥이가 가볍게 그 손에 머리를 문질렀다. 그 감 촉에 김소희가 흰둥이를 보다가 말했다.
“손!”
김소희가 손을 내밀자 흰둥이가 번개처럼 그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앉아!”
흰둥이가 다시 앉자 김소희가 웃으며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흰둥이가 배를 뒤집으 며 눕자, 김소희가 그 배를 손으 로 쓰다듬었다.
“가서 누가 괴롭히면 황구 형을 찾거라. 황구는 착한 아이이니
네 좋은 형이 되어 줄 것이다.”
김소희의 말에 흰둥이가 크게 짖었다.
멍
화아악!
그리고 흰둥이의 몸이 빛과 함 께 사라졌다.
스르륵!
흰둥이가 사라진 빈자리를 손으 로 쓰다듬던 김소희가 한숨을 토 했다.
“좋은 곳으로 가거라.”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고는 흰둥이 먹으라고 가져온 도시락을 보았다.
크리스마스라고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만든 도시락이었다. 그런 도시락을 가만히 보던 강진이 손 으로 소시지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소시지를 씹어 삼킨 강진이 입 맛을 다셨다.
“맛있는데……
작게 중얼거린 강진이 김소희를 보았다.
“드시겠어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다가 말했다.
“젓가락은 없는가?”
“있습니다.”
강진이 쇼핑백에서 젓가락과 도 시락올 하나 더 꺼냈다. 김소희 가 흰둥이와 자주 놀고 그러니
있으면 드리려고 하나 더 싸온 것이다.
“저쪽에서 식사라도 같이 하시 지요.”
강진이 한쪽에 있는 의자를 가 리키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 고는 걸음을 옮겼다.
흰둥이가 뛰어놀던 곳에 보이는 의자에 자리를 한 강진은 김소희 와 함께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 다.
흰둥이가 있던 곳을 보며 도시
락을 먹던 강진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았다.
“무슨 말인가?”
“아가씨께서 연을 만들지 않으 려 하는 이유……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