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246화 (244/1,050)

245 화

왕강신과 김봉남은 한 탁자에 나란히 앉은 채 청백로를 마시며 글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김봉남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배용수가 있었다.

김봉남이 왔으니 당연히 배용수 가 나와 있었던 것이다.

안주 하나 옆에 두고 잔과 이야 기를 나누는 두 노인의 곁에서 강진이 힐끗 여자 귀신을 보았

다.

여자 귀신은 그녀보다 몇 살 더 있어 보이는 여자의 뒤에서 물끄 러미 서 있었다.

‘자매인가?’

나이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것에 그녀를 볼 때, 문이 열렸 다.

띠링!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오자명 과 그 일행이었다. 오자명과 이 유비 의원이 보좌관들과 함께 들 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도영민의 뒤에는 할머니 귀신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강진의 인사에 안으로 들어오던 오자명이 잠시 멈칫했다.

“일찍 온다고 왔는데…… 벌써 손님이 이렇게 많군요.”

왕강신 일행이 차지하고 있는

테이블이 여섯 개이니 손님이 많 아 보이는 것이다.

“밖에서 기다려야 하나?”

오자명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웃 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손님들 음식 다 나갔으니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혼자서 저 손님들 모두 감당하 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점심때처럼 바쁜 시간도 아니 니 괜찮습니다.”

“그럼......"

웃으며 자리에 앉으려던 오자명 이 주위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 났다.

“이거 이거! 형님 아니십니까.”

오자명이 반갑게 다가오는 것에 글을 보던 김봉남이 그를 보고는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자명이, 오랜만이군.”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가게 한 번 찾아오라니까.”

“저 같이 가난한 사람이 가기에 는 운암정 문턱이 높지요.”

“무슨 그런 말을 해. 와서 밥 한 끼 하고 가면 되는 것이지.”

“그러고 싶어도 요즘은 저 데리 고 거기 가 주는 사람이 없습니 다.”

오자명의 말에 김봉남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먼 오자명 이지만 가난한 것은 아니다. 무 소속으로 3선까지 할 정도라면

그것만으로도 돈 많은 사람이라 는 것이었다.

다만 오자명이 말을 한 대로 운 암정은 고급 요릿집이라는 대중 적 인식이 있다 보니 오자명이 가기에는 부담이 되는 것이다.

무소속으로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사람이 고급 음식점인 운 암정에 자주 들르는 것은 안 좋 게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가끔 들르게. 정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그러면 뒷문이라 도 열어 줄 테니까.”

“뒷문으로 들어가는 것 찍히면 비밀 회동이다 뭐다 말 나올 것 같아서 그것도 안 되겠습니다.”

웃으며 오자명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오신 것 입니까?”

“내 아들 친구가 하는 가게네.”

아들이라는 말에 옆에 서 있던 배용수가 감동한 눈으로 그를 보 았다.

“아들? 형님 아들하고 친구하기 에는 이 사장 나이가?”

“피가 이어져야만 아들인가.”

“아! 제자 친구인가 보군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오자명 이 이유비를 가리켰다.

“이 의원은 아시지요?”

오자명의 말에 김봉남이 웃으며 이유비를 보았다.

“저희 가게 단골이신데 왜 모르 겠습니까. 인사가 늦었습니다.”

공손히 인사를 하는 김봉남의 모습에 이유비가 급히 고개를 마

주 숙였다.

“편히 대해 달라고 늘 말하는데 도 이렇게 예의를 차리시니 인사 받을 때마다 민망합니다.”

“저는 이게 편히 대하는 것이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웃으며 말을 하는 김봉남을 보 던 오자명이 왕강신을 보았다.

“그런데 이 분은?”

“아!”

김봉남이 왕강신을 보며 말했

다.

“이쪽은 나와 친한 한국 국회의 원 오자명이네.”

김봉남의 중국어에 오자명이 왕 강신을 보았다.

“중국 분이십니까?”

“중국어를 하시는군요.”

“젊었을 때 중국에서 작은 사업 을 한 적이 있어서 중국어를 조 금 할 줄 압니다. 오자명입니다.”

“왕강신입니다. 중국에서 작은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것에 김봉남이 오자명을 보았다.

“그런데 여기는 자주 오나?”

“김치찌개 한 번 먹어보고 완전 반했습니다.”

그러고는 오자명이 강진을 보고 는 미소를 지었다.

“맛도 맛이지만, 이 사장의 심 성이 좋더군요.”

“무슨 일이 있었나?”

김봉남의 물음에 오자명이 최종 훈 형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자 신의 앞에서 선행이라 할 것을 이야기하는 것에 민망함을 느낀 강진이 슬쩍 보좌관들에게 다가 갔다.

“음식 준비하겠습니다. 음식 뭐 로 해 드릴까요?”

“의원님께서 김치찌개 드시러 오셨습니다.”

“그럼 김치찌개 4인분 하면 되 겠습니까?”

“네.”

한명현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주방으로 향하다가 할머니 귀신 을 보았다.

할머니 귀신은 여자 귀신과 무 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무래도 어린 여자 귀신이 있으니 말을 걸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말이 통하나?”

한국 귀신하고 중국 귀신이 서 로 말이 통하나 싶은 것이다.

‘귀신이니 서로 통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주방에 들어 간 강진이 돼지고기를 넉넉히 꺼 내 냄비에 넣고는 불을 켰다.

찌이익 ! 찌이익 !

냄비에서 돼지가 익어가는 소리 를 들으며 강진이 그것을 나무젓 가락으로 휘저었다.

냄비에 달라붙고 뜯어지고 난리 를 치는 고기를 이리저리 괴롭히 던 강진이 김치와 물, 나머지 재 료를 넣고는 김치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김치찌개를 끓인 강진이 냄비째 들고 나왔다. 김치찌개는 또 이 런 냄비째로 먹어야 맛이 좋으니 말이다.

“음식 나왔습니다.”

강진의 말에 오자명이 웃으며 말했다.

“미안한데 이 친구들 음식 좀 따로 챙겨 주시겠습니까?”

“따로 드시게요?”

“여기 왕 대인과 합석해서 술 한잔하기로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강진이 음식을 세팅하자 오자명 과 왕강신이 그쪽에 자리를 했 다.

그에 강진이 한명현과 도영민을 보았다.

“두 분 식사는 어떻게 해 드릴 까요?”

“저희도 김치찌개 해 주십시 오.”

한명현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김치찌개도 맛있는데 가끔은 색다른 음식도 맛있지 않겠어요? 중국 분들 오셔서 제가 사천성 요리로 몇 가지 했습니다.”

강진이 중국인들이 먹고 있는 식탁을 슬며시 보며 하는 말에 한명현이 입맛을 다셨다.

“맛있어 보이는군요.”

“맛이 좋습니다. 그리고 바로 나오고요.”

강진의 말에 한명현이 중국 음 식을 보다가 도영민을 보았다.

그 시선에 도영민이 고개를 끄덕 였다.

“어르신들 식사 언제 끝날지 모 르니 빨리 나오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도영민의 말에 한명현이 힐끗 오자명을 보았다. 오자명은 어느 새 청백로를 자신의 잔에 따라 마시고 있었다.

‘기분 좋으신 것 보니 오늘 여 기 오래 있어야 할 것 같은 데……

잠시 오자명을 보던 한명현이 강진을 보았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딱히 음식을 가리는 편이 아니 라서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방으로 들어간 강진이 중국 요리들을 따뜻하게 만들고는 그 릇에 담아 내왔다.

“여기 음식입니다.”

“메뉴가 네 개나 되네요?”

“조금씩만 담았으니 드셔 보시 고 모자라시면 말씀하세요. 리필 해 드리겠습니다.”

“이것만 해도 배부를 것 같습니 다.”

웃는 두 사람을 보며 강진이 주 방에서 음식들을 조금씩 더 담아 오자명 테이블에 가져다주었다.

“이것도 좀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음식을 보고는 말했다.

“사천성 요리구나.”

“왕 대인께서 사천성 분이시라 몇 개 만들어 봤습니다. 맛 좀 보십시오.”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수저로 마파두부를 떠서 입에 넣고는 고 개를 끄덕였다.

“맵고 감칠맛이 좋은 것이 잘 만들었구나.”

“감사합니다.”

“본토 음식 맛인데 어디서 배운 거지?”

“용수가 알려 주었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잠시 멈 칫하다가 매콤한 가지볶음을 집 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꼼꼼하게 씹다 가 미소를 지었다.

“용수가 잘 가르쳐줬구나. 맛 이…… 용수하고 사천성 여행 갔 을 때의 그 맛이야.”

“그때 참 즐거웠습니다.”

중국 음식 맛보러 사천성 갔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 배용수의 눈 이 살짝 떨렸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강진이도 같이 앉아서 먹지 그 러니?”

김봉남의 말에 오자명도 그를 보았다.

“이 사장도 같이 하시지요.”

오자명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주방에 해야 할 일이 좀 있어 서요.”

고개를 숙인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다가 할머니 귀신을 살짝 툭 치고는 주방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여자 귀신에게도 시선 을 슬쩍 주자, 할머니 귀신이 알 았다는 듯 여자 귀신의 손을 잡 고는 주방으로 들어왔다.

주방에 들어간 강진이 할머니 귀신과 여자 귀신이 들어오자 미 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잘 지내셨어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 귀신이 고

개를 끄덕였다.

“나야 뭐 그럭저럭 잘 지냈지. 이 사장은 잘 지냈나?”

처음에 봤을 때와는 달리 조금 은 순한 투로 말하는 할머니 귀 신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 를 끄덕였다.

“저는 잘 지냈습니다.”

강진이 이번엔 여자 귀신을 보 았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중국어로 말을 걸자 여 자 귀신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놀라는 기색이 없는 여자 귀신 의 모습에 강진이 물었다.

“저승식당에 와 보신 적이 있으 신가 보네요?”

“소령이 다니는 저승식당이 있 어서요.”

“소령이라는 분이 저 아가씨?”

강진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

는 조금 어두운 인상을 가진 아 가씨를 보았다.

“맞아요.”

여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말했 다.

“그럼 저승식당에서 식사는 못 하셨죠?”

“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왕강준도 저승식당의 존재를 알

고 가 보기는 했지만 그곳에서 식사를 하지는 못했다.

그런 여자 귀신을 보며 강진이 음식들을 접시에 담아 주었다.

“제대로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제가 만든 거 라 제삿밥보다는 나을 겁니다.”

강진의 말에 여자 귀신이 그릇 을 보다가 젓가락을 집어 음식을 먹었다.

말없이 음식을 먹는 여자 귀신 을 보며 강진이 잡채를 덜어 할

머니 귀신에게 내밀었다.

“고맙네.”

할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 녀를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아까 두 분이 대화를 하는 것 같던데, 말이 통하세 요?”

“말이야 통하지.”

“귀신이라 언어가 달라도 말이 통하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 귀신이 웃

으며 고개를 저었다.

“귀신이라 통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대화를 했어.”

“영어요?”

“말을 걸었는데 중국어로 말을 하더라고. 해서 혹시 영어는 할 줄 아나 해서 영어로 말을 걸었 는데 할 줄 알더라고.”

“어? 할머니도 영어를 할 줄 아 세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 귀신이 눈 을 찡그렸다.

“늙었다고 다 무식한 줄 알아? 내가 이래 보여도 미국에 유학까 지 갔다 온 사람이야.”

“대단하시네요.”

“그럼, 대단하지. 우리 때 미국 으로 여자가 유학 가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

할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60년대에 여자가 미국 유학을 갈 정도면 엄청난 일이기는 했다.

우물우물.

마파두부를 먹는 여자 귀신을 힐끗 본 강진이 물었다.

“저분의 가족이세요?”

강진의 물음에 여자 귀신이 고 개를 돌려 홀에 있는 여자를 보 았다.

“ 친구예요.”

“많이 친하셨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여자 귀신이 밖에 있는 여자 왕소령을 보았다.

“사랑했어요.”

사랑했다는 말에 강진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사랑‘?’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말…… 좀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워하는 강진의 모습에 여자 귀신이 살며시 웃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이상한가요?”

여자 귀신의 말에 잠시 그녀를 보던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 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이 상한 것이 뭐가 있겠어요.”

강진의 말에 여자 귀신이 그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술도 한잔 마실 수 있을까요?”

여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웃으 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이 주문하면 드려야지요. 술은 어떤 걸로 드릴까요?”

“소맥으로…… 주세요.”

“소맥?”

여자 귀신의 말에 강진의 얼굴 에 살짝 당황스러움이 어렸다. 한국 귀신이라면 소맥을 달라고 하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지만, 중국 귀신이 소맥을 달라니?

‘중국 사람들은 술 섞어 먹는 것 안 좋아하던데……

예전 현장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술을 섞어 먹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소주는 소주, 맥주는 맥주로 먹 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음식은 개인 취향이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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