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249화 (247/1,050)

248화

그릇들을 주방으로 옮긴 강진이 힐끗 왕소령을 보았다. 왕소령은 정말 일을 도와주려는 듯 그릇에 남은 음식들을 음식물 쓰레기통 에 넣고 있었다.

“그냥 여기에 두기만 하시면 제 가 할게요.”

강진의 말에 왕소령이 그를 보 고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하는 김에 할게요.”

그러고는 고무장갑을 끼는 왕소 령의 모습에 동생도 팔을 걷어붙 였다.

“누나, 같이 하자.”

그런 동생의 모습에 강진이 미 소를 지었다.

‘동생이 착하네.’

가족끼리 화목한 것을 좋아하는 강진으로서는 누나를 챙기는 동 생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강진이 그 모습을 볼 때, 정대 령이 웃으며 말했다.

“소민이 참 착한 애예요.”

정대령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힐끗 보았다. 정대령은 고무장갑 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 왕소 령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민이가 북경에 와서 같이 살 았어요.”

정대령의 말에 강진이 작게 속 삭였다.

“같이 살아요?”

“그전에는 학교 기숙사에 살았 는데, 소민이가 오니 소령이 집

에서 집을 하나 구해줬어요. 거 기서 셋이 같이 살았어요. 그때 재밌었는데……

정대령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왕소령 쪽을 보며 말했 다.

“뭐 드시고 싶은 것 없어요?”

“먹고 싶은 거요?”

왕소민이 보는 것에 강진이 웃 으며 말했다.

“어르신들 안주할 음식 새로 만 들 건데, 이왕이면 두 분 드시고

싶은 걸로 만들려고요. 한국 드 라마 좋아하신다니까, 드라마에 서 봤던 것 중에 먹고 싶은 것으 로 말씀하세요. 제가 맛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말을 하며 강진이 만들고 남은 음식들을 반찬통에 담았다. 강진 의 말에 왕소민이 왕소령을 보았 다.

“누나, 뭐 먹고 싶은 것 있어?”

“난…… 괜찮아.”

말을 하며 설거지를 하는 왕소

령을 안쓰러운 눈으로 보던 왕소 민이 강진을 보았다.

“닭볶음탕요.”

“닭볶음탕도 알아요?”

“한국 드라마에 자주 나오잖아 요. 그리고…… 누나 친구가 몇 번 해 줬어요.”

말을 하던 왕소민이 웃었다.

“생각해 보니 대령 누나가 거기 에도 라면 스프를 넣었……

대령이라는 이름을 담던 왕소민

이 슬쩍 왕소령의 눈치를 보았 다.

그 시선에 왕소령이 작게 한숨 을 쉬며 말했다.

“ 괜찮아.”

왕소령의 말에 왕소민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누나, 미안.”

왕소민의 사과에 왕소령이 고개 를 젓고는 설거지에 집중을 했 다.

그 모습에 강진이 말없이 냉장 고를 열어서는 닭을 세 마리 꺼 냈다.

사람이 여럿이니 세 마리 정도 는 해야 양이 될 테니 말이다.

덜그럭! 덜그럭!

설거지를 하는 왕소령이 슬쩍 고무장갑을 보았다.

‘한국 고무장갑 좋구나.’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해도

보통 안에 눅눅한 느낌이 생기는 데 이건 안이 보송보송한 느낌이 었다.

게다가 미끈미끈한 그릇도 딱 잡히는 것이 좋았다.

‘대령이가 봤으면 좋아했을 텐 데.’

주방 일을 좋아하던 정대령이 쓰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왕소령의 코에 맛있는 냄새 가 맡아졌다.

그에 뒤를 보니 강진이 옆을 보

며 뭔가를 끓이고 있었다.

‘닭볶음탕을 한다고 했었지?’

닭볶음탕을 떠올리자 왕소령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정대령이 해 주던 한국식 닭볶음 탕이 떠오른 것이다.

‘맛있었는데……

속으로 중얼거리던 왕소령이 문 득 강진을 보았다. 닭볶음탕을 끓이던 강진이 옆을 보며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스프…… 이건 안 넣어도……

아니…… 안 돼요. 다른 분들도 먹는 건데……

작게 하는 이야기라 잘 들리지 는 않았지만, 뭔가 이야기를 나 누는 것 같았다.

다만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상할 뿐…….

‘뭐하는 거지?’

닭볶음탕을 만들던 강진은 옆에 다가온 정대령의 제안에 난감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스프를 넣어 달라고요?”

정대령의 제안은 라면 스프를 넣어 달라는 것이었다.

“제가 닭볶음탕을 해 줄 때 맛 이 안 나서 스프를 넣었어요.”

“왜 스프를 넣었어요?”

“한국 예능에서 맛없으면 다 스 프를 넣던데요? 그럼 다 맛있다 고 하고……

정대령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예능이 사람 입맛 다 버렸네.’

하지만…… 스프를 넣으면 어지 간한 맛이 나는 것은 맞다. 다만 스프 넣으면 김봉남이 싫어할 텐 데, 하는 걱정이 될 뿐이었다.

요리사에게 라면 스프는 금단의 비기와 같은 것이니 말이다.

라면 스프를 넣어 달라는 정대 령의 모습에 강진이 작게 속삭였 다.

“라면 스프는 맛이 없거나 맛이 부족할 때 넣는 거지, 맛있는 음

식에 넣는 것이 아니에요.”

강진이 끓고 있는 닭볶음탕을 보았다.

“이건 스프 안 넣어도 맛있어

요.”

“아…… 그럼 스프 안 넣어요?”

정대령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는 음식에 굳이 스프를 넣

으실 필요는 없어요.”

“소령이가 잘 먹었는데.”

“여기서 스프 넣으면 오히려 짜 고 맛이 강해질……

말을 하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정대령이 닭볶음탕을 빤히 보고 있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정대령을 보다가 고개를 젓고는 냄비를 하나 가져 다가 뜨거운 물을 한 컵 정도 넣 어 불에 올렸다.

그리고는 끓고 있는 닭볶음탕에 서 닭과 감자 그리고 국물을 한 국자 퍼서 담았다.

“스프 넣어 드릴게요.”

김봉남과 다른 손님들에게는 전 통 닭볶음탕을 대접하고, 왕소령 에게는 이것을 주면 될 것이다.

“고마워요. 제가 스프 넣고 한 닭볶음탕을 소령이가 아주 맛있 어했어요.”

정대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물에 스프를 반쯤 넣어 풀었다. 다 넣으면 짤 것 같으니 말이다.

화아악!

바로 칼칼한 냄새가 퍼지는 것 에 강진이 작게 기침을 하고는 휘저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 다.

“지금 뭐 하세요?”

“네?”

왕소령의 목소리에 강진이 흠칫 해서는 뒤를 돌아보았다.

왕소령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저야…… 닭볶음탕 만들고 있 었죠.”

“누구와 이야기하시던데?”

“제가 혼잣말하는 것을 좋아합 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급히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말했다.

“설거지 다 되셨어요?”

“아뇨. 양이 많네요.”

왕소령의 말에 강진이 싱크대를 보았다. 그녀 말대로 싱크대에는 아직도 많은 설거지가 쌓여 있었 다.

왕소민과 둘이 한다 하지만 양 이 워낙 많았다.

“그냥 거기까지만 하세요. 제가 이따가 할게요.”

“아니에요. 제가 하던 건데 마 저 해야죠.”

웃으며 왕소령이 다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설거지 양은 많 았다.

20명이 먹던 반찬 그릇과 밥그 릇만 해도 많이 나오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영업용 싱크대라 무

척 크고 깊어서 한 번에 많은 그 릇들이 들어가고 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템도 좋다. 고무장 갑과 세제, 수세미가 모두 변탕 지옥에서 사용하는 거라 아무리 더럽고 기름져도 스치기만 해도 뽀드득! 뽀드득! 닦여 나가는 것 이다.

왕소령은 그 뽀드득거리는 느낌 과 깨끗해지는 그릇에 스트레스 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에 조금 활기가

도는 것을 느꼈는지 왕소민이 웃 으며 말했다.

“설거지 재밌네요.”

“재밌으세요?”

“네. 뽀드득! 뽀드득 소리 날 때마다 제가 다 개운해요.”

“그럼…… 열심히 하세요.”

웃으며 설거지를 두 사람에게 맡긴 강진이 홀로 나와 마저 정 리를 했다.

홀을 정리하는 강진에게 오자명

이 물었다.

“냄새가 좋은데 뭐 하는 겁니 까?”

“닭볶음탕을 좀 만들고 있습니 다. 국물 좀 있게 했으니 국물도 같이 떠서 드시면 좋을 것 같습 니다.”

“맛있겠습니다.”

오자명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뭐 필요하신 것 더 있으세요?”

“멸치볶음이 맛있군요.”

오자명의 말에 강진이 접시를 받아 주방에서 멸치볶음을 떠서 새로 가져다주었다.

“맛있게 드세요.”

“고맙습니다.”

오자명의 말에 김봉남이 그 모 습을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그 모습이 좋아.”

“저도 제 모습이 좋기는 한 데…… 워낙 좋은 모습이 많아서

어떤 모습을 좋아하시는지 모르 겠습니다.”

오자명이 웃으며 하는 말에 김 봉남이 웃었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존대를 해 주는 것 말이야.”

“그거야 당연한 일인데 무슨 그 런 걸 좋아하십니까?”

오자명의 말에 김봉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자네를 좋아하는 거야. 자네는 당연한 일을 당연

하다는 듯이 하니까.”

그러고는 김봉남이 오자명을 보 며 미소를 지었다.

“그게 참 대단해.”

김봉남의 칭찬에 오자명이 민망 한 듯 웃었다.

“평소 안 하시던 말을 하시고. 우리 형님, 오늘 술 좀 많이 드 신 것 같습니다.”

“먹기는 많이 먹었지.”

김봉남이 웃으며 탁자 밑을 보

았다. 밑에는 청백로와 감홍로의 빈병들이 주르륵 놓여 있었다.

도수가 높은 술을 이렇게 먹었 으니 어른들 모두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강진에게는 술과 어울리는 안주 가 있다 했지만 사실 지금 나온 안주들은 청백로, 감홍로와 어울 리는 안주들이 아니었다.

중국 음식과 도라지구이 모두 양념 맛이 강한 음식이라 독한 술과는 어울려도 향이 좋은 두 술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주로 술을 먹 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 의 대화를 안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래서 안주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술자리만큼 술 이 좋은 것도 없으니 말이다.

주방에 들어온 강진은 행주로 싱크대 물기를 닦아내는 왕소령 과 왕소민을 보았다.

“주방 일 잘하시네요.”

“누나하고 저하고 주방 아르바 이트 많이 했거든요.”

“아르바이트?”

왕소민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두 사람을 보았다.

왕강신과 같은 부잣집 자제들이 무슨 아르바이트를 하나 싶은 것 이다.

두 사람이 뒷정리를 마저 하는 것을 보던 정대령이 말했다.

“소령이 집이 부자기는 한데 학 비 빼고는 자기가 벌어서 쓰라는

주의예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여럿 같이 했어요.”

강진이 정대령을 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르바이트 자리 저하고 여기 저기 찾으러 다녀서 저도 처음에 는 소령 집이 부자인 줄 몰랐어 요. 나중에 소민이 올라오고 집 을 구해 줄 때에야 부자인 줄 알 았어요. 북경에서 집 구하는 것 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정대령의 말에 강진이 힐끗 홀 을 보았다.

‘자식들을 강하게 키우시는구 나.’

부족함이 없는 집안이라 부족함 없이 키울 것 같았는데, 필요한 것만 지원해 주고 남은 것은 스 스로 벌어 쓰게 하게 하는 것이 다.

싱크대를 닦는 왕소령을 보던 강진이 오목한 그릇에 닭볶음탕 을 덜었다.

그러고는 김봉남과 한명현 테이 블에 그것을 가져다주고는 왕소 령을 보았다.

“두 분도 같이 나와서 드시죠.”

“네.”

왕소민이 고무장갑을 벗으며 웃 었다.

“고무장갑이 너무 좋아요.”

“그래요?”

“설거지 이렇게 하면 손이 습한 데 이건 보송보송해요. 한국 주 방 용품 너무 좋아요.”

왕소민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웃었다.

‘동생도 아르바이트 많이 해 본 모양이네.’

강진이 음식을 덜며 말했다.

“나오세요. 같이 한잔 드시죠.”

“네.”

강진이 비어 있는 테이블에 닭 볶음탕을 두 그릇 내려놓았다. 하나는 스프가 들어간 것, 하나 는 정식으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소주와 맥주를 가지고 와서는 앞을 가리켰다.

“어르신들은 어르신들끼리 드시 라 하고, 두 분은 저하고 같이 드시죠. 지금부터는……

잠시 말을 멈춘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손님과 주인이 아니라 친구끼 리 한잔하는 걸로 하죠.”

“그럼 저야 좋죠. 그럼 따거라 고 부르겠습니다.”

“그러세요.”

웃으며 강진이 폭탄주를 제조해 서는 세 잔을 따르고는 닭볶음탕

을 가리켰다.

“하나는 한국 전통식이고, 하나

는 살짝 퓨전입니다.”

“퓨전요?”

“아까 친구 분이 라면 스프를

넣어서 만들었다는 말에 궁금해

서 저도 스프를 좀 넣어 봤습니

다.”

강진의 말에 왕소민이 슬며시 왕소령의 눈치를 보았다. 그 시 선에 왕소령이 슬며시 숟가락을 들어서는 스프가 안 들어간 닭볶

음탕 국물을 떠먹었다.

그리고는 잠시 맛을 보던 왕소 령이 피식 웃었다.

“왜요? 이상하세요?”

강진의 말에 왕소령이 고개를 저었다.

“걸쭉하고 너무 맛있어요. 그런 데……

잠시 말을 멈춘 왕소령이 웃었 다.

닭볶음탕에 스프를 넣으며 이렇

게 하는 것이 맞다고 우기던 정 대령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작게 웃으며 왕소령이 닭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대령아, 이게 진짜 한국 닭볶음 탕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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