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250화 (248/1,050)

249화

“걸쭉하고 맛있어요.”

“감자하고 한번 먹어 보세요.”

강진의 말에 왕소민이 감자를 하나 건져서는 왕소령의 그릇에 올렸다.

“누나, 먹어 봐.”

왕소민의 말에 왕소령이 그를 보았다.

“너도 먹어.”

“나도 먹을게.”

왕소민이 자신의 그릇에 감자와 고기를 덜고는, 젓가락으로 일부 를 집어 입에 넣었다.

“맛있다.”

웃으며 말을 하는 왕소민의 모 습에 강진이 말했다.

“감자에 국물 살짝 부어서 드시 면 더 맛있을 겁니다.”

강진의 말대로 왕소령이 국물로 적신 감자를 입에 넣고는 미소를 지었다.

“부드럽고 맛있어요.”

“원래는 감자에 밥 비벼 먹으면 더 맛있는데…… 밥 드릴까요?”

“괜찮아요.”

왕소령의 말에 왕소민이 급히 말했다.

“누나, 맛있다니까 같이 나눠 먹어 보자.”

그러고는 왕소민이 강진을 보았 다.

“밥 좀 주세요.”

왕소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조금 넓은 국그릇 두 개 에 밥을 약간만 담은 뒤 들고 왔 다.

“다른 먹을 것도 많으니 맛만 먼저 보시라고 조금 가져왔습니 다.”

“고맙습니다.”

왕소민이 그릇을 받아든 뒤, 감 자와 국물을 살짝 밥 위에 올리 고는 왕소령에게 주었다.

누나.”

왕소민의 말에 왕소령이 그릇을 보다가 받았다.

“괜찮은데.”

“맛있다잖아.”

그러고는 왕소민이 숟가락으로 감자를 으깨 밥과 섞었다. 감자 와 밥을 섞은 왕소민이 크게 떠 서는 입에 넣었다.

“맛있다. 누나, 먹어 봐. 맛있 어.”

왕소령의 기분을 좋게 해 주려 는 듯 조금은 오버하는 감이 있

었지만, 확실히 왕소민은 맛있게 밥을 떠먹었다.

그 모습에 침을 고이는 것을 느 낀 왕소령이 수저로 감자를 으깨 밥과 섞어서는 입에 넣었다.

그러곤 천천히 씹던 왕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없어도 맛있다는 표현을 하는 왕소령의 모습에 왕소민이 웃으며 잔을 들 었다.

“누나.”

왕소민의 말에 왕소령도 슬며시

잔을 들었다. 가볍게 잔을 부딪 친 세 사람이 소맥을 마셨다.

강진이 스프를 넣고 끓인 닭볶 음탕의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 다.

그러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 다.

‘나쁘지는 않네.’

요리 연습장 레시피로 만든 닭 볶음탕은 묵직하고 깊은 맛이 있 다면, 라면 스프가 들어간 닭볶 음탕은 조금 가벼우면서 날카로

운 맛이었다.

조금 짠맛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라 면 스프 맛이 강해서 그런지 다 른 맛이 많이 묻히는 느낌이었 다.

‘확실히 맛은 이게 낫네.’

스프가 안들어간 닭볶음탕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왕소령이 스프가 들어간 닭볶음 탕에 숟가락을 가져갔다.

그러고는 국물을 떠먹고는 피식

웃었다.

“누나, 이상해?”

“아니야.”

고개를 저은 왕소령이 닭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미 소를 지었다.

“이상해요.”

“맛이 이상해요?”

“ 아뇨.”

왕소령이 닭을 보다가 웃었다.

“대령이가 해 준 것 같아요.”

“친구 분이 닭볶음탕 할 때 매 운 라면 스프를 넣었으면 비슷할 겁니다.”

“그런가요?”

“라면 스프 맛이 강해서 그 맛 이 가장 강하게 느껴질 겁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닭볶음탕을 보 며 말했다.

“중국에서 한국 요리를 해 볼 정도면 친구가 음식을 잘했나 보 네요.”

“잘했어요. 저 아플 때는……

닭 수프도 해 주고 했어요.”

“닭 수프요?”

“감기 걸렸을 때 따뜻한 닭 수 프를 마시면 좋거든요. 그래서 감기 걸리면 보온병에 닭 수프를 담아서 주고는 했는데……

닭을 보던 왕소령의 모습에 강 진이 말했다.

“드세요.”

강진의 말에 왕소령이 라면 스 프를 넣은 닭볶음탕을 그릇에 담 아 먹으며 맥주를 마셨다.

그렇게 스프를 넣은 닭볶음탕과 소맥을 마시던 왕소령이 자리에 서 일어나 주방에 들어가서는 접 시와 맥주잔을 들고 나왔다.

접시와 맥주잔을 자신의 비어 있는 앞자리에 놓은 왕소령이 의 자를 뒤로 당겼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앉은 왕 소령이 앞자리를 보았다. 그 모 습에 정대령이 슬며시 앞자리에 앉았다.

말없이 앞을 보던 왕소령이 가 져온 잔에 소맥을 따랐다. 하지

만 곧 멈추고는 강진을 보았다.

“거품이 안 나는데……

왕소령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맥주병을 받아서는 엄지로 입구 를 막고는 위아래로 강하게 튕겼 다.

파앗!

촤아악!

엄지를 밀어내는 듯한 거품의 압력을 느끼며 강진이 맥주잔에 손을 가져다 댔다.

촤아악! 촤아악!

분수처럼 거품과 맥주가 뿜어져 잔을 채웠다. 거품이 많은 소맥 잔을 앞에 가져다 놓은 왕소령이 젓가락으로 스프가 안 들어간 닭 볶음과 감자를 접시에 놓았다.

마지막으로 국물을 떠서 그 위 에 부운 왕소령이 입을 열었다.

“대령아.”

왕소령의 부름에 정대령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국 여행 같이 오자고 했는

데…… 나만 왔네. 미안해.”

왕소령이 씁쓸하게 웃으며 맥주 잔을 들었다.

“마셔.”

정대령도 반투명한 맥주잔을 들 었다.

스륵!

맥주잔을 든 정대령과 왕소령이 서로를 보았다. 물론 왕소령은 정대령을 실제로 보지는 못하지 만 말이다.

서로 잔을 든 두 사람이 맥주를 마셨다.

꿀꺽! 꿀꺽!

단숨에 맥주를 마셔 버리는 두 사람을 보며 강진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탁!

가볍게 잔을 내려놓은 왕소령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잔은 비어져 있고, 정대령에게 준 잔 은…… 여전히 차 있었다.

그것이 슬프고도 외롭게 느껴졌

다. 정대령의 차 있는 맥주잔을 잡은 왕소령이 그것을 손으로 쓰 다듬었다.

-소령아, 술 맛있다.

-술은 원 샷으로 먹어야지

정대령이 살아 있다면 그녀의 잔은 차 있을 사이도 없이 비어 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줄어들지 않고

차 있었다. 맥주잔을 손으로 쓰 다듬던 왕소령이 입을 열었다.

“대령이하고 한국 오면 가고 싶 었던 곳이 많았는데……

왕소령의 말에 강진이 힐끗 정 대령이 있는 곳을 보았다. 그리 고는 비어 있는 왕소령의 잔에 소맥을 따르고는 그것을 정대령 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친구 분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 지 모르지만…… 오셨으니 가세 요.”

강진의 말에 왕소령이 그를 보 았다.

“가라고요?”

“한국 오면 가고 싶었던 곳이 많았다면서요. 한국 드라마 촬영 지 같은 곳 가보고 싶지 않으셨 어요?”

“가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잠시 말을 멈춘 왕소령이 입술 을 깨물었다.

“대령이가 없는데 혼자 즐기 면…… 미안하잖아요.”

왕소령의 말에 정대령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소령아. 내가 가고 싶 었지만 가지 못한 곳, 내가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한 것들 다 소 령이가 가서 봐.”

간절한 목소리로 말을 한 정대 령이 왕소령을 지긋이 보았다.

“왜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해. 너 는 잘 살아야지.”

정대령의 말에 강진이 왕소령을 보았다.

“미안하면 더 많이 보시면 좋지 않을까요?”

“더 많이요?”

“친구 분이……

잠시 말을 멈춘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보지 못한 것, 먹지 못한 것, 그리고 즐기지 못했던 것들…… 친한 친구인 소령 씨가 더 많이 보고, 먹고, 즐기는 것은 배신이 아니에요.”

강진이 정대령을 한 번 보고는

왕소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령 씨의 눈을 통해 친구는 세상을 보고, 소령 씨의 입을 통 해 먹어 보지 못한 음식을 즐길 수 있어요.”

그러고는 강진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닭볶음탕을 가리켰다.

“맛있죠?”

“네?”

“맛없어요?”

“맛있어요.”

왕소령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친구 분도 이 음식, 맛있어했 올 겁니다.”

강진의 말에 왕소령이 음식을 보았다.

“대령이도…… 맛있게 먹었을 거예요.”

“그러니 소령 씨가 많이 드시고 놀러 가기로 했던 곳도 가세요. 그래야 나중…… 아주 나중에 대 령 씨를 만났을 때 할 이야기가

많지 않겠어요?”

“이야기?”

“잘 먹고 잘 놀다가 대령 씨를 만나야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테니까요.”

강진의 말에 왕소령이 멍하니 음식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별에서 온 남편’을 봐야겠어 요.”

“별에서 온 남편?”

“대령이하고 재밌게 보던 건

데…… 완결을 못 봤어요.”

말을 하던 왕소령이 눈가를 스 윽 닦더니 환하게 웃었다.

“그래야 대령이 만났을 때 이야 기해 주죠. 그것 말고도 드라마 많이 봐야겠어요.”

왕소령의 웃는 모습에 왕소민이 어느새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누나, 별에서 온 남편.”

어느새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찾 아 틀어 놓은 것이다. 중국어 자 막이 나오는 핸드폰을 받은 왕소

령이 웃으며 핸드폰을 받았다.

“고마워.”

왕소령이 핸드폰을 보는 사이, 강진이 정대령을 보았다. 정대령 은 어느새 왕소령의 옆으로 가서 같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강진이 슬며시 일 어나 주방으로 향하며 정대령을 툭 쳤다.

정대령이 드라마를 보다가 강진 을 따라 주방으로 들어왔다.

“대령 씨가 했던 한식 중에 소

령 씨가 좋아하던 게 뭐예요?”

“음식요?”

“네.”

강진의 말에 정대령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김치찌개하고 김밥, 삼겹살, 김 치볶음밥요.”

정대령의 말에 강진이 재료들을 빠르게 꺼내기 시작했다.

“음식 많은데 또 하시게요?”

정대령의 물음에 강진이 김치찌

개를 만들며 말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 다.”

“무슨 소리예요?”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듯 보는 정대령에 개의치 않고 강진 이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추억을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굳히기 들어가야죠.’

어느 정도 살아갈 의지가 생긴

것 같지만…… 이걸로 굳히기를 할 생각이었다.

‘음식에는 추억이 있으니까.’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삼겹살 을 프라이팬에 올렸다.

치이 익!

주방에서 나오는 강진의 손에는 여러 음식이 들려 있었다. 강진 은 그 음식들을 왕소령의 앞에 하나씩 놓았다.

드라마를 보던 왕소민이 앞에 놓이는 음식에 핸드폰을 내려놓 았다.

“이건......"

왕소령이 음식을 멍하니 보자 강진이 말했다.

“드라마에서 많이 보셨죠?”

왕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 진의 말대로 앞에 놓인 음식들은 한국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것이 었다. 그리고 정대령이 가끔 해 주던 음식들이기도 했다.

“드셔 보세요. 중국에서 먹던 것과는 다를 겁니다.”

강진의 말에 왕소령이 김밥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아삭! 아삭!

오이와 단무지의 식감을 느끼며 왕소령이 웃었다.

“이것도 대령이가 만들어 준 것 보다 맛있네요.”

왕소령의 목소리가 밝아진 것을 느꼈는지 정대령이 웃으며 투덜 거렸다.

“내 것도 맛있게 먹었잖아.”

정대령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많이 드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슬며시 왕소민 을 보았다.

“소민 씨, 제 옆으로 오세요.”

“따거 옆으로?”

“네.”

강진의 말에 왕소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옆으로 자리를 옮

겼다.

그에 강진이 그의 접시와 컵을 옆으로 옮기고는, 정대령의 몫으 로 놓여 있던 그릇과 잔을 왕소 령의 옆으로 놓았다.

스윽! 스윽!

그러고는 젓가락으로 김밥을 집 어 접시에 올려놓았다. 왕소령이 물끄러미 자신의 옆에 놓인 빈자 리와 주인 없는 김밥을 보았다.

“고맙습니다.”

왕소령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잔을 들었다.

“드세요.”

강진의 말에 왕소령이 옆자리를 향해 잔을 들고는 입으로 가져갔 다.

꿀꺽! 꿀꺽!

“크윽! 좋다!”

기분 좋게 웃으며 음식을 맛있 게 먹는 왕소령의 모습에 정대령 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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