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쭈그려 앉아 TV를 멍하니 보고 있는 중년 남자 귀신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TV에 붙어 있는 지박령이네.’
강진이 지박령을 볼 때, 철수가 커다란 TV를 보며 설명했다.
“멍도 없고 화질도 깨끗하고 제 일 괜찮아요.”
철수의 말에 지박령을 보던 강
진이 TV로 시선을 돌렸다.
“브랜드가…… 중소기업 건가 보네.”
처음 보는 브랜드가 적힌 것에 강진이 묻자 철수가 고개를 끄덕 였다.
“그렇죠. 근데 요즘 중소기업 것도……
“잘 나오기는 하지. AS가 불편 해서 그렇지.”
강진의 말에 철수가 웃었다.
“형도 잘 아시니까.”
강진도 여기서 일했으니 이런 제품들에 대해 잘 아는 것이다.
“원래 정가는 얼마야?”
“같은 모델로 검색해 보니 50만 원 정도 하던데요.”
“대기업 것으로 치면?”
강진의 물음에 철수가 몸을 돌 려 한쪽에 있는 걸 가리켰다.
“L 전자에서 나온 건데 울트라 日드인데 이건 80이에요. 정가는
120 정도?”
“가격 차이 많이 나네.”
“근데 틀어 놓고 보면 화질 차 이는 못 느껴요. 이것도 화질 좋 으니까.”
철수가 자신이 추천한 TV를 툭 치며 하는 말에 강진이 그것을 보다가 말했다.
“얼마에 해 줄 건데?”
“사장님한테 물어봐야겠지만 많 이 깎아 주실 거예요. 사장님이 형 열심히 산다고 좋아하시잖아
요.”
철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강진이 사연이 있기도 하고 워낙 일 열심히 하다 보니 대부분 어르신들이 다 그를 좋아 했다.
강진이 지박령이 있는 TV를 가 리켰다.
“저건 어떻게 된 거야?”
“박 씨 아저씨가 깨끗하다고 주 어 왔는데 틀어 보니까. 액정에 멍이 있더라고요.”
박 씨 아저씨라면 강진도 아는 분이었다. 폐지를 줍다가 가끔 쓸 만한 전자 제품들은 주워 오 는 분이었다.
“서비스 센터에 보내 보지?”
“무상 기간 끝난 제품이라 수리 비 내야 하는데 액정 갈고 어쩌 고 하면 배보다 배꼽이 클 것 같 아서 그냥 뒀어요.”
“멍은 커?”
“멍은 그리 안 큰데 어쨌든 멍 은 멍이죠.”
철수의 말에 강진이 TV를 보다 가 말했다.
“구경 좀 더 할게. 넌 가서 공 부해라.”
강진의 말에 철수가 고개를 끄 덕이고는 몸을 돌리다가 말했다.
“제가 추천한 것이 가장 쓸 만 해요.”
“그래. 고맙다.”
철수가 웃으며 몸을 돌리자 강 진이 지박령에게 다가갔다. 강진 이 다가오는 것에도 지박령은 멍
하니 TV를 지켜보고 있었다.
“TV를 좋아하시나 보네요.”
“어머니가 좋아하……
말을 하던 지박령이 깜짝 놀란 눈으로 강진을 보았다. 그리고 강진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으악!”
지박령의 외침에 강진이 웃으며 그 옆에 쪼그려 앉아 TV를 보았 다.
아무래도 하자가 있는 제품이라 TV는 밑에 있었다.
“소리를 지를 거면 귀신을 본 제가 소리를 질러야지, 왜 아저 씨가 소리 질러요?”
강진의 농에 지박령이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내…… 내가 보입니까?”
“간단하게 말을 하면 저는 귀신 을 보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 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거짓말. 어떻게 사람이 귀신을
봅니까?”
미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쳐다 보는 지박령을 보고 웃으며 강진 이 그를 가리켰다.
“지금 보고 있잖아요. 그리고 이야기도 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사람이……
“귀신도 사람을 보는데, 사람이 라고 귀신 못 보겠어요?”
저승식당 설명까지 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가볍게 말을 한 강진이 TV를 보았다.
“왜 여기 계신 거예요?”
강진의 물음에 남자가 그를 보 다가 TV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가 TV를 바꾸고 싶어 했는데……
“어머니요?”
“옛날 TV 라 자주 지직거리고 소리도 이상하게 들렸어요. 집에 누워만 있는 엄마가 심심하다고 TV를 바꾸고 싶어 했어요.”
남자가 TV 화면을 보는 것에 강진도 그 시선을 따라 TV를 보
았다.
검은 액정에 비친 자신의 모습 을 볼 때, 남자가 입을 열었다.
“돈이 없어서 TV를 못 바꿔 드 렸는데…… 일 끝나고 집에 가는 데 운이 좋게도 거리에 버려진 이 TV를 발견했어요.”
“고장이 났을 수도 있는데 주우 셨어요?”
그리고 실제로 멍이 있는 TV이 기도 하고 말이다.
“종이에 멀쩡한 TV이니 필요한
분은 가져가라고 쓰여 있더라고 요.”
“그냥 돈 내고 버리기 싫어서 써 놓은 것일 수도 있잖아요.”
“TV 뒤에 폐가전 수거 스티커 가 붙어 있었습니다. 돈 아끼려 고 버렸으면 수거 스티커 돈 주 고 붙이지는 않았겠죠.”
말을 들어 보니 일리 있는 말이 었다.
“맞는 말이네요.”
강진의 말에 남자의 얼굴에 미
소가 어렸다.
“그날은 운이 좋았어요. 아침에 인력 사무소에서 일도 잘 찾았 고, 일 잘 한다고 공사 끝날 때 까지 계속하자는 제안도 받았 고…… 아! 그리고 공사장 식당 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제육도 나 왔고, 그날은……
잠시 말을 멈춘 남자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운이 좋았어요.”
남자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
다.
“그리고 쓸 만한 TV도 주우시 고요.”
“네.”
TV를 보던 남자가 말했다.
“TV를 들고 집에 가는데 가슴 이 답답해지고 숨이 좀 안 쉬어 졌어요. 오늘 좀 피곤해서 그런 가 싶어서 좀 앉았다 가야지 하 고 앉았는데……
남자가 뒷말을 잇지 못하는 것 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말 그대로 급사하셨네. 운이 좋 은 날이... 운이 안 좋은 날이
었구나.’
남자를 보던 강진이 슬며시 말 했다.
“그럼 어머니는?”
강진의 물음에 남자는 얼굴이 굳어진 채 말을 하지 못했다. 지 박령으로 TV에 묶여 있었으니 집에 가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 누워 있었다고 했
으니…….
그 모습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집이 어디인지 기억하세요?”
“기억이 납니다.”
남자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 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보통 귀신들은 자신들의 기억에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이 남자는 자신이 죽은 것과 집
에 대한 기억은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강진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애들도 기억 이 좀 있던데 지박령은 기억이 좀 괜찮은 건가?’
자신들이 죽은 이유에 대해 기 억을 못 하는 일반 귀신들과 달 리 영수와 애들은 자신이 죽은 이유와 집에 대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귀신들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직도 모르는 것 이 많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남자를 보다가 말했다.
“집이 어디예요?”
“수락산역 근처입니다.”
남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수락산역이면 노원하고 두 개 역 차이니 가까운 편이었 다.
남자의 말에 강진이 몸을 일으 켰다.
“철수야.”
강진의 부름에 한쪽에서 철수가 다가왔다.
“이거하고 이거, 두 개 줘.”
자신이 골라 준 TV와 멍이 든 TV 두 개를 가리키는 강진의 모 습에 철수가 의아한 듯 말했다.
“이건 어디에 쓰려고요?”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것이 있어. 싸게 줘라.”
강진의 말에 철수가 TV를 보다 가 말했다.
“돈이 부족해서 그런 거면 좀 싸고 좋은 걸로 제가 골라 줄게 요.”
“아니야. 이걸로 두 개 계산해 줘.”
강진의 말에 철수가 입맛을 다 시고는 TV를 보다가 말했다.
“사장님이 이건 22만 원에 하라 고 했고, 이건…… 이만 원만 주
세요.”
“물어봐야 하잖아.”
“자리 차지한다고 안 팔리면 조 만간 고물상에 넘긴다고 하셨어 요. 이만 원이면 고물상에 넘기 는 것보다 낫죠.”
철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말했다.
“ 계산하자.”
철수가 TV를 들고 계산대로 향 하자, 강진도 남은 TV를 들고는 그 뒤를 따랐다.
계산대로 향하며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과 함께 온 귀 신들은 가전제품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 귀신들을 보며 계산대로 향한 강진이 카드를 꺼내 계산을 할 때, 최호철이 다가왔다.
“강진아.”
최호철의 부름에 강진이 그를 보자, 그가 한쪽을 가리켰다.
“에어 프라이어 하나 사자.”
‘에어 프라이어?’
강진이 입모양으로 말을 하자, 최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사들은 음식 만드는 도구 들 좋아하잖아. 용수가 보면 좋 아할 것 같은데?”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생각을 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에어 프라이어 있으면 다른 음 식도 할 수 있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철수를 보았다.
“에어 프라이어도 있지?”
“있죠. 하나 드려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철수가 그를 데리고 한쪽으로 가서는 진 열되어 있는 에어 프라이어를 가 리켰다.
“여기 있는 건 다 괜찮아요.”
철수의 말에 강진이 그중에 가 장 큰 걸로 하나 골라서는 TV와 함께 계산을 마쳤다.
부웅!
차를 몰고 수락산역 인근에 도 착한 강진은 골목에 들어서고 있 었다.
“여기서 좌회전입니다. 여기서 우회전요. 차는 여기다 세우셔야 합니다.”
남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골목 한쪽에 차를 주차했다. 그리고는 트렁크를 열었다.
트렁크에는 푹신푹신한 에어캡 으로 TV가 잘 싸인 채 겹쳐 있 었다.
TV를 보던 강진이 남자 귀신을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TV를 보 다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 다.
남자 귀신의 집에 이 TV를 가 져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 TV, 멍이 들어 있었다.
제대로 된 TV가 아닌데 이걸 가져다주면 좋아하실까, 하는 생 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TV를 가 져다줄 수도 없었다. 멍이 든
TV 에 아들이 지박령으로 묶여 있으니 말이다.
‘일단 가져다드리고 상황을 보 자. 상황이 좋다면……’
강진이 지박령을 보았다.
‘승천하시 겠지.’
남자 귀신이 TV에 묶인 이유는 참 간단했다. 운이 좋은 날 운이 좋게도 주운 TV를 엄마에게 주 지 못하고 죽어서였다.
그러니 TV를 어머니에게 가져 다주고 설치를 하면 승천하실 수
있다.
그 후에 적당한 TV 하나 구해 다가 설치해 주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우려가 있었다.
‘상황 보니 할머니하고 이 아저 씨 둘이 살았던 것 같은데……
아저씨가 일용직으로 일을 하면 서 번 돈으로 할머니를 보살핀 것 같은데, 아저씨가 죽었으니 할머니가 아픈 몸으로 괜찮을지 가 걱정이었다.
고독사에 대한 뉴스를 떠올리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가 보자.’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TV를 들었다. TV는 그리 무겁지 않았 다.
다만 사이즈가 좀 있다 보니 들 기가 불편하고…… 조금 마음이 무거울 뿐이었다.
‘잘 지내고 계셔야 할 텐데.’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TV를 들고는 남자 귀신을 보았다.
“ 가죠.”
강진의 말에 남자 귀신이 들뜬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주택 단 지를 걸으며 골목을 몇 개 지났 을 때, 남자 귀신이 멈췄다.
그러고는 골목에 있는 작은 슈 퍼를 보았다.
“뭐 사갈까요?”
강진의 말에 남자 귀신이 슈퍼 를 보다가 슬며시 말했다.
“그……
머뭇거리는 남자 귀신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사고 싶은 것 있으면 말씀하세 요.”
“엄마가 공짜로 물건 가져오고 그러면 안 된다고 했는데…… 난 돈이 없는데.”
“괜찮아요. 제가 사드릴게요. 그 리고 저도 살 게 있어요.”
“사 줄 거예요?”
남자 귀신이 해맑은 얼굴로 자 신을 보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TV를 내려놓고는 가게 문을 잡 았다.
“사 줄게요.”
가게 문을 연 강진이 안으로 들 어가자 남자 귀신이 웃으며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