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 화
남자 귀신과 함께 슈퍼에 들어 온 강진이 주인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들어간 강진이 가 게 안을 둘러볼 때, 남자 귀신이 빵 코너로 가서는 단팥빵을 보고 있었다.
단팥빵을 보던 남자 귀신이 강 진을 보고는 다시 단팥빵을 보았
다.
사고는 싶은데 사달라고 말을 하지는 못하는 남자 귀신의 모습 에 강진이 웃으며 단팥빵을 집었 다.
“이거 좋아해요?”
“엄마가 좋아해요.”
“그럼 당연히 사야죠.”
남자 귀신이 환하게 웃는 것에 그를 보다가 단팥빵을 세 개를
고르고 같이 먹을 우유를 골랐
다.
“우리 엄마는 우유 먹으면 설사 해요.”
“그래요?”
“엄마 과일주스 좋아해요.”
남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냉장 고에서 과일주스를 두 개 집었 다.
“어머니 식성에 대해 잘 아시네 요.”
“우리 엄마도 내가 좋아하는 것 다 알아요.”
“그건…… 그렇죠.”
엄마가 자식의 식성을 잘 아는 것이야 당연했다. 하지만 그 반 대는 흔치 않았다.
“혹시 어머니 좋아하는 음식 아 세요?”
강진의 말에 남자 귀신이 분홍 소시지를 골랐다.
“이거 계란에 구우면 맛있어 요.”
강진이 분홍 소시지와 계란 열 개를 집다가 고개를 젓고는 30개
짜리 한 판을 집었다.
“다른 건요?”
“엄마 콩나물국 좋아해요.”
남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콩나 물과 과일을 몇 개 고르고는 계 산을 마쳤다.
봉지에 물건을 담은 강진이 입 맛을 다시며 조심히 TV를 들었 다.
계란과 봉지를 양손에 들고 그 위에 TV까지 드니…… 죽을 맛 이었다.
‘이거 되게 불편하네.’
무겁기도 하고 들기도 불편했 다. 어쨌든 TV를 들고 남자 귀 신을 따라갈 때 그가 한 주택을 가리켰다.
“우리 집이에요.”
남자가 가리킨 주택은 꽤 오래 돼 보였다.
“여기예요. 엄마!”
남자 귀신이 환하게 웃으며 대 문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그 모 습에 강진이 슬며시 대문을 밀었
다.
끼익!
거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것에 강진이 TV를 들고는 슬며 시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안 잠그고 사시네.’
요즘 시대에 문을 안 잠그는 집 이 있나 싶어 문을 한 번 본 강 진이 앞을 보았다.
집 앞의 마당은 깨끗했다. 한쪽 에는 작지만 밭도 있었는데, 모 양을 보니 봄에는 야채도 심는
모양이었다.
마당을 둘러보던 강진은 현관 앞에 서 있는 남자 귀신을 볼 수 있었다.
“왜 안 들어가세요?”
집에 들어올 때만 해도 신나하 던 남자 귀신인데 현관 앞에서 들어가지 않고 머뭇거리는 것이 다.
강진의 물음에 남자 귀신이 잠 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엄마가…… 걱정할 텐데.”
남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무슨 마음인지 이해가 되었다.
밖에서 다치고 들어오면 어머니 가 걱정을 하신다. 하물며 지금 은 죽어서 귀신이 돼 들어오는 것이니…… 어머니가 걱정이 되 는 것이다.
남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고개 를 저었다.
“어차피 어머니는 아저씨 못 보 세요.”
“아......"
강진의 말에 님•자 귀신이 서글 픈 눈으로 한숨을 쉬었다.
“나…… 죽었지.”
작게 중얼거리는 남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남 자 귀신의 목소리가 무척 무겁게 느껴졌다.
“이거 무거운데……
강진이 살짝 엄살을 부리며 손 에 들린 TV를 들어 보이자, 남 자 귀신이 한숨을 깊게 토해 내
고는 현관문에 다가갔다.
현관문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남 자 귀신을 보던 강진이 문 앞에 TV와 짐을 놓고는 문을 두들겼 다.
똑똑똑!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
몇 번 말을 하자 안에서 목소리 가 들려왔다.
“누구요?”
“ 엄마!”
안에서 들린 목소리에 남자 귀 신이 급히 문을 향해 다가갔다.
스르륵!
그리고 남자 귀신의 몸이 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박령이 기는 해도 남자 귀신은 원래 이 집에 살던 사람이라 집이 거부를 하지 않았다.
“엄마 아들 왔어! 엄마!”
안에서 남자 귀신이 울면서 소 리치는 것을 들으며 강진이 입맛 을 다시며 말했다.
“TV 배달 왔습니다.”
강진의 말에 잠시 후 안에서 작 은 목소리가 들렸다.
“TV 요?”
“네.”
“들어와요.”
안에서 들리는 말에 강진이 문 을 열었다.
끼익!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강진은 거실을 볼 수 있
었다.
거실 내부는 깔끔했다.
‘깔끔하게 해 놓고 사시네.’
그리고 벽을 의지한 채 서 있는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TV를 들 고는 안으로 들어가다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집 안인데도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방이 추운가?’
귀기라고 해야 할 기운을 흡수 하게 되면서 강진은 추위를 많이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방이 추운가 안 추운가 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에 강진이 숨을 깊게 토해 보 았다.
“후우우!”
화아악!
입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오 는 것에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추운가 보네.’
“방이 추워서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듯 말을 하는 할머 니를 보며 강진이 고개를 저었 다.
“아닙니다. TV 가지고 왔는데 어디다 설치해 드릴까요?”
“그런데 TV를 누가?”
“보내면 아실 거라고 하던데
요.”
죽은 아드님이 보냈습니다, 라 고 할 수 없어 강진이 두루뭉술 하게 말을 하자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거 리다가 웃으며 말했다.
“목사님이 보내 주셨나 보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세요?”
“저는 여기에 TV 가져다주라는 부탁을 받아서요.”
“ 누가?’’
“보내 주실 만하니까 보내지 않 았겠어요?”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데 받 기가……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TV를 슬 쩍 들어 보이며 말했다.
“새것도 아니고 중고인 것을 보 면 할머니를 아시는 분이 보내신 것 같은데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사님이 보내 주셨나 보네
요.”
“그럼 설치해도 될까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벽을 짚 으며 말했다.
“이쪽으로 설치해 주세요.”
목사님이 보내 줬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할머니는 강진에 대한 경계심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집에 누가 가져갈 만한 것도 없고 말이다.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TV를 들
고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 있는 TV는 강진의 가게에 있던 것보 다 조금은 더 크지만 더 낡아 보 였다.
그리고 TV 위에는 할머니와 남 자 귀신이 웃으며 브이 자를 그 리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어디 놀러 가서 찍은 듯 꽃밭에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브이 자를 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에요.”
강진이 사진을 보는 것에 할머
니가 웃으며 사진을 집었다. 그 리고는 손으로 사진을 닦으며 미 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이에요……
같은 말 다른 의미가 담긴 목소 리였다.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강 진이 그녀를 힐끗 보았다.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먼저 떠나 보낸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이 느껴졌는데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할머니를 보던 강진이 물 건들을 치우고 TV 선을 뽑았다.
“목사님이 잘 해 주시나 보네 요.”
강진의 물음에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목사님이 식사도 보내 주시고, 주일에는 학생들이 와서 교회에 데려다주기도 하고…… 참 감사 하지요.”
“식사를 보내 주세요?”
“내 사정이 이래서 밥 먹기가
쉽지가 않아요.”
말을 하던 할머니가 작게 한숨 을 쉬었다.
“아들 있을 때는 그래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되었는 데……
남자 귀신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할머니를 쓰다듬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 길바닥에 앉지 말라고 했는데. 엄마 미안해. 내 가 길바닥에 앉아서 집에 못 왔
어.”
자신이 죽은 이유를 길바닥에 앉아서라 생각을 하는 듯한 남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작게 한숨을 토했다.
“후우!”
작게 한숨을 토한 강진이 옛날 TV를 내려놓고는 새로운 TV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멍 자국 어떻게 하지?’
강진이 남자 귀신을 슬쩍 보았 다. 남자 귀신이 승천을 하지 않
는 이상은 TV를 새로 가져다 놓 을 수도 없다.
‘멍 자국이 작았으면 좋겠다. 아 니면 구석에 있던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TV에 선을 꼽고는 뒷주머니에서 리모 컨을 꺼냈다.
버려진 TV를 주워 온 것이라 리모컨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철수가 따로 만능 리모컨을 챙겨 준 것이다.
‘멍 자국 작아라. 작아라.’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전원 을 켰다.
띠링!
전원이 켜지고 화면이 나오자 강진이 화면 이곳저곳을 살폈다. 화면 한쪽에 오백 원 동전 크기 의 멍 자국이 보였다.
‘그나마 구석이네.’
하지만 멍은 멍이다.
강진이 머리를 긁으며 할머니를 보았다.
“여기 구석에 멍이 좀 있습니 다.”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TV를 보 고는 웃으며 말했다.
“눈이 나빠서 잘 보이지도 않아 요. 괜찮아요.”
그리고는 할머니가 TV를 보다 가 미소를 지었다.
“TV 잘 나오네요. 소리도 잘 들리고…… 아주 좋아요. 감사합 니다.”
멍 자국 정도는 괜찮다는 듯 미
소를 지어 보이던 할머니가 몸을 일으켰다.
“끄응!”
작게 신음을 토한 할머니가 주 방으로 가며 말했다.
“드릴 것이 마땅히 없네요. 따 뜻한 커피라도 한 잔 드세요.”
“마침 날씨가 쌀쌀해서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감 사합니다.”
폐를 끼치기 싫어서 거절을 할 수도 있다. 사는 것이 힘들어 보
이는 할머니에게 커피 한 잔은 귀한 음식일 수도 있으니 말이 다.
하지만 할머니는 고마운 마음을 커피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강진 은 그 마음을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할머니 입장에서는 커피 를 한 잔 타 주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이었다.
벽에 손을 댄 채 주방으로 가는 할머니를 부축하던 강진의 눈에 싱크대 한 쪽에 있는 300개가 들어 있는 믹스 커피 박스가 보
였다.
“커피를 좋아하시나 봐요.”
혼자 사시는 할머니 혼자 먹기 에는 너무 대용량 커피였다.
“좋아하는 것도 있고…… 배고 플 때 먹으면 좋더라고요.”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커피를 식사 대신으로 드시는 건가?’
강진도 이런 경험이 있다. 배고
플 때 달달한 믹스 커피 한 잔 마시면 당이 오르고 배고픈 것이 덜하다.
물론 속 쓰림이 덤으로 오기는 하지만…….
할머니는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 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강진이 웃으며 말 했다.
“아! TV 배달 오면서 이것도 같이 가져왔는데.”
강진이 현관에 놓인 봉지를 가
지고 와서는 식탁에서 하나씩 풀 었다.
강진이 놓는 것에 할머니가 미 소를 지었다.
“사양도 좀 하고 해야 하는데 나이 먹으니 염치만 없어지네요. 고맙게 잘 먹을게요.”
웃으며 할머니가 식탁에 놓이는 음식들을 보다가 웃었다.
“우리 아들이 자주 사 오던 거 네요.”
“그래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단팥빵을 집었다.
“우리 아들이 일을 갔다가 참으 로 단팥빵이 나오면 이렇게 가지 고 왔어요.”
“할머니가 좋아하시니 가져오셨 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웃으며 단팥빵 봉지를 뜯어 입에 조금 넣고는 말했다.
“아들이 단팥을 안 좋아해요.”
“어?”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눈으로 남자 귀신을 보았다. 강 진의 시선에 남자 귀신이 눈을 찡그렸다.
“단팥 맛없어요.”
남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황당 한 눈으로 그를 볼 때,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참으로 단팥빵이 나오 면 엄마 먹으라고 가지고 오더라 고요.”
“할머니는 단팥 좋아하세요?”
강진의 물음에 할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안 좋아해요.”
“어? 엄마 잘 먹었는데.”
남자 귀신의 말에 할머니가 단 팥빵을 먹으며 말했다.
“누가 단팥빵을 주면 꼭 가지고 오더라고요. 애한테 음식 버리는 것 보여주면 교육에 안 좋을 것 같아서 제가 다 먹었는데…… 애 가 그걸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을 했는지 단팥빵이 생기면 꼭 가지
고 오더라고요.”
“그럼 드시지 마시지, 안 좋아 하시는데 굳이……
“아들이 먹으라고 가져다준 건 데 먹어야죠.”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작게 웃 었다.
‘유대성 할아버지 생각이 나네.’
유대성 할아버지의 할머니도 그 가 질은 밥을 좋아하는 줄 알고 평생 죽처럼 밥을 해 줬으니 말 이다.
물론 남자 귀신은 자신이 싫어 하는 단팥빵을 엄마가 잘 먹으니 좋아한다 생각하고 가져다준 것 이니 조금 다르지만…….
그러다가 문득 강진이 남자 귀 신을 힐끗 보고는 사 온 음식 재 료들을 보았다.
‘이것도 할머니 안 좋아하는 것 들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