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259화 (257/1,050)

258화

일요일 점심 무렵, 강진은 아이 스박스에 음식들을 담고 있었다.

오늘 황민성이 이사를 한 집에 초대를 받아 가기로 한 것이다.

아이스박스에 음식들을 담을 때, 배용수가 옆에서 장갑 낀 손 으로 잡채를 반찬 통에 담으며 말했다.

“빨간 뚜껑이 어머니 드실 거 고, 파란 뚜껑은 형 먹을 거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너도 같이 가자.”

“귀신이 옆에 있어서 좋을 것이 있나? 게다가 건강도 안 좋으신 분인데. 나는 여기 있을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쉬워하 는 듯한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좀 떨어져 있으면 되지.”

“떨어져 있어도 내가 어머니 쳐 다보는 것으로도 안 좋은 기운이

생겨.”

배용수가 안 가는 이유는 조순 례에게 귀신의 기운이 닿을까 싶 어서였다.

산 사람에게 귀신이 가까이 가 서 좋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스 박스 뚜껑을 닫았다.

“가서 음식 잘 해주고 와.”

“그래야지.”

아이스박스를 들고 홀로 나온 강진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남 자를 보았다.

황민성과 같이 한두 번 본 적이 있는, 그의 운전기사였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주십시오.”

운전기사가 아이스박스를 들려 고 하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들어도 됩니다. 가시죠.”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 잡아 주 자 강진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 고 문을 닫는 강진에게 운전기사 가 슬며시 말했다.

“문 안 잠그십니까?”

운전기사의 말에 강진이 가게 문을 잠갔다. 평소라면 그냥 안 잠그고 다닌다.

안에 귀신들이 바글바글하니 처 음 오는 사람들은 가게를 보지도 못하고, 와 본 사람들도 쉽게 들 어오지 못한다.

황민성 정도 되는 사람이나 귀 신이 있든 말든 들어올 텐데…… 그런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황민성이 물건을 훔쳐 갈 것도 아니고 말이다.

어쨌든 강진이 자동차 트렁크에 아이스박스를 실었다. 그리고 운 전기사가 뒷좌석을 열어주자 강 진이 웃었다.

“조수석에 앉을게요.”

“편하게 하십시오.”

운전기사가 앞좌석을 열어 주려

하자 강진이 먼저 문을 열고는 탔다.

그에 운전기사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운전석에 타서는 차를 출발시켰다.

“형 집 어때요?”

“좋습니다.”

짧게 답을 하는 운전기사의 모 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북한산 산자락에 위치한

주택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집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았다.

‘영화에서 보던 것을 생각했는 데 그것보다는 많이 작네.’

황민성의 집이라고 해서 영화에 서 보던 것처럼 대문에서 저택까 지 차를 타고 가는 그런 그림을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저 대문 안으로는 작은 잔디 밭이 있고 한쪽에는 주차장이 있 을 뿐이었다.

대신 집은 무척 보기 좋았다. 2

층으로 된 양옥이었는데 커다란 창문이 있고 마당에는 나무로 된 그네가 있었다.

‘하긴, 세 식구 사는데 이 정도 도 과하게 큰 편이지.’

발 편히 뻗고 잘 공간만 있으면 집이 좁아도 무슨 상관인가? 가 족과 살면 그걸로 족한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차에 서 내렸다.

“왔어.”

황민성이 문을 열고 나와 손을

드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 다.

“집 좋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집을 보았다.

“집은 그럭저럭이지.”

“집 좋은데요.”

“글쎄. 그래도 경치는 좋지.”

말을 하며 황민성이 보라는 듯 북한산을 가리켰다.

“그치?”

“네. 정말 경치 좋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거실에 있는 커다란 창문을 가리켰다.

“아침에 저기서 햇살 받으면서 북한산을 보면 그림이 따로 없 어. 게다가 창문도 커서 햇살도 많이 들어온다.”

“눈 내리는 날에는 경치가 더 좋겠는데요.”

“눈도 좋고 비도 좋고…… 다 좋다.”

“가족과 함께면 천막도 좋죠.”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 민성이 운전기사를 보았다.

“오 실장님, 수고하셨습니다. 퇴 근하세요.”

황민성의 말에 오 실장이 고개 를 숙이고는 몸을 돌려 집을 나 섰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강진을 보 았다.

“들어가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트렁크에 서 아이스박스를 꺼냈다.

“뭘 또 챙겨 왔어. 음식 많이 해 놨는데.”

“어머니가 제 음식 좋아하잖아 요.”

“이리 줘.”

아이스박스로 손을 내미는 황민 성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박스 를 건넸다.

“무거워요.”

“이 정도쯤이야. 들어가자.”

황민성과 함께 집안에 들어간

강진은 김이슬을 볼 수 있었다.

“오셨어요?”

“형수님, 이사하신 것 축하드립 니다.”

“감사합니다. 들어오세요.”

김이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 었다.

“그런데 집이 무척 좋……

말을 하던 강진이 순간 입을 다

물었다. 거실 한 쪽에 노부부로 보이는 귀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노부부와 조순례의 수호령인 정주현이 다투고 있었 다.

“빨리 안 나가!”

“여기가 우리 집인데 우리가 왜 나가요!”

“어허! 집 주인이 바뀌었으면 나가야지! 어서 나가!”

“이놈의 영감탱이가! 같은 귀신 끼리 이 따위로 말할 거야?!”

“그래! 말할 거다! 주인이 바뀌 었으면 나가야지! 너희 둘 때문 에 우리 조 여사 무서워하는 것 안 보여!”

소리를 지른 정주현이 소파에 앉아 있는 조순례에게 급히 말했 다.

“조 여사, 여기 보지 마. 이 고 얀 놈들하고 눈도 마주치지 마!”

“무서워하기는, 편하게 잘만 있 고만!”

“귀신 사정은 귀신이 알아줘야

지! 우리라고 여기 붙어 있고 싶 어서 붙어 있겠어?!”

노부부와 다투며 연신 소리를 지르는 정주현의 모습에 강진이 멍하니 있다가 노부부를 보았다.

‘아…… 귀신 붙은 집이네.’

상황을 보니 짐작이 되었다.

수호령과 달리 지박령을 비롯한 보통의 귀신은 사람에게 해를 준 다. 노부부는 여기에 살던 지박 령이고, 정주현은 지박령의 기운 에 할머니가 몸이 상할까 싶어

화를 내며 싸우는 것이다.

“그럼 나가라도 있어!”

“가기는 어딜 가! 그리고 갈 수 있었으면 진작 갔지! 우리라고 여기 계속 있고 싶어서 여기 있 는 줄 알아!”

고함을 지르며 같은 말로 계속 싸우는 귀신들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

노부부는 집에 묶인 지박령이니 어디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

는 것이다.

귀신들을 보는 강진의 모습에 황민성이 어깨를 툭 쳤다.

“왜 그러고 있어. 어머니한테 인사 드려야지.”

황민성이 보기에 강진은 허공을 멍하니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순례에게 다가갔 다.

“어머니, 강진이 왔습니다.”

강진의 인사에 조순례가 그를 보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강진이 왔구나.”

조순례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황민성을 보았다.

“저를 알아보시네요?”

“나는 못 알아보시는데 네 이야 기는 곧잘 하시더라. 내 친구로 기억하고 있으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조순례를 보자 그녀가 웃으며 옆을 가리켰 다.

“이리 와.”

조순례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조 순례가 그의 손을 잡아 쥐며 웃 었다.

“민성이하고 싸우지 말고 앞으 로 친하게 지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조순례가 웃으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리고는 만 원짜리를 꺼내 강진에 게 주었다.

“민성이하고 맛있는 것 사 먹어 라.”

“어머니, 괜찮습니다.”

“어른이 주는 건 받아도 돼.”

조순례의 말에 강진이 돈을 슬 며시 받으며 황민성을 보았다. 그 시선에 황민성이 피식 웃었 다.

“어머니가 주머니에 돈을 계속 넣어 두셔서 왜 그러시나 했는데 너 주려고 했나 보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조순례를

보며 웃었다.

“맛있는 것 사 먹을게요.”

강진의 말에 조순례가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강진이 왔는데 내가 뭐라도 해 줘야지.”

조순례가 몸을 일으키는 것에 옆에 있던 장 여사가 그녀를 부 축했다.

“언니, 제가 할게요.”

“내가 할 거예요.”

조순례의 말투가 바뀌는 것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 다.

자신에게 말을 할 때에는 정신 이 박힌 것 같았는데, 장 여사님 에게 말을 할 때에는 어느새 어 린애와 같이 말투가 변한 것이 다.

장 여사의 부축을 받으며 주방 으로 들어가는 조순례를 황민성 이 바라보았다.

“너에 대한 이야기 할 때는 좀 정신이 있으신 것 같아.”

황민성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 이 어려 있었다.

“형 친구라고 기억해서 그런가 보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강진이 슬 며시 말했다.

“서운하지 않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서운했는데…… 생각 을 해 보니……

잠시 말을 멈춘 황민성이 재차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밖에 없더라.”

“뭐가요?”

“내가 엄마한테 소개해 준, 제 대로 된 친구는 말이야.”

황민성이 어릴 때 만난 친구라 고 했던 녀석들은 모두 사고뭉치 에 말썽쟁이들뿐이었다.

싸움이나 하고 도둑질이나 하 는. 끼리끼리 모인다고 모두 황 민성처럼 싸움이나 하는 녀석들

이었다.

그런 친구들은 조순례에게 있어 하나 같이 마음에 안 들 뿐이었 다.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싸움질 이나 하는 친구들  조순례가 보기에 모두가 황민성을 나쁜 길 로 데려가는 나쁜 친구들이었다.

“엄마가 본 내 친구들 중에는 그래도 네가 제일 제대로 된 친 구였으니…… 엄마한테는 인상이 강하게 남은 모양이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저하고 이제 친구하는 거예 요?”

“쓸데없는 소리 하네.”

이야길 나누던 강진이 주방을 보았다. 주방에서 조순례는 장 여사의 도움을 받으며 음식 재료 들을 꺼내고 있었다.

강진이 주방으로 가려 하자, 황 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지 마.”

“옆에서 좀 봐야……

“어머니 음식 잘하시더라.”

“위험하지 않아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웃으며 다시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음식을 할 때는 좀 정신이 맑아지시는 것 같아서 지 켜봤는데 혼자 하시는 것이 덜 위험하더라.”

“그래요?”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황민성

이 지켜보라는 듯 주방을 가리켰 다.

그에 보니 재료들을 모두 꺼낸 장 여사와 김이슬이 살짝 떨어져 서 조순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받으며 조순례는 파 를 썰고 있었다.

“혼자 두면 잘하시더라.”

“그래요?”

그 말에 강진이 조순례를 보았 다. 조순례는 고추장 소스를 만 들고 있었다.

“떡볶이 만드시나 보네요.”

“엄마가 내 친구들 오면…… 그 래도 아들 친구라고 떡볶이도 해 주고 그랬거든.”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조순례를 보다가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그 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여전히 다투고 있는 귀신들이 있었다.

“저 창 밖 좀 구경해도 될까 요?”

“그렇게 해.”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거실 창

가 쪽으로 가서는 귀신들을 보았 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정주현에게 작게 인사를 하자, 정주현이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것들 때문에 안녕하지 못하 지.”

“지금 누구……

할아버지 귀신이 소리를 지르다 가 강진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정주현을 보다가 놀라 손으로 가

리켰다.

“어!”

자신을 가리키는 할아버지 귀신 을 보며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귀신을 보고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허억!”

정말 놀란 듯 헛바람을 삼키는 할아버지 귀신을 보며 강진이 말 했다.

“지박령이시죠?”

“어떻게?”

어떻게 사람이 귀신을 보나 싶 어 놀라는 할아버지 귀신을 보며 강진이 정주현을 보았다.

“어르신께 설명 좀 부탁드리겠 습니다.”

“내가?”

“제가 혼자 중얼거리면 민성 형 이 의아해하잖아요.”

황민성을 힐끗 보며 하는 말에 정주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 진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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