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조카가 살았다는 말에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조카요?”
“조카라고 해도 나이는 환갑 가 까이 되시는 분이더라. 말 들어 보니까 이 집 지은 할아버지 돌 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살았는데 그때부터 할머니 자주 찾아뵙고 챙겨 드린 좋은 분이었어. 할머 니 돌아가시고 나서도 서운해서
이 집은 못 팔겠다고 직접 들어 와서 살았으니 말 다 했지.”
‘좋은 분이라……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집을 보았다. 확실히 좋은 집이다. 마 당도 보기 좋고 창문을 통해 보 이는 산세도 보기 좋다.
창문 앞에다 테이블 가져다 놓 고 커피를 마시면 어지간한 커피 숍보다 더 분위기 있을 것 같았 다.
조카라는 분도 나이가 있다고
했으니 이런 곳에서 말년을 지내 고 싶었을 것이다.
‘안 팔고 자기가 직접 살려고 한 모양이네.’
팔아서 자기가 챙기려고 했던 것보다는 덜 나쁘기는 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론 나쁘다. 결 국 집을 팔고 유언을 지키지 않 았으니 말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조 순례가 손으로 잡채를 집어 먹자 장 여사님이 그것을 닦아주었다.
“어머니, 이것도 좀 드세요.”
김이슬이 김치전을 주자 조순례 가 고개를 숙였다.
“아줌마 감사합니다.”
조순례의 말에 김이슬이 웃으며 식탁에 떨어진 잡채를 조금씩 치 웠다.
“너도 먹어.”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갈비를 하나 집어 먹으며 말했다.
“갈비 너무 맛있네요.”
“이슬 씨가 한 거다.”
“형수님 요리 잘하시네요.”
“맛있게 많이 드세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 자리를 마무리 한 강진과 황민성 은 창문 앞에 서서 커피를 마셨 다.
아까 생각을 했지만 창문 앞에 서 커피를 마시니 커피숍에 온 듯했다.
후룩!
북한산을 보며 커피를 마시던 강진이 그네에 앉아 있는 귀신들 을 보다가 말했다.
“느낌 어때요?”
“느낌?”
“집에 왔으니 집에 대한 느낌이 있지 않겠어요?”
“난 좋은데……
순간 뒷말을 흐리는 황민성의 모습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셨다.
“이슬 씨하고 장 여사님이 가끔 느낌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하 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힐끗 김 이슬과 장 여사님을 보았다.
김이슬과 장 여사님은 아직도 식사를 하는 조순례를 보살피고 있었다.
‘귀신과 같이 살고 있으니……
귀신을 보지 못해도 귀신이 옆 에 있으니 그 기운을 느끼는 것 이다.
‘확실히 안 좋기는 하겠네.’
그리고 강진은 알 수 있었다. 조카라는 사람이 이 집을 팔은 이유를 말이다.
원한이 없는 황민성 가족도 귀 신들의 기운에 안 좋은 느낌을 받는다.
그럼 집을 안 팔고 가로챈 조카 라는 사람은? 할머니 귀신은 몰 라도 할아버지 귀신은 독한 눈으 로 계속 노려보고 욕을 해 댔을 것이다.
원한령이 붙어 있던 도영민만 봐도 귀신이 붙어서 계속 노려보 고 욕을 해 영향을 받았었다.
그러니 조카라는 사람도 이 집 에서 살면서 고생 좀 했을 것이 다.
그래서 집을 팔았을 것이고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황민 성이 말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생소 해서 그런가 봐.”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황민 성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 였다.
‘하긴, 민성 형은 못 느끼겠네.’
황민성이야 귀신이 바글거리는 저승식당에서도 태연하게 술 먹 고 밥 먹는 사람이다.
그러니 지박령 둘이 노려보는 것 정도야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집에 황민성만 사는 것이 아니다. 특히 몸이 허약한
조순례에게 귀신의 기운은 좋지 않을 것이다.
‘내보내기는 해야겠는데……
답은 간단해 보였다. 할머니는 이 집이 보육원에 기부가 되지 않은 것 때문에 지박령이 됐을 것이다.
그럼 이 집을 판 돈을 보육원에 기부를 하면 되는데…….
‘그게 쉽나? 이미 돈 가지고 갔 을 텐데……
가서 ‘이 집 판 돈 보육원에 기
부하세요.’라고 말을 한다고 돈을 줄 리도 없다.
‘서울에서 이 정도 뷰 가진 단 독 주택이면 얼마나 하는 거야?’
강진이 창밖을 보며 입맛을 다 셨다. 얼마일지 감도 오지 않았 다.
그런 큰돈을 쉽게 내놓을 사람 은 없었다. 비록 자기 돈이 아니 라고 해도 말이다.
“어렵네.”
강진의 중얼거림에 황민성이 그
를 보았다.
“무슨 고민 있어?”
“고민요?”
“방금 어렵다며. 요즘 장사 안 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러고는 강진이 조순례를 보았 다. 음식을 많이 먹어 배가 부른 듯 조순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장 여사의 부축을 받으며 소파로 오고 있었다.
“여기 앉으세요.”
“그래, 강진아.”
웃으며 강진의 손을 토닥인 조 순례가 소파에 앉자 강진이 그 옆에 앉아 말을 걸어 주었다.
치매에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으니 말이다.
“그래도 민성이가 요즘 안 와.”
“형 곧 올 거예요.”
“학교에서 또 애들 패고 그러는 것 아니지?”
조순례의 말에 강진이 황민성을 보자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 를 긁었다.
“형 이제 안 그래요.”
강진의 말에 조순례가 그를 보 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친구한테 형이라고 해?”
“아!”
조순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황민성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맞네. 친구인데 형이라고 하면 안 되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눈을 찡 그리며 주먹을 들어 보였다.
“죽는다.”
작은 속삭임에 강진이 웃으며 조순례와 이야기를 마저 나누었 다.
강진은 마당에 있는 나무 식탁 에 자신이 싸온 음식들을 놓고 있었다.
“여름에 여기서 바비큐 해 먹으 면 좋겠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생각 했었다. 경치도 좋고 여기에 바비큐 해 먹으면 맛있겠다고. 그리고 집 뒤에 작 은 창고 있는데 거기에 바비큐 해 먹는 장비들도 다 있더라.”
“근데 산이 바로 옆이라 모기가 많을 것 같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고기 먹고, 모기는 우 리 먹고……
“진심이에요?”
“농담이지. 고기 먹으면서 모기 가 달려들면 얼마나 귀찮은 데…… 게다가 산 모기가 얼마나 독하냐.”
황민성이 식탁 주위를 보며 말
했다.
“겨울 지나면 여기에 지붕을 올 리고 그 주위로 모기장을 설치할 거야.”
황민성의 설명에 강진이 웃으며 식탁에 놓인 음식 앞에 젓가락을 놓고는 그네에 앉아 있는 노부부 귀신을 보았다.
‘와서 드세요.’
강진이 작게 입모양을 하는 것 에 노부부 귀신이 다가왔다.
먹어도 되는 거야?”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민성을 보 았다.
“형은 들어가세요.”
“너도 같이 들어가자.”
“저는 좀만 있다 들어갈게요.”
“그럼 나도 같이 있자.”
말을 하며 황민성이 나무 의자 한 쪽에 앉으려 하자, 이미 그쪽 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 귀신이 급히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아가씨가 진짜 이사를 하면 그 집 귀신들에게 밥을 차 려 줘야 한다고 했어?”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사실 지어낸 말 이었다.
귀신도 배고프다는 것을 아는 강진이라 노부부 귀신에게도 밥 을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만들어 온 음식 도 있고…… 필요한 것은 사람들 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귀신 들이 먹도록 깔아 놓는 것이었
다.
그래서 황민성에게 김소희 핑계 를 댄 것이다.
황민성은 그 핑계를 믿었다.
그렇지 않아도 김소희가 신기가 있는 무당이라 생각을 하는 황민 성으로선 귀신에게도 밥을 줘야 한다는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리 지 않는 것이다.
“사람만 집들이 하는 것이 아니 래요. 이사를 하면 그 집에 살던 귀신에게도 인사를 해야 한답니
다. 그래서 저도 가게 시작할 때 귀신들 먹으라고 이렇게 상을 좀 차렸어요.”
“하긴 신기 있는 분이시니…… 그렇다고 귀신 먹으라고 밥을 차 리는 건 생각도 못 했다.”
말을 한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 다.
“그런데 정말 무당이 아니야?”
“무당은 아니고 그냥 그런 쪽으 로 좀 박식한 것 같아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황민성이 차려진 음식들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귀신들 밥 먹으라고 차 릴 거면 집 안에다 차리는 것이 낫지 않아? 그게 더 성의 있게 보일 것 같은데?”
황민성의 말에 할아버지 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네. 이왕 밥을 줄 거면 집 안에서 잘 차려서 줘야지. 날 씨도 추운데 왜 밖에다 이렇게 차리나?”
할아버지 귀신의 말을 들으며 강진이 말했다.
“귀신한테 밥을 주기는 하지만, 집 안에 귀신이 들어오면 사람한 테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것도 소희 아가씨가 이야기 해 준 거야?”
“네. 귀신하고 사람은 멀리 사 는 것이 좋다 하셨어요.”
이건 황민성에게 하는 말이지 만, 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들 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사람에게 좋지 않으니 들어가지 말라는 의미였 다.
강진의 말에 입맛을 다신 할아 버지와 할머니가 슬며시 젓가락 을 들고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 다.
“오! 이거 맛있네.”
“그러게요. 잡채 너무 맛있어 요.”
잡채를 맛있다는 듯 먹는 할머 니를 보던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
었다.
“나는 자네가 제삿밥을 챙겨줘 서 죽고 나서도 몇 번 밥을 먹기 는 했는데…… 미안하네.”
“뭐가요?”
“자네가 먼저 죽었어야 했는 데…… 내가 먼저 죽어버려서 자 네한테 제삿밥도 못 차려줬어.”
“이 사람이 못 하는 말이 없어. 그럼 내가 먼저 죽었어야 한다는 거예요?”
할머니가 황당하다는 듯 하는
말에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고 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래야 내가 자네 장례식도 챙겨주고 뒷바라지도 좀 했을 것 아닌가. 내가 먼저 죽어서 자네가 고생만 했어. 미 안해.”
처음에는 농이라 생각을 했는데 할아버지의 말은 진심이었다. 진 짜로 할머니가 먼저 죽어서 자신 이 그 뒤를 챙겨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 말에 진심을 느낀 할머니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한숨을 쉬 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밥이 나 드세요.”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그녀 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 을 집어 먹으며 강진을 보았다.
“고마워.”
그러고는 음식을 먹는 할아버지 와 할머니를 보던 강진이 고개를 돌려 황민성을 보았다.
“형, 들어가세요.”
“너는?”
“경치가 좋아서 구경 좀 하다가 들어가려고요. 매일 주방에만 있 다가 이렇게 나와 있으니 좋네 요.”
“그럼 같이 들어가자.”
“형이야 매일 보는 경치인데 뭘 같이 보세요. 추우니 들어가세 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해.”
황민성이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 자 강진이 몸을 돌려 할아버지를 보았다.
황민성을 먼저 들어가게 한 이 유는 두 귀신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아시겠지만 귀신이 사람의 곁 에 머물면 사람 몸에 해롭습니 다.”
“그건…… 나도 알지만 갈 데가 없잖아.”
할아버지도 사람에게 해를 끼치
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말 그대 로 갈 데가 없고 갈 수도 없으니 이곳에 머무는 것이었다.
“집안에 들어가지 마시고 집 밖 에 거주하시는 것은 어떠세요?”
“사람이 집안에서 살아야지.”
“사람이 아니시잖아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한숨을 쉬고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밖에서 지내요.”
“에잉!”
신경질이 난다는 듯 거친 젓가 락질로 잡채를 집어 먹는 할아버 지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대신 아침마다 음식 여기에 차 려 드릴게요丁
“아침마다?”
“마음 같아서는 승천을 도와드 리고 싶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의 힘든 시간을 강진은 알고 있다. 그래 서 승천을 도울 수 있으면 돕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강진의 머리로는 이 두 귀신을 승천시킬 방법이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살아 있는 가족끼리도 돈 때문 에 싸움이 나고 의절을 하는 세 상인데…… 조카가 죽은 고모와 의 약속을 지키려고 돈을 기부할 것이라곤 생각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