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262화 (260/1,050)

261 화

귀신들과 이야기를 마친 강진은 음식들을 쟁반에 담아 다시 집 안으로 들고 들어왔다.

쟁반을 식탁에 놓고 설거지를 하려 하자 김이슬이 만류하고는 자신이 치우기 시작했다.

그에 강진이 머리를 긁으며 창 가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있는 황민성의 옆에 가서 앉았 다.

“끝난 거야?”

“삼십 분이면 귀신들도 다 먹었 겠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창밖으로 보이는 식탁 쪽을 보다가 슬며시 말했다.

“넌 귀신 믿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조순례를 보았다. 조순례 옆에는 정주현이 앉아서 이야기 를 하고 있었다.

“조 여사, 이렇게 아들하고 같

이 사니 너무 좋지?”

정주현이 조순례에게 하는 이야 기를 들으며 강진이 말했다.

“믿어요.”

‘귀신하고 매일 부대끼는데 안 믿을 수가 있나요.’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황 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난 귀신같은 것 안 믿는다.”

“안 믿으세요?”

“나는 직접 들은 것도 잘 안 믿

는다. 내가 믿는 건 딱 하나, 내 눈으로 본 거야. 그래서 귀신같 은 건 안 믿어.”

귀신을 안 봤으니 안 믿는다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속으로 웃 었다.

‘귀신하고 술도 드셨어요.’

김소희와 합석은 아니더라도 옆 에서 술을 마시기는 했으니 말이 다.

아니, 그뿐인가? 배용수, 최호철 하고도 마셨다. 저승식당과 관련

된 사람 외에 이렇게 귀신하고 가까이 지낸 사람은 황민성이 아 마 처음일 것이다.

“그럼 왜 밥 차리는 것 도와줬 어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내 눈으로 본 것만 믿으니까.”

“무슨 말이에요?”

황민성이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가 강진을 가리켰다.

“너는 믿으니까.”

“네?”

“귀신은 안 믿어도 네가 안 좋 은 것을 하라고 할 일은 없으니 까. 그리고 좋다는 것 해서 손해 볼 것도 없고.”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귀신은 안 믿지만 김소희 와 강진은 믿으니 그 말을 따른 것이다.

그 말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그럼 앞으로 아침마다 밥상 차

려서 마당에 두세요.”

“아침마다?”

“사람도 밥을 안 먹으면 배고픈 데 귀신도 밥을 안 먹으면 배고 픈 법입니다.”

“그래도 무슨 아침마다 밥을 차 려줘.”

한 번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매 일 밥을 차리나 싶은 것이다. 그 런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말했 다.

“형.”

강진의 부름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강진 이 말했다.

“어머니 음식 자주 만드세요?”

“요즘은 밥 준비하려고 하면 미 리 가서 자리 잡으신다.”

“그럼…… 귀신들에게 주는 밥, 어머니가 한 걸로 놓으세요.”

“어머니 밥?”

“그래야 어머니에게 돈이……

JS 은행에 돈이 들어가지요, 라

는 말을 하려던 강진이 말을 돌 렸다.

“선업이 쌓이시죠.”

“너 그런 것 믿는구나.”

황민성이 의외라는 듯 보는 것 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사람은 복 받고, 나쁜 사 람은 벌 받는 것 의외로 정답이 더라고요.”

“그럼 사람들한테 밥을 차려주 지, 굳이 귀신한테까지 밥을 차 려 줘?”

이왕 할 착한 일이면 사람한테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말이었 다.

“둘 다 하면 좋죠.”

그리고는 강진이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귀신들에게 차려주는 밥이 나중에 어머니 배고플 때 드시는 밥이 될 거예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조순례를 보았다. 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쉬며 강진을 말했다.

“저승도 믿는구나.”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승은 있습니다.”

“그래?”

“착한 일을 하면 저승에서 좋은 대접 받고, 나쁜 일 하면 저승에 서 나쁜 대접 받습니다. 배고픈 이에게 밥을 주면 그 밥이 다 저 승에서 돌아올 겁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 다가 피식 웃었다.

“나는 지옥 가겠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젊었을 때 사고 많이 치고 조직 생활도 했었으니 나쁜 짓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니…….

‘JS 잔고가 마이너스이려나?’

그런 생각을 한 강진이 황민성 을 보았다.

“형 좋은 일은 좀 하세요?”

“좋은 일이라……

작게 입맛을 다신 황민성이 말

을 이었다.

“형이 어렸을 때 사고 치고 못 나게 살았잖아.”

“그렇죠.”

“그래서 학교 하나 운영하고 있 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 학교요?”

“학교라고 해서 거창한 곳은 아 니고, 학교 잘린 애들 데려다가

기술 가르치는 곳이야.”

“직업 전문학교 같은 곳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은 자기가 결정한 삶을 살 았어. 하지만 애들은……

잠시 말을 멈춘 황민성이 한숨 을 쉬었다.

“실수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실수요?”

“어른이든 애든 사람을 괴롭히

고 때리는 건 실수라는 말로 가 볍게 치부해서는 안 되지. 나도 나한테 피해를 본 분들에게 어려 서 실수했다는 말로 사과하고 싶 지 않아. 그런 말 자체가 그분들 에게는 더 상처가 될 수도 있 고……

뭔가 두서없이 말을 하던 황민 성이 재차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그런 애들도 한 번 은 기회를 받아야 하지 않겠냐? 앞으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할 기회 말이야.”

“그렇죠.”

“그래서 학교에서 잘리고 갈 곳 없는 애들 모아놓고 기술 가르치 는 학교 운영하고 있어. 거기서 자격증도 따고, 검정고시 보고 싶다는 애들은 따로 공부도 가르 치고……. 그리고 졸업하면 중소 기업 쪽으로 연결도 해 주고.”

“중소기업요? 이왕이면 좋은 회 사 넣어주지 그러세요. L전자도 애들 넣어 줄 수 있지 않아요?”

L전자 사장도 황민성에게 협조 를 요청할 정도이니, 그라면 대 기업 사무직은 안 돼도 제조 쪽 으로 취직을 시켜 줄 수 있을 것 이다.

“사람처럼 살아 볼 기회를 주는 거지, 찬스를 주려는 것은 아니 야.”

“ 찬스?”

“대기업에 일하고 싶어 하는 청 춘들이 얼마나 많냐? 착하고 성 실하게 고등학교 나온 애들도 못 들어가서 안달인 곳인데 그런 곳

에 나쁜 짓 해서 학교도 잘린 애 들 넣어 주는 건 말이 안 되지. 그건 착하고 평범하게 산 애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거잖아. 내가 주려는 건 최소한의 기회지, 찬 스가 아니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대단하다 는 듯 그를 보았다.

“대단하시네요.”

“대단까지는 아니고…… 기회만 주는 거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웃었다.

“그런데 저한테는 태광무역 자 리 알아봐 주신다고 했잖아요. 그럼 다른 사람들 기회 박탈하는 것 아니에요?”

“너하고는 다르지.”

단호하게 말을 하는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어쨌든 형만 착한 일 하지 마 시고 어머니도 좋은 일 좀 하게 도와주세요.”

황민성이 도와주면 조순례도 저

승 생활이 많이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귀신에게 밥을 차려 준다, 라……

“아니면 봉사 활동은 어떠세 요?”

“봉사 활동?”

“어머니 모시고 보육원 같은 곳 에 식사 봉사라도 하시면 어떻겠 어요?”

“어머니가 하실 수 있을까?”

“보육원 애들이니 분식 해 주면 좋아할 겁니다. 그리고 분식이면 어머니가 눈을 감고도 하실 수 있는 것이니…… 어머니 건강에 도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럴까?”

“어머니 요리하실 때 정신도 좀 드시고 잘하시잖아요. 게다가 어 머니 분식집 할 때 손님들은 학 생들이 많았을 텐데…… 그럼 옛 기억도 떠오를 테니 건강에 더 좋지 않을까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잠시 생

각을 하다가 장 여사를 보았다.

“장 여사님.”

황민성의 부름에 장 여사가 다 가왔다.

“사장님.”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장 여사 를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장 여사님 생각에도, 어머니가 요리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치매 방지를 위해서라면 활동 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언니도 요즘 요리를 하다 보니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치매 환자를 오래 보살핀 요양 사라 의사처럼 전문 지식은 모자 라도 생활 속 지혜는 더 많았다.

“그럼 보육원에 음식 봉사를 하 는 것은 어떻습니까?”

“음식…… 봉사요?”

장 여사가 조금 당황스러운 듯 황민성을 보았다. 치매 환자가 봉사 활동을 한다는 것을 처음 듣는 것이다.

“할 수 있겠습니까?”

황민성의 물음에 장 여사가 잠 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언니가 조금 좋아진 것은 있지 만 치매 환자입니다. 치매 환자 는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가 없습니다.”

“그럼 무리인가요?”

"음......"

M •

잠시 생각을 하던 장 여사가 입 을 열었다.

“하지만 언니가 아이들을 좋아 하기는 합니다.”

“그래요?”

“어린애들 나오는 예능을 보면 한시도 눈을 떼지 않으세요. 봉 사 활동은 사실 무리지만 보육원 에서 애들 보는 것은 좋으실 것 같습니다.”

“그래요?”

반색을 하며 묻는 황민성을 보 며 장 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아이들이 많아서 저 혼자

언니를 살피기는 어려울 것 같습 니다. 보육원에 가신다면 언니를 살필 요양사가 두 명은 더 있어 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보육원에 가는 건 괜찮은 겁니까?”

“가서 아이들 노는 것 보고 언 니가 좋아하는 떡볶이라도 만들 면 기분은 좋으실 것 같습니다.”

장 여사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 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장 여사가 고개 를 숙이고 돌아서자, 그가 강진 을 보았다.

“좋은 생각이다.”

어머니 치매에 도움이 된다면 황민성은 뭐라도 다 해 볼 생각 이었다.

“보육원 가면 제가 어머니 잘 살필게요.”

“웅? 너도 가게?”

“어머니 요리하실 때 제가 도와 야죠. 그리고 보육원은...”

잠시 말을 멈춘 강진이 이어 말 했다.

“저도 봉사 활동 하려고 했던 곳이에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너 나온 보육원이 어디야?”

“왜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 일 하라며.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기회 주는 것 좋아 해.”

“기회요?”

“좋은 후원자를 얻는 것도 아이 들에게는 좋은 기회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이런 일 하면 죽어서 좋은 대

접 받는다며.”

황민성의 농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좋은 대접 받을 거예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 으며 머리를 긁었다. 귀신이고 저승이고 황민성은 전혀 믿지 않 는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지만, 그저 강진의 제안이 나쁜 일이 아니고 좋은 일이라 할 생각이었 다.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받아야 지. 이승이든 저승이든.’

속으로 중얼거린 황민성이 강진 의 어깨를 두들겼다.

* * *

월요일, 강진은 점심 장사를 마 무리하고 배용수와 이야기를 나 누고 있었다.

“주 5일 장사만 할까?”

“갑자기?”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식당을

보다가 말했다.

“우리 식당 사람 단골들이야 평 일에만 많고 토일에는 거의 없잖 아.”

“그건 그렇지.”

주변 직장인들 위주로 장사를 하니 토요일에는 한가할 정도로 손님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5일 장사 하 려는 거야?”

“도와주고 싶은 분들이 너무 많 아.”

“귀신들 말하는 거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일요일 하루로는 부족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귀신들 한이라는 것이 쉽게 풀 릴 것이 아니다.”

“여기서 너도 보고 호철 형도 보고……”

강진이 홀을 정리하고 있는 귀 신 직원들을 보았다. 귀신 직원 들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이렇게 보는데 모를 수가 없 지.”

“그럼?”

“도울 수 있는 것이 보이잖아.”

작게 말을 한 강진이 덧붙였다.

“한을 씻어 드리는 것까지는 몰 라도, 그분들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있 으면... 해보고 싶어서.”

“하긴, 하고 싶은 것이라도 하 면 마음이라도 편하겠지.”

그러고는 배용수가 강진의 어깨 를 툭 쳤다.

“ 고맙다.”

“너한테 고맙다는 소리 들으려 고 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고마워.”

웃으며 자신을 보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너도 하고 싶은 것 있

으면 말해. 내가 최선을 다해 도 와줄 테니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으며 주방을 보았다.

“나야 요즘 하고 싶은 일 충분 히 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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