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주인어른?”
의아해하는 강진을 보며 감초 노인이 웃었다.
“요즘은 노비가 사라져서 주인 어른이라는 말을 쓰지 않지?”
“아……
강진이 살짝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노비셨구나.’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싶을 때 감초 노인이 말했다.
“착한 사람이로군.”
“제가요?”
“내가 노비라는 것을 알고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아닌 가.”
“그게......"
자신의 속을 정확히 읽어내는 감초 노인의 모습에 강진이 또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 그가 웃으며 말했다.
“주인어른께서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셨지.”
감초 노인의 말에 강진이 말했 다.
“제가 착한 사람인지는 모르겠 지만 주인어른께서는 좋은 분이 셨군요.”
“좋은 분이시지. 사람을 참 아 끼는 분이셨어. 그리고…… 용감 하셨지.”
환하게 웃는 감초 노인을 보던
강진이 그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혹시 방금 여기 팟! 하고 오신 것이 축지입니까?”
강진이 단상과 자신의 앞을 번 갈아 가리키는 것에 감초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대단하시네요. 그거 아무 귀신 이나 못 쓴다고 하던데.”
“이승을 오래 떠돌다 보니 이런
것도 할 줄 알게 되더군.”
웃으며 말을 하는 감초 노인을 볼 때, 배용수가 말했다.
“기름 온도 올라왔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야채를 튀김 반죽에 넣으며 모양을 잡고 는 기름에 넣었다.
촤아악! 촤아악!
반죽으로 덮인 야채를 몇 개 더 넣으며 강진이 감초 노인을 보았 다.
“여기 오래 계셨어요?”
말을 하는 사이에도 강진의 손 은 야채를 계속 기름 안에 넣었 다.
“여기 보육원 들어오기 전에는 학교였고, 학교가 들어오기 전에 는 주인어른의 집이 있었지.”
“평생이시네요.”
“주인어른 따라 한양에서 살 때 외에는 계속 여기 살았다고 봐야 겠지.”
싱긋 웃는 감초 노인을 강진이
보았다.
“그런데 지박령은 아니신 것 같 은데?”
“지박령 아니야. 나는 그냥 귀 신이지.”
“귀신이 애들하고 같이 있으면 안 좋은데……
슬며시 뒷말을 흐리는 강진의 모습에 감초 노인이 작게 웃었 다. 그리고는 푸드 트럭을 멍하 니 보고 있는 아이들을 보다가 말했다.
“어묵 꼬치는 이제 먹어도 되는 것 아닌가? 애들 기다리는데.”
감초 노인의 말에 강진이 어묵 꼬치를 보았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육수에서 어묵 꼬치가 맛있게 불어 있었 다.
그에 강진이 작은 양념 통들을 몇 개 꺼냈다. 간장을 부은 뒤 양파와 마늘, 고추를 썰어 넣고 는 펼쳐져 있는 칸막이 위에 올 려놓았다.
그러고는 아이들을 보며 말했 다.
“어묵 꼬치 됐으니까, 이제 와 서 먹으렴.”
“먹어도 돼요?”
“그럼. 어서 먹어.”
강진의 말에 아이들이 다가와서 는 어묵 꼬치를 집어서는 간장에 찍어 먹었다.
“와! 맛있다.”
“야, 가서 형들 데려오자.”
“그래!”
어묵 꼬치를 하나씩 들고 건물 을 향해 뛰어가는 아이들과 그들 의 수호령을 보던 감초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은 참 이뻐.”
“아이들을 예뻐하셔서 여기 계 신 건가요?”
“그런 것도 있지만…… 주인어 른과 평생을 살은 곳이라 이곳을 떠나기 싫은 것도 있네.”
그러고는 감초 노인이 강진을
보았다.
“아까 자네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은, 기운을 갈무리하면 내가 있다고 해서 여기 사는 사람들에 게 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네.”
“기운을 갈무리요?”
감초 노인의 말에 강진이 배용 수를 보았다. 너는 할 수 있냐는 표정이었다.
그 시선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 었다.
“못 해.”
배용수의 말에 감초 노인이 웃 으며 멍하니 이쪽을 보고 있는 어린 귀신을 향해 어묵 꼬치를 집어 내밀었다.
“너희도 와서 먹거라.”
“저희도 먹어도 돼요?”
“그럼 당연하지. 와서 먹거라.”
“와!”
“잘 먹겠습니다.”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뛰어온 어
린 귀신들이 어묵 꼬치를 집어 간장에 찍어 먹기 시작했다.
“맛있니?”
“네.”
“저승식당 주인이 해 주는 것이 니 제삿밥보다 더 맛이 괜찮을 것이다.”
웃으며 감초 노인도 어묵 꼬치 를 입에 넣었다.
“맛이 좋군.”
미소를 지은 감초 노인이 강진
을 양반다리를 했다.
‘떠 있다.’
감초 노인은 진짜 귀신처럼 허 공에 두둥실 떠서 양반다리를 하 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배용수를 다 시 보았다. 그 시선에 배용수가 눈을 찡그렸다.
“못 한다니까.”
배용수가 고개를 젓는 모습에 강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감초 노인을 보았다.
어떤 면에서는 강진이 이때까지 본 귀신들 중에 가장 귀신같은 모습이었다.
강진이 아는 귀신들은 문을 뚫 고 다니는 정도 말고는 사람하고 별다를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김소희와 처녀 귀신들은 빼고 말이다. 놀란 눈으로 자신 을 보는 강진과 배용수를 보며 감초 노인이 웃었다.
“저승식당 주인이 귀신을 너무 신기하게 보는 것 아닌가?”
“떠다니는 귀신은 처음 봅니 다.”
“하긴 요즘은 나처럼 오래 묵은 귀신들이 많지는 않지.”
웃으며 말을 한 감초 노인이 배 용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슬 쩍 손을 내밀었다가 다시 손을 접은 감초 노인이 어묵을 먹으며 배용수를 보았다.
“자네의 귀기를 막았으니 지금 은 사람들이 자네 귀기 때문에 해를 입지 않을 것이네.”
“무슨 말씀이신지?”
배용수가 의아한 듯 보자, 감초 노인이 강진을 보았다.
“귀신이 사람 몸에 해로운 것이 걱정인 것 같아서 걱정을 줄여 준 것이네.”
감초 노인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그럼 용수는 사람 옆에 있어도 해가 안 되는 것입니까?”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을 것이 네.”
그러고는 감초 노인이 아이 귀 신들을 바라보았다. 아이 귀신들 은 강진이 놓은 야채 튀김을 손 으로 쥐고는 먹고 있었다.
사람보다 귀신이 먼저 먹기는 해도…… 귀신이 먹는다고 맛이 변하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야채 튀김을 먹는 아이 귀신들 을 보며 감초 노인이 말했다.
“이 아이들도 내가 귀기를 막아 놨으니 사람들의 옆에서 놀아도 문제가 되지 않네.”
“아......"
강진이 그러냐는 듯 아이 귀신 들을 보았다.
“또래 아이들이 사는 곳이라 그 런지 이 녀석들이 하나둘씩 모이 기 시작하더군. 죽어서도 또래 친구들하고 놀고 싶었나 보네.”
감초 노인의 말에 아이 귀신 중 장난꾸러기처럼 보이는 애가 웃 으며 말했다.
“노는 것이 제일 좋아요!”
아이 귀신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그래. 나도 네 나이 때는 노는 것이 제일 좋았다.”
그러고는 강진이 야채 튀김을 손으로 집어 내밀었다.
“그리고 먹는 것하고.”
강진의 말에 아이 귀신이 야채 튀김을 받았다. 물론 받아 간다 고 해도 여전히 강진의 손에는 야채 튀김이 남지만 말이다.
어쨌든 아이 귀신이 야채 튀김 을 먹는 것에 강진도 야채 튀김
을 입에 넣으며 감초 노인을 보 았다.
“예전에 여기 봉사 활동하러 오 시던 이원익 할아버지 아십니 까?”
“잘 알지. 좋은 사람이야.”
“이원익 어르신 돌아가신 것은 아십니까?”
“원익이 죽고 춘심이가 혼자 봉 사 활동 하러 와서 이야기 들었 지.”
감초 노인의 말에 강진이 슬며
시 물었다.
“장춘심 할머니하고 조카분이 몇 번 오셨다고 하시던데 보신 적 있으세요?”
“성진이 말하나 보군.”
“아세요?”
“춘심이 따라 몇 번 왔었지. 그 리고 춘심이가 오지 않은 후에도 가끔 찾아오고. 착한 녀석이야.”
“착해요‘?”
“춘심이가 없는데도 자주 오고,
보육원에 후원금도 많이 냈지.”
“후원금요?”
“착한 아이야.”
감초 노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름 에서 튀겨지는 야채를 보았다.
‘후원금을 냈다고?’
의아하게 생각하던 찰나, 건물 에서 박성영이 고등학생으로 보 이는 아이 몇과 함께 나왔다.
학생들은 식당에서 쓸법한 식탁
을 들고는 푸드 트럭 옆에 내려 놓았다.
“여기다 두면 되겠습니까?”
“거기다 두시면 됩니다. 여기 튀김하고 어묵 좀 드세요. 학생 들도 좀 먹어요.”
강진의 말에 박성영이 학생들과 함께 어묵 꼬치를 하나씩 들었 다.
그 모습을 본 강진이 말했다.
“그런데 아까 애들이 형들 데리 러 들어갔는데 안 나오네요?”
강진의 말에 박성영이 건물을 보고는 말했다.
“좀 있다가 같이 나올 겁니다.”
“음식은 바로 먹어야 맛있는 데.”
강진의 말에 박성영이 웃으며 푸드 트럭에 준비된 음식을 보았 다.
어묵 꼬치야 꽤 많이 있지만 야 채 튀김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아마 인분으로 따지면 5인분 정 도나 될까?
“저희 보육원에 아이들이 꽤 많 습니다. 이 정도로는 아이들이 많이 기다려야 하니 서운해할 수 있습니다.”
박성영의 말에 강진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알았다.
“아…… 제가 생각을 못 했습니 다.”
“아닙니다. 그런데 혼자 괜찮으 시겠습니까? 저희 조리사 분들 계신데 도와달라고 할까요?”
“아닙니다. 제가 빨리 하면 됩
니다.”
강진이 서둘러 야채 튀김을 마 저 만들고는 다른 음식들도 빠르 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옷을 따뜻하게 입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강진과 조순례가 만든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아이들의 손에는 조금 큰 종이 컵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종이컵에는 쫄면이나 떡볶이가 담겨 있었고, 그 위에는 야채 튀
김과 닭다리가 있었다.
식판에 예쁘게 담아 줄 수도 있 었지만 강진은 길거리 음식처럼 먹어 보라고 이렇게 차려 준 것 이다.
다만…….
‘날씨가 추워서 다음에는 실내 에서 음식을 차려야겠네.’
햇볕이 따스해서 많이 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겨울 날씨에 입 김이 후, 하고 나왔다.
그에 강진이 앞에서 어묵을 집
어 먹고 있는 학생을 보았다.
“날씨 춥죠?”
강진의 말에 학생이 웃으며 고 개를 저었다.
“국물이 따뜻해서 안 추워요.”
종이컵에 담긴 어묵 국물을 들 어 보이는 학생의 모습에 강진이 말했다.
“그래도 애들은 춥지 않겠어 요?”
강진의 말에 학생이 다시 웃으
며 주위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눈이 오는 날에도 눈싸움하고 웃는 애들이에요. 이 추위도 놀 이 같을 거예요.”
학생이 어묵을 들어 보였다.
“그것도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할 수 있는 놀이요.”
학생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 가 미소를 지었다.
“많이 먹어요.”
“감사합니다.”
어묵을 집어 먹는 학생을 보던 강진이 그 옆을 보았다. 학생의 옆에도 수호령이 붙어 있었다.
다만 수호령은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어린아이 귀신도 어묵 꼬치를 먹고 있었 다.
‘동생인가?’
강진의 시선에 어린아이가 고개 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이 귀신의 인사에 강진이 웃 으며 갓 튀겨진 닭다리를 가리켰 다.
강진의 시선에 아이 귀신이 닭 다리 튀김을 집어 입에 가져갔 다.
그리고 맛있게 먹는 아이 귀신 을 보며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았 다.
주위에는 한 사십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흩어져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렇다고 여기에 있는 사십 명 이 보육원의 전체 아이들은 아니 었다.
추워서 나오기 싫다는 애들도 건물 안에 꽤 많이 있고, 너무 어린 아이들도 안에 있었다.
그런 아이들도 안에서도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안으로 보내주 었다.
아이들이 음식을 가지고 가는 것에 강진이 옆을 보았다. 옆에 는 보육원 원장 박성영이 어묵 국물을 먹으며 아이들을 지켜보
고 있었다.
그런 박성영을 보던 강진이 슬 며시 말했다.
“원장님.”
강진의 부름에 박성영이 그를 보았다.
“저기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혹시 장춘심 할머니가 여기 봉 사 활동 많이 오셨다고 하던데, 기억하세요?”
“춘심 할머니를 아십니까?”
“제가 식당을 하는데 저희 가게 단골이셨어요.”
“그러시군요.”
“할머니가 늘 자기 돌아가시면 집 팔아서 여기에 기부하고 싶다 고 하셨거든요.”
강진의 말에 박성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카 분께서 춘심 할머니의 유 언이시라면서 기부를 해 주셨습 니다.”
박성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로 유언대로 하신 거야? 그럼 춘심 할머니는 왜 지박령이 되신 거지? 집 때문에 지박령이 되신 것이 아닌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