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 화
“축구를 좋아하시는구나. 그 럼…… 축구 한판 하시죠.”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그를 보 다가 축구장에 있는 아이들을 보 았다.
“여기는 좁아서 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운동장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 축구장에 비하면 사이즈가 좀 작 았다.
“정식으로 하는 것도 아닌데요, 뭘.”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축구장을 보다가 발을 살짝 굴렀다.
“그럼…… 할까요?”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일단 지금은 애들 먹고 있으니 까. 점심 먹고 한 게임 간단하게 하는 걸로 하시죠.”
“알겠습니다.”
강상식이 장작을 한 쪽에 놓고 는 자신의 차로 향했다.
차 트렁크를 연 강상식이 그 안 에서 그물에 쌓인 축구공들을 꺼 냈다.
‘사람들은 보육원 아이들이 공 을 제일 좋아하는 줄 아나?’
황민성도 보육원 갈 때 공을 바 리바리 싸 들고 오더니 강상식도 공을 바리바리 가지고 온 것이 다.
다른 점이라면 황민성은 배구공
과 축구공, 야구공 등 다양하게 가지고 왔다면 강상식은 축구공 만 잔뜩 들고 왔다는 것이었다.
강상식이 축구공을 꺼내는 것에 장희섭이 눈을 반짝이며 뛰어갔 다.
“감사합니다.”
장희섭이 환하게 웃으며 축구공 을 받아들자 강상식이 웃으며 고 개를 끄덕이다가 축구화를 보고 는 말했다.
“아까 공 차는 것 보니까 잘 차
던데, 선수?”
“네.”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입니다.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미드필더가 부족한데 해.”
강상식의 말에 장희섭의 살짝 어두워졌다. 하지만 으며 고개를 숙였다.
수비 형
열심히
얼굴이
곧 웃
“감사합니다.”
장희섭의 인사에 강상식이 뒷좌 석을 열었다.
“너희들 축구 좋아하나?”
“좋아합니다.”
“다행이네.”
강상식이 웃으며 뒷좌석을 가리 켰다.
“꺼내.”
강상식의 말에 장희섭이 뒷좌석 올 보고는 얼굴에 미소가 어렸 다.
뒷좌석에는 축구화가 든 상자가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 장희섭 이 애들을 불러 상자를 꺼내는 것을 보는 강상식의 옆에서 그것 을 같이 지켜보던 강진이 살며시 물었다.
“그런데…… 너무 축구 쪽 아닙 니까?”
강진의 물음에 강상식이 말했 다.
“드라마 같은 것 보니까, 봉사 활동하러 온 사람들은 다 축구를 하던데……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이게 무 슨 말인가 싶어 그를 보다가 눈 을 찡그렸다.
생각을 해 보니 드라마에서 주 인공들이 보육원에 봉사를 하러 가면 꼭 남자 주인공은 아이들과 땀을 흘리며 축구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니, 보육원 봉사가 아니더라 도 주인공이 아이들과 노는 장면 에는 꼭 축구를 한다.
야구, 배구, 배드민턴 등 많은 종목 중에서 주인공은 꼭 아이들
과 축구를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드라마를 본 기억 에 축구공과 축구화를 잔뜩 사 온 모양이었다.
“잘…… 하셨습니다.”
“그렇지요?”
강상식은 아이들이 상자를 열어 축구화를 보는 것을 보며 흐뭇한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아이들은 축구화를 좋아했다. 일단 일반 신발과는 다른 모양이고 신기하게 생겼으
니 축구를 안 좋아해도 축구화는 폼이 나는 것이다.
자신의 발 사이즈에 맞는 축구 화를 찾아 신어 보는 아이들을 보던 강진이 장희섭에게 다가갔 다.
“이름이 희섭이지?”
장희섭 역시 자신의 발 사이즈 에 맞는 축구화를 꺼내 신어보다 가 강진의 물음에 그를 올려다보 았다.
“네.”
“축구부라고 하는 것 같던 데…… 축구부 친구들 중에 오늘 심심한 애들 있을까?”
“심심한 애들요?”
“이따가 형이 점심에 맛있는 걸 할 거거든. 친구들 와서 맛있는 밥도 먹고 축구나 한 게임 하자 고 하자.”
그러고는 강진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강상식 씨가 사온 축구 화 보니 꽤 남아돌 것 같은데 애 들도 와서 한 켤레씩 사이즈 맞
는 걸로 가져가라고 해.”
“그래도 될까요?”
“돈은 못 줘도 와서 축구 뛰고 가는데 축구화 정도는 챙겨 줘야 지.”
“그럼 알겠습니다.”
장희섭이 핸드폰을 꺼내는 것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장희섭은 아마도 친한 애들을 부를 것이다. 그리고 그 친한 애 들은 잘 살고 주전으로 뛰는 아 이들은 아닐 것이다.
만년 후보로 뛰는 장희섭이 돈 있다고 주전으로 뛰는 애들과 친 할 이유는 없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처럼 비슷한 처지의 후보들과 더 친할 것이 니…… 실력은 있지만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아이들이 오게 될 확률이 컸다.
장희섭이 전화를 하는 것을 보 던 강진이 이번에는 강상식에게 다가갔다.
“상식 씨.”
강진의 부름에 어느새 기름통에 장작을 넣고 종이를 넣고 있던 강상식이 그를 보았다.
“혹시 축구 잘 아는 분 좀 부탁 드릴 수 있을까요?”
“축구?”
“희섭이가 축구 선수인데 축구 잘하는 분에게 원 포인트 레슨이 라도 받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요? 그리고 그분도 힘들게 축구 하는 후배에게 도움을 줄 수 있 으니 보람도 있지 않겠어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장희섭을 힐끗 보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하루 지도 받는다고 도움이 되 겠어요?”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 다.
“제가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희섭이가 고민이 많더군 요.”
“저 나이 대에 고민 없는 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혹시 학원 축구에도 돈이 오고 가는 것 아세요?”
“사람 사는 곳은 어리든 크든 다 돈이 오고 갑니다.”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강상 식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그래도 실력이 있는 꿈나무를 후보로만 두고 돈 내는 애들 연 습 상대로만 두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실력이 있으면 후보로만 두겠 습니까? 감독들도 성적을 내야 자기 목숨 유지하는 건데요.”
“그렇지 않으니 참 답답한 일입 니다.”
강상식이 관심을 보이는 것에 강진이 슬며시 장희섭에 대한 이 야기를 자세하게 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강상식이 눈 을 찡그렸다.
“그런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라
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참 답답한 일 아 니겠습니까?”
“학원 축구 쪽에도 돈이 오고 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 놓고 이렇게 애들을 차별할 줄은 몰랐습니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고는 슬며시 말했다.
“제가 축구에 대해서는 잘 모르 고 아이들이 한 말을 들은 것뿐 이라 희섭이 실력이 정말 그렇게
좋은지 나쁜지를 알지 못하겠습 니다.”
“실력이 좋으면요?”
“실력이 없어서 경기를 못 뛰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실력이 있는데도 경기를 못 뛰는 거라면 화 내야죠.”
“ 화요?”
“아시겠지만 저 여기 줄신이에 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남
궁문과 강진이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고 알았다.
“저에게 여기는 집이고 가족이 니…… 동생이 부당한 대우를 받 는 것을 형이 가만 두고 볼 수는 없죠.”
강진의 굳은 얼굴에 강상식이 그를 보다가 장희섭을 보았다.
“그럼 일단 실력 검증이 먼저이 겠군요.”
그러고는 강상식이 핸드폰을 꺼 냈다.
“누구한테 하시는 거예요?”
“우리 구단 스카우터 부를 생각 입니다.”
“스카우터요?”
“축구 실력 확인하는 것은 스카 우터가 가장 잘 합니다. 그리고 어지간한 선수들보다 축구 지식 이 더 많아서…… 원 포인트 레 슨도 이쪽이 더 잘 할 겁니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생각을 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바둑도 옆에서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잘
본다고, 선수들보다 어쩌면 스카 우터가 선수 보는 눈이 더 좋을 수도 있었다.
수원 오성 레드윙의 수석 스카 우터, 백일강이 욕을 하며 차를 몰고 있었다.
“이사면 이사지. 지가 구단 이 사도 아니고 그룹 계열사 이사인 주제에 나를 오라 가라야! 이 자
식! 내가 보면 욕을 바가지로 해 준다.”
주말에 집에서 푹 쉬고 있는데 갑자기 오라는 말에 급히 차를 타고 나왔으니 말이다.
백일강의 말에 조수석에 앉아 있던 동생 백일순이 웃었다.
“계열사 이사라도 그게 보통 이 사입니까? 회장님 친손자고 멀기 는 해도 후계 순위에도 끼어 있 는데.”
“후계 순위는 개뿔! 그룹에서
그놈 내놓은 적이 언제인데! 으 악! 열 받아!”
욕을 하던 백일강이 백일순을 보았다.
“너 운전!”
백일강의 말에 백일순이 입맛을 다셨다.
“운전 무서워서……
“도움 하나 안 되는 놈! 스카우 터라는 놈이 운전을 못 해!”
전국 각지를 다니며 쓸만한 선
수를 확인하고 자료를 체크해야 하는 스카우터가 운전을 못 하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인 것이다.
어쨌든 욕을 하며 백일강의 차 가 한마음 보육원에 들어섰다. 한마음 보육원에 들어선 백일강 은 한 쪽에 푸드 트럭과 차가 세 워져 있는 것을 보고는 그쪽으로 차를 가져가 세웠다.
“그런데 상식이가 무슨 일로 보 육원에 왔을까요?”
“사진이라도 찍으러 왔나 보 지.”
“사진 찍으러 왔다고 보기에는 수행원 차들 안 보이는데요?”
“머리 썼나 보지. 가볍게 와서 찍고 가는 그런 컨셉 있잖아.”
백일강의 말에 백일순이 몸을 차 뒤로 돌려 가방을 챙겼다.
“일단 물건들은 다 가지고 왔 지?”
“저희 눈이 물건이죠.”
백일순의 말에 백일강이 한숨을 쉴 때, 푸드 트럭에서 남자가 다 가왔다.
백일강의 차를 향해 강진이 다 가갔다.
덜컥!
차 문이 열리며 삼십 대의 건장 한 체격을 가진 백일강과 백일순 이 차에서 내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백일강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강진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강상식 씨한테 오신다는 이야 기 들었습니다.”
강진의 말에 백일강이 손을 잡 고는 힐끗 주위를 둘러보았다. 운동장에는 추리닝을 입은 학생 들이 가볍게 공을 차고 있었다.
“오늘 애들 좀 확인해 주라고 해서 왔는데…… 누구를 확인해 야 하는 겁니까?”
백일강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보시다가 쓸만한 애 있으면 알 려 주세요.”
“강 이사님이 주목하는 애가 누 군지 알아야 저희가 유심히 볼 텐데요.”
올 때는 욕을 하면서 왔지만, 백일강은 최대한 강상식의 비위 를 거스를 생각이 없었다.
그룹 내 영향력이 적은 강상식 이라 자신을 끌어 줄 힘은 없다. 하지만 자신을 끌어내릴 힘 정도 는 충분히 있으니 말이다.
“축구 하는 것 보면서 애들 실 력이 고등학교에서 어느 정도 통 하는 건지 좀 봐 주세요.”
“그거면…… 되는 겁니까?”
“네.”
“누구 주목해서 봐야 할 선수도 없고요?”
“잘하면 눈에 띄겠죠.”
강진의 말에 백일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백일강이 주위를 보다 가 문득 말했다.
“그런데 이사님은?”
“지금 장작 패러 가셨어요.”
“장작?”
“오늘 날씨가 추워서 밖에서 불 좀 더 피우신다고 해서요.”
강진의 말에 백일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식이가 장작을 패?’
그런 생각을 하던 백일강이 강
진을 보았다.
“그런데 그쪽은?”
“저는 음식 봉사하러 온 푸드 트럭 주인요.”
“푸드 트럭 주인? 그럼 이사님 비서들은?”
“저하고 둘이 오셨는데요.”
“둘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 는 백일강을 보며 강진이 말했 다.
“그리고 한 분은 심판을 좀 봐 주셔야 하는데.”
“그건 제가 할 겁니다.”
백일순의 말에 강진이 장희섭을 불렀다.
“희 섭아.”
공을 차던 장희섭이 뛰어오자 강진이 말했다.
“가서 강상식 씨한테 축구 하자 고 오시라고 해.”
네.”
강진의 말에 장희섭이 건물 뒤 쪽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몸도 풀 겸 전력 질주로 뛰어가는 장 희섭의 모습에 백일강의 눈이 반 짝였다.
“빠른데?”
“그러게요. 빠르네요.”
달리는 것 하나만 본 것만으로 백일강의 눈빛은 반짝였다.
“게다가 몸도 좋고……
“확실히 몸도 좋네요.”
자신이 한 말을 따라 하는 백일 순의 모습에 백일강이 눈을 찡그 리며 그를 보았다.
하지만 곧 백일강이 장희섭을 보다가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 다.
그리고 그의 눈에 축구공을 차 며 몸을 풀고 있는 학생들이 보 였다.
몸을 가볍게 풀며 공을 차거나 뛰는 학생들을 보던 백일강의 눈 에 흥미롭다는 빛이 떠올랐다.
“이제 보니 이거……
“왜요?”
백일순의 물음에 백일강이 미소 를 지었다.
“오늘 잘 와 본 것 같은데?”
백일강의 말에 백일순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운동장에서 뛰는 학생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도 곧 웃음 이 떠올랐다. 백일강이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것이다.
몸을 풀면서 잠깐잠깐 보이는 기량이 꽤 훌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