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282화 (280/1,050)

281 화

강진은 흐뭇한 얼굴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 겠지만 대민고는 장희섭을 집요 하게 공략했다.

하지만 장희섭의 수비를 뚫지 못하고 번번이 공을 뺏기고 역습 을 당했다.

장희섭은 그의 아버지인 장대강 이 말을 했던 것처럼 대인 방어 가 좋고, 후방에서 전방으로 한

번에 밀어주는 롱 패스가 좋았 다.

전방에 자기편이 있으면 한 번 에 롱 패스로 밀어주고, 전방에 아직 자기편이 없으면 자신이 바 로 앞으로 치고 달렸다.

그래서 상대 쪽에서 장희섭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패스를 생각하고 붙어서 막으려고 하면 앞으로 치고 나가 버리는 것이 다.

공을 툭 차고 앞으로 뛰어 버리 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뚫

렸다.

그래서 치고 나갈 것을 막으려 고 거리를 두면 바로 롱 패스를 때렸다.

“16번 잘하네.”

“이름이 장희섭? 열아홉 살인데 왜 이때까지 한 번도 못 본 거 야?”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보며 16번에 대해 이야기 를 할 때, 한 남자가 말했다.

“16번 말고도 대민고 앞에 있는

18번 골 감각이 있네.”

“그러게. 딱 좋은 위치를 선점 하고 기다리고 있어. 저건 골 냄 새를 잘 맡는 거지.”

“저기 19번 수비 조율하는 애도 센스 있는데. 저거 봐. 대민이 역 습하니까 바로 수비 라인 올려서 업사이드 걸어 버리잖아.”

“21번 애도 드리블 센스가 좋 아. 허리에서 공 잘 잡고 버티면 서 공격진이 자리 잡을 시간을 벌어 주잖아.”

“근데…… 쟤들 뭐야? 홍수고에 저런 애들이 있었어?”

“저런 애들이 있는데 왜 작년에 대회를 안 내보낸 거야? 저 애들 뛰었으면 작년 추계 대회 우승도 가능했겠는데?”

“그러게. 16번하고 19번은 U-18 나가도 충분히 제 몫 할 것 같은데.”

“제 몫이 뭐야? 16번 수비력에 저 정도 킥력이면 전방 공격수들 부담 반으로 줄고 공격력도 상승 하겠는데.”

“끄윽! 패스 시원시원하네.”

강진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슬며시 엿듣고 있을 때, 그의 눈 에 홍석이 보였다.

그와 눈이 마주친 홍석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 기자들이구나.’

강진은 그제야 홍석 주위에 있 는 사람들이 스포츠 기자들인 것 을 알았다.

강진의 시선에 홍석이 슬쩍 사 람들을 보며 말했다.

“저 애들 인명공고 애들이야.”

“뭐? 인명공고?”

“그 있잖아. 인명공고 3학년.”

“인명공고 3학년? 아……

홍석의 말에 사람들이 뭔가 이

해가 된다는 듯 경기장을 보았

다. 그들도 인명공고에 대한 이

야기는 아는 모양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인명공고 3학년

이면…… 안쓰럽네.”

그러다가 한 기자가 문득 말했

다.

“그런데 인명공고 애들이 왜 여 기서 공을 차?”

“전지훈련도 못 따라간 모양이 더라고.”

“아…… 지금 전지훈련 시기지? 응? 근데 왜 여기 있어?”

고등학교 축구부는 겨울에 날씨 가 조금이라도 따뜻한 지역으로 전지훈련을 간다.

“돈이 없으니 전지훈련도 안 데 려간 모양이야.”

“백 감독…… 참 찌질하네. 그 숙박비 얼마나 한다고 애들을 놓 고 가.”

“그러게 말이야. 3학년이면 올 해부터는 그래도 경기도 뛰게 할 텐데…… 전지훈련은 데리고 가 지 말이야.”

“아니지. 중요한 건 왜 쟤들이 여기 있느냐잖아.”

“어제 레드윙 입단 테스트 받고 들어왔어.”

홍석이 슬며시 분위기를 만들려

는 듯 선수들 사정을 이야기하자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쓰 러운 눈으로 학생들을 보았다.

“인명공고에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3학년이라 시합은 나가도 갈려 나가겠지.”

“믹서 3단으로 윙윙윙 하면서 갈려 나갔을 거야. 특히 저 16번 잘만 키우면 월드컵에서도 제 몫 할 텐데…… 갈려 나가서 선수 생활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잘하기는 하는데……

“고등 축구 협회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 같은데……

기자 한 명의 말에 홍석이 웃었 다.

“그러니 우리가 글 잘 써야 하 지 않겠어?”

“언론 플레이를 우리가 하자는 거야?”

그러다가 홍석이 기자들을 보았 다.

“유망주 갈아 버리는 백 감 독…… 사실 너무 하잖아. 저 애 들은 그냥 축구가 하고 싶어서 열심히 할 뿐인데……

홍석의 말에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경기장을 보고는 노 트북을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했 다.

타타탓! 타탓!

빠르게 타자를 치는 기자들의 모습에 홍석이 슬쩍 강진에게 엄 지를 들어주었다.

삐! 삑!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기는 끝이 났다 . 점수는 홍수

고 4, 대민고 2로 홍수고의 숭리

였다.

경기가 끝이 나자 장희섭과 친 구들이 울면서 서로에게 뛰어들 었다.

“이겼어!”

“우리가 이겼다고!”

“우리가 돈이 없지, 실력이 없 던 것이 아니야!”

2년 동안 시합을 한 번도 뛰지 못한 것에 대한 설움이 터져 나 오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연습 경기라고 해 도…… 다른 팀과 하는 첫 번째 경기였으니 말이다.

그런 선수들을 보며 강상식이 정몽현을 보았다.

“오늘 졌는데 괜찮아요?”

강상식의 웃음에 정몽현이 피식

웃었다.

“연습 경기일 뿐이야. 그리고 진짜였으면 우리 팀이 저 16번 쪽으로 계속 공을 몰았겠어?”

대민고가 일부러 약하게 경기를 운영한 것은 아니다. 애들이 불 쌍하다고 해서 일부러 지라고 요 구할 감독이나 정몽현이 아니었 다.

다만 오늘은 장희섭이 자리한 곳으로 공을 많이 몰았을 뿐이 다.

그래서 커트를 많이 당했고 역 습을 많이 허용했다. 그리고 그 역습이 골로 많이 연결됐을 뿐이 었다.

즉 실제 대회 경기였다면 장희 섭이 아닌 다른 곳을 돌파하거나 다른 공격 방법을 시도했을 것이 다.

그것만으로 역습을 많이 막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오늘 장희 섭 쪽으로 공을 몰은 이유는 아 이들을 띄워주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고맙네요.”

“ 됐다.”

그러고는 정몽현이 짐을 챙기는 자신의 유스 팀을 보았다.

“우리 애들 사기 올려 주려면 소고기라도 사 줘야겠네.”

정몽현의 말에 강상식이 힐끗 관람석을 보았다. 관람석에서 박 수를 보내고 있는 강진을 본 강 상식이 웃었다.

“괜찮으면 이강진 씨 가게에서 회식 시켜 주시지 그러세요.”

“한끼식 당?”

“소고기 구워 먹는 것보다 한끼 식당에서 제대로 된 집밥 먹는 것이 애들한테는 살이 될 겁니 다.”

“선수가 살을 쪄서 어디다 써?”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몽현이 강진을 힐끗 보고는 몸을 돌렸 다.

“예약은 네가 해라.”

“그러죠.”

고개를 끄덕인 강상식이 관람석 을 향해 다가갔다.

* * *

〈인명공고, 돈이 있어야 유망 주?

수원 오성 레드윙에서 인명 공 고 올해 3학년 선수 여섯 명을 입단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학원 축국의 현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삼학년을 프로 구단 유스 팀에서 스카우트하는 점에서 학 원 전력을 자본이 잠식한다 생각

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전 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레드윙 유스에 들어간 여 섯 명의 학생들은 인명공고 1, 2 학년 동안 한 단 한 게임도 치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년 후보였던 아니 벤치에도 들어가지 못했던 이 여섯 명의 후보…… 왜 이 여섯 후보를 레 드윙에서는 뽑았을까요?

그 이유는 딱 하나, ‘실력’이었 습니다.

어제, 홍수고는 여섯 학생의 활 약으로 연습 경기에서 승리했습 니다.

상대 팀 감독의 말에 의하면 여 섯 학생의 실력은 어느 팀 주전 을 가더라도 충분히 자기 몫을 하고도 남을 선수들이었으며, 그 중 장희섭 학생의 경우 당장 U-18로 올라가도 활약을 하기에 충분한 실력이…… (후략)〉

〈유전출전, 무전무전…… 실력 이 있어도 경기에 출전 못하는

인명공고.〉

〈거기 유명하지.〉

〈거 참.. 애들 잘하면 시합

좀 내 보내지. 애들이 얼마나 서 러웠으면 고삼에 다른 곳으로 전 학을 가겠어.〉

〈감독 잘라라!〉

〈인명공고 감독 누구야?〉

〈일단 인명공고 감독 이야기도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월요일 점심 장사를 끝낸 강진 은 핸드폰으로 카드 형식의 인터 넷 뉴스를 보고 있었다.

홍석과 기자들이 쓴 인명공고와 전학생 여섯 명에 대한 내용이 꽤 많았다.

대부분 인명공고 감독의 편파적 인 선수 기용에 대한 것과 이번 에 레드윙 유스로 옮긴 학생들에 대한 동정론과 실력에 대한 내응 이 위주였다.

그에 강진이 보던 뉴스 밑에 댓 글을 달았다.

〈진짜 서러웠겠네. 얘들아, 앞으 로 꽃길만 걷자! 파이팅!〉

댓글을 단 강진이 인터넷 뉴스 를 보다가 인명공고를 검색했다. 그러자 인명공고와 관련된 뉴스 가' 나타났다.

〈인명공고 축구부 졸업생 충격 발언〉

〈인명공고 이대로 좋은가?〉

〈순수해야 할 학원 축구에 돈으 로 사고파는 경기 출전권. 인명 공고 졸업생의 양심선언〉

뉴스를 보던 강진이 피식 웃었 다.

“강상식 씨가 일 빠르게 진행했 네.”

어제 강상식은 홍석에게 인명공 고 축구부 졸업생 중 백현덕에 의해 축구 인생 조진 학생들의

연락처를 주고는 그들의 인터뷰 를 따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물론 수고비도 넉넉히 챙겨서 말이다.

돈이 아니더라도 이번 일로 고 등 축구 쪽이 깨끗해지기를 원하 던 홍석은 기자들과 함께 연락을 하고 인터뷰를 하겠다는 선수들 에게 가서 인터뷰를 따온 것이 다.

본문을 읽어 보니 강진이 아는 내용들이었다. 돈이 없는 아이들 은 시합을 못 뛰게 하고, 실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바로 방출을 해 버렸다.

거기에 잡다한 축구부 일은 다 돈 없는 애들이 했다. 축구화 청 소부터 빨래, 청소 그리고 운동 기구 정리까지 말이다.

그리고 3학년 때 시합을 나가서 무릎이 아픈데도 시합을 뛰어야 했고 그것 때문에 무릎이 고장이 나서 지금은 뛰지 못한다는 내응 까지 있었다.

“하아! 그냥 축구가 좋았을 뿐 인데…… 당신 참 지옥 가겠습니

다.”

백현덕의 지옥 확정에 대해 중 얼거리며 다시 뉴스를 검색하던 강진이 기사 제목 하나를 눌렀 다.

〈[단독] 인명공고 백현덕 감독 입장 표명

최근 학원 축구 비리 문제로 언 론에 보도된 인명공고 축구팀 백 현덕 감독이 어제 공식 입장문을 발표했다. 아래는 백 감독의 입

장문이다.

……이건 거대 구단의 학원 축 구 유망주 빼내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 여섯 아이 들은 제가 물심양면 돕고 가르친 애제자들입니다.

일간에는 돈이 없는 아이들을 경기에 안 뛰게 했다고 하는데, 그 반대로 생각하면 그 돈 없는 아이들을 지금까지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 바로 저 백현 덕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공만 있으면 축 구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하겠지 만 그렇지 않습니다.

축구공, 축구화, 유니폼이 필요 하고 경기를 뛰러 갈 때 뛰어갑 니까? 차를 타고 가야 하고 밥을 먹어야 하고 운동장을 빌려야 합 니다.

그런 돈을 저는 받지 않고 오직 제 사비와 축구부 운영을 도와주 는 학부모님들의 기부로 돕고 또 도운 겁니다…… (중략)

저는 그 아이들을 올해 3학년

때부터 기용해서 그 기량을 마음 껏 펼치게 하려고 했습니다.

또 운동하다 보면 다치는 것이 야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그 다 친 것을 감독인 저 때문이라고 한다면 세상에 죄 없는 감독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짝짝짝!〉

〈짝짝짝!〉

그리고 그 밑 댓글에 이상하게 짝짝짝 하는 댓글이 많이 보였

다. 이게 뭐지 싶어 아래로 주욱 내려가자 한 댓글이 눈에 보였 다.

〈짝짝짝! 악마가 박수를 칩니 다. 당신은 진정 우리 지옥계의 감독이 되어야 할 참 스승입니 다. 빨리 지옥 헬 구단에 오셔서 우리를 감독해 주십시오. 요즘 우리가 너무 착하게 살고 있습니 다.〉

재밌는 댓글에 강진이 피식 웃 고는 자신도 그 밑에 댓글을 달 았다.

〈짝짝짝! 악마의 참 스승 백현 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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