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아이들을 생각하는지 잠시 미소 를 짓던 남자가 자신의 잔에 채 워진 소주를 보았다.
“첫잔은 서비스면 이건?”
남자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이건 정입니다. 하지만 세 잔 은 네 잔을 부르니…… 그것만 하세요.”
강진의 말에 남자가 웃으며 그 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 기다리겠네요.”
남자가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 다.
“크윽!”
작은 신음을 토한 남자가 어묵 꼬치를 하나 더 집어 먹으며 웃 었다.
“추운 겨울에 마시는 소주는 참 맛있습니다.”
“집에 조심히 들어가세요.”
강진의 말에 남자가 웃으며 지 갑을 꺼낸 채 물었다.
“얼마입니까?”
“천 원입니다.”
강진의 말에 남자가 웃으며 천 원을 꺼내다가 어묵 꼬치를 보고 는 말했다.
“어묵 삼천 원어치만 포장해 주 십 시오.”
남자의 말에 강진이 봉지를 뜯
어 어묵 여섯 개를 담고 국물을 넣었다.
“여기 사천 원요.”
남자가 돈을 건네자 강진이 그 것을 받고 어묵을 건네며 말했 다.
“아이들이 오늘 포식하겠네요.”
“좋아하겠죠?”
남자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어묵 꼬치 아이들이 좋아하잖 아요.”
웃으며 강진이 물었다.
“아이들 몇이세요?”
강진의 물음에 남자가 웃으며 답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이렇게 둘 입니다.”
남자의 말에 강진이 삶은 계란 을 두 개 꺼내서 내밀었다.
“어묵탕에는 삶은 계란이 들어 가야죠.”
강진의 말에 남자가 웃으며 봉
지를 벌려 삶은 계란을 받았다.
“잘 먹고 갑니다.”
멀어져 가는 남자를 지긋이 보 던 강진이 소리쳤다.
“맛있게 드세요!”
강진의 외침에 남자가 돌아서서 는 손을 한 번 흔들고는 걸음을 옮겼다.
들어올 때에 비해 조금은 걸음 이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에 강 진이 작게 말했다.
“파이팅 하세요.”
최호철에게 들었던 아버지의 통 닭을 직접 보니 마음이 새삼 다 른 느낌이었다.
“사는 것이 뭔지……
강진의 중얼거림에 배용수가 입 맛을 다셨다.
“편한 직장 생활이 어디 있겠 냐?”
배용수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다가 말했다.
“그래도 저 사람은 집이 있잖 아. 그리고 통닭을 사다 줄 아이 들이 있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일은 힘들어도 가족이 있으니 버티시는 거겠지.”
멀어져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불판 에 불을 켜고 삼겹살을 올렸다.
촤아악! 촤아악!
삼겹살이 익어가는 것을 보며
강진이 고기를 앞뒤로 뒤집다가 옆으로 밀고는 새로 고기를 올렸 다.
완전히 익히기보다는 70퍼센트 정도만 익혔다가 나중에 귀신들 오면 마저 구워서 낼 생각이었 다.
촤아악! 촤아악!
그것을 보던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이거 하는데 얼마냐는 물음에는 왜 답을 안 해 줬어?”
“일 힘들다고 충동적으로 회사 그만두고 푸드 트럭 하는 것보다 는 일 힘들어도 회사에서 버티는 것이 나으니까.”
그래서 강진이 소주를 따라주며 말을 돌린 것이다. 쓸데없는 생 각하지 말고 회사 잘 다니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리고 남자도 진짜 궁금하다기 보다는 힘들어서 한번 해 본 말 인 것 같았다.
그것을 알기에 강진은 답이 아 닌 소주를 권한 것이다.
“오기 시작한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기를 뒤집다가 푸드 트럭 밖을 보았 다.
깔아 놓은 의자들 밖으로 귀신 들이 줄을 맞춰 서 있었다. 그리 고 그 앞에서 최호철이 손을 들 어 말하고 있었다.
“줄을 서세요! 줄을 서요!”
최호철의 외침에 강진이 배용수 를 보았다.
“줄을 왜 서?”
줄이야 현신하고 서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귀신들을 보며 말했다.
“여기 안에서 바로 현신을 하면 현신하는 감각을 느낄 수 없지 만, 저렇게 줄을 서서 들어오면 현신할 때의 감각을 천천히 느낄 수 있으니까.”
배용수가 귀신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현신하는 감각은…… 좋으니 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간을 보았다.
‘앞으로 5분.’
시간을 확인한 강진이 음식들을 확인했다.
‘어묵 꼬치, 삼겹살, 제육김치볶 음, 컵라면, 밑반찬.’
음식들은 전에 푸드 트럭에서 했던 것과 같았다. 새로운 메뉴 를 하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손
님들도 새 손님들이라 메뉴가 겹 쳐도 별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야외에서 하기에 간편하 고 쉽게 낼 수 있고 말이다.
음료수와 소주도 푸드 트럭 앞 에 깔려 있는 것을 확인한 강진 이 턱을 쓰다듬었다.
“여름에는 아이스박스를 더 준 비해야겠다.”
배용수가 보자 강진이 말했다.
“지금은 겨울이라 꺼내 놓기만 해도 차가워지지만, 여름에는 아
이스박스에 넣어둬야 차가울 거 아냐.”
“짐이 더 늘어나겠다.”
“여름은 더우니까.”
말을 하며 강진이 세팅을 해 놓 은 식판과 술잔들을 살필 때, 시 간이 됐는지 귀신들이 하나둘씩 푸드 트럭으로 다가왔다.
화아악! 화아악!
경계라고 해야 할, 푸드 트럭 영업 공간에 들어오자 현신을 한 귀신들이 서로를 놀란 눈으로 보
았다.
“내가…… 사람이 됐어?”
“이게 대체?”
놀라는 귀신들을 향해 최호철이 말했다.
“앞으로 가면서 놀라세요. 뒤에 분들 막힙니다!”
최호철의 외침에 현신을 한 귀 신들이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자 줄을 선 귀신들이 기대감 어린 눈으로 그 뒤를 따라 들어오며 현신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설명은 다 들으신 것으로 알고 시간들 없으니 바로 식사들 하세 요. 여기 식판에 음식들 받고 저 기 앉아서 삼겹살하고 같이 드시 면 됩니다.”
강진이 식판을 가리키자 귀신들 이 하나둘씩 다가와 놀람과 의아 함이 어린 눈으로 푸드 트럭을 보았다.
“정말……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겁니까?”
“질문은 일단 식사를 하시면서 해주세요. 시간 두 시간밖에 없 어요.”
강진이 식판을 가리키자, 귀신 들은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몸과 푸드 트럭을 번갈 아 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은 것이다.
“뷔페처럼 생각하시고 알아서 가져다 드시면 됩니다. 어서들 집으세요.”
강진의 재촉에 배용수가 숯불 화로에 고기들을 올리다가 말했 다.
“삼겹살 타요!”
배용수의 외침에 귀신들이 화로 에서 구워지는 삼겹살을 보았다. 그러더니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 했다.
백 마디 외침보다 삼겹살 익어 가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귀신들이 밥을 푸고 반찬을 덜
고 어묵 꼬치를 국 칸에 담는 것 을 보며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먹을 수 있을 만큼믄! 가져가시 고 또 담으러 오세요.”
하지만 강진의 주의와는 상관없 이 귀신들은 정신없이 음식들을 퍼 담았다.
너무 배가 고픈 것이다. 그리고 강진은 그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많이 드세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그것 을 볼 때, 배용수가 문득 한 쪽
을 보았다.
“어근}?”
그리고는 급히 푸드 트럭에 올 라탔다.
“왜?”
강진이 의아한 듯 하는 말에 배 용수가 급히 말했다.
“JS 금융이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가 보 는 곳을 보았다. 저 멀리 강두치 가 비슷한 정장을 입은 사람, 아
니 JS 금융 직원들과 함께 걸어 오고 있었다.
“이 사장님!”
반갑게 손을 흔드는 강두치에게 강진도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 사이, 최호철과 여자 귀 신들이 슬며시 푸드 트럭 뒤로 몸을 감췄다.
JS 금융 직원들을 꺼리는 그들 의 모습을 보던 강진은 식사를 하는 귀신들을 보았다.
그 귀신들은 별다른 반응을 하
지 않고 화로에 놓인 삼겹살을 쌈장에 찍어 먹고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저 귀신들은 안 무서워하네?”
“쟤들은 죽은 지 얼마 안 돼서 JS 금융에 안 끌려가 봤으니까.”
“아……
JS 금융에 끌려가 본 적이 없으 니 무서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 다.
강진이 다시 최호철과 함께 숨 은 여자 귀신들을 보았다.
“저분들은 왜 숨어?”
나쁜 놈한테 묶여 지박령으로 있었으니 나쁜 짓을 하기도 힘들 었을 것이다.
그럼 JS 금융에 끌려가 보지도 않았을 텐데 왜 피하나 싶었다.
“우리한테 들은 것이 있으니 까.”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했기에 저렇게 숨어?”
“뭐, 사실대로 이야기했지.”
“쓸데없는 소리 한 거 아냐?”
“쓸데없기는? 나쁜 놈한테 붙어 서 그 고생을 했는데 실수해서 JS 금융 끌려가면 어떻게 하냐? 그래서 미리미리 주의를 준 거 지. 나쁜 짓 해서 JS 금융 끌려 가지 말라고.”
“그래도 겁을 너무 많이 준
말을 하던 강진의 앞에 강두치 가 웃으며 다가왔다.
“저승식당 출장 영업이라……
정말 대단하십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식판을 가리켰다.
“오신 김에 식사라도 하세요.”
“하하하! 그러고 싶은데 오늘 저희 영업을 하러 온 거라서요. 아! 그리고 이거.”
강두치가 작은 화분을 내밀었 다.
〈축 푸드 트럭! 대박 나세요!
JS 금융 서울 지점 강두치〉
화분도 작은데 글이 적힌 리본 은 상당히 길었다.
‘……월급이 적으신가?’
리본을 보던 강진이 화분을 받 았다.
“뭘 이런 걸 다 사 오셨어요.”
“새로 오픈을 하셨는데 사 와야 죠. 이게 다 고객 영업의 기본 아니겠습니까.”
웃으며 강두치가 화분을 가리켰 다.
“이게 작기는 해도 향이 좋습니 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화분을 보았다. 화분에는 난이 심어져 있었다.
“혹시 이것도 JS?”
강진의 물음에 강두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옥난(獄關)이라고 하 는 건데 지옥에서 귀신들의 피눈
물을 먹고 자라는 난입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옥난을 내려놓았다.
“귀신의 피눈물요?”
“이 사장님이 사람이라 조금 껄 끄러울 수도 있지만, 이게 향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맑게 해 줍니다.”
“정신을 맑게 해 준다고요?”
“지옥의 처벌이 너무 아프고 고 통스럽다 보니 가끔 정신줄 놓는 귀신들이 있거든요.”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이게 무 슨 말인가 생각을 할 때, 배용수 가 몸을 떨었다.
그에 배용수를 보니 그의 얼굴 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왜 그래?”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맑은 정신으로 더 고통스럽게 지옥 돌라고 핀다는 거잖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옥난을 보다가 강두치를 보
았다.
“정신을 맑게 해 주는 옥난…… 정신줄 놓지 말고 고통 다 받으 라고 피는 거군요.”
“이왕 받는 처벌인데 맑은 정신 으로 받아야 죗값을 더 잘 치르 죠.”
강두치가 웃으며 옥난에 코를 대고 향을 맡고는 말했다.
“음식 냄새 많이 나는 음식점에 서 이런 난 있으면 좋지 않겠습 니까? 그리고 정신도 맑아지니
손님들이 음식 맛도 더 맛있게 느낄 겁니다.”
강두치의 말에 께름칙한 눈으로 옥난을 보던 강진이 생각을 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확실히…… 일리가 있네요.”
강진도 주방에서 오래 음식을 만들면 음식 냄새에 취하고 머리 가 아플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 옥난이 있으면 음식 냄새도 많이 잡아주고 정신도 맑 게 해 줄 것이다.
정신이 맑으면 음식 맛도 더 잘 느껴질 테고 말이다.
“그런데 옥난 향 맡으면 귀신 보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
“호 변호사 개업할 때 옥난 선 물해 줬는데 고객들이 귀신 보고 그러지는 않더군요.”
“그래요?”
“향만 맡는 거라 귀신까지 보고 그런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에 강진이 옥난을 보며 향을 맡을 때, 강두치는 어느새 어묵
을 집어 먹고 있는 직원들을 보 았다.
“이것들이 일하러 와서.”
“대리님, 날도 춥고 시간도 조 금 있으니 어묵 하나 먹고 가시 죠.”
한 직원이 어묵을 들이밀자 강 두치가 입맛을 다시다가 그것을 받았다.
“빨리 먹어.”
어묵을 먹은 강두치가 입김을 후 불어내는 것에 강진이 국물을
떠 주며 말했다.
“그런데 평소에는 혼자 다니시 더니 오늘은 단체로 다니시네 요?”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국물을 마시며 말했다.
“오늘은 단체 손님이라서요.”
“단체 손님?”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