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288화 (286/1,050)

287화

따뜻하게 데운 육수에 어묵과 국수를 말은 강진이 할아버지에 게 내밀었다.

“아이고! 이거 고맙네.”

“삼겹살도 좀 구워 드릴까요?”

“안 돼.”

“왜요?”

“이 시간에 삼겹살 먹으면 소주 당기잖아. 그냥 국수로 만족해야

지.”

웃으며 할아버지가 국수를 입에 넣고 씹으며 말했다.

“맛이 아주 좋네. 음식 솜씨가 좋아.”

“어떻게, 저 음식 장사 안 망하 겠습니까?”

“망하기는? 이 정도면 장사 잘 되겠는데.”

웃으며 할아버지가 국수를 먹다 가 강진을 보았다.

“납골당인데 안 무섭나?”

“사람이 무섭지, 귀신이 무섭나 요.”

“하! 맞아. 그리고…… 내가 여 기 십 년 넘게 일을 해 봤는데 귀신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귀신이 있다는 건 다 거짓말이 야.”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그 옆 에 있는 오신혜를 보았다. 할아 버지 주위에는 오신혜 말고도 다 른 귀신들이 많이 있었다.

“이야, 우리 할아버지 오랜만에 호강하시네.”

“그러게. 매일 컵라면만 드셔서 안쓰러웠는데.”

“영감님, 많이 드세요.”

귀신들의 수군거림에 강진이 그 들을 보다가 어묵을 몇 개 덜어 할아버지 그릇에 올려주었다.

“많이 드세요.”

“고맙네.”

웃으며 할아버지가 국수를 먹다

가 입맛을 다시며 한쪽을 보았 다.

할아버지가 보는 곳에는 소주가 있었다.

“딱 한 잔만 할까?”

“그러실래요?”

강진이 소주를 꺼내 한 잔 따라 주자, 할아버지가 소주잔을 잡았 다.

“옛날 공동묘지 관리인 어른들 은 막걸리를 늘 품에 안고 다녔 는데…… 요즘은 신식이라 술도

마음대로 못 먹어.”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소주를 마시고는 국수를 후루룩 마시듯 먹었다.

“크윽! 좋다.”

그러고는 할아버지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한 그릇 더 드릴까요?”

“더 먹으면 소주 더 먹을 것 같 아서 안 되겠어.”

웃으며 할아버지가 손전등으로

납골당을 가리켰다.

“같이 들어가지.”

김흥수를 보러 온 줄 아는 할아 버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 를 저었다.

“뒷정리 좀 하고 들어가도 될까 요?”

“그렇게 해. 잘 먹었어.”

할아버지가 휘적휘적 납골당으 로 가는 것에 강진이 홑어지려는 귀신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러분들도 식사하고 가시죠.”

강진의 말에 흩어지려던 귀신들 이 놀란 얼굴로 그를 보았다.

“응‘?”

“저 인간, 우리한테 하는 말인 가?”

“그러고 보니 저 인간 옆에 귀 신이 하나 있기는 하네.”

귀신들이 배용수를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말했다.

“설명 고고.”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내밀었다.

“이건 저승식당 푸드 트럭

배용수가 설명을 하는 사이, 강 진은 어묵국을 끓이고 국수를 데 웠다.

그리고 불판에 불도 올리고는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경비원 할아버지야 소주 먹고 싶을까 봐 삼겹살을 안 먹었지만 귀신들이야 소주를 먹든 말든 무

슨 상관인가?

‘맛있게만 먹으면 되지.’

저승식당 영업시간이 아니라서 그 맛을 제대로 보기는 어렵겠지 만, 강진이 하는 음식이니 제삿 밥보다는 더 맛이 있을 것이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고기를 굽는 사이 배용수의 이야기를 들 은 귀신들이 오신혜를 보았다.

“신혜가 이야기한 사람이 이 사 람인가 보구만.”

“그러게. 귀신한테 밥을 주는

식당 주인이라니…… 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고만.”

“아니지, 귀신 되고 볼 일이지.”

오신혜에게서 자신에 대한 이야 기를 듣기는 한 모양이었다.

말을 하며 귀신들이 푸드 트럭 에 다가오자 강진이 국수와 삼겹 살을 나누어 주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배용수를 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닐장 갑을 손에 끼더니 고기를 마저

굽기 시작했다.

그에 강진이 일회용 컵에 믹스 커피를 넣고 뜨거운 물을 넣었 다.

쪼르륵! 쪼르륵!

내용물을 숟가락으로 저은 강진 이 커피 두 잔을 들고 귀신들 뒤 에 서 있는 오신혜에게 다가갔 다.

“이쪽으로 오세요.”

오신혜가 다가오자 강진이 힐끗 CCTV를 보고는 그 밑으로 걸어

갔다.

CCTV 밑에서는 찍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CCTV 밑으로 간 강진이 오신 혜에게 커피 잔을 내밀었다.

“맛이 좋을 겁니다.”

강진의 말에 오신혜가 손을 내 밀어 커피 잔을 잡다가 놀란 얼 굴이 되었다.

“어?”

커피 잔이 손에 잡히는 것이다.

“어!”

연신 탄성을 내뱉으며 커피 잔 을 만지작거리는 오신혜의 모습 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승에서 사용하는 종이컵입니 다. 그래서 귀신도 잡을 수 있어 요. 그리고…… 커피와 물도 JS 에서 먹고 마시는 겁니다.”

“저승 커피요?”

“드셔 보세요. 전에 드셔 보신 것과는 차이가 많이 날 겁니다.”

강진의 말에 오신혜가 살며시

커피 잔을 입에 가져가 마셨다.

쓰읍!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오신혜가 미소를 지었다.

“맛이 좋아요.”

“향도 좋더군요.”

강진의 말에 오신혜가 커피 향 을 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오신혜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커피 드시고 국수도 한 그릇 하세요.”

“감사해요.”

“그런데 전에 여기 지박령이 아 니라고 하셨잖아요.”

“네.”

“그럼 왜 여기 계시는 건가요?”

“전에 말했던 것 같은데……

“여기가 편하셔서라고 하셨죠.”

전에 오신혜에게 왜 여기에 있 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그렇게

답했었다.

“그런데 정말 여기가 편하세 요?”

강진의 물음에 오신혜가 잠시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귀신들이 저를 무서워해서요.”

“귀신들이요?”

“여기는 괜찮은데, 여기를 벗어 나면 귀신들이 저만 보면 무서워 하고 도망쳐요. 그리고 제가 다 가가면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것 같았어요.”

잠시 말을 멈춘 오신혜가 커피 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사람들도 귀신들도 저를 무서워하지도, 힘 들어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이곳 에 있는 거예요.”

오신혜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납골당을 보았다.

‘그 귀신의 기운을 없애주는 방 향제 때문인가?’

상황을 보니 오신혜는 처녀 귀 신이고, 처녀 귀신의 기운 때문

에 귀신과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도망치자 밖이 아닌 이곳에 남기 로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여기에 계시면 심심하 실 텐데요.”

주위에 아무것도 없이 납골당 하나 있다. 있는 것이라고는 그 녀와 같은 귀신들뿐인 이곳이 재 미있을 일은 없었다.

“나 혼자 심심한 것이 여러 사 람 피곤한 것보다는 나아요.”

조금은 씁쓸한 오신혜의 목소리

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흠……

그런 강진을 보던 오신혜가 잠 시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도 많은 귀신들이 있어서 그리 심심하지 않아요.”

“그래도 여자 귀신 분들 보니 까,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사 우나도 가서 찜질도 하고 그러시 던데……

“그건......"

오신혜가 말끝을 흐렸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찜질은 하고 싶네요.”

“그럼 가시죠.”

“제가 찜질방을 가면 거기 손님 들이 힘들어하실 거예요.”

“제가 아는 처녀 귀신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도움을 받아 보시는 건 어때요?”

“그…… 저도 처녀 귀신 한 분 아는데 너무 무섭던데……

“어떤 분요?”

“이지선 씨요.”

오신혜의 입에서 이지선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강진이 물었다.

“혹시 처녀 귀신 셋 데리고 다 니는, 조금 무섭게 생기신 분 아 닙니까?”

“맞아요.”

“저도 그분 알아요.”

“아세요?”

“저희 가게 가끔 오셔서 식사하

고 가시는 분이세요. 그런데 그 분 안 무서우신 분인데?”

“무서운 분이세요.”

몸을 떠는 오신혜의 모습에 강 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저하고 친하게 지내는 여 자 귀신 있는데, 그분 도움을 좀 받으시 겠어요?”

“도움요?”

“귀신들도 배워야 하는 것 아세 요?”

“죽었는데 뭘 배워요?”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글을 배우고 수학을 배우는 것처럼, 귀신도 귀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배워야 할 게 있습니 다.”

“귀신도 배워야 하는군요.”

“그럼요.”

“그런데 뭘 배우는 거죠?”

“저도 그건 잘 몰라요. 어떻게, 지금 불러 드릴까요?”

“불러요?”

“이것도 귀신이 배우면 좋은 것 중 하나인데…… 사람이 귀신의 이름을 세 번 부르면 귀신은 그 부름에 응해서 이곳에 오게 됩니 다.”

“그래요?”

“보시겠어요?”

“이지선 씨는 아니죠?”

“아닙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오신혜의 말에 강진이 작게 입 을 열었다.

“이혜선, 이혜선, 이혜선.”

강진의 부름에 이혜선이 순식간 에 모습을 드러냈다.

“응? 납골당이네?”

이혜선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가 강진을 보고는 웃었다.

“오빠, 왜 나 불렀어?”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오신혜를 가리켰다.

“이쪽 분은 오신혜 씨.”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오신혜를 보고는 말했다.

“처녀 귀신이네?”

이혜선의 말에 오신혜가 고개를 숙였다.

“오신혜입니다.”

“나는 이혜선이야. 딱 보니…… 작년에 죽었나 보네?”

“네.”

오신혜의 말에 이혜선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있어?”

“네?”

“처녀 귀신은 지박령이 안 되거 든. 그렇다고 여기에 수호령이 될 만한 것도 없을 것 같고…… 왜 여기에 박혀 있어?”

이혜선의 말에 오신혜가 강진에 게 했던 말을 하자, 이혜선이 눈 을 찡그렸다.

“그래서 안 나간다고?”

이혜선의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것에 오신혜가 주저하다가 말했 다.

“……네.”

오신혜의 말에 이혜선이 그녀를 보다가 탄식을 토했다.

“하아! 이런 멍청한 애가 있 나……

욕을 하는 이혜선의 목소리에는 안쓰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느낀 강진이 슬며시 물었다.

“내가 널 부른 건……

“나 보고 얘 가르치라는 거겠 죠.”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지선 씨가 오신혜 씨와 만난 적이 있는 모양인데 가르치지는 않은 모양이셔.”

“지선 언니한테 안 맞은 것이 다행이네요.”

“ 맞아?”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답을 하 는 대신 오신혜를 보았다.

“너 멍청해.”

“제가요?”

“왜 남을 생각하며 사는 거지?”

“네?”

“한 번 오고 가는 것이 바로 삶 이다. 뭐, 살아서 착한 일 하면 JS 금융에 돈도 생기고 저승 가 서 좀 먹고 살 만하겠지. 그게 뭐?”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저승 가서 돈 있으면 편하잖

아.”

“하!”

이혜선이 작게 탄식을 토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승 가서 편하자고 지금은 불 편하게 산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녀는 강진을 처음 만났을 때 부터 반말을 했다. 좀 싸가지 없 는 반말이었지만, 강진과 친해지 고 난 후에는 장난스럽게라도 오 빠라 부르고 존대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처음 봤을 때처 럼 반말을 하고 있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현실이 가 장 중요해. 지금 내가 존재한다 면…… 내가 가장 중요하고 내가 가장 소중해.”

이혜선의 말에 오신혜가 급히 말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내 행복을 추구하라는 건가요?”

“야!”

버럭 고함을 지른 이혜선이 오

신혜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이혜선은 답답했다.

귀신이 된 것도 불쌍한 것이 자 신들의 신세인데…… 오신혜는 남을 생각하느라 정작 자신은 전 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 다.

“왜 내 행복을 추구하면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을 하지? 남 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열심 히 살면 되는 거야.”

“하지만…… 제가 가면 귀신들 이 무서워하고 도망치는데요. 그

리고 사람들도……

“그래서 여기에 처박혀 있는 건 가? 사람들하고 귀신들 무서워하 지 말라고? 그럼 너는? 다른 귀 신들 위해서 여기에만 처박혀 있 는 너는 안 불쌍해?”

말을 하지 못하는 오신혜를 보 며 이혜선이 고개를 저었다.

“착하기만 한 것이 좋은 건 아 냐. 너의 착함은 너 자신에게는 악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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