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 화
장례식장 5호실 앞에 선 강진은 조의금 봉투를 챙기지 못한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에 한쪽에 배치되어 있는 조 의금 봉투를 집은 강진이 자신의 이름을 적고 오만 원을 넣었다.
‘이거면 되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던 강진의 눈에 귀신들이 많이 보였다.
“오늘 육개장이 좀 짠 것 같 아.”
“요리사가 바뀌었나?”
“음식을 좀 잘하지 말이야.”
“저기 추모 장례식장 음식 괜찮 다고 하던데 우리도 옮길까?”
“거기까지 또 언제 걸어가.”
밥을 먹고 나오는 듯 귀신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것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례식장에 귀신들이 밥 먹으
러 간다고 하더니 진짜였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지나다 니는 귀신들을 보다가 신발을 벗 고는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장례식장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 다.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넋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일찍 와 준 손님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의 귀에 작 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셨어요.”
고개를 돌리니 이아영이 그를 보고 있었다.
“그……
이아영을 보며 강진이 작게 말 했다.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 니다.”
고인의 가족이라면 고인의 명복 을 빈다는 말이라도 할 텐데, 죽 은 당사자한테는 뭐라고 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괜찮아요.”
뭔가 힘이 빠진 듯한 이아영의 모습에 강진이 물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몸이라는 말에 이아영이 자신의 배를 손으로 쓰다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기 적출할 때는 좀 아프기는 했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많이 아프셨습니까?”
장기 적출 수술에 대해 묻는 강 진에게 이아영이 미소를 지었다.
“몸이 아프다기보다는 마음이 아픈 느낌이었어요.”
“ 마음?”
“뭔가 몸에서 뽑혀 나가는 것 같았는데…… 강두치 씨 말로는 영혼에 상처가 나서 아픈 거라고 하셨어요. 아! 이빨 뽑는 느낌이 었어요.”
그러다가 이아영이 슬며시 말했 다.
“그런데 저하고 이야기하는 거,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은데
요.”
이아영의 말에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슬며시 주머니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 귀에 꼈 다.
이아영의 말대로 눈에 안 보이 는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이 사람 들에겐 이상하게 보일 테니 말이 다.
“통화하는 척하면 됩니다.”
강진의 말에 이아영이 웃었다.
“귀신하고 이야기 많이 하니 그
런 것도 팁이시겠네요.”
“그런 셈이죠.”
웃으며 이아영을 보던 강진이 그녀의 영정이 있는 곳을 보았 다.
그곳에는 이아영의 부모님이 멍 하니 영정사진을 보고 있었다. 강진의 시선에 이아영도 자신의 부모님을 보며 짙은 한숨을 토해 냈다.
“나는 괜찮은데…… 부모님이 너무 슬퍼하시네요.”
이아영의 말에 강진은 말을 아 낄 수밖에 없었다. 마땅히 위로 할 말이 없었다.
자식 잃은 슬픔에 마음으로 우 는 부모님과 그것을 보는 죽은 자식의 마음…….
함부로 위로의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잠시 그녀를 보던 강진이 조의 금 함에 봉투를 넣고는 영정에 다가갔다.
강진이 영정에 다가오자 멍하니
앉아 있던 부부가 몸을 일으켰 다.
슬픔이 크기는 해도 딸 마지막 가는 곳에 온 손님에게 인사는 해야 했다.
그런 두 분에게 작게 목례를 한 강진이 절을 했다. 두 번의 절을 하고 이아영의 영정에 고개를 숙 인 강진이 상주인 아버님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이아영 씨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우리 아영이와는 어떤 사이신 지?”
“제가 음식점을 하는데 거기에 서 친해졌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제 푸드 트럭에 온 이아영과 인사를 하고 그것으로 조문을 왔으니 말이다.
“아…… 와 주셔서 감사합니 다.”
아버님의 말에 강진이 그를 잠 시 보다가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장례식장은…… 어려운 곳이구 나.’
슬픔에 찬 가족들과 마주하는 것…… 어떠한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기에 뭐라 위로를 할 수 없었다.
강진이 몸을 돌리자 어머님이 말했다.
“식사하시고 가세요.”
슬픈 와중에도 딸 보러 온 손님 의 식사를 챙기는 어머님의 모습 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다가 말했
다.
“이런 말씀이 위로가 되실지 모 르겠지만…… 이아영 씨는 정말 좋은 분입니다.”
“우리 딸이 참 착하고…… 좋은 아이……
말을 하던 어머니의 눈가에 눈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곧 소리 죽여 오열을 하는 것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어떠한 말도 위로가 안 되시겠 지.’
그 모습에 강진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식사하는 곳을 보았다.
식사하는 자리에는 사람들도 있 지만 귀신들도 자리를 한 채 밥 을 먹고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사람들은 진짜 음식들을 깔아 놓고 있지만 귀신들의 앞에는 혼령들이 먹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보니 귀신들은 사람들 눈치 안 보고 준비된 음식을 직접 들고 와서 빈자리에 놓고 먹고 있었
다.
‘하긴 귀신들에게 서빙을 해 주 지는 않을 테니…… 알아서들 가 져다 먹는구나.’
장례식장에서 귀신들이 밥을 먹 는다고 하던데, 이렇게 먹는 모 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한쪽 빈 자리에 가서 앉자, 가족들이 음 식을 차려주었다.
장례식장이면 나오는 음식들을 앞에 둔 강진이 이아영을 보았
다.
이아영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스윽!
강진이 밥과 육개장 그릇을 그 녀의 앞으로 옮겼다.
“드세요.”
“저는 배 안 고픈데……
“그래도 식사하셔야죠. 귀신도
안 먹으면 배고파요.”
강진의 말에 이아영이 그릇을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제가 먹으면 사장님은 식사 어떻게 해요?”
“저는 집에서 먹고 왔습니다.”
말을 하며 강진이 수저도 그녀 의 앞에 놓았다.
남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일 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밥과 국을 놓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진은 신경 쓰지 않았 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볼 일이 없지만, 이아영은 지금
자신에게 중요한 귀신이었다.
“소주도 한잔하실래요?”
강진이 잔에 소주를 따라 그녀 의 앞에 놓았다.
“저 술 안 좋아해요.”
“지금은 좋아할 수도 있죠.”
강진의 말에 이아영이 자신의 부모님을 보다가 잔을 들곤 소주 를 마셨다.
꿀꺽!
소주를 마신 이아영이 눈을 찡
그렸다.
“쓰네요. 많이……
이아영의 말에 강진이 음식을 가리켰다.
“좀 드세요.”
이아영이 음식을 보다가 강진을 보았다.
“저……
“왜 그러세요?”
“강두 치 씨가 그러는데... 제
가 돈이 아주 많다고 하더군요.”
이아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JS 금융의 VIP시면 이승의 어 지간한 부자보다 돈이 더 많으실 겁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이아영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저승 소식은 좀 아는데, 이승보다 저승이 돈 쓰기에는 더 좋다고 하더군요. 이아영 씨는 돈이 많으니 저승 가시면 이승보 다 더 편하게 지내실 수 있을 겁 니다.”
“그건 좋네요.”
강진의 말에 이아영이 작게 웃 었다.
“그리고 저승 밥이 이승보다 더 맛있습니다.”
“그래요?”
“제가 저승 편의점에서 도시락 만 먹어 보기는 했는데, 거기 도 시락이 맛있더라고요.”
“저승에 편의점도 있어요?”
“저승이 이승하고 많이 비슷합
니다. 가시면 깜짝 놀랄 겁니다. 이숭하고 너무 비슷해서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아영이 말했다.
“그리고 저승에서 돈이 있으면 못 하는 것이 없다고 하던데
“이승보다 돈 지랄이 더 심한 곳이 바로 저승입니다. 돈만 있 으면 못 하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이아
영이 입을 열었다.
“그럼…… 도시락 좀 배달해 주 시겠어요?”
이아영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저승 편의점 도시락요?”
강진의 말에 이아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사장님이 저희 부모님 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돈은 드릴게요.”
이아영의 말에 강진이 그녀의 부모님을 보았다.
“두 분 식사요?”
“두 분 잠도 못 주무시고 식사 도 못 하세요.”
이아영의 말에 강진이 말을 잇 지 못했다.
‘입맛이 있을 리가 없죠.’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입맛이 있 을 리가 없고, 밥을 먹고 싶은 생각도 없을 것이다.
자식이 죽었는데 밥이 입에 들 어가겠는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이아영이 말했다.
“제가 죽었지만, 부모님은 사셔 야죠.”
“제가 식사를 준비한다고 드시 겠습니까?”
“제가 좋아하던 음식들로 하면 드실 거예요.”
이아영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시는 것이 그거라면 해 드
리겠습니다.”
“감사해요.”
“그럼 메뉴는 어떻게 해드릴까 요?”
“제가 돼지갈비찜을 좋아해요.”
“갈비는 어떤 사이즈로 해 드릴 까요?”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쪽갈비 있잖아요. 그걸로 해 주세요.”
“김치 갈비찜 느낌인가요?”
“간장 베이스로 해 주세요. 찜
닭을 돼지 쪽갈비 넣고 한다는 느낌으로요.”
이아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적었다.
그 외에 이아영이 원한 메뉴는 시원한 콩나물국과 오이 무침이 었다.
“그거면 되나요?”
“그거면…… 두 분 식사하실 거 예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 이거든요.”
이아영의 말에 그녀를 보던 강 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일단 아영 씨부터 식사를 하세요.”
강진의 말에 이아영이 음식을 보다가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젓가락으로 전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이아영이 밥을 먹는 것을 보던 강진이 그녀가 밥을 다 먹자 자 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녁 되기 전에 도시락 가져오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이아영의 말에 고개를 숙인 강 진이 장례식장을 나섰다. 그리고 는 병원을 보았다.
“흠……
뭔가 생각을 하던 강진이 입맛 을 다셨다.
“최호철, 최호철, 최호철.”
화아악!
강진의 부름에 최호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문 다 했어?”
최호철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문은 했는데…… 혹시 단서 좀 찾으셨어요?”
“허 선생님하고 병원 돌아다니 고 있는데 아직은 없어.”
“외과 의사 귀신들은 좀 보셨어 요?”
“아직 못 찾았어.”
“병원이라 찾기 쉬울 것 같았는 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디 돌아다니는 모양이야.”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저 집에 좀 갔다 와야 할 것 같아요.”
생각을 해 보니 자신이 병원에 서 탐문을 한다고 해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은 이아영이 부탁을 한 도시락을 만들려는 것이다.
“그렇게 해. 여기는 나하고 허 선생님하고 둘이 탐문하면 될 것 같으니까.”
“고맙습니다.”
“그럼 이따 보자.”
최호철이 병원으로 서둘러 뛰어 가자 강진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 * *
뒷문에 차를 세워두고 식당 안 에 들어선 강진은 TV를 보고 있 는 직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강진이 들어오는 것을 본 배용수가 말했다.
“야, 택배 왔어.”
배용수가 놀란 얼굴로 하는 말 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어디 있어?”
“여기.”
배용수가 카운터를 가리키자 강 진이 그 위에 놓인 상자를 볼 수 있었다.
〈헬 팡〉
헬팡이라 써진 택배 상자를 보 며 강진이 뜯을 때, 배용수가 말 했다.
“택배 기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는 택배 왔다고 사인해 달라고 하는데 깜짝 놀랐다.”
“그래? 갑자기 나타나?”
“그렇다니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택배 상 자를 마저 뜯고는 안을 보았다. 그 안에는 강진이 주문한 향수 열 개가 에어캡에 잘 싸여 있었 다.
그것을 하나 뜯어본 강진이 냄 새를 맡아보았다. 은은하게 기분 좋은 향이 나는 것에 강진이 배 용수를 보았다.
“향수인데 뿌려 볼래?”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요리사가 무슨 향수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직원들을 보다가 여자 귀신들에게 다가갔 다.
“이거 한 번 뿌려 볼래요?”
“향수요?”
“귀기를 감춰주는 건데 향이 어 떤지 한 번 맡아 보세요.”
여자 귀신들이 손목을 내밀자
강진이 살짝 뿌려 주었다.
치익! 치익! 치익!
“향 어때요?”
강진의 물음에 여자 귀신들이 손목을 비비고는 향을 맡았다.
“은은한데요.”
“향이 조금 강하면 좋겠는데?”
여자 귀신들의 의견에 강진이 물었다.
“기분 나쁜 향은 아니죠?”
“향 나쁘지는 않아요.”
그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택 배 상자를 카운터 밑에 놓고는 향수를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는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 다.
“이아영 씨가 도시락 부탁했 어.”
“도시락?”
“부모님들 식사 못 하신다고 도 시락을 부탁하셨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자식이 죽었는데 입맛이 있겠 어?”
“그래도 뭐라도 드셔야지.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입맛 도는 음식으로 해 드려야 겠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산 사 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