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가게 안으로 들어온 귀신들이 빈자리에 알아서 앉으며 말했다.
“이 사장님, 계란 볶음밥에 고 등어구이 좀 주세요.”
“고등어구이? 맛있겠네. 나도 좀 주세요.”
“오늘은 생선인가? 그럼 나는 갈치 좀 주십시오.”
“나는 돼지소금구이요! 아! 마
늘 좀 같이 넣어서 해 주세요!”
귀신들이 하나둘씩 주문을 하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금방 해 드리겠습니다. 아! 매 운 닭발볶음하고 칼칼한 육개장 은 바로 나오는데.”
“그럼 그것도 한 접시씩 주세 요.”
“육개장은 술국처럼 떠먹을게 요.”
“네.”
강진이 주방에 들어가자, 배용 수가 이미 고등어와 갈치를 프라 이팬에 올려 굽고 있었다.
“빠르네.”
“주문한 순간부터 손님의 기다 림은 시작이지. 그 기다림은 최 대한 적게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내는 것이 요리사의 일이다.”
“주문한 순간부터 손님은 기다 린다. 좋은 말이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계란을 꺼낸 뒤 그릇에 깨 넣고 그것을
섞으며 말했다.
“맛집 같은데 가면 손님들이 줄 을 서서 기다리잖아.”
“그렇지.”
“근데 줄을 서서 기다린 삼십 분은 참아도 자리에 앉아서 주문 하고 이십 분 넘어가면 짜증 내 는 것이 손님이다.”
그러고는 배용수가 계란을 프라 이팬에 부으며 말했다.
“지금도 손님들의 짜증은 쌓이 고 있다.”
말을 하며 배용수가 닭발을 가 리키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는 볶아져 있는 닭발과 육개장을 그릇에 담아 홀로 내놓았다.
“닭발하고 육개장요.”
강진의 말에 귀신 직원들이 음 식을 손님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가게 안은 귀신들로 북적거렸 다. 평소에도 이 시간에는 손님 이 많았는데, 오늘은 처녀 귀신 들이 열 명 넘게 모이니 더 북적
거리고 있었다.
일부 귀신은 자리가 없어서 선 채로 술과 음식을 먹고 있었다.
“오늘따라 손님 많네.”
“그러게. 그리고 오늘따라 여자 도 많네.”
귀신들 몇이 처녀 귀신들을 살 피는 것에 최호철이 힐끗 그들을 보았다.
“전에 음식이나 먹고 가라고 했 던 것 같은데……
최호철의 말에 여자 귀신들을 보던 귀신들이 슬며시 고개를 숙 였다.
그런 귀신들을 보던 최호철이 힐끗 처녀 귀신들을 보았다.
‘죽어서까지 여자를 밝히고……. 겁대가리도 없이 처녀 귀신들을 여자로 보다니……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대체로 좋은 귀신이 많지만…… 여자 귀 신에게 집적대고 싶어 하는 귀신 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최호철이 나서서 그런 귀신들을 쏘아보거나 반 협 박해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최호철은 이곳의 경호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귀신들로 북적거리는 홀 에서 강진은 김소희와 같이 자리 한 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시간까지 술을 마신 적 없 으시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기분 좋 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
금 시간이 12시 반이니 평소보다 30분 넘게 술을 마시며 자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먹으니 기분이 좋군.”
평소에는 다른 귀신들을 배려하 기 위해 빨리 먹고 빨리 자리에 서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 없이 느긋하게 음식과 술을 즐길 수 있었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오신혜를 보고는 말했다.
“오신혜 씨 정도면 여기서 어디 까지 갈 수 있습니까?”
“신혜?”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오신혜 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저 아이 정도라면…… 경기도 정도는 오갈 수 있겠군.”
“다른 도로는 못 가는 겁니까?”
“경기도 넘어서는 저 아이의 귀 력으로는 아직 힘들 것이네.”
“그럼 전주에는 갈 수 없습니
까?”
“갈 수 없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짐작을 했 다.
아무리 처녀 귀신이라고 해도 죽은 지 일 년 정도밖에 안 된 오신혜라면 활동 범위가 그리 넓 지 않을 테니 말이다.
“혹시 갈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말했다.
“왜 죽은 자가 자신이 죽은 곳 에서 멀리 못 떠나는 줄 아는 가?”
“이유가 있는 겁니까?”
“자신이 죽은 땅이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땅이요?”
“그렇다. 생전에 죽으면서 흘린 피가 땅에 스며들면 그곳에 한이 남는데, 그 한이 잡아당겨 승천 을 못 하고 땅에 붙어 있게 하는
것이다.”
소주를 한 모금 마신 김소희가 말을 이었다.
“그 한이 깊으면 지박령이 되고 그 한이 적으면 귀신이 되는 것 이다.”
“그 한이 더 적으면 승천하는 것이군요.”
“맞네. 그래서 어린 귀신들은 그 땅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지. 당기는 힘을 이겨낼 힘이 없 기 때문에.”
“그 말씀은?”
“내가 저 아이를 끌고 전주로 데려갈 수도 있다. 하지만 도착 하는 것과 함께 다시 저 아이는 땅에 끌려 죽었던 곳으로 돌아가 게 될 것이다.”
김소희의 말에 이혜선이 슬며시 말했다.
“요요하고 비슷해요.”
“ 요요?”
이혜선이 김소희를 보자, 그녀 가 말을 해도 된다는 둣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이혜선이 말했다.
“줄이 닿는 곳까지는 요요가 가 지만, 줄이 끝나면 다시 돌아오 는 거예요.”
“그럼 아가씨께서 신혜 씨를 잡 고 있으시면 되는 것 아닌지요?”
“뭔가를 강제로 하는 것은 무리 가 가는 일이네.”
말과 함께 김소희가 이예림을 보았다.
“땅에 묶인 예림이를 풀었을 때 북한으로 튕겨져 나갔던 것을 기 억하나?”
“물론입니다.”
“그와 같은 일이 생길 수 있 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이예림을 보다가 말했다.
“고무줄을 잡아당겼을 때 끊어 지는 것과 비슷한 건가 보군요.”
“맞네.”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말했다.
“신혜 장기 기증받은 사람들 보 러 가려는 것 같은데…… 어차피 귀신의 삶은 길고도 길어요. 시 간이 해결해 줄 거예요.”
“시간이라……
“승천하지 않는 이상 귀신의 시 간은 아주 많아요. 뭐…… 승천 하면 그게 가장 좋지만.”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오신혜를 보았다.
“신혜 씨 기술은 좀 배웠어?”
“처녀 귀신 기술이 하루아침에 뚝딱 배울 수 있는 건가요? 가은 이와 예림이도 아직 걸음마 단계 인데.”
“그럼 신혜 씨 내일은 나하고 같이 있을게.”
“데이트하게요?”
이혜선의 농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지방은 멀어서 못 가지만 서울 에 있는 분들은 찾아가 볼 수 있 을 것 같아서.”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입을 열 었다.
“귀신은 서로를 억압하지 않는 다. 가고 싶으면 가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한다. 신혜가 가고 싶다면 굳이 우리한테 물을 이유 가 없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김소희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어떻게, 이렇게 계신 것은 마 음에 드세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가게를 스윽 흩어보았다. 그리고는 살짝 입가가 올라갔다.
“북적거리는 것이…… 장터 주 막 같군.”
“주막도 가 보셨습니까?”
“오라버니께서 장날에 장터 구 경을 시켜 주쳤었지. 아주 북적 북적한 것이 보기가 좋았네.”
기분 좋은 얼굴로 미소를 짓는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앞으로 자주 오세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김소희가 승낙을 하며 소주를 마시는 것에 마음이 놓인 강진이 그녀의 잔에 소주를 재차 따라주 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강진은 오신
혜와 최호철을 차에 태우고 마포 로 향하고 있었다.
마포의 한 아파트 단지에 차를 주차한 강진이 아파트를 올려다 보았다.
“주소는 여긴데요.”
“지금 집에 있을지 없을지는 모 르겠다.”
“여자가 받았다고 했죠?”
“29살 여자 기증받은 장기는 간. 지금은 서른 살 됐겠네.”
말과 함께 최호철이 차에서 내 리며 말했다.
“내가 주변 귀신들한테 그 여자 아는지 물어보고 올게.”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렸다.
스윽! 스윽!
그리고 그런 강진의 옆으로 선 주와 최훈, 그리고 오신혜가 내 렸다.
선주와 최훈은 차에 박힌 지박 령이라 가게에 남을 수 없어 따
라온 것이다.
“놀이터다.”
선주의 말에 강진이 그녀가 보 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아파 트 놀이터가 있었는데 일요일이 라 그런지 아이들이 그네를 타거 나 시소를 타고 놀고 있었다.
“겨울인데도 나와 노네요.”
“이제 거의 봄이죠.”
최훈이 놀이터 옆 땅을 보는 것 에 강진이 그 시선을 따라갔다. 땅에서는 작지만 파란 풀들이 조
금씩 나고 있었다.
“하긴 곧 2월이네요.”
강진의 말에 선주가 웃었다.
“옛날에는 2월에도 추웠는데.”
“그렇죠. 근데 요즘은 겨울 끝 나면 바로 여름, 여름 끝나면 바 로 겨울이라…… 어쨌든 애들은 좋겠네요. 밖에서 놀기도 하고.”
강진의 말에 선주가 미소를 지 었다.
“아이들 귀엽네요.”
웃으며 선주가 슬며시 최훈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최훈도 그 녀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두 사람이 죽 지 않았다면 그들도 저렇게 뛰어 노는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 있을 것이었다.
아이들을 멍하니 보는 두 사람 을 보던 강진이 힐끗 오신혜를 보았다.
오신혜 역시 아이들을 보고 있 었다.
“아이 좋아하세요?”
“좋아해요.”
말을 하던 오신혜가 미소를 지 었다.
“정말 좋아해요.”
오신혜의 말에 그녀를 보던 강 진이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 주위에는 그들의 어 머니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모 여서 이야기를 하며 음료를 마시 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때 오신혜
가 홀린 듯이 걸음을 옮겼다.
“신혜 씨?”
강진의 부름에도 오신혜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그네에서 한 네 살 정도 되는 아이의 등을 밀어주는 아가씨에게 다가갔다.
“당신이군요.”
오신혜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그 녀가 보는 아가씨를 보았다.
‘저 여자가 신혜 씨 간을 받은 사람이구나.’
여자는 조금 안색이 좋지 않았 지만 아이의 등을 밀어주는 것이 행복해 보였다.
“으쌰! 으샤!”
아이의 등을 밀어주는 여자를 보던 강진의 눈에 한 남자가 웃 으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날씨 따뜻하네.”
“다음 주에는 어디 놀러 가자.”
“아직까지는 무리하면 안 돼.”
“선생님도 조금씩 움직이는 건
이제 된다고 하셨어.”
“그래도…… 조심하자.”
웃으며 남자가 들고 온 보온병 에서 따뜻한 물을 내밀었다.
“이거 마셔.”
남자의 말에 여자가 한숨을 쉬 고는 물을 쭈욱 마셨다.
“으! 맛없어.”
“간에 좋대.”
“나 임신했을 때보다 더 내 몸 챙기는 것 같아. 내가 좋아, 내
간이 좋아?”
여자의 투덜거림에 남자가 웃으 며 그녀의 배를 손으로 쓰다듬었 다.
“정말 감사하게 받은 간인데 영 미 동생처럼 소중하게 키워야 지.”
남자의 말에 여자가 웃으며 자 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래. 영미처럼 건강하게 키우 자.”
“아빠! 밀어줘!”
여자와 이야기를 하던 남자가 웃으며 아이를 밀었다.
휘익! 휘익!
“더 세게 밀어줘!”
아이의 말에 남자가 웃으며 더 강하게 밀자 여자가 급히 말렸 다.
“애 다쳐.”
“다치면 어때.”
“뭐‘?”
“애들은 다치면서 커야 건강한
거야.”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여자의 말에 남자가 웃으며 천 천히 밀었다. 그런 두 사람의 대 화를 보던 오신혜가 미소를 지었 다.
“결혼을 했네요.”
오신혜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오신혜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애도 있어요.”
오신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가 튼튼해 보이네요.”
“건강한 것이 최고죠.”
웃으며 아이를 미는 남자와 그 남자를 보며 음료를 마시는 여자 를 보던 오신혜가 미소를 지었 다.
“처음이라 다행이에요.”
“처음요?”
“내 몸을 가져가신 분이 못 살
면 어쩌지? 나쁘신 분이면 어쩌 지? 하는 걱정이 있었어요.”
강진이 말없이 보자 오신혜가 미소를 지었다.
“내 몸이…… 이 가족의 행복이 되었어요.”
미소를 지으며 여자와 가족을 보던 오신혜가 입을 열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화아악!
그리고 희미한 빛과 함께 오신
혜의 모습이 사라졌다. 오신혜가 사라진 그 빈자리를 보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