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JS 금융에 들어온 강진은 강두 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단한 통화를 마친 뒤, 강두치가 창구 앞으로 와서는 강진을 자신의 사 무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강진이 전에 와 본 적이 있는 사무실을 둘러볼 때, 강두치가 서천꿀물을 주었다.
서천꿀물을 받은 강진이 강두치 를 보며 물었다.
“혹시 이아영 씨 잘 올라갔나 요?”
“이아영 씨라……
강두치가 뒷말을 흐리는 것에 강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승천 못 하신 겁니까?”
“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귀신이…… 되신 건가요?”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그건 아닙니다.”
“그럼 방금 승천 못 하셨다는 건……?”
“여기에 오시기는 했습니다.”
“왔다고요?”
“승천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승천을 못 했다고 하 는 겁니까?”
“다시 내려가셨으니까요.”
“다시 내려가요?”
“승천을 하시면 일단 여기에서 잔고 확인과 돈 쓰는 방법 안내 를 받고, 저승 가면 필요한 물품 들을 쇼핑하게 됩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JS 편의점에도 저승에 서 필요한 물품들을 판매하니 말 이다.
“그러고 나서 저승으로 가는 교 통을 이용합니다. 아! 참고로 이 아영 씨는 고급 요트를 타고 가 겠네요.”
“고급 요트?”
“죽으면 건너는 강이 있는데 거 길 건너야 하거든요. 보통은 여 객선 타고 가는데…… 돈 없으면 뗏목 타고 가거나 튜브 하나 들 고 건너야 할 수도 있습니다.”
웃는 강두치를 보던 강진이 고 개를 저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 니고 이아영이 어떻게 됐냐는 것 이었다.
“그래서 이아영 씨는요?”
“이아영 씨가 이승에 있을 시간 을 좀 달라고 하셨답니다.”
“시간요?”
“부모님하고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고 싶다 하셨다는군요. 아! 이 사장님 식당에서 가족들이 모여 서 식사를 하신다고요?”
“오늘 예약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식사 자리까지는 머무실 겁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말했다.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겁니까?”
강진의 물음에 강두치가 손가락 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돈?”
“시간당 일정 체류비를 내면 이 승에서 조금은 더 머물 수 있습 니다.”
“그런 것도 되는 겁니까?”
“이 사장님은 나중에 죽어서 그 런 것 하지 마세요. 돈 엄청 드 는 서비스입니다.”
“그럼 그 식사가 끝나면 승천하 시는 겁니까?”
“이미 으에 속한 분입니다.”
단호히 말하는 강두치를 보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이아영 씨 알아보러 오신 겁니 까?”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 내밀었다.
“수표를 받았습니다.”
“수표 오백만 원 권 두 장 받았 습니다.”
강두치가 태블릿을 꺼내 수표 내역을 적을 때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최태만 씨는 누구죠?”
“잠시만요.”
강두치가 일단 수표를 입력하고 는 말했다.
“일단 수표 입력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최태만 씨는……
태블릿을 톡톡톡 두들기고는 말 했다.
“오신혜 씨 유골함 있는 납골당 경비원이 시네요.”
“아! 그 할아버님이 최태만 씨 군요.”
“납골당 관리하시면서 귀신들에 게 배려를 많이 해 준 것 같습니 다.”
“최태만 할아버지는 귀신 못 보 시던 것 같은데.”
“귀신들 깨끗하고 편하게 지내
게 청소도 자주 하고 길 묻는 분 들에게 친절하게 해 주는 것도 그곳에 지내는 귀신들에게 좋은 일이지요. 그래서 그분에게 귀신 들이 돈을 조금씩 주고 승천을 하는데 그 돈이 꽤 쌓였어요.”
“그럼 VIP?”
“VIP가 어디 쉽게 되겠습니까? 쉽게 되면 VIP가 아니지요.”
웃으며 말을 한 강두치가 말했 다.
“최태민 씨 정도면 그냥 저승
가서 크게 고통 받지 않는 정도 는 되겠네요.”
“착한 분이신 것 같던데……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입니다.”
“이 수표 보내주신 분은 어떻 게, 잘 하고 계실까요?”
강진의 물음에 강두치가 그를 보았다.
“알아봐 드릴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태블릿을 누르기 시작했다. 잠시 뭔가를 계속하던 강두치가 말했다.
“확실히 VIP라 그런지 쭈욱! 쭈 욱! 지옥을 돌파해 가는군요.”
“지옥 돌파요?”
“저승에는 여러 지옥이 있는데 그 지옥마다 다루는 죄가 나릅니 다. 어디에서는 폭력을 다루고, 어디에서는 불효를 다룹니다.”
강진이 쳐다보자 강두치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벌써 지옥 네 개를 돌 파하셨네요.”
“그래요?”
“옛날에는 49제, 100일, 1년, 그리고 3년 동안 지옥을 순차적 으로 돌았는데 요즘은 그런 절차 를 안 치르잖아요. 그래서 지금 은 삼일장 끝나면 바로 재판에 들어갑니다.”
“이승이 변하니 저승의 절차도 바뀐 거군요.”
“이제 잘 아시네요.”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승과 이승의 시간 흐 름도 차이가 날 테고……
시간의 흐름 차이가 얼마나 되 는지는 몰라도 승천한 것과 동시 에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수표도 보내주니 말이다.
“변호사를 좋은 분 쓰나 봅니 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변호사가 좋으면 지옥 통과를 빠르게 하나 보네요.”
“그럼요. 변호사가 좋으면 있는 죄도 무죄로 만들어 주는데 VIP 정도 되는 분이면 두 말 할 필요 가 없죠. 최고급 로펌에서 변호 사를 여럿 쓰고 있을 겁니다.”
“로펌? 저승에도 로펌이……
말을 하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 였다.
‘저승은 이승을 반영하니……
있겠군요.”
“그럼요. 이승에 있는 건 저승 에 다 있다 보면 됩니다.”
“그럼 별문제 없겠네요.”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고개를 저었다.
“한빙지옥에서 조금 문제가 있 을 수도 있습니다.”
“한빙지옥이면 그 엄청 추운 곳 이죠?”
“잘 아시네요.”
“전에 강두치 씨가 이야기를 해
주셨잖아요.”
“아! 내가 이야기를 했었군요.”
“거기가 불효를 다루죠?”
강진의 물음에 강두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보다 먼저 저승으로 왔으 니 불효 죄는 어쩔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그것보다 더 심한 불효 는 없으니까요.”
“그럼…… 한빙지옥에서 죄를 받아야 하는 겁니까?”
“에이! 최고 변호사가 붙었는데 무슨 걱정을 하세요. 있는 죄도 없게 만들어주는 변호사인데 ……. 거기서 며칠 체류할 수도 있지만 정식으로 한빙지옥에 들 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피식 웃었다.
“저도 저승 가면 제일 좋은 변 호사를 선임해야겠네요.”
“저승식당 주인이면 오에 속한 변호사들이 모두 일을 맡고 싶어 할 겁니다. 그때 되면 제일 일
잘할 만한 사람으로 고르세요. 아니면 호에게 맡겨도 괜찮습니 다.”
“신수호 씨요?”
“호가 오에서 승률도 좋고 일도 잘합니다.”
“제가 죽을 때쯤이면 신수호 씨 도 이미 저승 가셨을 것 같은데 요?”
신수호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으 니 말이다.
“그럼 이승 변호사 일 접고 JS
에서 일만 하니 더 열심히 하겠 죠.”
“신수호 씨는 죽어도 으에서 변 호사 일을 하는 건가요?”
“아!”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입을 막 았다.
“못 들은 것으로 해 주세요. 제 가 너무 많은 말을 했네요.”
말을 하며 웃은 강두치가 강진 을 보았다.
“더 필요하신 서비스가 있으신 가요?”
더는 신수호의 변호사 일에 대 해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듯 화제 를 돌리는 강두치를 보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충분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와 주십시오.”
강두치가 일어나 문을 열어주자 강진이 마시던 서천꿀물을 마저 마시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JS 금융에서 나온 강진은 편의 점에서 김치볶음과 소시지, 그리 고 음식 몇 개를 골랐다.
혼술 하기 좋아 보이는 돼지 수 육과 돼지 껍데기를 본 강진이 그것도 집어서는 계산을 마쳤다.
JS 금융에 온 김에 직원들 먹을 음식들을 좀 사 가려는 것이다.
“염화 마라탕면은 어떠셨어요?”
“아…… 아직 안 먹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나요?”
“아니요. 요즘 좀 바빠서요. 다 음에 먹어 볼게요.”
고개를 끄덕인 직원이 계산을 마치자 강진이 웃으며 봉지에 물 건들을 담았다.
‘맛있는 식사를 해 드려야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봉지를 들고는 편의점을 나섰다.
* * *
띠링!
문이 열리는 소리에 강진이 홀 로 나왔다. 가게 입구에서 이아 영의 부모님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뒤에는 이아영 도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이아 영과 작게 눈인사를 한 강진이 부모님에게 고개를 숙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강진의 말에 들어오던 어머니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의 손을 잡았다.
“이 사장님 배려로 아영이 잘 보내고 왔습니다.”
어머니의 말에 강진이 재차 고 개를 숙이고는 문을 보았다.
“다른 식구 분들은?”
“다들 집에 보냈어요.”
“같이 식사하러 오신다고……
강진의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영이가 다니던 식당에서 저 희 둘이 조용히 식사를 하고 싶
어서…… 보냈습니다.”
“그러시군요.”
“동생이 13인분 음식을 맞췄다 고 들었습니다. 그 식대는 같이 계산하겠습니다.”
아버님의 말에 강진이 자리를 가리켰다.
“식사 준비 다 했습니다.”
강진의 말에 부모님이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가 자신의 앞자리 를 빼놓고는 맞은편에 가서 앉았 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아영이 앉 는 것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강진의 시선에 이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장님이 오고 가신 후에 식사 를 하실 때면 제 자리를 늘 마련 해 주세요.”
이아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으로 가서는 음 식들을 내오기 시작했다.
음식들이 나오자 어머니가 미소 를 지으며 강진을 보았다.
“아영이 음식도 챙겨 주셨네 요.”
어머니의 말에 강진이 이아영이 자리한 곳을 보았다. 이아영의 앞에도 밥과 국 그리고 수저가 놓여 있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강진의 말에 부모님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음식을 본 두 사람의 얼굴에 미 소가 더욱 짙어졌다.
딸이 좋아하던 음식과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한 상 차려져 있었던 탓이었다.
“소주 한 병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아버지가 멸치볶음 을 보았다.
“내가 이 멸치볶음에 소주 좋아 한다고 아영이가 이야기했지요?”
“가끔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아영이가 사장님과 친했나 봅 니다. 가져다준 반찬이 다 우리 가 좋아하는 것들이고...
“조금 친했습니다.”
강진의 말에 아버님이 멸치볶음 을 집어 입에 넣고는 미소를 지 었다.
“일하고 와서 멸치볶음에 간단 하게 소주 한 병 마시면 그게 그 리 좋았어요. 잠도 잘 오고 말입 니다.”
웃으며 멸치볶음을 씹던 아버님 이 말했다.
“아영이가 나 술 먹는 것을 싫 어했습니다.”
“그래도 당신 좋아한다고 아영 이가 멸치볶음은 안 떨어지게 만 들어 놓고 했잖아요.”
“빈속에 먹으면 속 버린다
고…… 했었지.”
피식 웃은 아버님이 멸치볶음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이제 안 먹으려고 요.”
아버님의 말에 이아영이 피식 웃었다.
“나 살아 있을 때 끊지. 나 죽
고 나서 끊네.”
이아영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고 개를 숙였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아버님의 말에 강진이 주방으로 가다가 슬쩍 이아영을 보았다. 그리고 손을 슬쩍 들었다가 내렸 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잘 먹겠습니다.”
강진이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영 씨 안 데리고 들어와?”
주방에 있던 배용수의 말에 강 진이 조리대를 보았다. 조리대에 는 JS 편의점에서 사온 음식들을 새로 양념하고 조리해 만든 요리 들이 있었다.
이승에서 마지막 식사 맛있게 먹으라고 강진이 최선을 다해서 만든 것이었다.
“아영 씨는 이것보다 저 음식이
더 맛있을 것 같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힐끗 가 림막 사이로 홀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기에도 저기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인다.”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홀 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나도 저 음식이 먹고 싶네.”
정확히는…… 부모님과 함께 밥 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 강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