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점심 무렵, 황민성이 가게에 들 어왔다.
“오셨어요?”
음식 서빙을 하던 강진이 인사 를 하자 황민성이 가게 안의 손 님들을 슬쩍 보았다.
“사람……이지?”
“그럼요. 밤 11시부터 새벽 1시 까지만……”
강진이 슬쩍 주위를 보고는 작 게 속삭였다.
“귀신 타임이에요.”
“아……
고개를 끄덕인 황민성이 빈자리 에 앉으며 말했다.
“그런데 용수는?”
“주방에서 음식 만들고 있어 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주방을 힐끗 보았다. 하지만 가림막 때
문에 주방 안이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선물이라는 게 뭐야?”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오늘 김치 전골 맛있게 잘 됐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주위에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고 개를 끄덕였다.
“맛있겠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주방에 가서는 배용수에게 말했다.
민성 형 왔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빼서 황민성을 보고는 웃었다.
“좋으시 겠다.”
“아직 말 안 했어. 이따 손님들 가면 말하려고.”
오늘 강진이 황민성을 부른 것 은 옥난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 지만 지금 손님들이 있으니 일단 식사부터 하게 하고 주려는 것이 다.
띠링!
풍경 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돌
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강 상식이었다.
안으로 들어온 강상식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에 강진이 아차 싶었다.
황민성이 들어오면서 딱 만석이 됐는데 미처 가게 입구에 만석이 라는 표시를 못 해둔 것이었다.
그에 강진이 강상식에게 다가갔 다.
“지금 자리가 마땅치 않은 데……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 았다.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나 혼자 이니 합석해도 되면 이리 앉으세 요.”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그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하겠습니다.”
강상식이 자리에 앉자 강진이 밖으로 나와서 아크릴 판에 글을 적었다.
〈만석입 니 다. 지금부터 20분 정 도 대기하셔야 합니다.〉
아크릴 판을 가게 앞에 세워 둔 강진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황민성과 강상식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것을 본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강 이사님은 식사 뭐로 해 드 릴까요?”
“오늘 메뉴 김치 전골이던데 그 걸로 주십시오.”
오픈톡에 올라온 메뉴를 보고 온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강진이 주방으로 가서 배용수에 게 말했다.
“1인분 더.”
“이미 메뉴 들어갔어.”
배용수가 이미 짐작을 했다는 듯 가스레인지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두 개의 김치 전골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밥과 반찬을 담아 서는 가져다주었다.
“전골은 2분 정도 걸립니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 상식이 밥을 떠서는 반찬과 함께 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황민성도 별말 없 이 반찬과 밥을 먹기 시작했다.
강진은 전골이 다 끓자 두 사람 에게 가져다주고는 주변을 둘러 보며 손님들 반찬을 채워주었다.
“잘 먹고 가.”
태광무역 직원들이 웃으며 가게 를 나서는 것을 배웅한 강진은 식탁을 정리하며 강상식과 황민 성을 보았다.
둘은 별다른 말없이 음식을 먹 었다. 황민성이 다 먹은 듯 입가 를 닦으며 물을 마실 때 강상식 은 한 그릇을 더 주문해 남은 반 찬과 함께 마저 먹었다.
그 모습을 보던 황민성이 슬쩍 일어나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자리가 없어 합석을 했을 뿐이니
자리를 이동한 것이다.
그런 황민성에게 강진이 말했 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야관문차나 줘.”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야관문차를 가져다주 었다.
“그래서 주겠다는 건 뭐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힐끗 강 상식의 눈치를 보고는 카운터에
있는 옥난을 가지고 왔다.
“이거요.”
“난?”
“옥난이라고 하는 겁니다.”
“옥난? 옥(玉)이라는 이름이 달 린 것을 보니 귀한 건가 보네.”
옥(獄)을 옥(玉)이라 생각하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하긴, 난에 감옥 옥 자를 쓰지 는 않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작게
속삭였다.
“저승에서 피는 난이에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흠칫 놀 란 얼굴로 뒤로 살짝 물러났다.
“저……
“쉿!”
강진이 입을 손으로 가리자 황 민성이 침을 삼키고는 강상식의 눈치를 한 번 보더니 작게 말했 다.
“이런 걸 왜 나한테 줘?”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난을 내밀었다.
“향 좀 맡고 계세요. 설명은 이 따가 해 드릴게요.”
향을 맡으라는 말에 황민성이 눈을 찡그리며 옥난을 보았다. 지옥에서 자라는 난의 냄새를 맡 자니 꺼림칙한 것이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일어나서는 다른 식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 다.
정리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강
상식이 입가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8000원입니다.”
강상식이 만 원을 꺼내 내밀자 강진이 잔돈을 거슬러줬다. 그 잔돈을 받아든 강상식이 문득 말 을 꺼냈다.
“19일에 대회가 있습니다.”
“대회? 축구요?”
강상식이 강진에게 ‘대회’란 말
을 할 만한 것은 장희섭과 관련 된 축구뿐이었다.
“전남에서 전국대회가 열립니 다. 거기에 애들 출전합니다.”
“19 일요.”
“밥도 먹고 그거 이야기도 해 줄 겸 해서 왔습니다.”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강상식이 황민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먹었습 니다.”
“다음에 또 봅시다.”
“그러지요.”
강상식이 몸을 돌려 가게를 나 서는 것을 보던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변했네.”
“그래요?”
“예전 같았으면 나한테 이런저 런 말을 걸었을 텐데…… 밥만 먹더라고.”
예전의 그라면 황민성에게 아부
멘트를 날리며 친한 척했을 텐 데, 강상식은 그런 모습을 보이 지 않은 것이다.
“사람이 변해야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흠칫하며 어딘가를 바라봤다.
주방에서 비닐장갑들이 두둥실 떠서는 홀로 나오고 있었다. 그 비닐장갑 중 한 쌍은 문 손잡이 로 가더니 문을 잠갔다.
달칵!
그 소리에 황민성이 침을 삼켰 다.
꿀꺽!
그러거나 말거나, 비닐장갑을 낀 귀신들은 그릇들을 치우고 식 탁을 마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강진을 보 았다.
“아침에도…… 직원들이 계시 네.”
“직원이니까요.”
“그런데…… 문은 왜 잠가?”
황민성의 조금 불안한 목소리에 강진이 웃었다.
“지금 이 모습 손님들이 들어와 서 보면 안 되니까요.”
“아……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당황스러 운 눈으로 두둥실 떠서 주방으로 가는 식기들을 보았다.
“귀신 손님에 귀신 직원까 지…… 참 대단한 곳이다.”
황민성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웃 을 때 옆 의자가 당겨졌다.
그리곤 식탁에 노트와 펜이 놓 였다. 배용수가 노트와 펜을 들 고 와서 앉은 것이다.
배용수는 비닐장갑을 끼고 빠르 게 글을 적어 내려갔다.
〈형, 이건 옥난이라고 하는 건 데요. 정신을 맑게 해 주는 효능 이 있어요.〉
배용수가 적은 글에 강진이 웃 었다. 황민성에게 좋은 소식을
직접 전해 주고 싶어서 노트와 펜을 들고 온 모양이었다
‘귀엽네.’
마치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모 습이 아닌가?
글을 적은 배용수가 노트를 황 민성 쪽으로 보여주었다. 허공에 노트가 떠 있는 것을 놀란 눈으 로 보던 황민성이 내용을 읽더니 의아한 듯 말했다.
“정신을 맑게 해 줘?”
〈정신이 맑아지는 차나 식재 같
은 것이 있지만, 실제로 먹어 보 면 효과가 그리 크지 않잖아요? 형 메밀차나 메밀 음식 먹고 정 신이 맑아지는 느낌 받으셨어 요?〉
“나는 딱히 못 느꼈는데?”
〈메밀은 정신이 맑아지는 효능 이 있다고 알려져 있고, 본초강 목에서는 위를 튼튼하게 하고 기 운을 돋아주며 정신을 맑게 해 준다고 되어 있어요. 하지만 장 복하지 않는 이상은 딱히 정신이 맑아진다는 느낌은 못 받죠.〉
배용수의 글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하지만 이 옥난은 저승에서 나 는 난이라 효과가 끝내줘요.〉
“그래?”
〈강진이하고 제 생각에는 귀신 들 정신도 맑게 해 주는 난이라 서 어머님께도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배용수가 적은 글에 황민성이 놀란 눈으로 노트를 보다가 난을
보았다.
“정신이 맑아진다고?”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글을 다시 적었다. 조금 답답하기는 했지만 강진은 그저 지켜보았다.
배용수가 자신이 직접 알려 주 고 싶어 했으므로.
〈귀신들이 지……〉
하지만 배용수가 설명을 너무 자세하게 하려는 것 같자 강진이 급히 그 손을 잡았다.
‘지옥에 대해서 형이 알아서 좋 을 것이 없어.’
지옥을 알면 사는 것이 재미가 없을 수 있었다. 사람이 이번 생 을 열심히 사는 것은 인생이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 다.
원 코인 인생이라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사는 것이지, 저승이 라는 새로운 코인이 있다는 것을 알면 지금보다는 더 열심히 살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극단적으로 이번 생은
포기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 할 수도 있었다.
황민성이 그런 선택까지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저승, 혹은 지옥 에 대해 알아서 좋을 것은 없다 고 생각했다.
그에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정신이 맑아지는 효과가 있어 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으려는 강진의 모습에 황민성이 옥난을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저승 물건인데 사 람이 이렇게 가까이해도 되는 거 야?”
“저도 가까이하잖아요.”
강진이 옥난에 코를 대고 향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웃으며 말했 다.
“그리고 제가 아는 변호사님 사 무실에도 이게 몇 개 있어요.”
“ 변호사?”
의아해하는 황민성을 보며 강진 이 말했다.
“많지는 않지만 저승과 귀신에 대해 아는 것은 저만이 아니에 요.”
“그렇구나.”
“순순히 인정하시네요.”
“귀신도 실제로 있으니까.”
입맛을 다시며 황민성이 옥난을 보다가 슬며시 손을 가져다 댔 다.
손에 스치는 옥난을 느끼며 황 민성이 말했다.
“그럼 이게 어머니한테 효과가 있을 거라는 거지?”
“사실 그건 저도 잘 몰라요.”
“몰라?”
“다만 옥난의 향이 정신이 맑아 진다는 것은 사실이니 어머님에 게 효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에 요.”
말을 한 강진이 뭔가 생각이 난 듯 덧붙였다.
“아! 그리고 확실히 두통에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두통?”
“저희 손님들 중에 몇 분이 두 통이 있다고 했는데 밥 먹고 나 니 머리가 안 아프다고 좋아하셨 거든요. 아마 옥난의 향 때문에 두통이 나아지신 것 같아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신기한 듯 옥난을 보았다.
“효과는 있다는 거네.”
황민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그를 보며 말했다.
“어머님에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향이 좋고 두통에도 좋으니 어머니 옆에 두 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아니에요.”
강진을 지그시 보던 황민성이 배용수가 앉아 있는 곳을 보다가 비닐장갑을 손으로 잡았다.
정확히는 비닐장갑을 끼고 있는 배용수의 손이었다. 손을 맞잡는
순간, 황민성은 흠칫했다.
배용수의 손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황민성은 손을 놓지 않았다.
“이 난이 효과가 있든 없든…… 고맙다.”
“효과가 있었으면 해요.”
배용수의 말을 강진이 전해주 자, 황민성이 웃으며 배용수의 손을 힘주어 잡아 주고는 손을 떼어냈다.
“형 오늘은 어머니 옆에 있어야
하니까 안 되고, 며칠 내에 저녁 에 한잔하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황민성이 웃으며 옥난을 조심스 럽게 안다가 말했다.
“이거 만져도 되는 거지?”
“ 괜찮아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조심히 옥난을 안아서는 가게를 나섰다.
그런 황민성을 배웅을 하던 배용 수가 강진을 보았다.
“먹으면 안 된다는 말 해야 하 지 않냐?”
저승의 식물이니 먹으면 귀신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누가 난을 먹어?”
“그래도 주의하라고는 해야지. 실수로 먹으면 어떻게 해?”
저승의 물건을 먹으면 귀신을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먹지 말라, 하지 말라 하면 호 기심에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 이야. 이럴 때는 그냥 아무 말 안 하는 게 좋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 말라고 하면 해 보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효과가 있었으면 좋 겠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강진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