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점심 장사 시간에 임상옥과 최 광현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강 진이 둘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오늘 점심 약속을 잡은 것이다.
“그래, 무슨 부탁할 것이 있 니?”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아셨네요.”
“그냥 식사하러 오라는 거면 12
시쯤에 약속 잡았겠지. 그런데 식사 시간이 1시면 뭐 따로 할 말이 있다는 거겠지.”
임상옥의 추리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죄송한데 사람 한 명 좀 찾 아 주실 수 있을까요?”
“사람? 누구?”
“강원도 시골 마을에서 24년 전 에 죽은, 최종석이라는 일곱 살 짜리 아이의 가족입니다.”
“24년 전?”
“네.”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잠시 생 각하다가 물었다.
“그…… 귀신 쪽 일인가?”
임상옥의 말에 밥을 먹던 최광 현이 흠칫 한 얼굴로 주위를 둘 러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지금은 없어요.”
없어?”
“여기에는 없어요.”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슬며시 주방을 보았다.
“거기는 있죠.”
몸을 부르르 떠는 최광현의 모 습에 강진이 웃었다.
“전에는 좀 괜찮으셨는데 지금 은 무서우세요?”
“때로는 안 무섭고, 때로는 무 섭고…… 사람의 마음이 그런 것
아니겠냐?”
최광현의 말에 피식 웃은 강진 이 임상옥을 보았다.
“그 일곱 살 귀신이 집에 가고 싶어 해요.”
“귀신하고 사람이 엮여서 좋은 일 없는 것 아니니?”
“그렇기는 한데…… 집에 돌아 가면 승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 보내 주려고요.”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잠시 생 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 세상 일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테니까. 그래. 알아봐 주마.”
귀신들 쪽에 대해 이제는 편하 게 생각하는 듯 임상옥이 쉽게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다가 임상옥이 강진을 보았 다.
“그런데 요즘 많이 바쁘니?”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머리를 긁었다.
“사건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
합니다.”
요즘 바쁘다 보니 귀신들을 통 해 사건 해결을 돕는 걸 못 하고 있었다.
“새벽이든 낮이든 너 한가할 때 부탁 좀 하자. 나쁜 놈들 잡으면 죽은 사람들도 편히 갈 수 있지 않겠냐?”
“그렇죠.”
“시간 날 때 언제든지 전화해. 너 불편하지 않게 최대한 편의 맞출 테니까.”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쉬던 것을 지금 은 이틀 쉬지만…… 쉬는 날마다 할 일이 있어서 따로 시간을 내 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내야겠다.’
속으로 중얼거리던 강진이 문득 임상옥을 보았다.
“그…… 생각을 해 보니 제가
굳이 안 가도 될 것 같습니다.”
“네가?”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주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호철 형!”
강진의 부름에 최호철이 슬쩍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왜?”
“형이 여기 일 좀 도와주시겠어 요?”
“나야 좋지. 죽어서나 살아서나
나는 나쁜 놈 잡는 경찰이니까.”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임상옥을 보았다.
“교수님이 필요한 건 귀신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 아니 존재잖아요.”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슬쩍 주 방 쪽을 보았다.
“최호철 형사가 나를 도와주면 좋기는 한데…… 이야기가 안 되 잖아?”
“교수님이 알아봐야 할 사건을
말해 주시면 호철 형이 그곳 가 서 귀신들과 이야기해 보는 거 죠. 그래서 정보 찾으면 저한테 말해주고, 그걸 제가 교수님에게 전달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되겠네.”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임상옥을 보았다. 임상옥도 일리가 있다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는 말했다.
“최호철 씨 어디에 있지?”
강진이 최호철이 있는 곳을 가 리키자, 임상옥이 자리에서 일어 나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임상옥의 인사에 최호철이 웃으 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해 봅시다.”
최호철이 한 말을 임상옥에게 전해 준 강진이 말했다.
“그럼 언제부터 시작하실 건가
요?”
“내일 자료 정리해서 다시 오 마.”
“알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임 상옥이 말했다.
“더 부탁할 것은 없고?”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혹시 이야기 하나만 들어 주시 겠어요?”
“말해 봐.”
강진이 시골에서 만난 할아버지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 다.
강진의 이야기를 들은 임상옥이 혀를 찼다.
“나쁜 사람들이네. 몸으로 낳지 않아도 가슴으로 낳아서 키웠는 데……
“정말 나쁘네요. 자기 자식들까 지 맡겼다는 건 그들도 새엄마를 믿긴 믿었다는 건데.”
최광현도 강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새엄마가 나쁜 사 람이라면 애를 절대 맡기지 않았 을 것이다.
“그렇죠.”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자식 키워도 아무 소용 없다고 하는 거지. 하! 친엄마 아니라고 키워준 정을 이렇게 배 신하네.”
최광현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강
진이 임상옥을 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야 당연히 나쁘다 생각을 하 지. 하지만 나쁘다, 착하다는 걸 물어보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자식들이 새엄마에게 찾아갈 방 법을 묻는 거겠지?”
“네.”
강진의 답에 임상옥이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니?”
“어떻게요?”
“마음 같아서야 그놈의 자식들 다 엿 먹이고 싶지만…… 아무리 미운 자식이라도 엿 되면 부모 마음만 아픈 법이지.”
임상옥의 말에 최광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부모는 자식을 못 버리니까요.”
“요즘은 그게 아닌 경우도 있기 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렇지. 그리고…… 자기 친자식도 아닌 자식들의 손자, 손녀까지 키운 것을 보면 그 할머니 심성도 어
지간하신 것 같고.”
잠시 말을 멈춘 임상옥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가슴으로 낳아도 부모는 부모 니까.”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진의 물음에 임상옥이 눈을 감았다.
“쉬운 일은 아니야. 이건 사람
개과천선을 시켜야 하는 일이니 까. 그리고 사람은 쉽게 고쳐지 지 않는 법이지.”
임상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물었다.
“엿 먹이는 방법은 쉽나요?”
“왜,쉽게 가게?”
“그냥 어떤 방법이 있나 해서 요.”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잠시 생 각을 하다가 말했다.
“가장 쉬운 방법이야 돈이지.”
“돈요?”
“반찬 주는 부모, 돈 많은 부 모…… 둘 중 어느 쪽에 자식들 이 자주 갈지는 정해져 있지. 그 리고 요즘은 돈으로 효도를 사는 시대기도 하고.”
무슨 의미인지 안 강진이 고개 를 끄덕이며 물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돈이 없는데 요?”
“돈이 왜 없어? 집이 있잖아.”
“집?”
“시골이라고 해도 마당도 있고 집도 크다며.”
“그렇죠.”
“그럼 최소한 일억은 넘지 않겠 어?”
“일 억?”
“말 그대로 아주 최소한으로 잡 았을 때 일억쯤 하지 않겠어?”
그리고는 임상옥이 강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평생 모아도 통장에 못 찍는 액수지.”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억…… 어떻게 생각 하면 몇 년 벌면 모을 수도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버는 것이 있으면 쓰는 것이 있다. 나이를 먹고 연봉이 높아진다 해도 그에 따라 돈이 들어가야 할 곳이 더 생기기 마 련이다.
가족이 생기고, 차가 생기고, 집 이 생기고…….
그렇다 보니 일반인의 통장에 일억이 있기란 힘든 일이었다.
“큰돈이죠.”
강진이 다시 중얼거리자 임상옥 이 말했다.
“씁쓸하지만, 요즘은 돈이 효자 를 만드는 시대다.”
임상옥이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집 팔고 이사 간다고 말을 해. 그게 가장 깔끔하다.”
“이 사요?”
“이사 간다고 하면 집 판 돈이 궁금해서라도 찾아오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 좋은 꼴 못 볼 텐데요.”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테지. 집 판 돈 내놓으라 고 깽판 치고 난리를 치겠지.”
“그럼…… 할머니 가슴 아프실 텐데.”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피식 웃 었다.
“그럼 된 거지.”
“네?”
“지금도 아프시잖아. 크게 한 번 데이면 그 자식들에 대한 정 도 떨어질 테고…… 남보다 못 한 자식이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남이 낫다.”
강진이 임상옥을 보자, 임상옥 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 번 크게 아프고 애들한테
미련을 버리는 것이 할머니한테 는 좋을 것 같구나. 돈 보고 오 는 자식들이라면…… 돈 없으면 어떻게 되겠니?”
임상옥의 말에 최광현이 물었 다.
“그런데 집 가치를 알면 가끔씩 이라도 올 것 같은데 왜 아예 안 오는 거죠?”
할머니에겐 번듯한 집과 땅이 있다.
그 유산을 생각해서라도 얼굴
비치고 연 맺고 살 것 같은데 왜 안 오나 싶은 것이다.
“간단해. 친자식이 없으니까.”
“친자식요?”
“부모가 죽으면 자식한테 유산 이 물려지는 것은 알지?”
“그렇죠.”
최광현의 답에 임상옥이 재차 한숨을 쉬며 말했다.
“친자식이 없는 새엄마가 죽으 면 자연스럽게 지금 자식들에게
상속이 되니…… 굳이 찾아갈 이 유가 없는 거지. 안 찾아가도 상 속받는 것에 지장은 없으니까.”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 그렸다.
“너무…… 나쁜 것 아닙니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 다.”
그러고는 잠시 말이 없던 임상 옥이 입을 열었다.
“나야 범죄자들 잡는 심리학자 라 나쁜 놈들 쪽으로 생각이 많
이 돌아가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쁜 놈들 잡으 려면 나쁜 쪽 생각을 먼저 해야 하니까.”
“그 말씀은?”
“자식들한테 뭔가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사 년 동 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을 사정 은 연 끊었다는 것밖에는 모르겠 다.”
할아버지 귀신이 죽은 지 4년이 니 말이다.
고개를 저은 임상옥이 몸을 일 으켰다.
“이제 가 봐야겠다. 그 차종석 이라는 아이 집은 아마 오늘 중 으로 알아볼 수 있을 거다. 확인 되면 문자로 넣어주마.”
“감사합니다.”
임상옥이 가게를 나가다가 아크 릴 통에 만 원짜리 두 장을 넣었 다.
“그냥 가셔도 되는데.”
“제자 가게에서 공짜로 밥 먹고
다닐 정도로 가난한 사람은 아니 다.”
“만사천 원이면 되는데.”
“그럼 다음에 육천 원 덜 받 아.”
임상옥이 가게를 나가자 그 뒤 를 따르던 최광현이 강진을 보았 다.
“19일 졸업식인 건 알지?”
“알고 있어요.”
“올 거지?”
“형이 졸업장 좀 맡아 주면 안 돼요?”
“왜, 안 오게?”
“딱히 친한 애들도 없고......
“왜 없어. 나 있잖아.”
강진을 보며 웃은 최광현이 말 했다.
“알바하면서 힘들게 졸업했는데 사진은 찍어야지. 와. 형이 자장 면 사 줄 테니까.”
“자장면요?”
“원래 이삿날과 졸업식은 자장 면인 거다.”
웃으며 어깨를 툭 친 최광현이 문을 나서자 강진이 그를 배웅해 주었다.
그러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배용수가 슬며시 주방에서 나왔 다.
“어떻게 할 거야?”
주방에서 대화를 다 들은 배용 수가 묻자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이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럼?”
“할아버지 모셔서 그분이 하고 싶다는 대로 해야지.”
“좀 잔인하지 않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잔인?”
“고르라는 거잖아. 자식인지, 아 내인지.”
강진이 그를 보았다. 듣고 보니 배용수의 말이 맞았다.
그에 잠시 말이 없던 강진이 한 숨을 쉬었다.
“진짜…… 어려운 문제 맡아 버 렸네.”
그 집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지 만, 확실히 머리도 아프고 씁쓸 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