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저녁 장사를 준비하면서 강진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할아버지에 게 선택을 맡겨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누구를 선택하든 한 쪽은 포기 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강진이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 있는 것에 배용수가 커피를 한 잔 타다 주었다.
“고민 많아 보인다.”
“길 물어 본 가격이 생각보다 크네.”
작게 중얼거리며 강진이 커피 잔을 들자 배용수가 말했다.
“화해하기는 어려운가?”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한 번도 안 찾아온 사람들이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다가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양심이 없어.”
“양심이 있었으면 이런 일이 생
겼겠어?”
“……그것도 그러네.”
두 사람이 기분이 안 좋은 듯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패륜적 인 일이라 둘 다 기분이 좋지 않 았다.
배용수도 가족이 없는 혼자라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말이 다.
한숨을 쉬던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고민하지 마.”
자신이 고민을 해도 답이 없다. 선택은…… 할아버지 몫이다. 그 에 강진이 입을 열었다.
“이목한, 이목한, 이목한.”
화아악!
강진의 부름에 할아버지 귀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떻게 됐어?”
이목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할아버지의 선택 이 필요합니다.”
“내 선택?”
“자식들하고 할머니, 완전히 남 이 될 수 있습니다.”
강진이 사정을 이야기하자 이목 한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자네 말대로 되면…… 마누라 속이 많이 상하겠네.”
“지금도 속은 상하실 겁니다.”
강진의 말에 이목한이 지그시
눈을 감고는 입을 열었다.
“그깟 돈 때문에 와서 난리를 치는 자식들이면…… 내가 잘못 키운 것이고, 더 이상 우리 마누 라에게 짐이 되게 할 수 없어.”
이목한이 강진을 보았다.
“내 자식도 소중하지만…… 난 내 여자도 소중해. 그렇게 해 줘.”
“할머니가 상처를 받을 겁니 다.”
강진의 말에 이목한이 한숨을
쉬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 고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명절이 되면…… 우리 마누라 몸도 안 좋은데 하루 종일 음식 을 만들어. 전도 붙이고, 나물도 하고, 갈비도 하고.”
“명절이니……
말을 하는 배용수의 몸을 강진 이 툭 쳤다. 그에 배용수가 눈을 찡그리며 입을 다물었다.
강진은 할아버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일 년에 연락 한 번 안 하는 자 식들이 명절이라고 올 리가 없었 다.
그런데도 혹시나 올까 싶어 음 식을 만드는 할머니…….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보는 할아버지의 마음…….
말하지 않아도 애절하고 안쓰러 웠다.
“곧 구정이야. 차라리 연 끊 고…… 올해에는 음식 안 하고 편히 지냈으면 좋겠어.”
이목한이 한숨을 쉬고는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 마누라 집은 어떻 게 팔게 할 건가? 우리 마누라 내가 지은 집이라 평생 거기서 안 나가고 살 생각인데……
“그건......"
띠링!
문이 열리는 소리에 강진이 고 개를 돌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신수호였다.
“신수호 씨?”
의아해하는 강진을 보며 신수호 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이목한에 게 다가갔다.
“신수호 변호사입니다.”
신수호의 말에 이목한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당신도…… 내가 보입니까?”
이목한의 말에 신수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를 당겼다.
“일단 앉으시지요.”
그러고는 앞자리로 가서 신수호
가 앉자 이목한이 강진을 보았 다.
“앉으세요.”
강진의 말에 이목한이 자리에 앉았다. 그런 이목한을 보던 신 수호가 강진을 보았다.
“일을 참 만들어서 하십니다.”
신수호는 가게에서 벌어지는 일 을 알고 찾아온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젓고는 이목한을 보 았다.
“이목한 씨, 저를 변호사로 선 임하시 겠습니까?”
“변호사? 귀신인 제가 변호사를 선임합니까?”
“이목한 씨는 사실 즈의 VIP는 아닙니다. 저에게 의뢰를 하시려 면 지금 가진 잔고로는 부족합니 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 까?”
“저희 사무실에서 일을 하셔서 돈을 갚으셔야 합니다.”
“일 2”
강진이 의아한 듯 신수호를 보 았다.
‘아. 신수호 변호사 사무실
에서 일하는 귀신들이 있다고 했 었지.’
신수호의 이승 로펌에서는 귀신 들을 부린다. 한끼식당에서 일하 는 귀신들처럼 말이다.
“그럼 이목한 할아버지가 그쪽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입니 까?”
강진의 물음에 신수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단…… 돈을 모두 갚기 전까지 승천은 하실 수 없습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승천을 못 하는 겁니까?”
“이승이나 저승의 법칙은 오고 가는 겁니다. 저는 이승의 법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목한 씨는
노동으로 갚아야 합니다. 이해하 셨습니까?”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급히 말 했다.
“그 기간은 어떻게 됩니까?”
“어떠한 일을 맡느냐에 따라 다 르지만 최저 시급으로 하루에 24시간 일한다고 치면……
“24시간요?”
강진이 놀란 눈으로 보자 신수 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빚진 귀신에게는 귀권 같은 것 은 없습니다. 빚지면 빚진 만큼 일을 하고 죄를 졌으면 죄 지은 만큼 벌을 받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얼마나 일을 하게 되는 겁니까?”
“한 2년 열심히 일을 하면 될 겁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잠시 뭔 가를 계산하다가 눈을 찡그렸다.
“지금 최저 시급이 8,350원입니 다. 그럼 24시간 일을 하면 수당
을 제하고 20만 400원입니다. 그 럼 1년이면 7천만 원이 넘습니 다. 그럼 2년이면 일억 사천인 데…… 수임료가 그렇게 많이 되 는 겁니까? 전에는 이렇게 많이 안 받으셨잖아요.”
전에 채영호는 이천만 원으로 의뢰를 받았었던 것에 비해, 너 무 많은 것이다.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이승 돈보다 저승 돈을 벌기가 더 어렵다는 것은 이강진 씨도
아실 겁니다.”
“그건…… 그렇죠.”
이승은 몸이나 머리를 써서 돈 을 벌지만, 저승은 오직 선행을 통해서만 돈을 모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승의 최저 시급과 저승의 최 저 시급은 그래서 차이가 많습니 다.”
“그래요?”
“한 십 분의 일 정도라고 보시 면 됩니다.”
“아......" 그럼……
“제가 이번 경우에 받는 수임료 는 천오백만 원입니다. 그래서 계약 기간은 정확하게 735일 하 고 네 시간 정도입니다.”
신수호의 말에 이목한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그럼 저에게 어떤 법적 서비스 를 해 주시는 겁니까?”
이목한의 말에 신수호가 강진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일단 이강진의 계획에서 부족
한 부분을 채워주고 그에 따른 이승의 법적 서비스, 그리고 자 식들에 대한 법적 제재를 해 드 릴 수 있습니다.”
“제재?”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기셨을 겁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신수호의 말에 이목한이 한숨을 쉬었다.
“나 죽고 나서 부동산 명의 이 전을 자식들한테 해 줬습니다.”
“아내 분에게는? 집만 남기신
겁니까?”
“집은 원래 지을 때부터 마누라 명의로 해 줬습니다. 부동산은 아내가 자기에게 돌려도 자기 죽 으면 나중에 세금이 이중으로 나 간다고 자식들 명의로 돌려줬습 니다.”
이목한의 말에 배용수가 혀를 찼다.
“그래서 재산은 죽을 때 줘야 하는 건데.”
세금 아낄 생각은 나중에 자식
들이 해야 할 일이지, 산 사람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죽을 때까지 쥐고 있 어야 자식들이 한 번이라도 더 찾아오고 하는 건데.”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강진도 이런 이 야길 많이 들어 보았다.
신수호가 이목한을 보며 물었 다.
“유언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어디 부잣집도 아니고,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유언장 준 비해 놓겠습니까?”
이목한의 말에 신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동산 가치는 어떻게 됩니 까?”
“시골에서 농사짓던 논하고 밭 해서 한 삼억 정도 될 겁니다.”
말을 하던 이목한은 열이 받는 지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데 그 땅 자식 놈들이 다 팔아 버렸습니다. 지 엄마 농사
라도 지으면서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 농사지을 땅까지 다 팔아 버립니까! 그 땅에서 난 쌀 하고 고추며 옥수수 지들 입에 다 넣어 줬더니!”
이목한의 말에 강진이 얼굴올 굳히며 중얼거렸다.
“정말 나쁘네요.”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힐끗 그 를 보았다. 그에 강진이 입을 다 물자 신수호가 이목한을 보며 말 했다.
“그럼…… 대충 일 억씩 물려받 았겠군요.”
“그럴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신수호가 말했 다.
“그럼 오늘 저녁 11시에 오셔서 유언장을 작성하겠습니다.”
“유언장? 귀신인 제가 어떻게 유언장을……
“가능합니다. 자세한 것은 이강 진 씨에게 물어보시고, 유언 내 용은 사후 4년 구정 전에 아내
김윤자의 선택에 의해 유산 상속 을 철회한다는 내용으로 하겠습 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내용을 자제분들에게 알리 겠습니 다.”
“자식들에게요?”
“그럼 반응을 할 겁니다. 자신 들이 한 행동이 있으니 큰일 났 다 싶어서 찾아오거나 연락을 할 겁니다.”
“아내한테 해코지하지 않을까 요?”
“해코지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신수호의 물음에 이목한의 얼굴 이 굳어졌다.
“내가 아는 자식들이라면 안 할 것 같지만, 제가 죽고 난 후 자 식들이라면…… 할 것 같습니 다.”
“그럼 가사도우미를 보내겠습니 다. 가사도우미가 자제분들의 해 코지를 막게 하겠습니다.”
“가사도우미? 아내가 받으려 할 까요?”
“그것은 제가 컨트롤할 수 있습
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 데 제가 죽은 지 4년이나 됐는데 유산을 다시 조정할 수 있습니 까?”
한번 상속이 된 유산을 다시 철 회할 수 있나 싶어 묻는 이목한 을 보며 신수호가 말했다.
“사람들이나 귀신이나 거물 변 호사에게 큰돈을 주고 의뢰를 하 는 이유는…… 불가능을 가능하 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아……
어쩐지 자기 자랑하는 것 같은 느낌에 강진이 입맛을 다실 때 신수호가 이목한을 보았다.
“쉬운 일이 아니니 돈을 받는 겁니다. 일단 집은 주택 연금 신 청을 하겠습니다.”
“주택 연금요?”
“할머니가 집을 팔기 싫다고 하 니, 주택 연금을 신청하는 겁니 다. 그럼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까지 연금이 나오니까요.”
“내 국민연금 받고 있는데 그게 중복이 됩니까?”
“국민연금과 주택 연금은 중복 이 가능합니다. 고객님 국민 연 금이 얼마나 나오는지는 모르지 만, 둘 다 받으시면 할머님 노년 생활은 풍족하실 겁니다.”
“그건…… 그렇겠군요.”
“그리고 주택 연금 수령 후 건 물 남은 금액은 기부한다고 하면 후손들에게 유산 상속이 되지 않 습니다.”
“그거 유산 어쩌고 하는 소송하 면 돌려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이목한이 자신이 아는 것을 묻 자 신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송으로 저를 이길 수 있다 면, 받을 수도 있겠지요.”
“아……
강진이 슬며시 감탄을 토했다. 어째, 신수호가 이런 것을 좀 좋 아하는 느낌이었다.
‘평소 보던 것과는 다른데?’
그런 생각을 할 때 신수호가 몸 을 일으켰다.
“서류 작성은 저녁에 와서 하겠 습니다.”
그러고는 신수호가 문으로 향하 자 강진이 그를 따라 나가다가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오셨어요?”
강진의 물음에 신수호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입을 열었다.
“할머니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신수호가 문을 열고 나가자 강진이 그의 뒷모습을 보 다가 뒤늦게 말의 의미를 알았 다.
‘아…… 신수 형제들도 가슴으 로 낳은 자식들이었지.’
신수 형제 넷 모두 김복래 여사 가 입양을 해서 가슴으로 키운 자식들이었다.
그녀처럼 남의 자식을 친자식처 럼 키운 할머니의 사정을 듣고 오게 된 모양이었다.
김복래 여사님, 아니 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