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밤 11시, 식당 안 귀신들은 조 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평소라면 시끌시끌해야 할 곳이 었지만 귀신들은 모두 술잔만 조 용히 들었다 내릴 뿐, 말이 없었 다.
그리고 모든 귀신들이 보는 곳 에는 현신한 이목한이 벽을 배경 으로 카메라에 대고 말을 하고 있었다.
“……나 이목한은 사후 4년 후 에 내가 남긴 재산의 모든 처분 을 김윤자에게 위임한다.”
신수호가 적어 준 원고를 이목 한이 모두 읽자 강진이 슬며시 버튼을 눌러 녹화를 껐다.
“자, 됐습니다.”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서류를 하나 꺼내 이목한에게 내밀었다. 이목한이 서류를 보았다.
“이건 뭡니까?”
“이목한 씨의 분풀이를 도울 서
류입니다.”
“분풀이?”
“이목한 씨가 저에게 3억을 빌 렸다는 차용 증서입 니 다.”
“3억? 제가요?”
“물론 이건 자제분들이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에 제시될 겁니 다.”
“애들한테 받아 내려고요? 하지 만 제가 죽었는데?”
“유산을 상속받으면, 빚도 상속
을 받는 겁니다.”
“그럼 혹시 제 아내에게 빚이 상속이 되는 건……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 다. 자제분들이 유산 상속을 포 기한다면 차용 증서를 그들 앞에 서 찢을 겁니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빚을 받고 말고는 제 마음이니 까요.”
신수호가 종이를 가리켰다.
“서 명하십시오.”
신수호의 말에 이목한이 잠시 서류를 보다가 서명을 했다. 이 목한의 서명이 담긴 차용증을 가 방에 넣은 신수호가 몸을 일으켰 다.
“자제분들에게는 내일 저희 직 원들이 찾아가서 연락을 할 겁니 다.”
“그 아내를 지켜 준다는 도우미 분은요?”
“도우미도 내일 아침에 할머니
댁으로 출근합니다.”
신수호가 문을 열고 나서다가 이목한을 보았다.
“따라오세요.”
“ 네?”
“오늘부터 일 시작입니다.”
신수호의 말에 이목한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 을 옮기려 할 때, 강진이 급히 말했다.
“일을 할 때 하더라도 식사라도
하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이목한을 보았다.
“계약은 계약입니다. 제가 이목 한 고객님의 일을 시작한 시점에 서 고객님의 시간은 저의 것입니 다.”
“하지만 한 시간, 아니 삼십 분 정도는……
강진의 부탁에 신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부터 2년이라는 시간의 1
분, 1초까지 모두 제 것입니다.”
신수호가 이목한을 보았다.
“가시죠.”
신수호의 말에 머뭇거리던 이목 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목한이 강진을 보고는 고맙다 는 듯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는 신수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 다.
이목한과 신수호가 가게를 나서
는 것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식사라도 하고 가시게 해 주 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귀 신 한 명이 다가왔다.
“지금 사람 변호사한테 법적 일 을 부탁한 겁니까?”
“네.”
“그거 혹시 나도 가능할까요?”
강진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에게 말을 건 자를 보았다.
“돈 있으세요?”
“돈…… 없죠.”
“돈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 하세 요.”
“몸으로?”
“방금 나가신 분 식사 한 번 제 대로 못 하고 가신 거 보셨죠?”
강진이 문을 보자 귀신도 그를 따라 문을 보다가 입맛을 다셨 다.
“2년 동안……
귀신도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작게 중얼거린 귀신이 자리로 돌아간 뒤 소주잔을 들자, 강진 은 주방에 들어가 음식들을 만들 기 시작했다.
다음 날, 강진은 아침 일찍 최 동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최동해는 전화를 바로 받았다.
[허억! 허억! 형.]
“숨소리가 왜 이래?”
[지금 산 올라가고 있거든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시학원의 명물, 아침 등산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너무 이른 시간에 전화한 건가?”
[아니에요. 어차피 산 오르는 중인걸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너 혹시 오늘이나 내일, 서울 한 번 올 수 있냐?”
[서울에요?]
“형이 어디 갈 곳이 있는데 와 서 짐 좀 나를 수 있나 해서. 형 이 아르바이트 비는 줄게.”
[돈은 괜찮은데…… 저 죄송한 데 설날까지는 운동만 하려고 해 요.]
“아……
[죄송해요, 형. 지금 페이스로 빠지면 구정까지 구십 초반 될 것 같아요. 그…… 부모님이 좋 아하실 것 같아서 최대한 빼려고
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두 달 만에 살이 쪼옥 빠진 최동해를 보면 부모님 이 좋아하기는 할 것이다.
“그래, 알았다. 대신 몸이 이상 하거나 힘들면 바로 연락해.”
[알겠습니다.]
“그럼 설날 후에 시간 한번 내 라.”
[네.]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핸 드폰을 보았다.
‘종석이 빨리 떼어내는 것이 좋 다고 했는데……
그러고는 강진이 핸드폰 달력으 로 구정을 확인했다. 구정까지는 앞으로 열홀.
차종석이 문제기는 한데, 최동 해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평 생 뚱뚱한 모습으로 부모님에게 구박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친척들에게도 좋은 모습
을 보여주고 싶을 테고 말이다.
‘열흘이라…… 일단 지켜보자.’
이혜미가 잘 보기를 바라며 강 진이 맞은편에 있는 임상옥을 보 았다.
임상옥은 서류를 펼쳐 놓고 사 건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건대 쪽에 서 뻑치기 살인사건하고 발발이 사건, 이렇게 두 건을 확인하려 합니다.”
임상옥의 말에 그 옆에서 사건
파일을 보던 최호철이 고개를 끄 덕였다.
사건 파일을 천천히 넘기며 건 대에서 확인할 사건들을 이야기 하던 임상옥이 강진을 보고는 물 었다.
“통화했어?”
“네.”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앞에 놓 인 메모장을 보며 말했다.
“보면 알겠지만 차종석 군 부모 님은 둘 다 생존해 계시고, 동생
인 차은미 씨는 현재 신훙서에서 구급 대원으로 일하고 있어.”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상옥은 차종석의 현 주소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의 근 황도 알아다 주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최호철과 함께 귀신들을 대상으로 탐문을 하기 로 해서 아침 일찍 온 것이다.
“가족 사정은 어때요?”
“부모님 둘 다 일하시는 것 보 면 건강은 나쁘지 않은 것 같고,
딸도 공무원이니 사정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구급 대원이라…… 오빠가 그 렇게 된 것이 영향이 있나 보네 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러고는 임상옥이 자리에서 일 어났다.
“그럼 최호철 씨, 갑시다.”
임상옥의 말에 최호철이 서류를 보다가 일어나자, 강진이 말했다.
“호철 형 장소에 내려 주시고 세 시간 정도 있다가 다시 태우 세요. 그리고 점심때 식사하시는 동안 제가 호철 형이 알아 온 정 보 전해 드릴게요.”
“ 알았다.”
임상옥이 가게를 나서자 강진이 최호철을 보았다.
“수고하세요.”
“나야 좋지. 살아서 못 잡은 놈 들 죽어서라도 잡아야지.”
기분 좋은 얼굴로 가게를 나서
는 최호철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점심 준비를 하기 시 작했다.
* * *
서울의 한 회사 사무실에서 중 년의 남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부장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부하직원이 수화
기를 든 채 말했다.
“로비에 변호사님이 오셨다는데 요.”
“변호사? 나한테?”
“서&백 신수호 변호사시랍니 다.”
변호사라는 말에 부장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변호사?”
그는 변호사가 자신을 찾아올 만한 일이 있나 싶었지만 생각나
는 것이 없었다.
그에 부장이 몸을 일으켰다.
“지금 내려간다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몸을 일으킨 부장, 이현운이 외 투를 챙겨서는 사무실을 나섰다.
‘변호사가 무슨 일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이현운이 엘 리베이터를 타고는 회사 로비로 내려왔다.
로비로 내려온 이현운이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하얀색 정장을 위아래로 맞춰 입은 중년인이 손 을 들었다.
“여기입니다.”
손을 든 중년인의 모습에 이현 운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무슨 옷을……
화이트 정장이라니. 아무나 쉽 게 소화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 니었다.
“저를 보러 오셨다고?”
“서&백 변호사, 신수호입니다.”
“네.”
신수호가 건네는 명함을 받아 든 이현운이 의아한 듯 그를 보 았다.
“그런데 변호사님이 왜 저를?”
이현운의 물음에 신수호가 입을 열었다.
“이목한 씨의 장남, 이현운 씨 맞으십니까?”
“제 아버지를 아십니까?”
“저는 이목한 씨의 변호사입니 다.”
“신수호 변호사님이 아버지 변 호사라고요?”
“그렇습니다.”
“아니…… 우리 집에 변호사를 쓸 일이 없는데?”
이현운의 말에 신수호가 핸드폰 을 꺼내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이건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유언 영상입니다.”
신수호의 말에 동영상을 본 이 현운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게 무슨? 이걸 아버님이 남 겼다고요?”
“보시는 대로입니다.”
“하지만 돌아가신 지가 4년이 넘었는데?”
이목한 씨께서 자신이 죽고 4 년 후 유언을 이행해 달라는 것 이 계약 내용입니다.”
“하지만…… 4년입니다.”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신수호의 물음에 이현운이 멍하 니 그를 보다가 급히 말했다.
“그럼 이게 사실이라는 겁니 까?”
“아버님 얼굴이 아니십니까?”
“그건 맞는데……
정지된 동영상 속의 아버지 얼 굴을 보던 이현운이 물었다.
“어머니가 유산을 안 준다고 하 면 어떻게 됩니까?”
“유산은 이목한 씨의 아내이신 김윤자 씨에게 상속이 됩니다.”
“하지만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이미 형제들하고 재산 다 나눴는 데?”
“다시 회수됩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버럭 고함을 지르는 이현운의 말에 신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됩니다.”
“ 아니
말을 하던 이현운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에 핸드폰을 본 이현 운이 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 이게 무슨 소리야?]
동생 이현태의 목소리에 이현운 이 힐끗 신수호를 보았다.
“너야말로 무슨 소리야?”
[여기 변호사가 찾아와서 아버 지 유산 이야기하는데 이거 다시 토해 내야 할 수도 있대.]
“변호사? 누구?”
[서&백 강인 변호사.]
“일단 끊어 봐.”
[이거 어떻게 해!]
“일단 끊어 봐. 나도 지금 변호 사하고 있어.”
[형한테도 변호사가 갔어?]
동생의 목소리를 더 듣지 않고 전화를 끊은 이현운이 신수호를 보았다.
“제 동생들한테도 변호사가 간
겁니까?”
“저 혼자 움직이기는 불편해서 직원들 보냈습니다.”
“직원?”
“저희 로펌 이름 들어본 적이 없으신가 보군요.”
신수호의 말에 이현운이 급히 핸드폰 검색창에 서&백을 검색 했다.
그러자 서&백 로펌에 관한 정 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확인하던 이현운은 놀란 눈으로
신수호를 보았다.
“로펌 대표 변호사시네요.”
“네.”
“아니…… 로펌 대표 변호사나 되시는 분이 왜 저희 아버지 변 호를 직접?”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 이 변호사를 쓸 일이 뭐가 있겠 는가? 게다가 이건 일반 변호사 도 아니고 변호사들이 모인 로펌 의 대표 변호사가 직접 찾아온 것이다.
“이목한 씨와는 인연이 있습니 다. 해서 제가 직접 관리하는 고 객이십니다.”
그러고는 신수호가 손을 내밀어 핸드폰을 가리키자, 이현운이 핸 드폰을 건네주었다.
“지금 이현태 씨와 이현미 씨에 게도 저희 로펌 변호사가 직접 가서 유언 내용을 전했을 겁니 다.”
띠링!
그 사이 이현운의 핸드폰에 알
람이 울렸다.
“이현운 씨 핸드폰으로 동영상 보냈습니다.”
신수호의 말에 이현운이 자신의 핸드폰에 동영상 메일이 온 것을 확인하고는 그를 보았다.
“그럼…… 구정에 어머님이 유 산 상속을 안 하겠다고 하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유산은 모 두 김윤자 씨에게 상속이 됩니 다.”
“하지만 그 돈 이미 다 없는 데.”
“재산은 있으시겠죠.”
“ 재산?”
“돈이야 써서 없겠지만, 그 돈 으로 산 물건 혹은 인생…… 뭐 든 남아 있습니다.”
“그게 지금 말이 됩니까.”
굳은 얼굴의 이현운을 보며 신 수호가 말했다.
“그런데 왜 어머니께서 유산을
안 줄 거라 생각을 하십니까.”
“그건……
아버지가 죽고 한 번도 찾아가 지도, 연락하지도 않았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어 우물쭈물하는 이현운을 보며 신수호가 말했다.
“유언에 불만이 있으시면 법대 로 하시면 됩니다.”
“ 법?”
“유산 역시 법적인 영역에 있습
니다.”
“아, 그럼 법대로 해결하면 되 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신수호 씨가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해결해 줄 수도 있지만 저는 이미 이목한 씨의 법정 대 리인입니다. 그래서 이현운 씨의 대리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저는 유산 상속을 법대로 처리 할 것이니, 저를 이길 수 있는
대리인을 찾으셔서 법정에서 만 나시면 됩니다.”
“그쪽을 이길 수 있는 변호사?”
이현운의 물음에 신수호가 그의 손에 들린 명함을 가리켰다.
“변호사 찾으실 때 상대가 저라 는 이야기 꼭 하십시오. 그래야 귀찮은 일 안 생깁니다.”
“귀찮은 일?”
“같은 이야기 여러 번 하는 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니까요.”
그리고는 신수호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구정 아침에 유언 집행을 합니 다. 그날 뵙겠습니다.”
신수호가 로비를 나서는 것에 이현운이 굳은 얼굴로 그 뒷모습 을 볼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 다.
이번에는 막내 여동생 이현미의 전화였다.
[오빠, 이게 무슨 말이야! 새엄 마가 유산 안 준다고 하면 다 토
해 내야……]
잔뜩 흥분한 여동생의 고함에
이현운이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