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화
도영민 가족은 식탁을 보고 있 었다. 한 상 가득 차려진 식탁에 놀람도 잠시 어머니가 도영민을 보았다.
“이거 밥값 많이 나오는 것 아 냐?”
밥값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물음 에 도영민이 웃었다.
“밥값이 비싸야 얼마나 하겠어 요. 어머니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시고 맛있게 드세요.”
도영민의 말에 아버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밥값 걱정하며 살 정도는 아니잖아. 일단 어서 먹자고. 맛있어 보이네.”
음식을 보는 아버님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계란 지단 을 보니 자신의 어머니가 해 줬 던 음식들이 생각이 나는 것이 다.
비록 자기 결혼 때문에 어머니
와 틀어지기는 했지만…… 어머 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 다.
아니, 오히려 그리움이 더 컸다.
그리움이 어린 시선으로 음식을 보는 아버님의 모습에 어머니가 웃었다.
“밥 한 끼 비싸 봤자 이십이겠 지. 그래요. 어서 먹어요.”
어머니가 웃으며 도영민을 보았 다.
“어서 먹자.”
“네.”
아버님이 젓가락을 들어서는 잡 채를 집었다.
스르륵!
윤기 흐르는 잡채를 집어 든 아 버님이 그것을 입에 넣었다.
후루룩!
입에 빨려 들어가는 잡채의 부 드러운 식감에 아버님이 미소를 지었다.
부드러우면서 쫄깃쫄깃한 잡채
의 감촉에 미소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잡채 좀 먹어봐. 맛있네.”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도 잡채를 집어서는 입에 넣었다. 그리고 씹던 어머니가 살짝 눈을 찡그리 며 아버님의 눈치를 보았다.
후루룩! 후루룩!
맛있다는 듯 먹는 그를 보며 어 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안 달아?”
“ 달아?”
정말 그러냐는 듯 되묻는 아버 님을 보며 어머니가 웃으며 고개 를 저었다.
“아니야. 맛있네.”
어머니의 말에 아버님이 다시 잡채를 씹어 먹다가 순간 멈칫했 다.
그러고는 잡채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달구나.”
“그렇지? 달지?”
어머니의 말에 아버님이 웃다가 문득 다른 반찬을 집어 입에 넣 었다.
그러고는 이번에도 웃었다.
“하!”
“왜요?”
“다네.”
웃던 아버님의 눈가가 붉게 달 아올랐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도영민이 놀란 눈을 하는 것에 아버님이 웃으며 티슈를 꺼내 눈 가를 닦았다.
“험!”
작게 헛기침을 한 아버님이 말 했다.
“너무 오랜만에 먹어서 이제야 기억이 났네.”
“뭐가요?”
“어머니 맛이야.”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와 도영민
이 잡채를 보았다.
“할머니요?”
“너희 할머니가 음식을 달게 만 드셨어.”
“전에 여기서 오징어볶음 먹었 을 때 이야기해 주셨어요. 할머 니가 음식을 달게 해 주셨다고 요.”
“근데 나는 그게 단 줄을 몰랐 어. 늘 그 음식 먹고 자랐으니 까. 그러다가 친구 집에 가서 음 식을 먹고서야 우리 집 음식이
달다는 걸 알았지.”
“그러셨어요.”
도영민의 말에 아버님이 눈가의 물기를 마저 닦고는 음식을 보았 다.
“우리…… 엄마 맛이다.”
웃으며 아버님이 잡채를 다시 크게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런 아 버님을 보던 도영민이 물었다.
“맛있으세요?”
고개를 끄덕인 아버님이 몇 가
지 반찬을 더 먹어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어서 먹어.”
그러고는 아버님이 주방 쪽을 보았다.
“사장님.”
아버님의 부름에 강진이 밖으로 나왔다.
“뭐 필요하신 것 있으세요?”
“이상하게…… 여기 오면 우리 어머니 음식 맛이 생각이 납니
다.”
그의 말에 강진이 할머니를 힐 끗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맛있다는 말인 것 같아서 기분 이 좋네요.”
“정말 맛있습니다.”
아버님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소주 한 병 주십시오.”
그에 강진이 소주와 잔을 가져 다주었다. 그것을 받아 든 아버 님이 강진을 보았다.
“저기 그런데 하나만 물어도 되 겠습니까?”
“물어보세요.”
“음식이 조금 단 것 같은데요.”
“혹시 입에 안 맞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아버님이 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요. 제 입에는 너무 맛있 습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제가 좀 달게 먹기는 하는데,
보통 사람들 입에는 많이 달게 느껴질 것 같아서요.”
아버님의 말에 도영민도 의아한 듯 강진을 보았다.
“점심때에는 간이 딱 적당했는 데 지금 반찬들은 좀 달달하네 요.”
두 사람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 며 말했다.
“전에 아버님께서 달짝지근한 오징어볶음을 맛있게 드셨기에 간을 좀 달게 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셨어요?”
“저희 가게에 오신 손님 식성은 알고 있어야죠.”
“한 번 왔을 뿐인데……
“한 번 오셨어도 손님은 손님이 죠.”
“이거 참…… 대단하십니다.”
“맛있게 드세요.”
웃으며 강진이 몸을 돌리다가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환하 게 웃으며 도영민의 밥 위에 반
찬들을 올려주고 있었다.
“우리 강아지 많이 먹어. 할머 니가 우리 새끼…… 밥도 많이 차려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해 줬어야 했는데. 많이 먹어.”
아쉬움과 미안함이 담긴 얼굴로 반찬을 올려주는 할머니의 모습 에 강진이 피식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식사 맛있게 하셔?”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만 맛있어하시는 것 같 아.”
“그럴 줄 알았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그 시선에 배용수가 고개 를 저었다.
“설탕을 너무 많이 넣더라고.”
“그래도 못 먹을 정도로 많이 넣지는 않으시던데.”
설탕을 좀 더 넣기는 했지만, 먹기 역할 정도로 많은 양은 아 니었다.
“어쨌든 과하게 넣기는 하셨 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피식 웃으며 홀 쪽을 보았 다.
홀에서는 셋이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강 진이 말했다.
“네 말대로 사람 식성이라는 것 이 가지각색이잖아. 내 입에 달 아도 저분에게 맛있으면 그걸로 된 것 아니겠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배용수가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요리사로서 보기 불편할 뿐이었다. 정도라는 게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데 옆에서 운동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을 본 것과 비슷했다.
그 사람이 운동하다 다쳐도 내 잘못은 아니지만, 보고만 있자니 불편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배용수는 할머니의 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등어조림을 집어 먹는 아버님 을 보던 배용수가 피식 웃었다.
아버님이 너무 맛있게 먹는 것 이다.
“이건…… 정말 우리 엄마 솜씨 다.”
“그래요?”
“우리 엄마가 고등어조림을 정
말 맛있게 했거든.”
“근데 이건 별로 안 다네요?”
“이건 매콤한 맛으로 먹는 거잖 아.”
웃으며 무를 집어 먹는 아버님 이 미소를 지었다.
“덜 달아서 내가 맛있게 먹었던 건가?”
웃으며 아버님이 눈가를 닦았 다.
“ 괜찮아요?”
아버님이 눈물을 홀리는 것에
어머니가 다시 티슈를 주자, 아 버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맛있어서 그래.”
입맛을 다시면서 맛있게 먹는 아버님을 보던 배용수가 미소를 지었다.
“네 말이 맞다. 달고 짜면 어떠 냐? 내 입에 맛있으면 그게 맞는 간이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홀을 보았다.
“승천하실까?”
강진이 할머니에게 음식을 부탁 하고, 그것을 도영민 가족에게 대접한 이유는 그녀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함이었다.
평생 손 한 번 못 잡아 주고, 음식 한 번 못 해 준 손자에 대 한 한을 풀어 드리려고 말이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도영민 옆에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조 금 달기는 하지만 도영민도 음식 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음식이 조금 달기는 하지만, 약 간의 단맛도 싫어하는 사람이 아
니라면 어느 정도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맛있게 먹는 도영민을 보며 할 머니가 음식 그릇을 손으로 움직 여 앞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릇 이 움직이지 않으니 아쉬워할 뿐 이었다.
“많이 먹어, 내 새끼.”
그런 할머니를 보던 배용수가 작게 중얼거렸다.
“승천이라…… 모르지.”
“보통 이 정도면 승천하시던
데.”
“그거야 너와 만난 귀신들이 운 이 좋았던 거지.”
“그런가?”
“그냥 길 가다가도 갑자기 승천 하는 이들도 있고 별의별 짓을 해도 승천 못 하는 이들도 있 어.”
잠시 말을 멈춘 배용수가 할머 니를 보며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 운이 좋으면 넘어져 도 승천하는 거고, 운이 나쁘면
백일을 기도해도 남아 버리는 것 이 귀신의 삶이지.”
“득도한 것처럼 말한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득도는 무슨……. 그냥 나도 승천하려고 여기저기 많이 알아 봤었으니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승천…… 꼭 하고 싶……지?”
원래는 하고 ‘싶냐’고 묻고 싶었 지만, 당연한 것이기에 지로 끝 냈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으며 그를 보았다.
“왜, 하지 말까?”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려고?”
“지옥도 좀 무섭고.”
배용수가 주방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요리 실컷 하면서 돈도 벌잖아.
여기에 있어도 뭐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그래도 승천은 해야지.”
“그럼 왜 물어봤어?”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네가 가면…… 외로울 것 같아 서.”
“외로워?”
“친한 친구잖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 다가 피식 웃었다.
“다른 친구 없어? 어떻게 친한 친구가 귀신인 나냐?”
“그러게 말이다.”
“지금이라도 친구 좀 사귀어. 나중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말을 돌렸다.
“아무튼 친구 좀 사겨. 귀신 말
고 사람으로.”
“귀신이든 사람이든 좋은 사 람……
말을 하던 강진이 피식 웃었다. 말을 하고 보니 이상했다.
“아니, 좋은 존재면 굳이 나눌 필요가 있겠어? 꼭 사람하고만 친구 할 필요는 없잖아.”
“그러다 동물하고도 친구 하겠 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은 문득 흰 둥이가 생각이 났다. 눈 오는
날, 옛 주인을 만나 행복해하다 가 떠난 흰둥이를 떠올리던 강진 이 웃었다.
“이미 그런 친구 있다.”
“흰둥이?”
“잘 지내나 모르겠다.”
“지금쯤 환생해서 엄마 뱃속에 서 잘 자라고 있겠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그를 보았다.
“혹시 나중에 가게 되면...... 꼭
나 보고 가야 한다.”
“ 알았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배용수 가 능청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너 나 많이 좋아하는구나?”
배용수의 농에 강진이 웃었다.
“사랑한다, 새끼야.”
“미친 새끼.”
둘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때, 할머니가 주방에 들어왔다.
“손님 왔는데 안 살피고 뭐 하
는 거야?”
“편하게 드시라고 들어와 있었 죠. 뭐 필요하세요?”
“우리 손주가 무 조림을 너무 맛있게 먹네. 무 조림 더 줘.”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냄비에 남은 무를 덜어서는 홀로 가지고 나왔다.
“무 조림이 입에 맞으세요?”
“아주 맛있습니다.”
아버님이 웃으며 무 조림을 먹
다가 강진이 가지고 나온 조림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많이 드세요.”
강진의 말에 아버님이 잠시 음 식을 보다가 다시 눈가를 손으로 닦았다.
“아버지.”
아버님이 작게 고개를 저으며 음식을 보다가 도영민을 보았다.
“어머니가 너 먹는 것 보면 정
말 좋아하셨을 텐데.”
“할머니가요?”
“할머니가 너를 미워하시지는 않았어.”
“알고 있습니다.”
“너…… 할머니 원망하지는 않 지?”
그가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도영민을 보았다. 그런 아버지의 시선에 도영민이 웃었다.
“할머니를 왜 원망해요. 할머니
는 제 할머니잖아요.”
도영민의 말에 할머니가 입술을 깨물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듣는 것은 아니지만, 손자의 입 에서 할머니라는 말을 들은 것이 다.
그녀가 도영민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할머니가 성격이 너무 못돼서 우리 착한 손주 손 한 번 못 잡 아 보고, 안아주지도 못했네. 할 머니가 너무 미안하고…… 너무 사랑해.”
말을 하며 할머니가 도영민의 머리를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화아악!
그 순간, 할머니의 몸에서 희미 한 빛이 흐르며 사라지는 것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펄럭! 펄럭!
그리고 천장에서 종이 두 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