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333화 (331/1,050)

332화

“저는 좋아요.”

장춘심의 말에 이원익이 그녀를 보았다.

“우리 집에 애기가 오는데 괜찮 겠어? 내 집 설계에 아이는 없었 는데.”

이원익이 지은 집은 장춘심과 둘이 지내기에 좋게 설계가 된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설계 중심엔 아 이가 없었던 것이다.

“설계가 무슨 상관이에요. 그냥 가족이 사는 건데.”

“그건…… 그렇지.”

이원익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황 민성을 보았다.

“나는 우리 춘심이가 좋다고 하 면 다 좋지. 그리고 뭐 우리야 귀신인데 우리 의견이 무슨 필요 야?”

두 귀신의 말을 강진이 전해주

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같은 지붕 아래, 같은 밥솥에 서 나온 밥을 먹고 있으니 두 분 께도 말씀은 드려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배려해 줘서 고맙네.”

이원익의 말에 황민성이 작게 웃었다.

“그래도 두 분이 있으니 다행입 니다.”

“다행?”

무슨 말이냐는 듯 보는 강진을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두 분이 있으니 이상한 귀신들 이 집에는 못 들어올 것 아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이원익을 보았다. 그 시선에 이원익이 고 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우리 집에 이상한 놈들 들어오게 내가 두고 볼 것 같아?”

이원익이 웃는 것에 강진이 황 민성을 보았다.

“밥값은 확실히 해 주신다네 요.”

강진의 말에 이원익이 그를 보 았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만…….

“감사합니다.”

황민성이 감사해 하는 것에 강 진이 웃으며 차를 마셨다.

‘같은 지붕 아래 같은 솥에서 나온 밥을 먹으면…… 그걸 가족 이라 하는데.’

* *  *

강진은 계란말이를 만들고 있었 다.

촤아악! 촤아악!

노릇노릇하게 익은 계란말이를 세운 강진이 옆 단면을 익히고는 도마 위에 올렸다.

스륵! 스륵!

식칼이 부드럽게 지나갈 때마다 계란말이가 예쁘게 잘려나갔다.

잘린 계란말이를 접시에 예쁘게 담은 강진이 그것을 들고 부엌 밖으로 나갔다.

“계란말이 나왔습니다.”

강진이 허연욱의 탁자에 계란말 이를 올리며 앉았다.

“고맙습니다.”

허연욱이 웃으며 계란말이를 하 나 집어 입에 넣었다.

“맛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으며 강진이 맥주를 따라주자 허연욱이 그것을 받았다. 그런 허연욱을 보며 강진이 음식들을 보았다.

지금 허연욱의 테이블에는 마른 오징어에 마요네즈에 간장을 버 무린 소스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안주 좀 더 좋게 드시 지 않고요?”

강진의 말에 허연욱 옆에 앉아 있던 최호철이 오징어를 소스에 찍으며 말했다.

“왜, 이것도 좋고만.”

“그래요?”

“가끔은 이렇게 마른안주에 한 잔하는 것도 좋지.”

최호철의 말에 강진의 옆에 있 던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 이런 것도 좋죠. 불에 이십 초만 살짝 구우면 그걸로 완벽한 안주가 되잖습니까.”

배용수가 오징어를 소스에 찍고 는 웃었다.

“간장에 마요네즈, 거기에 매운 고추 썰어 넣었다고 이렇게 맛있 을 수 있는 거냐?”

“매운 고추가 신의 한수지?”

“이런 소스 배합법 몇 개만 더 나와도 우리 같은 요리사 쫄딱 망하겠다.”

배용수가 소스를 듬뿍 찍어 바 른 오징어 다리를 입에 넣고 씹 었다.

오징어 다리를 우물거리는 배용 수를 보던 강진이 옆에서 같이

오징어 다리를 씹는 최호철을 보 았다.

“다니는 일은 어떻게, 성과 좀 있으세요?”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한숨을 쉬었다.

“살인범 네 명 잡고, 지금은 사 건 다섯 개 증거 모으고 있다.”

말을 하는 최호철의 얼굴이 좋 지 않은 것에 강진이 물었다.

“범인 잡았는데 표정이 왜 그러 세요?”

사건 해결하는 것은 좋은 데…… 증거를 주는 것이 피해자 들이잖아.”

“아……

강진이 작게 탄식을 토했다.

“살인 사건이었나 봐요?”

“사람 죽은 사건이 가장 악질이 라 그쪽으로 먼저 파고 있어.”

그러다가 최호철이 웃었다.

“아! 범인 잡으니까, 세 분은 승천하시더라.”

“그거 다행이네요.”

“다행이지.”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분들은 지박령이세요?”

강진이 무슨 의미로 말을 했는 지 안 최호철이 고개를 끄덕였 다.

“아니었으면 내가 데리고 왔겠 지.”

“그…… 도시락이라도 좀 싸 드

릴까요?”

“도시락?”

“위치 말씀해 주시면 제가 도시 락 싸서 한번 다녀올게요.”

“시간 되겠어?”

“점심 장사 끝내고 잠시 가서 도시락만 배달하고 오면 시간 많 이 안 먹으니까요.”

“그럼 좀 해 주라.”

말을 한 최호철이 맥주를 따르 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귀신 중에 안 불쌍한 귀신이 어디에 있겠냐마는…… 그분들은 살해까지 당하고 그 자리에 묶여 있으니 더 안쓰럽고 신경이 쓰인 다.”

“반찬 잘 해서 가져다 드리겠습 니다.”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그윽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고맙다.”

최호철의 닭살 돋는 눈빛에 강 진이 고개를 젓고는 오징어를 소

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이것도 나쁘지 않네.’

그냥 마요네즈에 간장, 그리고 매운 고추를 썰어 넣어 만든 소 스에 구운 오징어를 찍어 먹을 뿐인데 맛이 좋았다.

오징어를 먹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네 말대로 이런 소스 몇 개만 나와도 요리사 망하겠다.”

강진의 농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위험한 소스다.”

배용수가 오징어를 먹는 것을 보던 강진이 허연욱을 보았다.

“그런데 요즘 바쁘셨어요?”

“바쁜 것은 아니고…… 신경 쓰 이는 환자가 있어서 그 옆에 좀 있었습니다.”

“환자요?”

“뭔가…… 이상하게 계속 신경

이 쓰이더군요.”

“많이 아픈가 보네요?”

“그런 것은 아닌데…… 그냥 신 경이 쓰였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인가요?”

강진의 물음에 허연욱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한숨을 쉬고는 맥 주를 마셨다.

꿀꺽! 꿀꺽!

맥주를 마신 허연욱이 오징어를 손으로 잡아 뜯었다.

“그런 것도 같고…… 잘 모르겠 습니다.”

조금 답답한 듯한 허연욱의 말 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들은 기억이 완전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사 람이라도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도 병원에 입원해 계세 요?”

“지금은 퇴원했습니다.”

“다행이네요.”

강진의 말에 허연욱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말했다.

“라면 하나 먹어도 될까요?”

“그러세요.”

강진이 일어나려 하자, 허연욱 이 웃으며 말했다.

“끓인 라면 말고 생라면 부셔 먹고 싶습니다. 가맥집에서도 가 끔은 생라면 부셔 먹고는 했습니 다.”

허연욱이 미소를 지으며 강진을 보았다.

“생라면 스프 찍어 먹으면 맥주

안주로 좋습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저도 자주 먹었습니다.”

강진도 고시원에 살 때 생라면 부신 걸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곤 했다. 고시원에서 라면은 공짜니 말이다.

라면을 두 개 들고 온 강진이 그것을 부셔서 하나 집어 먹으며 미소를 지었다.

‘추억 돋네.’

라면을 부셔 먹으니 고시원에서 있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그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몇 달이나 됐다고 그 시절이 추억이 돼 버린 거지?’

얼마 전까지는 강진에게 일상생 활이었는데, 지금은 추억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문이 열리 며 한 노인이 들어왔다.

띠링!

풍경 소리에 고개를 돌린 강진

은 노인이 들어오는 것에 급히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강진의 말에 노인이 슬며시 그 를 보고는 말했다.

“저, 여기가 저승식당인가요?”

노인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가리켰다.

“몸 보세요.”

강진의 말에 노인이 자신의 몸 을 내려다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제가…… 사람이 됐네요?”

“저희 가게 처음이시죠?”

“아......" 네.”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는 귀신들이 사람처럼 현신을 해서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제가 처음이라…… 신기하네요. 그럼 밥을 먹을 수 있는 겁니까?”

“당연히 되지요. 들어오세요.”

노인을 모시고 자리를 보던 강

진이 자신이 앉아 있던 곳으로 안내했다.

거기 말고는 자리가 없었다.

“자리가 없으니 여기에 합석하 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진의 말에 노인이 슬며시 자 리에 앉으며 허연욱과 최호철에 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두 사람도 고개를 숙이고 는 잔을 내밀었다.

“맥주 한 잔 드릴까요?”

“감사합니다.”

노인이 잔을 받자 최호철이 맥 주를 따라주었다.

“수호령이시네요.”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노인을 보았다. 강 진도 이제 원한령과 수호령을 구 분할 수는 있다.

원한령은 딱 보는 순간 원귀 같 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수호령 은 그런 느낌은 없으면서도 사람

옆에 붙어 있으니 알아보기 쉬웠 다.

다만 이 노인은 혼자 들어와서 수호령이란 걸 알아보지 못한 것 이다.

최호철의 말에 노인이 작게 고 개를 끄덕였다.

“손녀가 걱정이 돼서……

“손녀가 이 근처에 있나 보네 요?”

수호령이나 지박령이나 자신이 묶인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하

는 것이다.

“여기 옆 건물 지하 노래방에 친구들하고 있습니다.”

“놀러 왔나 보네요.”

“오랜만에 쉰다고 놀러 왔습니 다. 애들 노래 부르는 것 보다가 문득 저승식당이 근처에 있던 것 이 생각이 나서 나와 봤습니다.”

“거리가 멀지 않아서 다행이네 요.”

다행히 손녀가 있는 곳에서 여 기까지는 이동이 가능한 범위 안

이었던 모양이었다.

귀신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옆에 서 보던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1시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 으니 일단 주문부터 하시죠.”

“아……

강진의 말에 노인이 주위를 두 리번거렸다. 메뉴판을 찾는 것이 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가게는 손님이 원하는 음

식을 해 드립니다. 드시고 싶으 신 것으로 주문해 주세요.”

강진의 말에 노인이 미소를 지 었다.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진짜 군요.”

“음식 뭐로 드릴까요?”

강진이 한 번 더 재촉을 했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이미 12시가 넘었다. 음식을 빨리 만들어야 노인이 먹을 시간이 되는 것이 다.

“조개 넣은 미역국이 먹고 싶습 니다.”

“알겠습니다.”

주방에 들어간 강진이 서둘러 재료들을 꺼내 물에 담그고는 미 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미역국과 밥, 반찬 들을 그릇에 덜어 쟁반에 담은 강진이 서둘러 홀로 나왔다.

“최대한 빠르게 끓인다고 끓였 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강진의 말에 노인이 웃었다.

“아닙니다. 음식 기다리는 동안 이분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좋았 습니다.”

노인의 말에 강진이 음식을 놓 다가 그의 얼굴을 보고는 웃었 다.

“술을 많이 드셨네요.”

노인의 얼굴이 어느새 붉게 달 아올라 있는 것이다.

“한 번 마시니 술술 들어갑니 다. 그래서 술인가 봅니다. 하하 하!”

처음 가게에 들어왔을 때 보였 던, 조금 어눌한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업 된 모습이었다.

물론 이해가 되었다. 죽고 나서 처음으로 마시는 술일 테니 기분 좋은 술기가 올라오는 것이다.

그런 노인을 보며 강진이 술을 따라주고는 말했다.

“미역국 드세요.’’

강진의 말에 노인이 웃으며 미 역국을 한 숟가락 떠서 먹더니 짙은 미소를 지었다.

“맛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맛있게 드세 요.”

노인이 마저 미역국을 떠서 먹 자 강진이 홀을 보았다.

“미역국 드실 분?”

강진의 말에 몇 테이블에서 손 을 들었다. 그에 강진이 주방에 서 미역국을 큰 그릇에 떠서 가

져다주었다.

그리고 한 그릇을 더 떠서 배용 수가 있는 테이블에 놓은 강진이 말했다.

“마침 국물이 없어서 아쉬웠는 데 저희도 미역국에 소주 한 잔 더 하시죠.”

그러고는 강진이 카운터에 있는 의자를 가져다가 그 옆에 놓고는 앉았다.

그에 노인이 잔과 소주를 들고 내밀었다. 강진이 잔을 받자 소

주를 따라 준 노인이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시면 저야말로 더 감 사하죠.”

강진의 말에 노인이 웃으며 미 역국을 먹고는 말했다.

“사실…… 제 손녀가 오늘 생일 입니다.”

“그래서 미역국을 드시는군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우리 손녀가 미역국을 몇 년 동안 못 먹었어요.”

“바쁘신가 보네요?”

강진의 물음에 노인이 미역국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오늘 죽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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