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335화 (333/1,050)

334화

이아름은 피시방에서 미역국을 먹다가 할아버지 부고 소식을 들 었었다.

단 몇 줄만이 적힌 메일로 말이 다.

“미안해.”

집안과 사이가 좋지 않던 자신 과 달리, 착하고 공부 잘하는 손 녀로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던 이 아름…… 그녀가 자기 때문에 할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고 장현희는 줄곧 생각했다.

말없이 소주잔을 매만지는 이아 름을 보며 장현희가 한숨을 쉴 때, 강진이 주방에서 음식을 들 고 나왔다.

“생일상 나왔습니다.”

강진이 웃으며 음식들을 식탁에 올리자 장현희가 눈을 찡그렸다.

“너무 조촐한 것 아니에요?”

미역국 두 그릇과 제육볶음과 상추, 그리고 밑반찬이 전부인 것이다.

“집에서 먹는 생일상은 보통 이 정도죠. 메인 메뉴 하나와 정성 을 들여 만든 반찬, 집 밥처럼 편하고 맛있을 겁니다. 그리 고…… 잠시만요.”

강진이 슬쩍 주방 불을 제외한 모든 불을 껐다. 그러고는 주방 에서 불붙은 초가 꽂혀 있는 팬 케이크를 들고 나왔다.

“생일 축하합니다.”

강진의 생일 축하 노래에 장현 희가 그를 보다가 웃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강진이 웃으며 팬케이크를 테이 블에 올리곤 말했다.

“생일에는 역시 초와 케이크죠. 그리고 나이를 몰라서 하나만 꽂 았습니다. 물론 초도…… 몇 개 없기는 했지만요.”

강진의 말에 장현희가 웃으며 팬케이크를 보다가 이아름을 보

았다.

“소원 빌고 후 하자.”

장현희의 말에 이아름이 팬케이 크를 보다가 눈을 지그시 감았 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다시 눈 을 뜬 그녀가 숨을 크게 뱉었다.

“후우!”

촛불이 꺼지는 것에 이아름이 작게 웃었다.

“고마워.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아름이 장현희와 자신에게 인

사를 하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음식을 가리켰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맛있게 드 세요.”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홀의 불을 켰다.

그러곤 자신이 먹던 소주와 미 역국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이아름이 말했다.

“사장님.”

이아름의 부름에 강진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주방에서 드시려고요?”

“먹던 것만 먹으려고요.”

“그럼 여기에서 드세요.”

“손님들 있는데 사장이 술을 먹 을 수 있나요.”

“저희밖에 없는데 뭐 어때요. 사장님이 주방에 들어가서 드시 면 저희가 쫓아낸 것 같잖아요.”

이아름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웃으며 자리에 음식을 놓 고는 오징어를 한 마리 구워서 가져왔다.

“그럼 저도 편히 먹겠습니다. 편하게 드세요.”

자리에 앉은 강진이 핸드폰을 꺼내 보며 오징어를 뜯어 입에 넣고 씹었다.

딱히 핸드폰으로 할 것은 없지 만, 뭔가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야 두 손님이 편히 식사를 할 것 이니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강진도 소주 한 잔이 조금 더 필요했다.

‘오늘 술이 다네.’

소주를 한 모금 하고 미역국에 서 조개를 발라 먹은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조개탕 좀 끓여 먹을까?’

미역국의 조개가 너무 맛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강진이 소주를 마시는 것을 힐끗 본 장 현희가 이아름을 보았다.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를 몇 번이나 해?”

“몇 번이라도 하고 싶다. 내 친 구 생일.”

“그러던가.”

이아름이 웃으며 음식을 보자, 장현희가 말했다.

“먹자.”

장현희의 말에 이아름이 밥을 한 숟갈 뜨고 그 위에 제육을 올 리고는 입에 넣었다.

“맛있다.”

“그렇지.”

장현희도 제육을 먹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다.

상추 위에 밥과 제육을 올리고 그것을 싸서 한 입에 먹은 이아 름이 마늘도 한 조각 입에 넣었 다.

입에 넣은 쌈에서 육즙과 제육 양념이 과즙처럼 팡 하고 터졌 다. 달달하면서도 매운 즙이 입 안을 채웠고, 일부는 입술 사이 로 흘러나왔다.

주르륵!

입술에서 소스가 한 줄기 흐르

자 티슈로 급히 닦는 이아름을 보며 장현희가 웃었다.

“칠칠치 못하기는.”

“원래 쌈은 좀 흐르는 맛으로 먹는 거야.”

이아름의 말에 장현희가 피식 웃고는 수저로 미역국을 떠서 입 에 넣었다.

“아! 좋다! 속 확 풀린다.”

“미역국을 속 풀려고 먹어?”

“조개 넣어서 그런지 엄청 시원

해.”

그러고는 장현희가 조개를 들어 까 먹으며 말했다.

“너도 먹어.”

장현희의 말에 이아름이 잠시 미역국을 보다가 밥과 제육을 먹 었다.

그 모습에 장현희가 작게 입맛 을 다시고는 다시 조개를 까서 먹었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밥과 미 역국을 먹은 장현희가 소주를 들

어 자신의 잔에 따르고는 팬케이 크 옆에 놓았다.

자신이 아닌 팬케이크 옆에 잔 을 놓는 걸 이아름이 말없이 보 고 있었다.

“할아버지, 올해도 아름이 생일 이네요. 제가 잘 지켜보고 놀아 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저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장현희의 말에 이아름이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 너 안 미워해.”

“미워하셔.”

“아니야.”

“어렸을 때 내가 네 집 놀러 갔 더니, 나하고 놀지 말라고 하셨 잖아.”

“그거야 네가 머리 노랗게 염색 하고 귀 뚫고 왔으니 그렇지.”

“그때야 질풍노도의 중2 때였잖 아.”

웃으며 말을 한 장현희가 소주 잔을 보다가 말했다.

“그래도 제가 할아버지 기일에 소주는 꼭 올리고 있으니 미워하 지 마세요.”

장현희의 말에 이아름 뒤에 있 던 할아버지가 웃었다.

“안 미워해. 아름이 친구를 내 가 왜 미워해. 네가 아름이 옆에 있어서 안심이야.”

할아버지가 기특하다는 듯 장현 희를 보았다. 그러다 손을 내밀 어 그녀가 따라 놓은 소주잔에서 반투명한 잔을 잡아들고는 소주 를 마셨다.

“현희가 따라주는 소주 매년 받 아먹으니 너무 고맙네.”

할아버지가 장현희를 흐뭇하게 바라볼 때, 그녀가 말했다.

“할아버지 좋은 곳에 가셨을 거 야. 좋은 분이시잖아.”

장현희의 말에 이아름이 소주잔 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분이지.”

그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쉬며 미역국을 보았다.

“그래서 못 먹겠어.”

“너 이렇게 생일날 미역국도 못 먹으면 할아버지가 좋아하시겠 어?”

장현희의 말에 이아름이 미역국 을 보다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 다.

그 모습에 장현희가 티슈를 꺼 내 내밀었다. 그에 티슈를 받은 이아름이 그것으로 눈가를 살짝 닦았다.

“그날 메일 받고…… 비상금으

로 훔친 네 아빠 카드로 택시 타 고 장례식장에 갔잖아.”

“그랬지.”

“그리고 너희 부모님이 상주 역 할까지 해 주셨잖아. 장례 절차 도 다 알아서 해 주시고.”

“그건…… 아빠가 잘 하기는 했 지.”

“그게 너무 고마웠어.”

이아름이 잠시 잔을 손으로 쓰 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말한 적 없는데……

잠시 묵묵히 잔만 쓰다듬던 이 아름이 입을 열었다.

“장례 끝나고 집에 갔잖아.”

이아름의 말에 장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례 후 이아름은 혼 자 집에 갔다.

자신이 같이 가려 했지만, 아버 지가 말렸던 것이었다.

-사람은 때로는 혼자 있고 싶

은 시간이 있어. 지금 아름이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거고. 전화 를 할 때까지 아름이한테 시간을 주렴.

아빠의 말에 장현희는 그녀를 따라가지 않고 연락을 기다렸었 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던 장현희에 게 이아름이 말했다.

“집에 가서 문을 여는데 냄새가 나는 거야.”

“냄새나서 뭐지? 하는 생각에 싱크대를 보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이아름이 입을 열었다.

“미역이 물에 잠겨 있더라고.”

“미역?”

“할아버지가 나 생일이라고 미 역을 물에 담가 놓으셨나 봐. 그 걸 보니까 실감이 나더라. 내 생 일이…… 할아버지 돌아가신 날 이구나, 하고.”

“속 썩이고 가출한 내가 뭐가 좋다고…… 바보 같이.”

미역국에 숟가락을 담가 스윽! 스윽! 휘저은 이아름이 한숨을 쉬었다.

“바보 같아.”

이아름의 말에 장현희가 그녀를 보다가 소주를 따라주었다.

쪼르륵!

말없이 따라 준 소주를 마시는

이아름을 보던 장현희도 말없이 소주잔을 들었다.

그런 장현희를 보던 이아름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아빠한테 잘해, 이년 아.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냐.”

이아름이 화제를 돌리고 싶어 하는 것에 장현희도 애써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왜 이야기가 그리로 튀 냐?”

“너네 아버님 같이 좋은 분 없 어.”

“그거야 너에게만 해당 사항이 있는 거지.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있나 싶은 게 새아빠인걸. 물 론 나쁜 의미로. 콩쥐팥쥐에서 팥쥐 엄마가 우리 아빠 전생이었 을 거야.”

작게 투덜거리는 장현희의 모습 에 아이름이 피식 웃었다.

“그러게 공부 좀 하지 그랬어.”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해? 그리

고 자꾸 비교한단 말이야. 언니 오빠들 공부 잘하는 거랑 내가 무슨 상관이라고 비교를 한데?”

“너희 집이 유난히 공부 잘하는 핏줄이기는 하지. 부모님이 판사 에 오빠 언니도 판사잖아.”

“둘째 오빠는 검사거든?”

“검사도 대단하지.”

이아름의 말에 피식 웃으며 잔 에 소주를 따른 장현희가 고개를 저었다.

“판사에서 밀려 검사 됐을 때

둘째 오빠 아빠한테 뒤지게 맞았 지. 그래서 둘째 오빠 꿈이 아빠 비리 잡아서 기소하는 거야.”

“기소?”

“그날 너무 많이 맞았거든. 그 래서 아빠 꼭 기소한다고 이를 갈아.”

“많이 때리셨나 보네?”

“네 앞에서만 세상에서 가장 인 자한 분이시지. 우리 앞에서는 호랑이가 따로 없어.”

“나한테 잘해 주기는 하시지.

학비도 대 주시고……

이아름의 말에 장현희가 말했 다.

“그 정도는 해야지. 너 아니었 으면 내가 고등학교는 갔겠어? 중학교 때 사고 치고 비행소녀로 미국까지 날아갔겠지.”

“무슨 미국까지……

“너 만나기 전에 내 중학교 시 절 생각해 봐라.”

장현희의 말에 이아름이 잠시 그녀를 보다가 웃었다.

“미국은 오버고…… 제주도, 아 니 일본 정도 갔다 왔겠지.”

이아름을 만나기 전까지 장현희 는 유명한 여자 일진이었던 것이 다.

“너 아니었으면 미국이 아니라 북극까지도 갔을 수도 있지.

장현희가 웃으며 이아름을 보다 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을 수 렁에서 구해줬던, 하나뿐인 소중 한 친구가 자신 때문에 할아버지 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으니 말이 다.

아니…… 같이 가출하자고 하지 않았다면 할아버지가 안 죽었을 수도…….

그런 생각을 하자 장현희의 눈 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런 장현 희의 모습에 이아름이 한숨을 쉬 며 티슈를 꺼내 내밀었다.

‘이래서 생일은…… 조용히 지 내고 싶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기일. 그 래서 기쁨보다 슬픔이 큰 자신. 그리고 그런 자신을 보고 죄책감 과 슬픔을 느끼는 친구까지.

이래서 생일을 조용히 혼자 보 내고 싶었던 이아름이었다. 하지 만 늘 그녀의 생일에는 친구 장 현희가 있었다.

조금 침울해진 분위기에 장현희 가 말했다.

“그리고 아빠가 나 말고 너를 딸로 생각하잖아. 어제도 너하고 놀다가 외박한다고 하니까 아빠 가 ‘엉!’하더라. 그게 말이 되냐? 다 큰 딸이 외박한다는데 답이 그냥 엉이야, 엉.”

장현희가 소주를 따라 마시는

것에 이아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잘해, 이년아.”

“녀언? 이년이 나하고 놀더니 귀에 좋은 말만 배웠네.”

“그래. 다 너한테 배웠다.”

핸드폰을 하며 오징어를 씹던 강진은 옆에서 들리는 대화에 때 로는 입맛을 다시고, 때로는 미 소를 지었다.

미역이 물에 잠겨 있었다는 이

야기에는 눈가가 촉촉해졌고, 장 현희의 가족 이야기 때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검사 아들이 판사 아빠 기소하 는 것이 꿈이라니…….

작게 고개를 젓던 강진이 이아 름의 미역국을 보았다. 이아름의 미역국은 하나도 줄지 않고 있었 다.

‘미역국이라……

자신이 끓인 조개 미역국은 분 명 맛있었다. 하지만 이아름은

먹기 힘들 것이다.

물에 불려 놓은 미역……. 슬픈 기억이니 말이다.

미역국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소주를 따라 한 모금 마 시고는 미역국을 후룩 마셨다.

‘맛있는데.’

미역국의 맛을 음미하던 강진이 이아름을 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뒤에 있는 할아버지 귀신 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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