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촤아악! 촤아악!
불판에서 맛있게 버무려지고 익 어가는 잡채를 보며 강진이 작은 접시를 들었다.
접시에 잡채를 조금 덜은 강진 이 장현희에게 내밀었다.
“맛 좀 보세요.”
강진의 말에 장현희가 후루룩! 한 젓가락 먹고는 고개를 끄덕였
다.
“맛있어요.”
장현희가 젓가락으로 잡채를 집 어 이아름에게 내밀었다. 장현희 가 내민 잡채를 입에 넣은 이아 름이 미소를 지었다.
“명절 같네요.”
“명절이 아니라 생일이죠.”
웃으며 강진이 잡채를 접시에 양껏 담았다.
“짬뽕은 다 됐나요?”
“화력이 좀 아쉽지만 다 됐어 요.”
장현희가 국그릇에다 짬뽕을 덜 고는 중국식 돼지 볶음도 마저 그릇에 담았다.
쟁반에 음식들이 하나씩 놓이 자, 이아름도 자신이 굽던 고등 어를 접시에 담았다.
지글지글!
고등어에서 맛있어 보이는 기름 이 잘잘 흐르는 것을 보며 이아 름이 미소를 지었다.
잠시 고등어를 보던 이아름이 미역국을 보았다. 조개를 넣어 살짝 뽀얀 색을 가진 미역국이었 다.
이 뽀얀 육수가 감칠맛과 시원 함을 선사할 것이다.
역하지 않고 기분 좋게 느껴지 는 미역국 냄새에 입맛을 다신 이아름이 수저로 국물을 살며시 떴다.
그러고는 맛을 본 이아름이 피 식 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장 현희가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미역국을 먹었어.’
그동안 이아름의 생일 때마다 미역국을 사 주기도 했고, 만들 어도 주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았던 이아름이 미역국을 먹은 것이다.
그에 장현희의 눈가가 살짝 붉 어졌다. 급히 손가락으로 눈가를 찍은 장현희가 웃으며 말했다.
“맛있어?”
장현희의 물음에 이아름이 잠시
미역국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 다.
“너무 맛있어.”
이아름이 다시 한 숟갈 국물을 떠서는 입에 넣었다.
“너무…… 맛있어.”
주르륵!
한 줄기 눈물을 흘리며 미역국 을 먹는 이아름의 어깨를 할아버 지가 살며시 안았다.
“아름아, 생일 축하한다.”
할아버지의 말에 이아름이 눈을 감았다. 뭔가 따스한 기분이 온 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동시에 가슴 어딘가가 막혔던 것이 터지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크흑! 흑흑흑! 정 말…… 죄송해요. 내가 잘못했어. 내가,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내가 정말 잘못했어.”
엉엉 우는 이아름의 모습에 장 현희가 그녀의 어깨를 손으로 감 쌌다.
그 모습에 강진이 슬며시 미역 국 불을 끄고는 장현희를 손으로 툭 치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에 장현희가 이아름을 잠시 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홀 정수 기에서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탄 강진이 그것을 흔들었다.
스윽! 스윽!
물에 커피가 섞이는 것을 보는 강진의 귀에 이아름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미안해. 내가 잘못했
어. 흑흑흑!”
이아름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강 진이 커피 두 잔을 들고는 장현 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가게 문 앞에 서서 강진이 장현 희에게 한 잔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장현희가 그것을 받자 강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지나가 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렇게 나와 있어도 될까요?”
장현희의 물음에 강진이 사람들 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울고 싶을 때는 편하게 울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좋아요. 사람 들 보는 곳에서 울면 모양 빠지 잖아요.”
그러고는 강진이 사람들을 보다 가 중얼거렸다.
“저도 어머니가 해 준 미역국이 먹고 싶네요.”
“어머니 어디 계세요?”
“저는 18살에 보육원에 들어갔
어요.”
갑작스러운 강진의 말에 장현희 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보육원?”
“그래서 그런가 봅니다.”
강진의 말에 장현희가 그를 보 다가 물었다.
“뭐가요?”
“저는 어머니의 음식을 생각하 면 기분이 좋아요. 먹고 싶고, 그 립고……
잠시 있던 강진이 가게를 보았 다.
“아름 씨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죄책감과 외로움이 아니라 따뜻 한 추억을 떠올렸으면 해요.”
말을 한 강진이 작게 고개를 저 었다.
“보통 이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말을 많이
하게 되네요.”
그렇게 중얼거린 강진의 귀에 풍경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이아름이 문을 열고 서 있었다.
“들어오세요.”
붉어진 눈가를 손으로 문지르는 이아름을 보며 강진이 미소를 지 었다.
괜찮냐는 질문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아름의 얼굴에 떠 있 는 후련함을 보면 그것으로 답이 되니 말이다.
“자! 이제 밥 먹읍시다. 배고프 네요.”
웃으며 강진이 장현희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방에서 음식들을 가지고 나와 홀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장현희와 이아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강진의 말에 이아름이 웃으며 식탁을 보았다. 식탁엔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들이 자리하고 있었 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이아름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평일에 오세요. 제 가 주말에는 음식 봉사 활동하러 다녀서 가게 문을 열지 않아요.”
“음식 봉사요?”
“보육원에 음식 봉사 하거든 요.”
“좋은 일 하시네요.”
“제가 할 수 있는 일 하는 거 죠.”
강진의 말에 이아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그…… 저도 같이 가도 될까 요?”
“아름 씨도요?”
“저도 주말에는 쉬거든요.”
“그럼 저야 감사하고 좋지요.”
웃으며 강진이 명함을 꺼내 내 밀었다.
“제가 전화를 하면 부담되실 수 있으니 시간 되실 때 전화 주세
요.”
“알겠어요. 그리고……
이아름이 민망한 듯 잠시 우물 쭈물하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 다.
“ 얼마예요?”
“어제 식대 삼만 원에 소주 두 병 해서 삼만 육천 원입니다.”
“오늘 점심은요?”
“이만 오천 원만 받겠습니다.”
“이만 오천 원요? 너무 적게 받
으시는 것 아니세요?”
“같이 만들어서 먹었는데 인건 비까지 받는 건 양심에 털 나는 거죠. 재료값만 받겠습니다.”
“재료비도 십만 원 정도 나온 것 같던데……
마트에서 장을 본 게 십만 원 정도였던 것이다.
“재료 다 쓴 것은 아니잖아요. 합치면 육만 천 원입니다.”
강진의 말에 이아름이 지갑을 꺼내려 하자, 장현희가 급히 말
했다.
“네 생일인데 내가 살게.”
“아니야. 오늘은 내가 사고 싶 어.”
이아름의 말에 장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이아름이 지갑에서 칠만 원을 꺼내 내밀자 강진이 그중 육만 원만 받고는 만 원을 돌려주었 다.
“천 원은 서비스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이아름이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언제 한 번 들러 주세요.”
이아름이 준 명함을 강진이 보
았다.
〈소나무 한의원
한의사 이아름〉
“한의사세요?”
“올해 면허 받은 햇병아리예요. 다음 달부터 출근이에요.”
“그래도 한의사시네요.”
강진의 말에 이아름이 웃으며 말했다.
“언제 침 맞으러 오세요. 저 침 잘 놔요.”
이아름의 말에 장현희가 입맛을 다셨다.
“내 몸에 그렇게 꽂아 댔는데 잘 놔야지.”
“그래. 네 덕이 크다.”
웃으며 말을 한 이아름이 강진 을 보았다.
“다음에 또 올게요.”
“그러세요.”
이아름이 고개를 숙이고 장현희 와 웃으며 나가는 것을 보던 강 진이 옆을 보았다.
강진의 옆에는 할아버지 귀신이
고마운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 다.
“안 가셨네요.”
“감사 인사 따로 드리고 싶었습 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손을 내밀었다.
“너무 오래 머물지 마시고 가세 요.”
“손녀 좋은 남자 만나서 가족 생기는 것까지는 보고 싶습니 다.”
할아버지 귀신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귀신이 서둘러 손녀를 쫓아 뛰어가는 것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미역국 한 그릇으로는 가시기 아쉽나 보네요.”
손녀가 미역국 맛있게 먹는 것 보고 승천하셨으면 했는데, 가지 않고 남으신 것이다.
멀어지는 할아버지 귀신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가게 안으 로 들어갔다.
월요일 아침 일찍, 강진은 추리 닝에 잠바를 가볍게 걸치고 공원 에 들어서고 있었다.
“날씨 좋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하늘을 보았다.
“미세먼지만 없다면 좋은 날씨 네.”
“미세먼지 심해?”
“조금 심하네.”
강진이 작게 기침을 하며 목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여름이나 되어야 미세먼지가 좀 줄어들려나?”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뉴스 보니까 삼월까지는 계속
미세먼지 심할 거라고 하더라. 너도 마스크 쓰고 다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아서 안 쓰고 다 녔는데 아무래도 마스크를 좀 하 고 다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할 것 같다.”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배용수와 함께 걸음을 옮긴 강진 은 곧 정자 앞에 도착할 수 있었 다.
정자에 도착한 강진은 쇼핑백에
서 강아지와 고양이 사료를 꺼내 밑에 놓고는 물통에도 물을 담아 놓았다.
흰둥이가 가고 난 후에도 강진 은 꾸준히 유기 동물들의 밥을 챙겨주고 있었다.
강진은 이 시간이 좋았다. 사람 이고 짐승이고 배가 고프면 불쌍 하고 힘든 것은 똑같았다.
자신이 주는 사료로 동물들이 배 곪지 않고 산다는 게 기분을 좋게 했다.
그리고 아침 산책이 기분 좋기 도 했고 말이다. 물론…… 요즘 미세먼지는 좀 싫지만 말이다.
사료를 놓고 강진이 쇼핑백에서 보온병을 꺼내고는 컵도 세 개 꺼냈다.
쪼르륵!
따뜻한 꿀차를 따른 강진이 멍 하니 공원을 보았다.
“조금씩 파릇파릇하다.”
“봄이 오기는 하나 보다.”
“봄 하면 개나리인데.”
“개나리는 아직 좀 이르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꿀차를 한 모금 마셨다.
꿀차와 함께 입안에 들어오는 이물질을 강진이 혀로 굴리다 삼 켰다.
아무래도 석청을 물에 바로 탄 거라 약간 이물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이물질도 다 벌집에서 나온 거라 몸에도 좋은 것이니 굳이
뱉지 않는 강진이었다.
“회장님 온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돌렸다. 한쪽에서 이강혜가 익숙 한 수레를 끌고 오고 있었다.
강진이 작게 고개를 숙이며 아 는 척을 하자 이강혜가 웃으며 다가왔다.
“시간이 늘 정확하네요.”
“그래야 회장님 얼굴 한 번이라 도 뵙죠.”
회장님이라는 말에 이강혜가 웃 었다. 그동안 하루에 한 번은 보 다 보니 이제는 가볍게 농을 나 눌 정도로 친분이 쌓인 것이다.
“오늘도 차 맛있게 마실게요.”
이강혜가 놓인 잔을 들어 한 모 금 마시고는 미소를 지었다.
“달달한 게 몸에 안 좋다곤 하 지만, 역시 이런 건 좀 달달하게 먹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달콤한 것 좋아하시는구나.”
강진이 웃으며 그녀를 보다가
문득 그녀의 발밑을 보았다.
냐옹! 냐옹!
이강혜의 발밑에 고양이 귀신 하나가 앉아서 낮게 울고 있었 다.
‘어제만 해도 없었는데.’
이강혜와는 매일매일 보는 사이 다. 어제만 해도 이강혜에게 이 런 고양이 귀신이 없었는데 오늘 은 붙어 있는 것이다.
고양이에게 살짝 손을 내밀자, 고양이 귀신이 날카롭게 그를 보
더니 털을 곧추세웠다.
하으!! 하으]'!
그리고 하악거리는 것에 강진이 급히 손을 거뒀다.
‘성격 더럽네.’
강진이 손을 거두자 고양이가 그를 날카롭게 노려보다가 다시 이강혜의 다리에 발을 올렸다 내 리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기 좀 봐 달라는 듯 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