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도곡동의 동물병원에 도착한 강 진은 입구에 서 있는 소기진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오픈 전이지만 이강혜의 전화를 받고 일찍 나와서 기다리 고 있는 것이다.
“어서 오세요.”
소기진이 서둘러 문을 열어주자 강진이 아기 고양이를 안고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소기진이 급히 진료실 안으로 그를 이끌고는 아기 고양이를 진 찰하기 시작했다.
아기 고양이들을 살피던 소기진 이 한숨을 쉬었다.
“배가 고픈 것 외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다.”
“우유 따뜻하게 해서 주면 괜찮 올 겁니다.”
소기진이 고양이가 먹는 우유를 가져다가 손에 묻혀서는 고양이
입에 살짝 대주었다.
우유 냄새를 맡던 고양이가 작 게 울음을 토하고는 혀를 날름거 렸다.
야옹!
야옹!
고양이 둘이 혀를 날름거리며 우유를 먹자, 소기진이 손가락에 우유를 더 묻혀 맛을 보이고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젖병에 우유를 담아서는 내밀었다.
그러자 고양이들이 이제는 알아
서 우유를 먹기 시작했다. 양손 으로 능숙하게 젖병을 들고 우유 를 먹이는 소기진의 모습에 안도 의 한숨을 쉰 이강혜가 말했다.
“그럼 이제 괜찮나요?”
“제가 돌팔이는 아니니까요.”
긴장을 풀어 주려는 듯 웃으며 말을 한 소기진이 시계를 보았 다.
“출근하셔야죠.”
소기진의 말에 뒤에 있던 도원 규가 슬며시 말했다.
“아침 업무를 20분 늦췄습니 다.”
도원규의 말에 이강혜가 아기 고양이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 다.
“아이들 부탁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강혜가 강진을 보았다.
“같이 가죠. 태워다 드릴게요.”
“저는 아이들 좀 보다가 가겠습 니다.”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유를 먹 는 아기 고양이의 등을 살짝 쓰 다듬었다.
“잘 먹고 튼튼하게 있어. 이따 가 다시 보러 올게.”
그런 이강혜의 손길에 고양이 귀신이 살며시 그녀의 손등을 혀 로 핥았다.
그 모습에 강진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감사 인사는 확실하구나.’
“그럼 이따가 다시 올게요.”
이강혜가 고개를 숙이고는 서둘 러 도원규와 함께 가게를 나서 자, 강진과 소기진이 작게 고개 를 숙이고는 고양이를 보았다.
“잘 먹네요.”
강진의 말에 소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애기 때는 늘 배가 고픈 법이죠.”
작게 중얼거린 소기진이 힐끗 옆을 보았다. 강진의 잠바가 놓
인 곳에는 아기 고양이 시신이 있었다.
그 시신을 엄마 고양이가 혀로 핥고 있었다.
“일찍 갔으면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강진의 중얼거림에 소기진이 고 개를 저었다.
“야생에서 사는 아이들은 많이 들 죽습니다. 둘이라도 산 것이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죠. 너무 속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이들이 우유를 다 먹자 소기 진이 미소를 짓고는 젖병을 떼어 냈다.
젖병이 떼어지자 아기 고양이들 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을 우물 거렸다.
그런 아기 고양이들을 보던 소 기진이 한 아이를 조심스럽게 들 었다.
소기진이 배를 쓰다듬어 주고는 물티슈로 엉덩이를 살며시 문질 렀다.
“똥꼬 닦아주는 건가요?”
“애기들은 혼자 배변을 못 합니 다. 원래는 어미가 엉덩이를 혀 로 핥아서 배변을 도와야 하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되니 제가 엄마 대신 자극해서 배변 활동을 도와 주는 겁니다.”
소기진의 말에 강진이 아기 고 양이를 보았다. 엄마 고양이가 와서는 아기 고양이의 항문을 혀 로 핥고 있었다.
그리고 강진의 눈에 엉덩이 털 이 살짝살짝 혀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우연인가?’
마치 혀가 핥는 것처럼 털이 움 직였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 다.
귀신이 핥는다고 털이 움직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엄마라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엄마 고양 이는 정성껏 아기 고양이의 엉덩 이를 계속 핥았다.
엄마 고양이의 행동에 아기 고 양이가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냥.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항문에 서 묽은 갈색 액체가 나오자, 소 기진이 급히 화장지로 그것을 닦 았다.
스윽! 슥!
화장지로 액체를 닦은 소기진이 안고 있던 아이를 놓고는 누워 있던 애를 들어 항문을 문질렀 다.
그러고는 아이 둘의 상태를 다 시 확인하고는 한쪽에 있는 동물 입원실이라 할 수 있는 케이지에 아이 둘을 넣었다.
달칵!
아이를 넣고 버튼을 누르자 위 에서 붉은색 전등이 켜졌다.
“따뜻하게 해 주고 잘 먹으면 금방 건강해질 겁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무슨 고생을 했나요. 애 들 구조해서 오신 두 분이 고생
하셨죠.”
붉은 전등 밑에서 꼬물거리다가 하품을 하는 아기 고양이들을 보 던 강진이 힐끗 엄마 고양이를 보았다.
엄마 고양이는 바닥에서 아이들 이 들어간 케이지를 보며 작게 울고 있었다.
냐옹! 냐옹!
그 모습에 강진이 슬며시 몸을 숙여 엄마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 었다.
‘괜찮아. 할퀴면 안 돼.’
강진이 안심하라는 시선을 보내 자 엄마 고양이가 잠시 주저하다 가 몸을 맡겼다.
그에 강진이 조심히 엄마 고양 이를 안아서는 케이지를 보았다.
“저기, 잠시 열어도 될까요?”
소기진이 문을 열어주자 강진이 엄마 고양이를 안에 넣었다.
스윽!
아기 고양이들 사이에 자리를
잡은 엄마 고양이가 강진을 보고 작게 울음을 토했다.
냐옹.
고맙다는 듯 울음을 토하며 자 신을 보던 엄마 고양이가 몸을 눕히고는 애들을 혀로 핥았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문을 닫았 다.
아기 고양이들을 핥고 있는 엄 마 고양이를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애들 건강해지면…… 너도 빨
리 승천해.’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그 에게 소기진이 말을 걸었다.
“커피 한 잔 드시겠어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소기진이 옆에 있는 손 세정액 을 손에 묻혀 문지르다가 강진을 보았다.
“강진 씨는 손을 씻으셔야겠네 요.”
소기진의 말에 강진이 자신의
손을 보았다. 땅을 파느라 흙이 묻어 지저분했다.
“그래야겠네요.”
“여기요.”
소기진이 옆에 있는 세면대를 가리키자 강진이 물을 틀어 손을 씻었다.
손을 닦는 사이 가게 문이 열리 며 여자들이 들어왔다.
“원장님, 환자 들어왔어요?”
그녀들의 말에 소기진이 웃으며
말했다.
“아침에 급한 아기 고양이 환자 둘이 들어왔네요.”
“또 급히 나오셨나 보네요?”
“환자가 급한데 나와야죠.”
그녀들이 고개를 저으며 탈의실 로 향하자, 강진이 손을 닦으며 나왔다.
“직원분들 출근하셨나 보네요.”
“그렇죠. 커피 어떻게 드릴까 요?”
소기진이 커피 머신을 가리키자 강진이 말했다.
“저는 믹스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소기진이 커피 머신을 조작해 원두를 뽑고, 종이컵에 믹스를 넣고는 물을 따라 주었다.
소기진이 내미는 커피를 받은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저 애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강진의 물음에 소기진이 그를 보았다.
“집에 혹시 애들 키우세요?”
“안 키웁니다.”
“아! 그러세요.”
소기진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에 강진이 침을 삼켰다.
“전에 와보셔서 아시겠지만 음 식점에서 동물 키우는 것이 좀 …
“그거야 가게고요. 집에서 키우
시면 좋을 텐데. 퇴근해서 집에 들어올 때 애들이 눈 반짝이면서 저를 기다리는 것 보면 그것만큼 힐링 되는 것도 없습니다.”
은근한 눈빛을 보내는 소기진의 모습에 강진의 얼굴에 난감함이 어렸다.
그 모습에 소기진이 웃었다.
“그냥 해 본 말입니다. 부담 갖 지 마세요.”
“그냥 하시는 말이 아닌 것 같 은데……
강진의 말에 소기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강진 씨처럼 좋은 분이 데려다가 보살펴 주시면 좋지 요.”
“저는 딱히 좋은 사람이 아닌 데……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도움이 필요한 애들에게 도움을 주시는 것 보면…… 제 기준에서 는 세상에 둘도 없이 좋으신 분 입니다.”
소기진의 말에 강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강진을 보며 커피 마시라고 눈짓한 소기진이 케이 지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 다.
“일단 애들이 건강해질 때까지 여기서 보살피면서 입양을 해 줄 분을 찾을 겁니다.”
“입양이 쉽게 되나요?”
“종이 좋은 녀석들이 아니라서 쉽지는 않을 겁니다. 고양이를 키우고 좋아하시는 분들도 믹스 애들보다는 종이 좋고 이쁜 애들
을 선호하시거든요.”
“그럼…… 입양이 안 되면 어떻 게 되는 거죠?”
“그게•…"
소기진이 한숨을 쉬었다.
“제가 계속 데리고 있으면 좋겠 지만…… 입양이 정 안 되면 유 기묘 보호해 주는 시설에 보내게 됩니다.”
“유기묘 보호 시설? 그런데 표 정이 안 좋으시네요?”
“거기도 아이들이 찰 만큼 찼거 든요. 그래도 제가 자원봉사 하 는 곳이 있으니 부탁하면 받아는 주실 겁니다.”
소기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 고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돈 주고 사 지 말고 입양을 해 줬으면 좋겠 습니다. 아니, 그전에 아이들을 데려가기 전에 여러 번 생각해서 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참…… 애들 버리는 건 정말……
소기진이 입맛을 다셨다.
“나쁜 짓입니다.”
욕을 잘 못하는지 그저 나쁜 짓 이라고만 말을 하는 소기진의 모 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케이지가 있는 곳을 보았다.
말을 들으니 자기라도 아이들을 입양을 할까 생각이 들었다. 하 지만 곧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충동적으로 결정해서 될 일이 아니지.’
불쌍하다고 데려가는 것은 누구 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 불쌍한 아이들을 데려다가 잘 기를 수 있냐는 것이었다.
가지고 놀다가 버려도 되는 장 난감이 아니라 가족을 데려오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소기진도 강진에게 아이 들을 입양하라고 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원해서 데려가도 파양하는 경우 가 많은데, 원하지 않은 상황에 서야 더 말할 것이 없으니 말이 다.
커피를 마시는 사이 직원들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직원들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 다.
“안녕하세요.”
그들의 인사에 소기진이 웃으며 말했다.
“이쪽은 논현에서 식당 하시는 이강진 사장님입니다.”
“논현에서요?”
소기진의 소개에 여직원들이 살 짝 놀란 눈으로 강진을 보았다. 이십 대의 강진이 땅값 비싼 논 현에서 식당을 하는 사장님이라 고 하니 놀란 것이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작은 식당입니다. 다음에 한번 식사하러 오세요.”
강진의 말에 소기진이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저희 직원들하고 같이
회식 한 번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눈을 찡그렸다.
‘지갑......"
그에 강진이 소기진을 보았다.
“저 지갑을 안 가져왔는데…… 혹시 계좌이체 될까요?”
“치료비요?”
“네.”
강진의 말에 소기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약 쓴 것도 아니고 우유 좀 먹 였을 뿐입니다. 그냥 가세요.”
소기진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식하러 오시면 제가 고기로 대접해야겠네요.”
“그럼 좋지요.”
그러고는 강진이 진료실 쪽을 보았다.
“저 애기는?”
“제가 저녁에 야산에 가서 묻어 줄 겁니다.”
소기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애기 엄마 죽어 있는 곳 에 같이 묻어주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소기진이 진료실에 가서는 작고 네모난 나무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두시네요?”
“여기 와서 다 살고 건강해져서
나가면 좋겠지만…… 죽는 애들 도 있어서요. 데려갈 가족이 없 는 애들을 위해서 몇 개 준비해 놨습니다.”
소기진이 고양이를 조심히 양손 으로 감싸고는 상자 안에 넣었 다.
그리고 뚜껑을 닫아 내밀자 강 진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아이가 담긴 상자를 받았다.
냐옹!
상자를 받아 든 강진은 고양이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엄마 고양이가 케이지 안에서 이쪽을 보며 작게 울고 있었다.
냐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