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강진은 가게에서 지갑을 챙기고 는 배용수와 함께 마트에서 모종 삽 하나와 흙을 산 뒤 공원을 걷 고 있었다.
“죽어서도 애기 생각을 하 고…… 좀 짠하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힐 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 진도 아까 엄마 고양이가 상자에 담긴 아기 고양이를 향해 냐옹
하고 울던 것이 가슴에 깊이 박 힌 것이다.
참 서럽게 들리던 울음이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엄마는 엄마인 거겠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작게 고 개를 저었다.
“나오지도 않는 젖 빠는 아이들 을 봐야 하다니…… 슬프다.”
배용수가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다가 말했다.
“슬프다. 이 이야기 그만하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자 쪽을 보았다.
“나쁜 새끼.”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그 를 보았다.
“누구?”
“흰둥이 버린 놈 말이야. 천벌
받을 새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정자를 보다가 그쪽으로 다가갔다. 정자
에 도착한 강진은 사료 통을 보 았다.
사료 통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 었다. 사료 통을 보는 강진을 보 며 배용수가 말했다.
“사료 통을 앞으로 더 놓을까?”
“그래야 할 것 같다. 고생들 하 는데 배라도 불러야지.”
배용수의 말에 작게 답을 한 강 진이 사료 통들을 보다가 나무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엄마 고양이의 시신이 있는 나
무에 도착한 강진이 잠시 그대로 있다가 손에 쥐고 있던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조심히 상자를 열어 작은 고양이 시신을 꺼냈다.
“다음 생에도 엄마와 같이 태어 나서 엄마 젖 많이 먹어.”
이미 차갑게 식은 고양이의 시 신을 손을 쓰다듬은 강진이 모종 삽으로 굴 밑을 팠다.
많이 팔 필요 없이, 그저 손이 들어갈 정도만 파면 됐기에 굴은
금방 파졌다.
굴을 판 강진이 아기 고양이 시 신을 조심히 굴 안으로 넣어 엄 마 고양이 품에 내려놓았다.
스윽!
그리고 손을 뺀 강진이 흙이 담 긴 작은 비닐을 뜯어 나무 밑에 밀어 넣었다.
스윽! 스윽!
흙으로 굴을 모두 채운 강진이 손바닥으로 입구였던 곳을 잘 다 독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다음에 또 오마.”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었다.
“귀신은 동물 병원에 있는데 여 기서 말하면 뭐해?”
배용수가 정이 없는 놈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씁쓸해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엄마란 이름 과 그 희생은…… 가슴을 아프게 하니 말이다.
그것을 아는 강진이 배용수의 말에 답을 하지 않고 삽과 흙 봉 지를 들고는 몸을 돌렸다.
걸음을 옮기며 빈 사료와 물통 을 챙긴 강진은 가게로 돌아갔 다.
11시 반, 장사를 시작하기가 무 섭게 태광무역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태광무역 사람들은 평소보 다 많았다. 그들만으로 홀이 꽉 찰 정도였다.
“여기가 우리 태광무역의 자랑 인 한끼식당이다.”
“앞으로 해 떠 있을 때, 달 떠 있을 때도 너희의 배를 채워 줄 곳이니까 앞으로 이 사장님한테 잘해.”
“저녁에 배고프면 여기 사장님 한테 전화로 김밥 주문해. 그리 고 네가 와서 받아 가면 되는 시 스템이 다.”
홀에서 사람들이 웃으며 하는 이야기에 강진이 웃으며 홀로 나 왔다.
“저녁 김밥 서비스는 10시까지 만 받습니다. 그리고 이 서비스 는 단골인 태광무역 손님들에게 만 하는 거 아시죠?”
“그럼요. 그래서 우리가 한끼식 당을 좋아하는 것 아닙니까.”
한 사람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과 저녁에는 밥장사를 하지
만, 가끔 이상섭이 야근할 때 먹 을 김밥을 부탁하면 강진이 김밥 을 싸 놓았다.
그럼 이상섭이 그 김밥을 가져 다가 먹었는데 다른 부서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부탁을 하다 보니 종종 김밥 주문을 받고는 했다.
웃으며 대화를 나눈 강진이 각 부서 직원들 사이에 있는, 낯선 얼굴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이번에 태광무역에 정식 으로 입사한 신입 사원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사람들 이었다.
요즘처럼 취업이 어렵다고 할 때에 무역회사로는 큰 태광무역 에 정식 입사를 했으니 말이다.
살짝 굳은 듯한 신입 사원들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음식 바로 내겠습니다.”
주방에 들어간 강진은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는 자글자글하게 끓어오르는 김치찌개에 파를 넣 고 있었다.
“다 됐지?”
“이제 내가기만 하면 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쟁반에 반찬들을 서둘러 올리고는 배용 수가 주는 찌개 냄비들도 올려 바로 바로 홀로 가져다주었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테이블에 모든 음식을 낸 강진 이 이상섭에게 다가갔다.
“그토록 바라시던 후임이 생기
셨네요.”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웃으며 옆에 있는 잘생긴 남자를 보았 다.
“잘생겼지?”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남자를 보았다. 이상섭의 말대로 남자는 무척 잘생겼다.
“정말 잘생기셨네요.”
“아…… 감사합니다. 정민입니 다.”
“오! 이름도 멋지네요.”
강진의 말에 정민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만졌다. 그런 정 민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제가 작년에 인턴 생활을 해 봐서 아는데 태광무역, 좋은 회 사입니다. 좋은 회사에 잘 들어 오셨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민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 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상섭을 보았다.
이상섭은 흐뭇한 얼굴로 정민을 보고 있었다. 그동안 후임이라고 할 인턴들은 몇 거쳤지만, 정민 은 정식 입사를 한 후임이자 앞 으로 같이 갈 부사수인 것이다.
그래서 이상섭은 기분이 좋았 다.
“많이 먹어라.”
이상섭이 앞접시에 김치찌개를 덜어 주자, 정민이 고개를 숙이 고는 찌개를 먹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바로 말 놓으셨네요?”
전에 강진이 인턴을 할 때에는 말을 놓기까지 좀 걸린 것이다.
“알고 보니까 내가 나온 11사단 출신이더라고.”
“같은 부대요?”
“같은 부대까지는 아니고, 같은 11사단 소속이라는 거지.”
말을 한 이상섭이 허공을 응시 했다.
“강원도 홍천이라……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에는 무척 추운 동네 였지.”
이상섭의 말에 임호진이 웃었 다.
“군대 있는 곳 치고 여름에 안 뜨겁고, 겨울에 안 추운 동네가 있나?”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부대 안에서는 내복을 껴입어도 엄청 추운데, 휴가 때는 내복 안 입고 부대 밖으로 나가도 춥기는커녕 따스하니까요.”
“그게 참 신기하기는 하지.”
갑자기 군대 이야기로 넘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정민에게 말했다.
“더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세 요.”
“알겠습니다.”
정민이 고개를 숙이자 강진이 홀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의 빈 반 찬 그릇에 음식들을 채워주었다.
음식을 맛있게 먹은 태광무역 사람들이 각 팀별로 일어났다.
“잘 먹고 갑니다.”
“안녕히 가세요.”
빈자리를 치우던 강진은 수출대 행 2팀이 일어나는 것에 그들에 게 다가갔다.
“맛있게 드셨어요?”
“늘 맛있지.”
웃으며 배를 쓰다듬은 임호진이 손을 들었다.
“내일 보자고.”
“안녕히 가세요.”
다른 팀원들에게도 인사를 한 강진이 정민을 보았다. 정민도 만족스럽고 맛있게 먹었는지 들 어올 때의 긴장감이 많이 줄어든 모습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팀원분 들 모두 좋은 분들입니다.”
“알겠습니다.”
웃으며 답하던 정민이 문득 강 진을 보았다.
“저기, 상섭 형이 그러는데.”
“어? 벌써 형이라고 불러요?”
“네? 네.”
정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부럽다는 듯 이상섭을 보았다. 이상섭은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 시며 나가고 있었다.
“나는 며칠 걸렸는데.”
“아…… 군 생활을 같은 지역에 서 해서 잘해 주십니다.”
“좋은 형님이네요.”
강진의 말에 정민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말했다.
“사장님이 손님이 원하는 음식 을 해 주신다고 하던데……
“점심에는 손님이 많아서 안 되 지만, 저녁에는 해 드리고 있습 니다. 뭐 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 요?”
강진의 말에 정민이 그를 보다 가 말했다.
“저 취직해서 부모님하고 할아 버지 모시고 식사하려고요.”
정민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 었다.
“식사가 마음에 드셨나 보네 요.”
한끼식당이 맛집이기는 하지만 가족 모임을 하기에 좋은 분위기 는 아니다.
그냥 밥집이고, 룸이 따로 있지 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취직 턱을 내겠 다는 것을 보면 음식이 마음에 많이 든 모양이었다.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정민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럼 편하게 예약 잡고 오세 요. 제가 잘 준비해 드리겠습니 다. 아! 그리고 부모님과 할아버 지 좋아하시는 음식 미리 말씀해 주시면 그쪽으로 준비하겠습니 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잠시 머뭇거리던 정민이 슬며시 물었다.
“얼마나 나올까요?”
“소갈비처럼 원가가 비싼 것을 시키시면 많이 나오겠지만, 돼지 고기 요리 정도로 부탁하시면 인 당 만 오천 원에 잔칫상처럼 드 시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싸요?”
“물론 술은 따로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민이 인사를 할 때 문이 열리 며 이상섭이 고개를 내밀었다.
“ 가자.”
“네!”
밝은 얼굴로 정민이 서둘러 나 가자, 이상섭이 손을 혼들었다.
“내일 보자.”
“가세요.”
이상섭이 떠나자 강진이 그릇들 을 마저 치우고는 가게 입구로 나왔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 몇을 본 강진이 안을 가리켰다.
“들어오세요.”
그에 손님이 들어서자 강진이 아크릴 판에 써진 만석 글씨를 지우고는 안으로 들어와 주문을 받았다.
점심 영업을 마무리 한 강진은 뒷정리를 귀신 직원들에게 맡기 고는 배용수와 함께 소기진의 동 물병원으로 향했다.
잘 지내고 있는지 한 번 보고 오려는 것이다.
동물병원 앞에 차를 세운 강진 은 쇼핑백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 다.
왕! 왕!
강진이 들어가자 개 짖는 소리 가 들렸다. 개 두 마리가 강진을 보며 짖고 있는 것이었다.
“쉿! 짖으면 안 돼.”
손님으로 보이는 남자가 작게 말을 하자 짖던 강아지 둘이 입 을 다물고는 그의 발밑으로 가서 는 혀를 내밀었다.
헥 헥 헥 I
헥!
언제 짖었냐는 듯 헥헥거리는 강아지들의 모습에 강진이 미소 를 지었다.
“포메네요.”
강진의 말에 남자가 웃으며 애 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헥헥!
강아지들이 남자의 손을 혀로 핥고 발라당 뒤집어지는 것을 귀
엽다는 듯 보던 강진이 간호사에 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아침에 오셨던 분이네요.”
“애들 어떤지 좀 보러 왔습니 다.”
“아까 우유 먹고 지금 다시 자 고 있어요.”
웃으며 말을 한 간호사가 강진 을 보았다.
“우리 선생님 좋은 분이라 애기
들 무사히 건강해질 거예요. 걱 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런 것 같네요.”
그러고는 강진이 들고 온 쇼핑 백을 내밀었다.
“간식을 좀 만들어 왔습니다.”
“간식요?”
강진이 쇼핑백을 열려 하자 간 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애들이 냄새에 민감해서요. 따 로 저희가 맛있게 먹을게요.”
“아! 그러세요.”
간호사가 쇼핑백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자 강진이 힐끗 포메라니 안들을 보았다.
“애들 어디 아파서 온 건가요?”
강진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저 었다.
“미용요.”
“미용?”
“애기들 엉덩이하고 생식기 털 정리요.”
말을 하며 남자가 강아지를 들 어서는 엉덩이를 보여주었다. 그 것을 본 강진이 웃었다.
털이 복슬복슬하게 난 강아지는 항문 쪽에만 털이 없었다. 게다 가 어떻게 잘랐는지 주변 털이 하트 모양으로 되어 있어 무척 귀여웠다.
‘이럴 때 쓰는 말이 개 귀엽다, 인가?’
강진이 귀엽다는 듯 강아지의 엉덩이를 보고 있자, 남자가 강 아지를 내밀었다.
“안아 보실래요?”
“그래도 될까요?”
남자가 강아지를 조심히 내밀자 강진이 아이를 안았다. 곧 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흰둥이도…… 이랬을까?’
강아지의 따스하고 포근한 털의 감촉이 무척 기분이 좋은 것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