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사진을 찍어 준 강진이 주방으 로 들어왔다. 늘 그렇듯 손님들 이 음식을 편하게 먹을 수 있도 록 말이다.
“미역국 좀 먹어. 오늘 생일이 잖아.”
“난 미역국 싫은데.”
여동생 황미소의 말에 황태수가 웃었다. 하지만 그 미소에는 어 쩐지 슬픔이 묻어 있었다.
주방에서 아이들을 보던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무슨 애 표정이……
어린애가 짓기에는 너무 씁쓸하 고 슬퍼 보인다고 할까? 마치 인 생 오래 산 노인이 슬픔을 속으 로 달래는 것 같았다.
강진이 황태수를 볼 때, 그가 말했다.
“그래도 생일에는 미역국 먹어 야지. 한 숟가락만 먹어.”
황태수의 말에 황미소가 오색
찹 스테이크 한 조각을 먹고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입에 넣 었다.
“됐지.”
“그래. 잘 했어. 이제 맛있게 먹 자.”
황태수의 말에 황미소가 포크로 스테이크를 집어 입에 넣고는 씹 었다.
“너무 맛있다.”
“많이 먹어
황태수가 자신의 그릇에 있는 고기를 집어 황미소 앞에 놓아 주었다. 그러고는 밥을 떠서 미 역국에 말아 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옆을 보았 다. 배용수는 옆에서 계란 흰자 로 머랭을 만들고 있었다.
촤촤촥! 촤촤촥!
배용수의 손길에 점점 거품이 생기기 시작했다.
“팬케이크 만들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거품기를
묵묵히 움직이다가 작게 입을 열 었다.
“집이 수락산이래.”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 수락산?”
“거기서 지하철 타고 둘이 왔단 다.”
강진이 놀란 눈으로 배용수를 보았다.
“수락산에서 논현까지?”
지하철 노선도로 생각해 봤을
때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그것 도 어린애 둘이 오기에는 더 욱..
“동생 생일날 맛있는 것 먹여 주려고 며칠 전부터 지도 보고 오는 길 외우고 또 외웠대.”
“우리 가게는 어떻게 알고?”
“싸고 맛있는 집 검색하다가 우 리 가게 봤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옆에 있 는 아주머니 귀신을 보았다. 아 주머니 귀신은 강진이 준 미역국
에 밥을 말아서 먹고 있었다.
그런 강진의 시선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며 다시 머랭을 쳤다. 그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 렸다.
어린 오빠가 어린 여동생 생일 날 맛있는 것 人} 주려고 여기까 지 온 것은 장하고 기특한 일인 데, 이렇게 우울해하는 이유가 뭔가 싶었다.
“근데 너 얼굴이 왜 그래?”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말했
다.
“여동생 낳을 때 아주머니가 돌 아가셨단다.”
“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황미소를 보았다.
‘그래서…… 미역국을 싫어하는 구나.’
자신의 생일이 엄마의 제삿날이 니…….
얼마 전 식당을 다녀 간 이아름
과 비슷했다. 자신의 생일이 ‘누 구’의 기일이냐는 것만 다를 뿌..
촤촤촥! 촤촤촥!
굳은 얼굴로 연신 머랭을 만드 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 을 다셨다.
“넌 참 좋은 놈이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버 터나 꺼내서 녹여.”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스레인지에 물을
담은 냄비를 올린 뒤 그 위에 볼 을 올렸다.
그리고 물이 따스해지자 강진이 그 안에 버터를 한 조각 넣어서 녹였다.
그것을 받은 배용수가 버터를 살짝 식히고는 팬케이크를 만들 기 시작했다.
그런 배용수를 보며 강진이 말 했다.
“뭐 도와줘?”
“김밥이나 싸라.”
“김밥?”
“애들 할머니가 김밥을 좋아하 신대.”
“할머니?”
“아빠, 할머니하고 같이 산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냉장고에서 김밥 재 료들을 꺼내고, 밥에 간을 했다.
그러고는 아주머니 귀신을 보았 다.
“할머니가 김밥을 좋아하세요?”
“애 아빠가 김밥을 좋아해서 어 머니도 좋아하세요.”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안에 뭐 넣는 것 좋아하세요?”
“그냥 김밥 싸 드리면 좋아하세 요.”
그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을 깔고는 김밥을 싸기 시작했 다.
아이들이 맛있게 오색 찹 스테 이크를 먹은 것을 보며 강진이 홀로 나왔다.
“필요한 것 더 있으세요?”
“배불러요.”
황태수가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황미소를 보았다. 둘의 배 가 빵빵한 것이 맛있게 잘 먹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주방으로 돌 아왔다.
“애들 밥 다 먹었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가 접 시에 담고 있는 팬케이크를 보았 다.
“아무래도 이건 못 먹겠는데.”
“왜?”
“애들 배 터지려고 한다.”
“그래?”
“이것까지 들어가면 터지겠어.”
“맛있게 잘 먹었나 보네.”
배용수가 흐뭇한 눈으로 홀을 보았다. 그 모습이 마친 어린 조
카들에게 맛있는 것을 해 준 삼 촌의 모습과 같았다.
“그럼 싸 주자.”
강진이 통을 하나 건네자 배용 수가 조심히 팬케이크를 통 안에 담았다.
그 위에 시럽을 뿌리고는 옆에 는 과일도 넣었다. 그리고 뚜껑 을 닫아 주자 강진이 그것을 쇼 핑백에 담았다.
쇼핑백 안에는 김치와 반찬, 그 리고 방금 만든 김밥도 들어 있
었다.
쇼핑백에 음식들을 모두 담은 강진을 보던 배용수가 물었다.
“그런데 애들이 그거 들고 갈 수 있겠어?”
어른이라면 쉽게 옮길 수 있겠 지만 애들이 손에 들면 땅에 질 질 끌릴 것이다.
그렇다고 안고 가면 힘이 배로 들 테고 말이다.
“내가 태워다 줘야지. 애들 혼 자 어떻게 보내냐?”
“좋은 놈. 착한 놈. 이쁜 놈
배용수가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피식 웃고는 아주머니 귀신 을 보았다.
아주머니 귀신이 고개를 숙였 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 는 아주머니 귀신의 모습에 강진 이 웃으며 홀로 나왔다.
강진이 나오자, 황미소의 입을 티슈로 닦아주던 황태수가 주머
니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계산해 주세요.”
황태수가 건넨 카드를 받았던 강진이 웃으며 카드를 다시 내밀 었다.
“계산 끝났습니다.”
“네? 그 카드기로 긁어야 하지 않아요?”
황태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밖으로 나가서는 아크릴 판 을 들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매직으로 글을 적었 다.
〈꿈나무 카드 노 가맹점!
꿈나무 카드는 안 받습니다. 대 신 꿈나무는 받습니다.
배고픈 어린이들은 들어와서 “저 밥 주세요!” 하면 맛있는 밥 만들어 드립니다.〉
글을 적은 강진이 황태수에게
보여주었다.
“어?”
“앞으로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동생하고 같이 와. 형이 요리해 줄 테니까.”
“그게......"
황태수가 뭐라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자, 강진이 웃으며 황미 소를 보았다.
“맛있는 것 먹고 싶으면 오빠한 테 여기 오자고 해요. 그럼 내가 맛있는 것 해 줄게.”
“ 진짜요?”
“거짓말은 나쁜 거지?”
강진의 물음에 황미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아저씨가 거짓말하는 나 쁜 아저씨로 보여?”
“아뇨!”
“그럼 진짜겠지?”
“네!”
황미소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했 다.
“그리고 네가 준 컵라면은 형이 오늘 맛있게 먹을 거니까, 그건 안 준다.”
강진의 말에 황태수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황태수의 말에 강진이 웃고는 문을 잠갔다.
덜컥!
문을 잠그는 것에 황태수가 의 아해할 때, 강진이 말했다.
“가자. 형이 태워다 줄게.”
“저희까리 가도 되는데요.”
“형이 태워다 주고 싶어서 그 래.”
강진이 뒷문으로 나서며 말했 다.
“ 가자.”
강진의 말에 황태수가 잠시 머 뭇거리다가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뒷문으로 나온 강진이 황태수와 황미소를 차에 태우고는 수락산 을 향해 출발했다.
수락산의 한 골목길에 들어선 강진이 차를 멈췄다.
“여기야?”
“네.”
골목 한쪽에 있는 2층 양옥집을 보던 강진이 황태수에게 손을 내
밀었다.
“전화기 좀 줘 볼래?”
강진의 말에 황태수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여기요.”
황태수에게 핸드폰을 받은 강진 이 전화를 걸었다.
띠링! 띠링!
자신의 핸드폰이 울리자, 강진 이 아이의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형 번호니까 저장해 놓고 올
때 전화해.”
“아…… 감사합니다.”
황태수의 말에 강진이 조수석에 서 쇼핑백을 꺼내 내밀었다.
“음식 좀 쌌으니까 먹고. 아! 맨 위에 있는 건 팬케이크니까 간식으로 먹어.”
“안 그러셔도 되는데.”
“형이 해 주고 싶어서 그래. 맛 있게 먹어.”
강진이 쇼핑백을 내밀자 황태수
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깊이 숙 였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된 거야.”
웃으며 황태수의 머리를 쓰다듬 은 강진이 아주머니 귀신을 보았 다.
아주머니 귀신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이는 것에 강진도 마주 고개를 숙이고는 아이들을 내려준 뒤 차를 출발시켰다.
자신이 바로 가야 아이들이 집
에 편히 들어갈 수 있을 테니 말 이다.
부릉!
차를 출발시키며 강진이 백미러 로 뒤를 보았다. 황미소는 기분 이 좋은지 방방 뛰며 쇼핑백을 보고 있었고, 황태수는 웃으며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차를 슬 쩍 골목 한쪽에 다시 세웠다. 수 락산은 중고 TV에 묶여 있던 장 복남 귀신의 어머니가 사는 곳이
기도 했다.
그의 집과 같은 동네인 듯, 오 는 길에 장복남과 함께 장을 봤 던 슈퍼도 있었다. 그래서 강진 은 온 김에 할머니께 식사라도 대접하고 갈 생각이었다.
차에서 내린 강진이 슈퍼로 가 서는 전에 장복남이 말을 한 대 로 핑크 소시지와 콩나물, 대패 삼겹살을 사서는 걸음을 옮겼다.
장복남의 집에 도착한 강진이 문을 조심히 열었다.
끼이 익!
녹슨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강진이 안으로 들어가서는 현관 문을 두들겼다.
“어머니, 계세요? 어머니!”
몇 번 문을 두들기자 안에서 목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전에 TV 배달해 드린 사람입 니다.”
강진의 목소리에 곧 문이 열렸
다.
“아이고! 총각, 어떻게 또 왔 어.”
“이 근처 지나갈 일이 있어서 요. 온 김에 어머니 생각도 나서 식사라도 챙겨 드리려고 왔습니 다.”
“어서 들어와요.”
할머니가 벽을 기대며 안으로 들어가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집은 전과 같았다. 집안을 둘러
보던 강진은 TV 앞에 있는 장복 남과 할머니 사진을 보았다.
‘잘 지내고 계십니까?’
장복남의 조금은 어눌하지만 순 박했던 모습을 떠올리던 강진이 TV를 보았다.
장복남이 붙어 있던 TV는 잘 나오고 있었다. 장복남이 붙어서 멍이 들었던 자리도 깨끗하고 말 이다.
TV를 보던 강진이 소매를 걷었 다.
“식사 챙겨 드릴게요.”
“고마워요.”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주방에 들어가 대패 삼겹살 초장 볶음과 계란 소시지를 만들고, 콩나물국 을 끓여서 내놓았다.
그에 할머니가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 를 나눈 강진이 설거지까지 깨끗 하게 마무리하고는 집을 나섰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그래요. 정말 고마워요.”
할머니의 인사를 받은 강진이 웃으며 집을 나섰다.
‘요리하기를 정말 잘 했어.’
이렇게 사람에게 행복함을 느끼 게 해 주는 것이 또 있나 싶었 다.
* * *
강진은 저녁 귀신 장사를 준비
하고 있었다.
오늘 메뉴는 잔치국수와 잡채, 그리고 부추전이었다. 추가로 돼 지수육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원래 일요일은 장사를 하지 않 지만…… 오늘은 장사를 할 생각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최훈과 선 주가 결혼을 해서 승천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없지만 피로 연을 할 생각이었다.
강진의 옆에서는 배용수가 잡채 에 들어갈 야채를 썰고 있었다. 그런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말 했다.
“너도 영화나 한 편 같이 보고 오지 그랬어?”
여자 귀신들과 최호철의 기분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자, 강진이 영화나 보고 오라고 내보낸 것이 다.
“나는 음식 만드는 것이 힐링이 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더는 말 을 하지 않고 끓고 있는 고기를 살폈다.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을 때, 문 에서 띠링 하는 소리가 들려왔 다.
그에 고개를 내민 강진의 눈에 문이 살짝 흔들리는 것이 보였 다.
‘누구지? 민성 형인가?’
고개를 갸웃거린 강진이 문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