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선주와 최훈을 위한 피로연은 장례식과 결혼식이 섞인, 다소 묘한 분위기였다.
축하를 해 주면서도 두 귀신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있으니 말 이다.
그리고 조금 뒤늦게 들어온 최 호철과 여자 귀신들은 강진의 테 이블에 의자를 끌어다 앉은 채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고 있
었다.
그러다가 배용수가 눈을 찡그렸 다.
“처녀 귀신 온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일어났 다. 그러자 가게 안의 귀신들이 불안한 눈으로 문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제가 나가서 처녀 귀신 분들에 게 향수 뿌릴 테니 조금 참고 있
으세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녀 귀신들과 같이 있으면 불편하고 두려울 뿐이지, 몸이 다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나가서 흩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보다는 조금 참는 것 이 나았다.
향수를 챙겨 가게를 나온 강진 은 김소희가 천천히 귀신들을 뚫 고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윽! 스윽!
늘 그렇듯이 김소희를 중심으로 귀신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그녀 가 올 길을 만들어주었다.
“오셨어요.”
말을 하며 강진이 향수를 들자 그녀는 익숙한 둣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에 강진이 그녀를 향해 향수 를 살짝 뿌렸다.
화아악!
향수를 받은 김소희가 입을 열 었다.
“선주와 최훈이 승천을 했더 군.”
“어? 아셨어요?”
“나와 만난 귀신이니 그들의 기 운 정도는 느끼고 있었네. 오늘 기운이 사라져서 기분이 좋더 군.”
그러고는 김소희가 하늘을 보았 다.
“하나만 가고 하나만 남았으면 서로 힘들었을 터인데, 둘이 같 은 날에 갔으니 좋은 일이야.”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하늘을 보았다.
“오늘 날씨도 좋아서 승천하기 에 무척 좋은 날이었습니다.”
“햇살이 좋은 시간에 갔더군.”
그러고는 김소희가 문을 보자 강진이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가시지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안으로 들어가다가 문득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왜 그러세요?”
강진이 그녀를 따라 천장을 올 려다보자, 김소희가 천장을 잠시 보다가 입을 열었다.
“집에 큰 인물이 들어왔군.”
“큰 인물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는 그저 미소 지을 뿐, 더는 말을 하지 않고 가게 안을 보았다.
그 시선에 귀신들 몇이 주춤거 리며 일어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할 때,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같이 자리하시죠.”
그러고는 강진이 김소희를 자신 이 앉아있던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에 최호철과 여자 귀신들이 모두 일어나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앉으시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서 있는 귀신들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 다.
“그렇게 하지.”
조금은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의자를 당겨 주었다.
그에 김소희가 자리를 하자 강 진이 선주와 최훈의 자리를 가리 켰다.
“두 사람은 없지만, 두 사람의 자리는 만들어 놨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두 자리 를 잠시 보았다.
“결혼 축하하네. 앞으로 행복하 게 잘 사시게나.”
김소희의 축하에 강진이 웃으며 선주와 최훈의 자리를 치우기 시 작했다.
“자! 간 귀신은 간 귀신이고, 남은 귀신들이라도 편하게 있어 야겠죠?”
웃으며 강진이 두 귀신의 자리 를 카운터 쪽으로 옮기고는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분들은 숭천도 못 하신 분들이니 너무 서운하게 생 각하지 말아요.”
웃으며 카운터에 놓인 접시를 보던 강진이 자리로 돌아왔다. 김소희의 앞에는 어느새 접시에 담긴 음식과 국수가 놓여 있었 다.
강진이 음식을 카운터에 가져다 놓는 사이, 배용수가 음식을 가 져온 것이다.
접시에 옹기종기 보기 좋게 담 겨 있는 잡채와 수육, 그리고 김 치와 부추전을 보던 김소희가 입 을 열었다.
“음식을…… 한 그릇에 담았
군.”
“마음에 안 드세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잠시 음식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 때는 음식을 다 따로 담아 먹었다네.”
“그러세요?”
“음식이 섞이는 것은 음식 각각 이 가진 고유의 맛을 섞이게 만 들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만 들어 버리니 음식을 해치는 것이 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속으로 웃었다.
‘결론은 음식을 따로 가져다 달 라는 거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배 용수가 물었다.
“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 니다.”
“무언가?”
“조선 시대에도 비빔밥을 먹지 않았습니까?”
“비빔 밥?”
“아가씨께서 음식이 섞이는 것 을 싫어하시는 것 같은데요?”
“맞네. 음식은 그 각각의 맛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고 아랫것들 이나 음식을 섞어 먹는 것이네. 체통 있는 양반가에서는 음식을 섞어 먹지 않네.”
김소희의 말에 배용수가 물었 다.
“전주하면 비빔밥이 유명하지 않습니까? 아가씨도 전주 분이시
니 비빔밥을 좀 드셨을 것 같은 데. 그리고 제삿밥이라고 해서 양반들도 나물에 밥을 비벼서 먹 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그것도 음식을 섞어 먹는 것 아닌지요?”
배용수가 궁금한 것이 바로 이 것이었다. 비빔밥은 먹는데 왜 이런 음식은 따로 먹는지 말이 다.
배용수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 를 저었다.
“제삿밥은 그 자체로 고유의 음 식이니 이것과는 다르지. 섞어서
비벼 먹기 위해 만든 음식과 그 냥 먹기 위해 만든 음식을 섞는 건 시작이 다르지 않겠나?”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그거 아닌가? 그리고 비 비면 어지간해선 다 맛있는데.’
지금 덜어 놓은 음식들에 밥만 넣고 비벼도 훌륭한 비빔밥이 될 것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김 소희가 그를 보았다. 뭔가 바라
는 듯한 김소희의 시선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을 섞어 먹든 따로 먹든 어 차피 그것은 취향일 뿐이다. 김 소희가 따로 먹고 싶다고 하니 그리해 주면 될 뿐이었다.
강진이 주방에서 작은 그릇에 따로 음식들을 담아 그녀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소주를 한 잔 따라 마신 김소희가 잡채 를 집어 입에 넣고는 고개를 끄 덕였다.
“맛이 좋군.”
“감사합니다.”
강진이 병을 들어 소주를 따라 주다가 문득 옆을 보았다. 어느 새 여자 귀신들과 최호철은 다른 곳으로 슬며시 자리를 이동하고 난 후였다.
같은 처녀 귀신들도 김소희와 자리하기 불편해하는 만큼, 최호 철과 여자 귀신들은 두말할 필요 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배용수만이 그
앞에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배용수의 어깨를 툭 쳤다.
“고생할 때 옆에 있는 것이 친 구라고 하더니 네가 진정한 친구 구나.”
강진의 농에 김소희가 그를 보 았다.
“무슨 일이 있나?”
“네?”
“방금 고생이라고 했던 것 같은
데?”
“아…… 아닙니다.”
강진의 답에 그를 보던 김소희 가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 딱히 없지만, 도움이 필요 하면 말을 하게.”
“도와주시는 겁니까?”
“자네와 내가 함께 한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그 사이 여러 일 들이 있었으니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야겠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소주를 따랐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망설임 없 이 청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들어 소 주를 받은 김소희가 술을 마셨 다.
그리고 수육을 한 점 집어 먹은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맛이 좋군.”
“감사합니다.”
웃으며 다시 소주를 따라 준 강 진이 물었다.
“요즘 안 오시던데 어디 갔다 오셨어요?”
“잠시 전주에 다녀왔네.”
“전주에요? 아! 전주 저승식당 주인이 여자라고 하던데 가 보셨 어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정이를 말하는 것이군.”
“좋은 분이라고 하던데요.”
“좋은 아이더군. 잘해 낼 것이 야.”
“한 번 뵈었으면 좋겠네요.”
“전주 음식도 맛이 좋으니 가서 먹어 보는 것도 자네에게는 도움 이 될 것이네.”
“하긴, 맛있는 것 먹는 것도 요 리사한테는 공부라고 하니까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전주에는 무슨 일로 가 셨어요?”
“귀신이 일이 있어야 어디를 다 니는 것은 아니지.”
그렇게 말한 김소희가 잠시 소 주잔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아버님이 생각이 나서 잠시 전 주에 다녀왔네.”
“묘지에 다녀오셨나 보군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님께서는 왜란 중 전사하 셔서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네.”
“아......"
강진이 탄식을 토하자, 김소희 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당시 전투가 너무 치열해서 나 도 큰 부상을 입고 겨우 탈출을 할 수 있었지.”
“힘드셨군요.”
“후에 몸을 추스르고 전장으로 갔으나 시신을 수습할 수가 없더 군.”
잠시 말을 멈췄던 김소희가 입 을 열었다.
“그래서 아버님이 전사하셨던 전장을 한 번 보고 왔네.”
소주를 한 모금 마신 김소희가 허공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때 내 손에 죽은 왜구의 수 가 열은 족히 넘을 것이야.”
열 명이나 베셨어요?”
“내 칼에 베인 자만 그 정도고, 화살로 쏘아 맞힌 자는 셀 수가 없다네.”
“활도 잘 쏘셨나 보네요.”
“활은 오라버님이 잘 쏘았지. 커다란 멧돼지도 한 발로 잡은 적이 있을 정도로 말이야.”
그러다가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 다.
“이순신 장군님이 보고 싶군.”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그녀를 보았다.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님도 보셨어요?”
강진의 놀라 묻자 김소희가 미 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순신 장군님을 직접 뵈었다 면 내 삼생의 영광이었겠지 만…… 그만한 복을 타고 태어나 지 못해 직접 보지는 못하였네.”
“아…… 그렇군요.”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대신 아 쉬운 듯 중얼거리다가 물었다.
“그럼 이순신 장군님은 왜
“직접 보겠다는 것이 아니고, 임진왜란을 다룬 드라마를 말하 는 것이네.”
“아! 드라마 보고 싶으세요?”
“아버님이 전사하신 곳을 보고 오니, 임진왜란 때를 다룬 드라 마가 보고 싶군.”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이 말했다.
“그럼 여기에서 보시겠어요? 제 가 TV로 틀어드리면 되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았다.
“그래도 되겠나?”
“저희 직원들도 일 없을 때는 드라마 보니 같이 보시면 되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잠시 생 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곳에 가서 봐도 되겠지 만, 자네가 그렇게 말을 하니 그 렇게 하기로 하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드라마라는 것이 한자리에서 쭈욱 봐야 재밌지, 끊어서 보면 재미가 없지요. 오늘부터 드라마 쭈욱 보세요.”
“고맙게 보겠네.”
김소희의 답에 강진이 소주를 두 손으로 잡아 내밀자 그녀가 잔을 들었다.
쪼르륵!
김소희가 잔에 소주를 받는 것 을 보던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오라버니는 어떻게 되
셨어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의 눈이 살 짝 찡그러졌다. 그 모습에 강진 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내가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 었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김 소희가 입을 열었다.
“죽었네.”
“그야…… 그렇겠죠.”
임진왜란 때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다만 강진이 묻고자 했던 것은 임진왜란을 잘 넘기고 잘 살다가 죽었는지, 아니면 임진왜란 때 전사했는지였다.
김소희가 묵묵히 소주를 마시는 것을 본 강진이 더는 묻지 않았 다.
딱히 궁금해서 물어본 것은 아 니었다. 그저 오빠가 활을 잘 쏜 다고 했으니 생각이 나 물어봤을 뿐이다.
뭔가 기분이 안 좋은 듯한 김소
희를 보며 이야기의 화제를 바꾸 려던 강진이 문득 물었다.
“저기, 집에 큰 인물이 들어왔 다는 건……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괜한 말을 했을 뿐이네. 신경 쓰지 말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을 듯 잡 채를 집어 입에 넣는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힐끗 천장을 보았 다.
‘두 분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 데……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지? 오자명 어르신을 말씀하시는 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