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 화
아침을 먹고 있을 때 문이 열리 며 도영민이 들어왔다.
“왔나.”
도영민이 고개를 숙이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식사하셨어요?”
“아직 전입니다.”
“그럼 이리 오셔서 같이 드시 죠.”
강진의 말에 이유비가 웃으며 말했다.
“콩나물국이 아주 맛이 좋아. 와서 같이 해.”
“알겠습니다.”
이유비가 들고 온 슈트케이스를 한쪽 식탁에 놓고는 자리에 앉 자, 강진이 국과 밥을 가져다주 었다.
도영민이 고개를 숙이고는 국을 한 숟가락 떠서 먹자 이유비가 물었다.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지?”
“열 시에 당에서 회의가 하나 있고, 1시에는 노동부……
도영민이 오늘 일정을 이야기해 주자, 오자명이 입맛을 다셨다.
“어제 거기 대표가 우리 같은 사람들 부지런히 만난 것에 대해 상의할 모양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띠링!
그때 다시 가게 문이 열렸고,
이번엔 한명현이 들어왔다.
“어! 왔어? 자네도 와서 한 그 릇 해.”
“저는 의원님 집에서 먹고 왔습 니다.”
“그래?”
“사모님께서 외박할 때 전화라 도 한 통 주시라고 합니다.”
한명현의 말에 오자명이 그를 보았다.
“ 화났나?”
“살짝 그러신 듯합니다.”
“휴우!”
혼날 것이 걱정이 되는 듯 한숨 을 쉬고 밥을 먹는 오자명을 보 던 한명현이 입맛을 다시고는 강 진을 보았다.
“국이 얼큰하고 맛있어 보입니 다.”
“한 그릇 드실래요?”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국만 주시면 됩니다.”
한명현의 말에 강진이 주방에서 국을 떠서 가져다주었다.
그에 한명현이 국을 떠먹으며 미소를 지었다.
“어제 술을 안 마신 것이 후회 될 정도로 시원하네요.”
한명현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어제 모처럼 쉬시는 날인 것 같던데 술 안 드셨어요?”
강진의 물음에 한명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요즘은 아침에 숙취 상태로 하 는 음주운전도 단속이 되잖습니 까.”
“그래요?”
“술 마시고 한숨 자고 나면 술 이 깨는 스타일이기는 한데…… 나라에서 금하는 일이니 요즘은 쉬는 날이라도 다음 날에 운행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술을 마시 지 않습니다.”
“좋은 습관이시네요.”
“습관이라기보다는 남이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주의입니 다.”
한명현의 말에 오자명이 웃었 다.
“이 친구가 젊었을 때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너무 많이 해 서 지금은 속을 차렸지요.”
오자명의 말에 한명현이 어색하 게 웃었다.
“옛날 일을 이야기하십니다.”
“옛날 일이니 하는 것이지. 지 금도 그러고 다니면 내가 이야기
만 하겠나?”
그러고는 오자명이 강진을 보았 다.
“젊은 시절에 모험을 하는 것도 좋지만, 주위 열 사람이 다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는 것이 좋은 법이지요.”
“저도 최소한 나라에서 하지 말 라는 것은 안 하는 주의입니다.”
강진의 말에 가볍게 웃은 오자 명이 한명현을 보았다.
“수행 비서를 한 명 더 뽑을까?
자네 나이도 있는데 계속 운전시 키기 미안한데.”
“의원님 타는 차인데 제가 운전 을 흐!]야지요. 괜찮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이유비가 한 명현을 힐끗 보고는 입맛을 다셨 다.
“형님은 참 인덕이 있으십니 다.”
“후! 내가 인덕이 많기는 하지.”
웃으며 두 사람이 음식을 마저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한명현과 도영민이 급히 일어나 자 손을 저었다.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편하게 들 먹고 있어.”
그러고는 오자명이 강진을 보았 다.
“2층 한 번 더 신세 지겠습니 다.”
“편하게 갈아입으세요.”
오자명과 이유비가 슈트케이스 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가자 도영 민과 한명현이 남은 음식을 서둘
러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하게 먹으라고 했지만, 의원 들이 옷을 갈아입고 내려올 때까 지 먹으면서 기다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둘이 내려오면 바로 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강진이 말 했다.
“보좌관은 바쁜 직업이네요.”
강진의 말에 한명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쁜 것은 의원님이시고, 저희 는 그 바쁜 일이 꼬이지 않도록 보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말 바쁜 것은 의원님이십니다.”
“그렇군요.”
이야기를 나눌 때, 2층에서 오 자명과 이유비가 내려왔다.
“자, 식사들 했으면 또 싸우러 들 가 보세.”
오자명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 자 이유비와 보좌관들이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띠링!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나가 배웅 을 해 준 강진이 식사를 한 자리 를 치우기 시작했다.
띠링!
그릇들을 치우던 강진은 핸드폰 에 문자가 오는 것에 그 내용을 보았다.
문자는 은행에서 온 것으로, 이 유비에게 10만 원이 입금이 되었 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또 문자가 한 통 더 왔
다.
〈제 기억에 어제 술을 많이 먹 어서 술값을 내지 않았을 것 같 아서 지금 보냅니다.〉
“밥값을 너무 많이 보내셨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문자 가 또 2통이 왔다. 하나는 은행 에서, 하나는 오자명이 보낸 것 이었다.
〈하하하! 밥값을 안 내고 갔지 뭡니까. 이거 다 늙은 노인네가 밥값도 안 내고 가서 이 사장님 속상하셨을까 봐 급히 보냅니다. 다음에도 맛있는 밥 부탁드리겠 습니다.〉
두 명이 비슷하게 보낸 밥값에 강진이 피식 웃고는 둘에게 같은 문자를 보냈다.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보내 주신 밥값이 좀 많 으니 다음에는 돈 안 들고 오셔 도 맛있는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아! 다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한 번 오세요.〉
그렇게 문자를 보낸 강진이 핸 드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그릇들 을 마저 치웠다.
그러고는 주방에서 사료와 물통 을 챙겨서는 홀로 나왔다.
“TV 보고 계세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힐 끗 보았다.
“어디 가는 건가?”
“공원에 강아지들 밥 주러 다녀 오겠습니다.”
“좋은 일 하는군.”
“제가 좋아서 하는 거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더는 신 경 쓰지 않고 TV로 시선을 돌렸 다.
그것을 본 강진이 힐끗 TV를 보았다. TV에서는 유성룡과 몇 몇 선비들이 왜구의 동향을 걱정 하는 것이 보였다.
[왜의 동향이 심상치 않은데, 이 일을 조정에 알리고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정에서 왜를 어찌 생각하는 지 알지 않나. 그저 작은 섬나라 왜적들이라 생각을 할 뿐이네. 그런 왜에서 조선을 칠 것이라 생각을 하겠는가.]
[답답한 일입니다.]
TV에서 나오는 대사를 듣던 강 진이 고개를 저었다.
‘저 때는 일본이 조선보다 더 작다 생각을 했었으니……
잠시 화면을 보던 강진이 몸을 돌려 가게를 나가자 배용수가 그 뒤를 따라 가게를 나섰다.
배용수와 함께 공원으로 간 강 진이 사료를 놓고는 늘 그렇듯이 보온병을 꺼내 차를 따랐다.
그리고 차를 마실 때 이강혜가 다가왔다.
“좋은 아침이에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차를 내 밀며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으며 찻잔을 받았다.
“강진 씨 덕에 매일 좋은 차 마 시네요.”
“맛있게 드세요.”
이강혜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는 말했다.
“애기들이 많이 건강해져서 다 행이에요.”
“저도 보고 왔는데 많이 좋아졌 더군요.”
그러고는 강진이 이강혜를 보았 다.
“애들 입양이 잘 될까요?”
강진의 물음에 이강혜가 한숨을 쉬었다.
“좋은 가족을 찾는 것은 사람이 나 짐승이나 똑같이 어렵죠.”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이강혜가 말을 이었다.
“운 좋게 입양이 되어도, 못 키 우겠다고 다시 파양을 해서 보내 는 분들도 있고…… 쉽지 않아 요.”
“이런 경우 많이 겪으셨나요?”
“적지 않았죠.”
고개를 저은 이강혜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잘 될 거예요.”
“긍정적이시네요.”
“비관적인 일들이 많은 세상인 데 저라도 긍정적으로 살아야 죠.”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인드가 좋으시네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저도 이 런저런 비관적인 생각은 하죠.”
웃으며 말을 한 이강혜가 몸을
일으켰다.
“자! 이제 오늘 하루 일도 시작 을 해 보죠.”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그녀를 보았다.
“저기.”
강진의 부름에 이강혜가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면 남편 분하고 같이 한 번 오세요.”
이강혜가 무슨 말이냐는 듯 바 라보자, 강진이 머리를 긁었다.
“편하게 오셔서 식사 한 번 하 고 가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인 사도 드리고 싶고.”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잠시간 말없이 그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 다.
“알겠어요.”
“제가 주제넘게 초대한 건 아닌 지 모르겠습니다.”
“호의로 초대해 주신 것 알아
요. 호의를 악의로 받을 정도로 제가 많이 어긋난 사람은 아니랍 니다.”
이강혜의 말에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은 강진이 쇼핑백에 잔 을 넣고는 일어났다.
“오늘 하루도 파이팅 하시죠.”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 씨도 파이팅 하세요.”
* * *
점심의 북적거리는 가게 안에서 강진은 서빙을 하고 있었다.
“이야…… 이렇게 음식 싸게 팔 아도 되나?”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더 내고 싶으면 더 내셔도 되 는데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밥값이야
사장님이 정해 놓은 건데 내가 막 더 내고 그러면 안 되지. 이 건 너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야.”
이상섭의 농에 강진이 웃으며 식탁을 보았다.
“국 더 드릴까요?”
“옹. 아! 계란말이도 좀 더 줘. 맛있다.”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국과 계 란말이를 더 가져다주었다.
오늘 점심은 특별한 메뉴가 따
로 없는, 평범한 집밥이었다. 아 침에 오자명과 이유비가 먹었던, 고춧가루 넣고 칼칼하게 끓인 콩 나물국에 계란말이와 밑반찬 그 리고 오징어젓갈이 한상으로 나 갔다.
대신 오늘의 점심 가격은 단돈 삼천 원이었다.
말 그대로 집에서 먹는 것 같 은, 저렴하면서도 정성이 깃든 집밥이 오늘의 점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메인이라 할 반찬이 없기는 했
지만 손님들은 편하고 맛있게 먹 었다.
사실 맛있는 김치만 있어도 밥 먹기 좋은데, 한끼식당은 반찬들 이 다 맛이 있으니 말이다.
가볍게 점심 장사를 마무리하고 홀을 정리할 때, 가게 안으로 손 님 넷이 들어왔다.
“영업 끝났습니까?”
가족으로 보이는 네 손님의 입 장에 강진이 그쪽을 보고는 웃으
며 나왔다.
“손님이 있으면 영업을 하는 법 이죠. 편하신 곳에 앉으세요.”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중년 남자가 여자를 돌아보았다. 단발머리를 한 중년 의 여인은 단아한 외모의 상당한 미인이었다.
“효정 씨, 이쪽에 앉으시죠.”
중년 남자가 자리를 가리키며 하는 말에 강진이 살짝 의아한 듯 그들을 보았다.
‘가족이 아닌가?’
남편인 줄 알았는데, 어째 대하 는 것이 좀 다른 것이었다.
중년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비 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 둘.
그리고 중년 여자 뒤에는 젊은 남자 귀신이 서 있었다. 얼굴이 좀 하얀 것이 강진의 취향은 아 니었지만 무척 잘생긴 귀신이었 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중
년 남자가 웃으며 여자아이들을 보았다.
“아저씨가 검색을 해 봤는데 여 기가 요즘 맛있는 곳으로 뜨더라 고.”
중년 남자의 말에 여자아이 둘 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휴일에 봐도 되는데. 굳이 평 일 학교까지 빼고 봐야 돼요?”
“정아야.”
아주머니의 말에 정아라 불린 여자아이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잖아. 주말에 날 잡아서 보면 되지, 무슨 학교까지 빼고 이렇게 봐.”
정아의 말에 아주머니가 작게 한숨을 쉬며 남자를 보았다.
“ 죄송해요.”
“아니, 엄마가 왜 사과를 해.”
정아가 눈을 치켜뜨는 것에 아 주머니가 난감한 듯 중년 남자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