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화
쪼르륵!
잔에 따라지는 소주를 보던 이 효정이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애들 아빠가 김치찌개를 잘 끓 여줬어요.”
이효정의 말에 김충호가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딸들도 모두 이 효정을 보고 있었다.
그런 딸들을 보며 이효정이 말 했다.
“애들이 기억할지 모르겠는 데…… 일 끝나고 오면 애들 재 워 놓고 참치 넣고 끓인 김치찌 개에 한잔하면 그렇게 좋더라고 요.”
“나도 아빠가 끓여 준 김치찌개 좋아했어.”
“아빠가 두부를 참 좋아했는 데.”
두 딸이 김치찌개와 두부를 보
며 하는 말에 김충호가 찌개를 떠서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김정아를 보았다.
“이렇게 맛있게 끓이셨니?”
“맛있었어요.”
김정아의 말에 이효정이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이 손재주가 있어서 음 식을 잘했어요. 나보다 더 잘했 던 것 같아요.”
“그러셨군요.”
김충호가 조금은 씁쓸한 얼굴로 답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전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저렇게 미소 지으며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충호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빈 잔에 소주를 따라주고는 주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장님.”
김충호의 부름에 강진이 홀로 나왔다.
“필요하신 것 있으세요?”
“저 이 김치찌개 레시피 좀 알 려 주실 수 있을까요?”
“레시피요?”
“나중에 집에서……
김충호가 이효정을 보았다.
“효정 씨와 같이 소주를 하려면 안주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김충호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적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개를 숙인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에서는 김진배가 소주를 마시며 홀을 보고 있었 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남자 분, 좋은 분이신 것 같네 요.”
강진의 말에 김진배가 소주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미소를 지 었다.
“좋은 남자더군요. 매너 있
고…… 능력 있고.”
강진은 씁쓸한 얼굴로 말하는 김진배를 보며 먼저 따라 놓았던 소주잔의 소주를 빈 그릇에 붓고 는 새로 따라주었다.
‘오에서 소주도 좀 사다 놓을 까?’
가끔 저승식당 영업시간이 아닌 때에 오는 귀신들이 소주를 한 잔씩 하곤 했는데, 이승 소주라 그 맛을 완전히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새로 채운 잔을 그의 앞으로 밀자, 김 진배가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살 짝 숙이고는 다시 홀을 보았다.
그런 김진배를 보던 강진이 종 이와 볼펜을 꺼내서는 참치김치 찌개 레시피를 적었다.
“한 2년 됐습니다.”
강진이 글을 적다가 김진배를 보았다. 김진배가 홀을 씁쓸한 눈으로 보다가 말했다.
“저 충호 씨가 우리 효정이 앞
에 나타난 것이요.”
“그렇군요.”
“효정이가 병원 앞에서 약국을 하는데 충호 씨가 박카스를 사러 왔더군요.”
‘약사? 직업 좋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김 진배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박카스를 사러 왔더군요. 그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렇게 두 달인 가 지났을 때 아내가 물었어요.
환자분이 병원에 오래 계셔서 걱 정이 크시겠다고요. 그랬더니 충 호 씨가 ‘아, 네.’하고 가더군요.”
“흠……
‘목적은 박카스가 아니라 효정 씨인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의 귀에 김진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제 감에, 충호 씨가 약 국에 오는 이유가 박카스가 목적 이 아닌 것 같더군요. 그래서 충 호 씨 나갈 때 따라 나가 봤습니
다. 뭐 하는 사람인지 보려고요. 충호 씨가 박카스를 트렁크에 넣 는데…… 그 안에 박카스 상자가 가득하더군요.”
“아……
“박카스를 트렁크에 어떻게 넣 나 고민하던 충호 씨가 박카스 상자를 이리저리 정리하는데 아 내가 그것을 봤어요.”
잠시 말을 멈췄던 김진배가 한 숨을 쉬었다.
“그때 웃더군요.”
작게 한숨을 쉰 김진배가 소주 잔을 보자, 강진이 잔에 든 소주 를 덜고는 다시 따라주었다.
“우리 효정이가 예쁘다 보니 그 동안 남자들이 많이 들이대고는 했어요.”
김진배의 말에 강진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효정은 미인이었다.
약사라는 직업을 떠나서도 남자 들이 많이 다가왔을 것이다.
“그때마다 싸늘하게 싫다고 하
던 효정이가 웃는 것 보고 감이 오더군요. 저 사람이라면…… 효 정이가 행복해질 수 있겠다고.”
강진이 말을 하지 않자 김진배 가 웃었다.
“다행입니다. 충호 씨가 좋은 남자라.”
김진배의 말에 그를 보던 강진 이 작게 고개를 젓고는 종이를 그의 앞에 밀었다.
레시피를 적었는데 고칠 부분
있나요?”
강진의 말에 김진배가 글을 보 다가 말했다.
“소주는 한 병만.”
김진배의 말에 강진이 종이에 한 줄 더 적었다.
〈소주는 한 병만.〉
강진이 적은 것을 확인한 김진 배가 미소를 지었다.
“효정이는 소주 한 병을 넘으면 취하거든요.”
김진배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종이를 들고 홀로 나 왔다.
그러고는 김충호에게 종이를 슬 며시 주었다.
“맛있게 해 보시고 혹시라도 잘 모르겠으면 전화 주세요.”
강진이 명함을 주자, 김충호가 감사히 그것을 받아 주머니에 넣 었다.
그러고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 더니 슬쩍 이효정을 보았다. 이 효정은 소주를 마시며 김치찌개 를 먹고 있었다.
‘지금쯤 출발해야 방탄을 볼 텐 데.’
코엑스가 여기서 가깝기는 하지 만, 지금쯤 출발해야 예능 시작 하기 전에 도착해서 피디에게 부 탁해 방탄 사인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충호가 시간을 슬쩍 확인하는 것에 김정아가 말했다.
“방탄은 다음에 볼래요.”
“옹? 왜?”
“여기 음식 맛있어요. 시간 쫓 기면서 밥 먹고 싶지 않아요.”
김정아의 말에 김충호가 미소를 지었다.
‘착하네.’
그녀는 엄마가 맛있게 찌개를 먹으며 한잔하는 것을 보고 방탄 을 포기한 것이다.
‘이런 걸 요즘 말로 츤데레라고
하던가?’
그런 생각을 하던 김충호가 주 방을 향해 말했다.
“사장님.”
김충호의 부름에 강진이 홀로 나왔다.
“상 좀 한 번 갈아 주시겠습니 까?”
“알겠습니다.”
강진이 쟁반을 들고 와서는 빈 그릇들을 치우고는 모자란 반찬
들은 채워주었다.
얼큰하게 취한 이효정을 김정아 와 김수아가 양쪽에서 부축하며 가게를 나가자, 김충호가 강진에 게 돈을 내밀었다.
“오늘 잘 먹었습니다.”
김충호가 계산을 하자, 강진이 돈을 아크릴 통에 넣었다.
“언제든지 또 와 주세요.”
“감사합니다.”
“저기 그리고……
김충호가 문을 한 번 보고는 강 진에게 말했다.
“혹시 시간 되실 때 저 요리 좀 배우러 와도 되겠습니까?”
“요리요?”
“아무래도 제가 음식은 잘 못해 서…… 이거 좀 배우고 싶어서 요.”
김충호가 레시피를 살짝 혼들어 보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식사 시간 때는 어렵고…… 오 후 3시 이후에 한 번 전화 주고 오세요. 시간 되고 일이 없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강의 비용은 드리겠습니다.”
“편하게 하세요.”
강진의 말에 김충호가 환하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김충호가 고개를 숙이고는 가게
를 나가자 강진이 그 문을 보다 가 명함을 보았다.
취재 부장 김충호〉
“기자셨네.”
명함을 보던 강진이 홀을 보았 다. 홀에는 어느새 배용수가 나 와서 그릇들을 치우고 있었다.
“혜미 씨는?”
평소라면 사람들이 나가자마자 여자 귀신들이 나와서 홀을 정리 하는데 지금은 배용수만 나와서 치우는 것이었다.
“김진배 씨 이야기하느라 정신 없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힐끗 주 방을 보았다. 주방에서는 여자 귀신들이 김진배를 두고 소란스 럽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와! 진짜…… 나 그렇게 잘생 긴 귀신 처음 봐요.”
“진짜 잘생겼더라.”
“혹시 살았을 때 연예인 아니었 을까요?”
“그럴 수도……. 근데 너무 착 하지 않아?”
“자기 아내를 좋아하는 다른 남 자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다 니…… 나 그 말 듣고 울 뻔했잖 아요.”
“저 사람이면 효정이가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와, 어디 영화 에서나 나올 대사 아니에요?”
여자 귀신들이 계속 김진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배용수 가 작게 한숨을 쉬며 강진을 보 았다.
“왜?”
배용수의 시선에 강진이 왜 그 러냐는 듯 보자, 배용수가 재차 한숨을 쉬었다.
“아니다.”
“왜?”
“우리가 참…… 저분들한테 잘 해준 것 같은데.”
“못 해 주지는 않았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다시 한 숨을 쉬고는 주방을 보았다. 그 러고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든 귀신이든…… 역시 얼굴인가?”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피 식 웃고는 같이 그릇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를 어느 정도 마친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간식 먹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먹는 것이 남는 거다. 뭐 먹을까?”
“김치전이나 먹자.”
“오케이.”
배용수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강진이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올라온 강진은 소파에 앉아 있는 김소희와 조금 떨어진 바닥에 앉 아 있는 최호철을 볼 수 있었다.
두 귀신은 2층에서 드라마를 보 고 있었다. 점심 영업시간에는 1 층에 있는 TV를 틀기가 좀 그래 서 2층에 올라와 보는 것이었다.
“김치전 먹을 건데 올려 드릴까 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드라마 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은 채 말 했다.
“한창 중요한 대목이라 내가 일 어나기가 어렵군.”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올려다 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소주도 한 병 부탁 하네.”
“알겠습니다.”
김소희의 말에 고개를 숙인 강 진이 최호철을 보았다.
“형도 소주 한 잔 드시겠어요?”
“나는 맥주.”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TV를 보았다. TV에
서는 오랑캐들과 조선 관병이 싸 우고 있었다.
“왜구가 아니네요?”
“이순신 장군님이 북방에서 여 진족하고 싸우는 장면이야.”
“해전만 잘하신 것이 아니군 요.”
“그런 셈이지. 근데 이거…… 어떻게 된 게 외부의 적은 허접 한데 내부의 적이 이순신 장군님 을 더 괴롭히고 위협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요?”
“이순신 장군님이 적이 쳐들어 올 것 같다고 무기와 병사를 보 내라고 했는데 위에서 들은 척도 안 한다.”
최호철의 말에 김소희가 눈을 찡그렸다.
“조용히 보시게나.”
“죄송합니다.”
김소희의 말에 최호철이 고개를 숙이고는 슬쩍 눈짓을 하자, 강 진이 웃으며 1충으로 내려왔다.
* * *
강진은 태광무역 수출대행 2팀 과 합석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수출대행 2팀의 신입사원 환영 회식을 하는 날이었다.
손님이 조금 없을 때를 기다린 듯, 수출대행 2팀은 7시 넘어 들 어왔다. 그 덕에 가게는 일부 손 님 외에 태광무역 사람들로 채워 졌다.
“그런데 월요일에 회식을 하세 요?”
강진이 묻자 임호진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 달은 내내 바쁠 예정이라 오늘밖에는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서 말이야.”
“맞습니다. 정말 몇 년 만에 생 긴 우리팀 막내인데 환영식을 다음 달로 미룰 수는 없죠.”
이상섭이 뒷말을 받으며 하자, 강진이 정민을 보았다. 정민은
팀원들이 따라주는 소주를 먹느 라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좀 다르네?’
수출대행 2팀은 술을 억지로 권 하지 않는다. 첫 잔이야 의례적 으로 따라주지만 그뿐이었다.
사람마다 주량이 다르니 알아서 따라 마시거나 한 잔 정도 누가 따라줄 뿐, 억지로 마시게는 하 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술을 따라주니 의아한 것
이다.
정민은 하나지만 팀원들은 일곱 이니 그들이 따라주는 것만 받아 도 거의 한 병인 것이다.
강진이 정민을 보고 있자, 이상 섭이 슬쩍 그를 툭 치고는 작게 속삭였다.
“주사 보려는 거야.”
“주사요?”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장인어른이 사위 면접 볼 때 술 을 먹인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만…… 직장 동료들이 주사를 보 려고 술을 먹인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최동해와 자신은 이런 행사를 치 르지도 않았으니 더더욱 의아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