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358화 (356/1,050)

357화

“수호령이면 사람을 보호해 주 는 거야?”

“그렇죠. 나쁜 기운도 막아주고 다른 잡귀들도 막아주고.”

“얼마나 남은 사람을 사랑하면 죽어서도 그 사람을 지키려고 하 는 거지?”

“형님 말대로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하고 걱정이 되니 남는 것이 겠죠.”

“그렇구나. 그런데 어떤 분이 남으신 거야?”

황민성의 물음에 강진이 그 사 연을 설명해 주었다. 이야길 들 은 황민성이 입맛을 다셨다.

“손녀가 안쓰러워서 못 가시는 구나.”

“손녀분이 혼자라서 못 가시는 것 같아요.”

“그럼 결혼하면 승천이라는 것 을 하는 건가?”

“그러실 것 같아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우리 엄마한테 붙어 있는 수호 령은 누구야?”

자신의 어머니 옆에도 수호령이 붙어 있다는 것이 떠오른 것이 다.

“요양원에서 만난 친구분이세 요.”

“그러니까 어떤 친구?”

“왜 물으세요?”

“고마워서. 어머니를 좋아하시 니까 귀신이 돼서까지 남으신 거 잖아.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도와드리고 싶어.”

돌아가신 분에게는 도와드릴 것 이 없겠지만, 그 가족들에게 도 울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돕고 싶 은 그였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저었다.

“남자 귀신이에요.”

“남자 귀신?”

남자 귀신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황민성이 놀란 눈으 로 그를 보았다.

“설마 정 회장님?”

“어? 아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황당하다 는 듯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 였다.

“어머니한테 누나라고 하면서 따라다니셨거든.”

“누나요?”

“말 들으니 어릴 때 좋아하던 마을 누나라고 생각을 하신다던 데……

“그렇군요.”

그러고는 황민성이 미소를 지었 다.

“다행이다.”

“다행요?”

“정신이 든 날 뵈었는데 아주 엄청나셨거든.”

“그래요?”

“난 사람한테 두렵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그분한테는 두렵다는 느낌을 받았어.”

“두려워요?”

치매 걸려서 요양원에 있는 힘 없는 노인이 두렵다는 것이 이해 가 되지 않았다.

잠시 말을 멈춘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위엄이라는 것 알아?”

“ 알죠.”

“그런 것이 느껴진다고 할까? 어쨌든 제정신일 때의 어르신은 태산같이 단단하고 사람을 압박 하는 그런 위엄이 있으셨어.”

그러고는 황민성이 미소를 지었 다.

“그런 태산이 어머니 옆에 있으 면 어지간한 잡귀는 막아주실 수 있을 거야. 그래서 다행이야.”

“그건…… 그렇겠네요.”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위엄이 넘쳐 요?”

“수십만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 지하셨던 분이니…… 대단하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좋아하시는군요.”

“좋아한다기보다는…… 나한테 좋은 이야기 많이 해 주셨지. 그 리고 사업적인 인맥도 그분에게 도움받았고.”

“그때는 지금처럼 대단하지 않

으셨나 봐요?”

강진이 살짝 농을 담아서 말하 자, 황민성이 웃었다.

“구멍가게 겨우 넘어서 편의점 수준이었지. 그때 정 회장님 도 움으로 납품받아 골목 마트 수준 으로 변한 거고.”

“형이 골목 마트라…… 그 동네 는 슈퍼들이 거창하네요.”

“형은 그저 그들 돈 가져다가 투자해 주는 중개인 수준일 뿐이 야.”

“그래요?”

“우리나라에 돈 많은 사람들 아 주 많다.”

이야기를 나눌 때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퀵 기사가 들어왔 다.

“황민성 씨?”

퀵 기사의 부름에 황민성이 그 에게 다가갔다. 그가 고풍스러운 상자를 건네주곤 핸드폰을 내밀 었다.

“서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느덧 저승식당 영업시간이 되 었다. 귀신들로 가득 찬 식당에 서 황민성은 김소희에게 선물을 주고 있었다.

“아가씨께서 글 쓰시는 것을 좋 아하신다 해서 약소하게나마 준 비했습니다.”

스윽!

황민성이 식탁에 상자를 올리 자, 김소희가 잠시 그것을 보다 가 뚜껑을 열었다.

내용물 중 하나를 꺼내 든 김소 희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단계석 수암 벼루로군.”

“알아보시는군요.”

“우리 아버님께서도 하나 가지 고 있었지. 아주 귀한 것이라 지 인들이 왔을 때나 가끔 꺼내 사 용하셨지.”

그러고는 김소희가 벼루 위에 있는 먹을 보았다.

“호오! 이건 신라 먹이군.”

“신라 먹을 계승한 명인이 만든 것입니다. 아가씨 시대의 것과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쓰기 괜 찮으실 것입니다.”

“빛깔을 보니 좋은 먹이야.”

김소희가 웃으며 먹을 보자 황 민성이 상자에서 붓을 꺼내 들었 다.

“붓은 진다리붓이라 해서, 이것 역시 무형문화재 장인께서 만드 신 것입니다.”

황민성이 문방사우에 조예가 깊

어서 아는 것은 아니었다.

선물이 어떠한 물건인지는 알아 야 할 것 같아서 미리 물건에 대 한 정보를 확인한 것이다.

“붓이 좋군.”

붓을 자신의 손바닥에 살짝 눌 러 본 김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황민성을 보았다.

“성의를 거절하는 것도 예는 아 니겠지. 성의이니 감사히 받도록 하겠네.”

탁자에 벼루와 먹을 내려놓고

종이를 펴는 김소희의 모습에 황 민성이 슬며시 작은 종이 상자를 내밀었다.

“무언가?”

“이것 역시 제 작은 성의입니 다.”

황민성의 말에 김소희가 종이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옥을

깎아 만든 나비 노리개가 들어

있었다.

“아

작은 탄성을 내뱉는 김소희를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노리개 입니다.”

“마음에…… 드는군.”

미소를 지으며 노리개를 쓰다듬 는 김소희의 모습에 황민성이 고 개를 숙였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고맙네.”

연신 노리개를 쓰다듬는 김소희 의 모습에 황민성이 몸을 돌렸

다.

그런 황민성의 모습에 강진이 슬며시 말을 걸었다.

“부탁할 것 있지 않으셨어요?”

아기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 도 말하지 않고 몸을 돌리니 묻 는 것이다.

“뇌물을 주고 부탁을 하는 것은 하수나 하는 거야.”

“이거 뇌물 아니었어요?”

“뇌물은 뇌물이지. 하지만 고수

는 뇌물을 뇌물이 아닌 것처럼 포장할 줄 알아야 해.”

“뇌물은 뇌물인데 뇌물이 아닌 것처럼?”

“맞아. 대놓고 ‘부탁할 것이 있 으니 이걸 드립니다.’ 하면 얼마 나 저렴하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나 같은 고수는 선물을 드리고 바로 부탁을 하지 않지.”

“그럼요?”

“선물을 드리고…… 그 상대가 내 어려움을 알게 하지.”

“아……

강진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보자 황민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잘 하는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자신이 그것을 도와줄 여건이 된다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하는 법이지.”

“그러네요.”

강진이 대단하다는 듯 황민성을 보았다.

“대단하네요.”

감탄하는 강진을 보며 황민성이 웃었다.

“대단한 것까지야. 그냥 로비야, 로비.”

웃으며 황민성이 힐끗 김소희를 보았다. 김소희는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고 있었다.

한 손으로 소매를 잡고 부드럽 게 먹을 가는 김소희의 모습에

황민성이 말했다.

“단아하시네.”

“양반가 출신이니까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다.

“이리 와 보게나.”

김소희의 부름에 강진이 그녀에 게 다가갔다.

“필요한 것 있으신가요?”

“드라마…… 안 보나?”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TV를 보

고는 말했다.

“몇 회까지 보셨어요?”

“15 회.”

대신 답하는 최호철의 모습에 강진이 드라마를 틀었다.

그것을 보던 김소희가 기분이 좋은 듯 소주를 한 잔 따라 마시 고는 글을 적기 시작했다.

‘음주 서예인가?’

스윽! 스윽!

김소희는 전에 썼던 큰 글씨와

그림이 아닌, 작고 일반적인 필 체의 글을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그냥 글을 쓰 고 싶은 듯싶었다.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가게 안 을 보았다.

손님들은 조금 조용한 분위기로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고 있었 다.

이건 김소희가 있으면 생기는 현상이었다. 아무리 향수로 귀기 를 가렸다 해도, 그녀가 있으면

귀신들이 알아서 소란스러운 분 위기를 자제하는 것이다.

전에 한 번은 김소희가 ‘시끄럽 네.’하고 주의를 주기도 했었고 말이다.

‘며칠은 귀신들 좀 불편하겠네.’

아무래도 이 드라마 다 볼 때까 지는 여기에 계속 죽치고 계실 듯하니, 그동안 귀신들은 조용히 지내야 할 것 같았다.

“뭐, 가끔은 이런 것도 좋지.”

강진의 중얼거림에 주방에서 계

란찜을 가지고 나오던 배용수가 말했다.

“뭐가?”

“조용하다고.”

“아가씨 있으니 그렇기는 하 네.”

가게를 둘러보던 배용수는 계란 찜을 황민성 앞에 놓고는 자리에 앉았다.

“계란찜 좀 드세요.”

“고마워.”

“계란이 몸에 좋은 단백질이라 간에도 좋고 술 해독에도 좋습니 다.”

“나 생각해 주는 건 용수밖에 없구나.”

“맛있게 드세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그 어깨를 두들겨 주고는 계란찜 을 떠서 한 입 먹고는 술잔을 나 눴다.

술을 마시던 강진은 최호철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황민성 씨.”

황민성이 그를 보자, 최호철이 말했다.

“부르십니다.”

최호철의 말에 황민성이 급히 일어났다. 최호철이 “부르십니 다.”라고 할 만한 사람은 김소희 하나뿐이니 말이다.

황민성이 김소희에게 다가가자 강진도 슬며시 그 뒤를 따라갔 다.

황민성이 다가오자 김소희가 벼 루를 닦고 뚜껑을 닫다가 앞자리 를 가리켰다.

“앉으시게나.”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이 자리에 앉자 강진도 살며시 그 옆에 앉 았다.

그때 김소희가 슬쩍 옆을 보았 다. 배용수도 어느새 다가와 그 옆에 서 있는 것이었다.

“자네는?”

왜 왔냐는 물음에 배용수가 머

리를 살짝 긁으며 말했다.

“무슨 이야기 하시는지 궁금해 서요.”

자신을 조금 어려워하는 배용수 를 보던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 고는 옆에 놓인 한지 중 하나를 집어 황민성에게 내밀었다.

“선물에 대한 보답일세.”

황민성이 한지를 받아 펼쳤다.

〈편안 (便安)〉

커다랗게 쓰여 있는 글씨에 황 민성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황 민성을 보며 김소희가 말했다.

“글을 좀 아나?”

“저와 일을 하시는 분 중에 글 을 좋아하시는 어른들이 계셔서 어깨너머로 조금 배웠습니다.”

황민성의 답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삶이 편안해지기를 바 라는 마음에 적어 보았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하고자 하 는 말이 있는 듯한데.”

“아닙니다.”

“괜찮으니 하게.”

한지를 잘 다독이는 김소희를 보던 황민성이 말했다.

“요즘 저에게 고민이 하나 있는 데 듣고 조언을 해 주십시오.”

“조언이라…… 그래. 해 보게 나.”

“저에게 자식 복이 있겠는지 요.”

황민성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는 자식 복이 없네.”

짐작하고 있었지만 김소희에게 직접 들으니 조금 충격이 되는 듯 황민성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황민성을 보던 김소희가 소주를 따라 마신 뒤 강진을 보 았다. 그에 강진이 알아서 잔을 들고 와 놓았다.

강진이 들고 온 세 개의 소주잔 에 김소희가 소주를 따랐다.

쪼르륵! 쪼르륵! 쪼르륵!

김소희는 그 석 잔을 황민성과 강진, 배용수 앞에 내밀었다.

“자네도 의자 가져와 앉게나.”

김소희의 말에 배용수가 주방 쪽으로 가서는 의자를 하나 가지 고 왔다.

배용수가 자리에 앉자 황민성이 잔을 들어서는 술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김소희를 보았다.

“조금…… 억울합니다.”

“ 억울한가?”

“제가 나쁜 짓을 많이 한 것 알 고 죄 많은 것도 압니다. 하지 만…… 저보다 나쁜 놈도 애 낳 고 잘 살지 않습니까?”

“그런가?”

“제가 아는 놈 중에는 정말 사 람 새끼인가 싶은 놈도 있습니 다. 그런데도 애도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한테 당했던 사람 중에는 자네를 사람 새끼인가 싶어 할 사람도 있을 것이네. 또…… 자 네가 잘 사는 것에 고통스러워하 는 이도 있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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