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359화 (357/1,050)

358화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황민성을 보며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나보다 나쁜 자가 있으니 자신 이 덜 나쁜 자라 여기는 것인가? 설마, 나보다 더 나쁜 자가 있어 위로라도 되는 것인가?”

김소희의 차가운 목소리에 황민 성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 정도로 쓰레기는 아닙니다.

저도 제가 나쁜 놈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과거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민 성 형 개과천선해서 좋은 일도 하고 착실하게 살고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한숨을 쉬며 소주를 마셨다.

“지금의 내가 좋은 놈이라 도…… 과거의 나에게 피해를 받 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잠시 말을 멈춘 황민성이 입맛 을 다셨다.

“없겠지.”

황민성의 말에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군. 자네가 듣고 싶은 이야길 해 주겠네.”

풀이를 하고 답을 얻을 때도 있 지만, 답을 통해 풀이를 얻어 낼 때도 있다.

그리고 지금 황민성의 경우, 답 은 있는데 풀이가 복잡한 경우 다.

‘왜 아이를 가질 수 없는지.’에 대한 물음엔 김소희도 답해줄 수 없었다.

그녀가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라는 사실뿐이었다.

“자네는 친자식을 가질 수 없 네.”

김소희가 확정적으로 말을 하

자, 황민성이 잠시 고개를 숙이 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죄가 있습니다. 그건 알 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아내 는…… 죄가 없지 않습니까?”

황민성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야 워낙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아이를 가질 수 없다 해 도…… 아내는 무슨 죄라는 말인 가?

자신이 낳은 자식올 안고 싶은 것은 누구나 원하는 일이다. 그 것을 김이슬은 황민성을 만났다

는 이유만으로 이루지 못하는 것 이다.

“제 아내는 죄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씹어뱉듯이 말을 한 황민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 내가 당신을 만난 것 이…… 미안해.’

황민성이 김이슬에 대한 생각을 할 때,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작 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해 줄 말은 다 해 주었 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김소희 를 보던 황민성이 자리에서 일어 나 원래 자리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자식이란……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이 걸음을 멈추고는 그녀를 보았다.

스윽!

소주를 한 모금 마신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가슴으로도 낳는 것이네.”

“입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 까?”

황민성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 를 끄덕였다.

“자네가 아이를 입양하고자 함 을 아네.”

“그것을 어떻게?”

“모르는 것은 모르나, 아는 것 은 아는 편이네.”

뜻 모를 말을 한 김소희가 덧붙 였다.

“자네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는 많이 있네.”

“제 도움요?”

“이것은 원래 말을 해 주면 안 되지만…… 지금의 자네는 선하 네.”

“제가 선하다고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지금 은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선한 일을 일부러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조폭 생활을 할 때보다

자신에게 앙심을 가지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사업적으로 자신에게 해를 당한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황민성이 의아해할 때, 김소희 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업적으로 자네에게 앙심을 품는 자들은 그들이 무지하고 능 력이 없어서일 뿐…… 자네가 일 부러 사업체를 망하게 하거나, 좋은 사업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건 그렇습니다.”

“되지 않을 사업에 투자를 해 달라 하는 자들의 원한까지 생각 을 할 이유가 없네. 아니, 오히려 그런 사업에 투자를 하는 것은 자네를 믿고 돈을 맡긴 이들의 믿음을 배신하는 것이니 오히려 악행이 되겠지.”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이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좋아지 는 걸 느꼈다.

자신이 애를 갖지 못할 것이라

는 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던 일이지만, 자신이 하는 사업적인 일이 나쁘지 않다는 답을 들었으 니 말이다.

살짝 미소를 짓는 황민성을 보 며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자네 덕에 인생이 변한 아이들 이 있네.”

“제 덕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 아이들에게 자네는 아버지와 같 네.”

“제가요? 누구에게?”

황민성이 의아한 듯 묻는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보살피는 아이들이 있 지 않은가?”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의 머릿속 에 자신이 만든 학교가 떠올랐 다.

소년원을 나오거나 퇴학을 당해 더 이상 학교에 갈 수 없는 문제 학생들에게 직업 훈련과 검정고 시 등을 지원해 주는 학교였다.

“그걸 어떻게?”

“아까도 말했듯, 내가 모르는 것은 모르지만 아는 것은 아는 편이네.”

그러고는 김소희가 황민성을 보 았다.

“자네가 만든 학교를 통해 기회 를 얻은 아이들…… 물론 그 아 이들이 모두 그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기회 를 잡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아이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의 인생도 바뀌었네.”

잠시 말을 멈춘 김소희가 소주 를 따라 마시며 말했다.

“물론 나쁜 족이 아닌 좋은 쪽 으로겠지.”

“그건…… 그냥 나처럼 나쁜 길 로 가지 말라고……

자신처럼 후회하는 삶을 살지 말라고 직업학교를 만든 것이었 지, 딱히 좋은 일을 하겠다는 생 각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김소희가 말을 한 대로 기회를 한 번 더 주었을 뿐이었다. 그

기회를 잡는 것도, 잡지 않는 것 도 다 그 아이들의 선택이었다.

“자네가 만들어 준 기회를 잡은 아이들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 네.”

“새로운 삶요?”

“빼앗은 것이 아닌, 자신이 흘 린 땀과 노력으로 사는 삶 말이 네.”

“땀을 홀리는 삶.”

살짝 충격을 받은 듯 말이 없는 황민성을 보며 김소희가 입을 열

었다.

“자네가 어떠한 마음인지는 모 르나, 자네가 한 일에 수많은 사 람의 인생이 좋게 변했네.”

기회를 준다고 그 기회를 모두 잡는 것은 아니다. 밖에서 나쁜 짓을 하던 아이들인 만큼, 황민 성의 학교에 간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기회를 잡고 변한 아이 는 혼자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의 가족과 친구들의 인생도 변하게 되는 것이다.

황민성이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며 김소희가 말을 덧붙였다.

“자네의 삶은 틀렸었으나…… 지금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 네.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게나.”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이 작게 한숨을 토했다.

“그렇군요. 저는 지금……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군요.”

잠시 그렇게 서 있던 황민성이 김소희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리 살게나.”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허리를 펴고는 자 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슬며시 김 소희에게 물었다.

“민성 형의 죄는 뭔가요?”

그에 김소희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보자, 강진이 입을 다물고 는 소주를 따라주었다.

“한 잔 드세요.”

그 모습에 김소희가 작게 고개 를 젓고는 말했다.

“다시 틀게나.”

“네?”

“이야기하느라 드라마를 못 보 았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TV를 보 았다. TV에 나오는 드라마를 본 강진이 리모컨으로 10분 정도 뒤 로 돌리고는 다시 틀었다.

“ 됐나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말없이 TV를 보며 소주를 마시기 시작 했다.

그런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몸 을 일으켰다.

지금의 황민성에겐 위로의 말보 다는 같이 소주를 나눌 친한 동 생이 필요할 것 같았다.

강진이 일어나는 것에 김소희가 종이 한 장을 들어 내밀었다.

“죄인 가져다주게나.”

황민성을 죄인이라 칭하는 김소 희를 보며 입맛을 다신 강진이 종이를 펼쳤다.

종이 안에는 포도가 그려져 있 었다. 넝쿨과 함께 그려져 있는 포도는 무척 보기 좋았다.

“포도 그림이네요.”

“다산을 상징하지.”

그러다가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 다.

“신사임당을 아는가?”

“ 알죠.”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지만, 오 만 원권에 들어간 위인이니 어린 애들도 신사임당 얼굴 정도는 다 알 것이다.

“그분께서 포도 그림을 참 잘 그리셨었지.”

“직접 보셨어요?”

“그분은 나보다 이전 시대 사람 인데 내가 어찌 뵈었겠는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사임당께서 이전 분이시구 나.’

신사임당이 조선 시대 위인인 것은 알지만, 정확한 연도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김소희가 신사임당보다 이전 사람이라 생각을 했던 강진 이었다.

김소희는 오백 년이나 묵은 처 녀 귀신이니 말이다.

“내 그림이 좋아 신사임당이 그 린 그림을 자주 보았는데, 그에

는 비할 수는 없겠으나 나쁜 편 은 아니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림을 보 는 김소희의 얼굴에는 흡족한 빛 이 떠올라 있었다.

그런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다산이라고 하셔서 그런지 몰 라도 무척 풍족해 보입니다.”

“가져다주게.”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종이를 들고 황민성에

게 다가갔다.

“형.”

황민성은 말없이 소주를 마시다 가 강진의 부름에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강진이 종이 를 펼쳤다. 강진이 펼친 종이를 본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산을 상징하는 포도네.”

“어? 아세요?”

“교도소에 있을 때, 같은 방에 있던 사람이 사기꾼이었거든.”

“사기꾼?”

“사기꾼이라 그런지 잡지식이 많아서 이런저런 이야기 들었 어.”

황민성이 그림을 지그시 보다가 김소희 쪽을 보았다. 김소희는 드라마를 보며 가끔씩 소주를 마 시고 있었다.

그런 김소희를 보던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입양해야겠다.”

“어머니가 반대하신다면서요.”

“설득해야지.”

단호한 얼굴로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너도 도와라.”

“제가요?”

“어머니가 너 좋아하잖아.”

“그건 그렇죠.”

강진은 순순히 인정했다. 어머 니는 치매일 때도, 정신이 들었 을 때도 자신을 좋아했다.

“그럼 이번 주 일요일 어떠세

요?”

“너 시간 괜찮아?”

“이번 주 일요일에 보육원 음식 봉사를 하러 갈 거거든요. 거기 서 어머니 애들하고 노실 때, 슬 며시 말해 보게요.”

“그럼 나야 좋지.”

“그리고 행복 보육원, 지금도 거기 가시죠?”

“늘 가는 곳에 가지.”

황민성은 강진과 처음 갔던 행

복 보육원을 계속 다니고 있었 다.

“이번에는 저 나온 곳으로 가시 죠.”

“너 나온 보육원?

“우리 보육원도 따뜻한 후원이 필요합니다.”

강진의 말에 그를 보던 황민성 이 피식 웃었다.

“돈 달라는 거야?”

“네.”

당당한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다시 웃었다.

“기부해 달라는 것치고는 너무 당당한 거 아니냐?”

“제가 나쁜 짓에 쓰는 것도 아 니고, 양심에 걸리지도 않은 일 인데 비굴할 필요가 있나요? 오 히려 형이 좋은 일 하는 것 돕는 것이니 더 당당해야죠.”

강진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맞는 말이네.”

고개를 끄덕이는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지갑을 꺼내서는 남궁문 의 명함을 내밀었다.

“일요일 어떠세요?”

“ 알았다.”

“주소 있으니…… 한 아홉 시까 지 도착하는 거로 해서 오세요.”

“같이 안 가고?”

“저는 손님들이 있어서 그분들 하고 같이 갈게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명함을

지그시 보았다.

“한마음 보육원.”

황민성이 보육원 이름을 중얼거 리는 것을 보며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어서 상태 가 안 좋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황민성의 표정이 그리 어 둡지 않았던 것이다.

드라마에서 노략질을 하러 들어 온 왜구와 싸우는 무인을 보던

김소희가 힐끗 황민성을 보았다.

황민성은 강진과 이야기를 나누 고 있었다. 그런 황민성을 보던 김소희가 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스으윽!

그녀가 귀신으로 다닐 때 들고 다니는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을 자신의 무릎에 살며시 올 린 김소희가 검신을 손으로 슬며 시 쓰다듬었다.

우우웅!

검이 우는 듯한 소리를 내는 것 을 느끼며 김소희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라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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