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화
핸드폰 가게에 들어선 강진은 투피스를 입은 소월향을 볼 수 있었다.
단정한 자세로 앉아서 컴퓨터를 하고 있던 소월향은 강진이 들어 오자 몸을 일으켰다.
“핸드폰 개통을 하시려 한다고 요.”
“용수가 말을 했나 보네요.”
“방금 와서 이야기하고 가셨습 니다.”
그러고는 소월향이 자리를 가리 켰다.
“앉으십시오.”
소월향의 말에 강진이 의자에 앉았다.
“핸드폰 가져오셨습니까?”
강진이 자신이 쓰던 것과 황민 성이 준 핸드폰을 내밀자, 소월 향이 핸드폰을 보다가 고개를 끄 덕였다.
“새로 개통할 필요도 없이 유심 만 갈아 끼우면 되겠습니다.”
“유심만요?”
“번호 이동을 하시는 것도 아니 고 새로 사시는 것도 아니니 공 기계에 유심만 끼우면 됩니다.”
그러고는 소월향이 강진의 핸드 폰에서 유심을 뽑아서는 새로운 핸드폰에 끼웠다.
“그 저장된 번호는?”
“옮겨 드리겠습니다.”
핸드폰 전원을 켠 소월향이 전 화번호들을 옮겨주었다.
“잘하시네요.”
“부업이니까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한 소월향이 슬며시 강진을 보았다.
“아가씨꺼서 가게에 오래 머무 시는군요.”
“소희 아가씨요?”
“네.”
“저희 가게에 있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소희 아가씨의 기운이 느껴집 니다.”
소월향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아가씨 지금 저승 향수를 뿌려 서 귀기가 안 느껴질 텐데?”
“귀기와 기운은 다른 의미입니 다. 또한…… 아가씨께서는 귀신 이면서 한국에 몇 없는 무신이기 도 하십니다.”
“아……
소월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말했다.
“요즘 드라마 보시느라 가게에 머물고 계십니다.”
“그러시군요.”
말을 하는 소월향의 얼굴에 살 짝 서운함이 어렸다.
“안부 물었다고 말씀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소월향의 눈가가 살짝 올라갔다. 좋아하는 기색이 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한 번 들르라 전해 드리겠습니 다.”
“그러실 필요는 없지만…… 그 래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지 리산에서 좋은 차를 구했다 전해 주십시오.”
“아가씨께서 차를 좋아하시나 요?”
“좋아하십니다.”
말을 하며 소월향이 한쪽을 보
았다. 그곳에는 고풍스러운 도자 기 찻잔 세트가 놓여 있었다.
“먼지만 쌓이는 그릇이 이제야 주인을 만나겠습니다.”
“아가씨가 주인이신가 보네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월향의 얼굴에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듯한 미소가 어려 있었 다.
소월향이 좋아하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무당한테 소희 아가씨는
최고의 접신이겠구나.’
한국 최고의 처녀 귀신이자, 무 신이다. 그런 귀신과 만나면 소 월향으로서는 점발이 더 좋을 것 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소 월향이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케이스 끼워 드릴까요?”
“어떤 것이 있나요?”
“이 모델이면……
소월향이 한쪽에서 케이스를 몇
개 가지고 왔다. 그중 유리 질감 을 가진 파란색 케이스가 마음에 든 강진이 그것을 골랐다.
케이스를 끼워 준 소월향이 핸 드폰을 내밀었다.
“됐습니다.”
“ 얼마죠?”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저녁에 김밥이라도 싸다 드릴 게요.”
“그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
다.”
소월향의 말에 고개를 숙인 강 진이 핸드폰을 들고 가게로 돌아 왔다.
가게로 들어온 강진은 황민성이 웃으며 말하는 것이 들렸다.
“처음에 그랬단 말이야? 정말? 강진이가 나한테 귀신 무섭다고 한 이유가 있었네.”
황민성의 목소리에 강진이 웃으 며 다가갔다.
“무슨 이야기를 이렇게 재밌게
나누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너 여기 가게 처음 열었을 때 이야기 듣고 있었어.”
“제 이야기요?”
“용수 보고 기절할 뻔했다면 서?”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그때는…… 좀 많이 놀라 기는 했었다.
피 흘리고 있는 배용수를 처음 봤을 때는 정말 기절 안 한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그래서 제 이야기 하고 계셨어 요?”
“험담은 안 했으니 걱정하지 마 라.”
“걱정이 조금 되는데요.”
“걱정하지 마.”
웃으며 말을 한 황민성이 소주 를 따라 마시자 강진이 잔에 술 을 채워주었다.
자리에 앉은 강진이 앞에 놓인 핸드폰을 보았다. 핸드폰 위로 펜이 움직이며 글을 적고 있었 다.
〈그때 나 보고 아마 오줌 좀…….>
배용수가 적고 있는 글을 보며 강진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 다.
‘좋은가 보네.’
황민성과 이렇게라도 이야기를 나누니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그래. 마음껏 씹고 잘 뱉기만 해라.’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배용수 가 적은 글을 보며 이야기를 나 누기 시작했다.
* * *
아침 일찍 강진은 푸드 트럭에
음식들을 싣고 있었다. 아이스박 스 몇 개를 싣고 배용수가 안에 서 물품들을 살피는 사이 강진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에 강진이 핸드폰을 꺼내다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신형이라 기분이 좋네.’
중고기는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보다는 엄청 최신형이다.
핸드폰을 보던 강진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희 지금 가게 앞인데요.]
“아! 잠시만요.”
전화를 끊은 강진이 뒷문으로 들어가 앞문을 열었다. 앞문에는 이아름과 장현희가 서 있었다.
“시간 맞춰서 오셨네요.”
“그럼요.”
“들어오세요.”
두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 자, 이아름의 수호령인 할아버지
귀신이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할아버지 귀신에게 작게 고갯짓 으로 인사를 한 강진이 문을 잠 그고는 뒷문으로 가며 말했다.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요.”
“제가 김밥을 좀 쌌는데 가면서 드시면 되겠네요.”
강진이 웃으며 뒷문을 열고 나 가자 두 사람이 따라 나오다가 푸드 트럭을 보고는 의아한 듯 말했다.
“푸드 트럭을 빌리셨어요?”
“제 겁니다.”
“푸드 트럭이 있으세요?”
장현희가 놀란 눈으로 하는 말 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 봉사 활동을 할 때 편하 더라고요.”
“이야…… 대단하세요.”
푸드 트럭을 보던 장현희가 말 했다.
“안에 좀 봐도 돼요?”
“그럼요.”
강진의 말에 장현희가 푸드 트 럭 안으로 들어가서는 내부를 보 았다.
“와! 알차게 있을 건 다 있네 요.”
“그럼요.”
“전자레인지도 있네요.”
“음식 차가워지면 필요하더라고 요.”
요리사인 그녀는 푸드 트럭의 조리 공간을 이리저리 보며 감탄 을 토했다.
아기자기한 조리 장비들을 보니 재밌기도 하고 신기한 것이다.
“식재는 제가 알아서 채워 봤습 니다.”
강진이 아이스박스를 가리키자, 장현희가 그것을 열어서는 식재 들을 살폈다.
“이 정도면 자장면하고 짬뽕, 탕수육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요.”
그러고는 장현희가 강진을 보았 다.
“혹시 제가 할 것 생각해서 준 비하신 건가요?”
“중식을 하시니 좀 맞게 준비했 습니다. 그리고 애들 자장면 좋 아하기도 하고요.”
강진의 말에 장현희가 미소를 지었다.
“잘 됐네요. 제가 또 특기가 자 장면인데.”
웃는 장현희를 보며 고개를 끄 덕인 강진이 이아름을 보았다.
“준비 좀 해 오셨어요?”
“환절기에 감기 걸리면 먹을 약 하고, 기관지에 좋은 약을 좀 가 져왔어요.’’
“잘 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요 즘 공기 안 좋아서 애들 기관지 많이 안 좋을 텐데.”
그러고는 강진이 푸드 트럭 문 을 열었다.
“ 타세요.”
장현희와 이아름이 차에 타자 강진이 할아버지 귀신을 보았다.
“불편하시겠지만, 짐칸에 타셔 야겠네요. 용수하고 이야기하시 면서 오세요.”
강진이 푸드 트럭 안을 가리키 자 할아버지 귀신이 웃었다.
“붕 떠서 다니는 것보다는 낫습 니다.”
웃으며 할아버지 귀신이 트럭에 타자 배용수가 인사를 했다.
“잘 지내셨어요?”
“저야 잘 지냈습니다.”
두 귀신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을 보며 강진이 캡을 닫았다. 그 리고 운전석에 탄 강진은 이아름 이 차를 둘러보는 것을 보았다.
“저 이런 차 처음 타 봐요.”
이아름의 말에 장현희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자주 타는데.”
“자주?”
“아침에 식재 사러 시장 갈 때
이런 트럭 타고 갔다 오거든.”
장현희의 말에 강진이 차 시동 을 걸며 물었다.
“식재 받아쓰지 않고 직접 장을 보세요?”
“업체에서 사는 것도 좋지만 직 접 가서 물건 보고 사는 것을 주 방장님이 선호하셔서요. 그리고 가서 생각지 못한 식재 보게 되 면 새로운 메뉴도 만들 수 있고 요.”
“그날그날 식재에 따라 메뉴도
바꾸나 보네요?”
“기본 메뉴들은 정해져 있는데 그 메뉴의 식재 상태가 좋지 않 고, 다른 식재가 좋다 싶으면 요 리 몇 개는 변하죠.”
그러고는 장현희가 웃으며 말했 다.
“그리고 저희 주방장님 지론이 요리사가 시장을 멀리하면 장사 망하는 거래요.”
“사장님이 주방장을 잘 뽑으셨 네요.”
“주방장님이 사장님이에요.”
“아……
그래서 그렇구나 싶었다. 아침 시장에 가서 물건 떼고, 거기에 주방 일까지 하면 하루에 최소한 열다섯 시간 근무다. 아무리 돈 이 좋아도 이렇게 일을 할 직원 은 없을 것이다.
사장이면서 주방장이니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자기 사 업이니 말이다.
“식당이 꽤 큰가 봐요?”
“크죠. TV 에도 몇 번 나왔어 요.”
“맛집인가 보네요?”
말을 하며 강진이 차를 출발시 키자, 장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일을 하는 곳이라서가 아 니라 정말 맛집이에요. 특히 요 리 메뉴가 엄청 맛있어요.”
“자장과 짬뽕은요?”
“에이! 그거야 기본이죠.”
웃으며 장현희가 말을 이었다.
“자장과 짬뽕이 엄청 맛있기도 힘들지만, 엄청 맛없기도 힘들어 요. 아세요?”
장현희의 말에 강진이 생각을 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어느 중 국집에다 시켜도 자장과 짬뽕은 평타 정도는 한다.
물론 재료 안 좋은 중국집이나, 배달 거리가 멀어서 불어서 오는 것을 제외하고 양심적으로 장사 를 하는 집들을 기준으로 하면 말이다.
그리고…… 음식 장사만큼 정직
한 것도 없다. 재료 안 좋은 것 쓰고 양심적으로 장사하지 않는 가게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한 번은 모르고 먹어도, 아무리 싸도 맛없으면 안 가고 안 사 먹 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몇 년 동안 장사를 꾸준히 하는 음식점은 기본적인 맛은 보장이 되어 있었다.
“그건 그렇죠.”
“요리 잘하는 집에서 자장과 짬 뽕을 못 하겠어요?”
“그러네요.”
말을 한 장현희가 웃었다.
“이따 제가 수타 짬뽕의 참맛을 보여 드릴게요.”
“직접 수타도 하세요?”
“저희 가게 주방 신입은 수타부 터 배우거든요.”
“보통 주방 신입은 설거지부터 안 해요?”
“다른 곳은 아직도 주방 식구 들어오면 설거지 일 년이나 길면
이 년 정도 시킨다는데 저희 가 게는 주방으로 들어오면 수타부 터 배우고 바로 음식 만들어요. 사장님 지론이 설거지해서 얻는 건 주부습진밖에 없대요.”
“주부습진…… 하! 말 재밌네 요.”
“재밌기도 하고 맞는 말이잖아 요.”
“그건 그렇네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 강진이 편의점 앞에서 차를 세웠다.
“음료수 뭐 드시겠어요?”
“저 커피요.”
“제가 살게요.”
이아름이 내리려 하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계세요. 그럼 커피로 사 올게 요.”
말을 한 강진이 편의점에서 커 피 세 캔을 사서는 이아름에게 건네고는 푸드 트럭 캡을 열었 다.
강진이 머리를 들이밀자, 배용 수가 김밥을 먹다가 그를 보았 다.
“벌써 먹고 있었어?”
“여기서 할 것이 있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으며 할아버지 귀신을 보았다.
“김밥 괜찮으세요?”
“맛이 좋습니다.”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김밥을
싸면서 할아버지 귀신 올 것을 생각해 저승 표 김밥을 네 줄 만 들었다.
배용수와 할아버지 귀신 둘이 두 줄씩 먹도록 말이다.
“그거 남기면 안 돼. 애들이 먹 을 수도 있으니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었다.
“걱정하지 마.”
강진이 손을 내밀자 배용수가 비닐장갑 낀 손으로 사람이 먹는
김밥을 꺼내 내밀었다.
“맛있게 먹어라.”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캡을 닫고는 차에 올라타 며 김밥을 장현희에게 내밀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출발하지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