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화
“회장님이면 할아버지요?” 강진의 물음에 장은옥이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프시구나.”
“나이가 있으시니까요.”
“연세가 많으신가 보네요.”
“네.”
입맛을 다시며 장은옥이 자장면 을 먹기 시작했다. 강상식처럼 짬뽕 국물을 넣고 비벼 먹는 장 은옥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강상식 씨가 저 없어도 여기 와서 봉사 활동을 하고 갔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강진의 말에 장은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도련님이 어릴 때는 착하셨어 요.”
‘어릴 때는? 지금은 아니라는
소리인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장 은옥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 렸다.
푸드 트럭 옆에 있는 의자에 강 상식이 앉아 있고, 이아름이 그 를 진맥하고 있었다.
“스트레스가 많으시네요.”
“요즘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 있 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현대인에게 가장 고질병이니까요. 하지만 스트레
스가 많기는 하세요.”
말을 하며 이아름이 강상식의 가슴께를 눌렀다.
“끄응!”
“이 고통이 다 스트레스예요.”
“그렇게 누르면 다 아플 것 같 은데……
“아프기는 해도 이렇게 아프지 는 않아요.”
웃으며 이아름이 옆에 있는 평 상을 가리켰다.
“여기 누우세요.”
“누워야 합니까?”
“침 좀 맞고, 배에 뜸 놔 드릴 게요.”
“뜸?”
“막 뜨겁거나 한 것은 아니고 살짝 따뜻한 기운 도는 것이니 겁내지 마세요.”
이아름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강상식이 평상에 누웠다. 그러자 이아름이 그의 옷을 위로 걷어 배를 드러내고는 옆에서 작은 항
아리 같은 통을 배에 올리고 그 안에 쑥뜸을 놓고는 불을 붙였 다.
“잠시 이렇게 계세요.”
이아름이 침을 꺼내 드는 것을 보던 강진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 지 허연욱을 불렀다.
“허연욱, 허연욱, 허연욱.”
곧 그의 옆에 허연욱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연욱이 여기가 어디인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강진이 말
했다.
“저기 죄송한데 저 여자분 좀 봐 주실래요?”
강진이 이아름을 가리키자, 허 연욱이 물었다.
“한의사입니까?”
“실력이 어떤지 한 번 봐 주세 요.”
강진의 말에 허연욱이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허연욱이 트럭에서 내려 이아름 의 옆으로 가는 것을 보며 강진 이 장은옥을 보았다.
“저는 저하고 친해지려고 봉사 활동 따라오신 줄 알았는데
“도련님이 봉사 활동을 즐거워 하세요.”
“그래요?”
“자신을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 으니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아요.”
장은옥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사람들한테 미움을 많이 받나 요?”
“그게……
잠시 우물쭈물하던 장은옥이 한 숨을 쉬며 말했다.
“어렸을 때는 착하셨는데, 집안 분들이…… 하아!”
한숨을 쉬는 장은옥의 모습에
강진이 강상식을 보았다.
집에서 구박을 받았나요?”
“네. 그래서 도련님께선 저에게 만 의지를 하셨어요. 그러다가 제가 죽어서... 마음을 줄 곳도
없으시고.”
“재벌가 가족들이 서로 후계자 경쟁을 하는 건 드라마를 통해 본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있고 형제인데……
강진의 중얼거림에 장은옥이 입 술을 깨물다가 입을 열었다.
“ 사실......"
잠시 머뭇거리던 장은옥이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아버지입니다.”
장은옥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회장님이 아버지요? 할아버지 라…… 아?”
강진이 놀란 눈으로 장은옥을 보았다.
‘설마?’
그런 강진의 모습에 장은옥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도련님은 저하고 회장님 사이 에서의 아이예요.”
장은옥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그녀를 보았다.
“어머니셨어요?”
장은옥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러자 강진이 강상식을 보 았다.
강상식은 머리에 침을 맞고 있 었다. 그런 강상식을 보던 강진 이 다시 장은옥을 보았다.
“강상식 씨도 아세요?”
“모른다 생각했는데…… 아시더 군요.”
“귀신 되고 아셨어요?”
장은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지갑을 가지고 계시더라고 요. 그리고…… 어머니라고 하는 데.”
울컥!
눈물이 나려는지 목소리가 떨리 는 장은옥을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상황이 대충 짐작이 되네.’
가정부인 장은옥 씨가 회장님의 애를 낳았으니 그의 자식들은 눈 이 뒤집어졌을 것이다.
회장의 친자식으로 호적이 올라 가면 자신들에게 올 재산이 줄어 드니…… 손자로 호적을 올렸을 것이다.
다 늙은 노인이 막내를 봤다는 것도 재벌가에서 민망한 일이니 말이다.
강진은 바로 상황 파악이 되었
다. 그리고…….
‘회장 이 미친놈.’
장은옥이 언제 애가 생겼는지 몰라도, 다 늙은 노인네와 사랑 으로 강상식을 낳지는 않았을 것 이다.
협박, 회유…… 폭력일 수도 있 다. 어쨌든 강압일 것이다.
그리고…….
강진이 장은옥을 보았다. 훌쩍 거리고 있는 장은옥을 보니 안쓰 러웠다.
‘그렇게 애 낳게 했으면 잘 살 펴 주기라도 하지.’
아버지가 아닌 형의 아들로 자 랐다. 사실상 모든 형제보다 밑 에서 자란 것인데…… 그들이 강 상식을 형제로 여기지 않았던 모 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원수나 적으로 여 길 것이다. 유산을 노리는 적으 로 말이다.
그러니 집안에서 어떻게 자랐을 지 감이 왔다. 사방이 적이고 구 박을 당했을 것이다.
마치 남자 판 신데렐라라고 할 까? 물론 신데렐라는 커서도 착 했고, 강상식은 조금 나쁜 쪽으 로 자라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정을 들으니 조금 은…… 이해가 되었다.
이전에는 그나마 자신을 사랑하 고 아껴주는 엄마가 있었지만, 그녀가 죽은 후에는 사방에 자신 의 것을 빼앗고 자신을 구박하는 적들만 있었을 것이다.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곳에서 그는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반겨주는 사람이 있어서 여기 오는 곳을 좋아한다고 했었지.’
어디서도 반겨주지 않으니 반겨 주는 보육원 아이들이 좋은 것이 다.
‘상식이 사연이 좀 세기는 하 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에 있겠냐마는…… 강상식 사연 은 좀 세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사연이 라고 할까? 드라마와 다른 점
은…… 이런 사연을 가진 사람은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회사의 후 계자로 우뚝 서지만, 강상식은 악역 중에서도 조연 포지션을 가 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입맛을 다시던 강진이 장은옥을 보았다.
“그런데 저에게 그런 이야기 하 기 어려우셨을 텐데?”
여러 의미로 하기 어려운 이야 기일 것이다.
강진의 말에 장은옥이 손을 내
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
“도련님과 친구가…… 되어 주 세요.”
장은옥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전에도 장은옥은 이런 부탁을 했었다.
소주 한 잔 나누는 사이가 되어 주라고, 그와 친구가 되어 주라 고 말이다.
“전에도 이야기했는데…… 친구 라는 것이 강제로 되는 것이 아 니에요.”
강진의 말에 장은옥이 잠시 머 뭇거리다가 말했다.
“도련님은…… 강진 씨를 친구 처럼 생각하는데.”
“저를요? 왜요?”
강진이 의아한 듯 장은옥을 보 았다.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은 인상이 좋아지고 편해지기는 했 지만 친구라고 여기기는 무리가 있었다.
“가끔 도련님이 술 마시고 싶을 때 한끼식당에 왔다 가세요.”
“저희 가게에요?”
“네.”
“왔으면 들어오지 왜?”
“끼니때는 들어가시는데 술 한 잔하러 가는 것은 아직 어려우신 가 봐요.”
장은옥의 말에 강진이 강상식 쪽을 보았다. 강상식은 머리에 침을 여럿 꽂고, 배에는 뜸을 올 린 채 누워 있었다.
잠시 강상식을 보던 강진이 입 맛을 다시며 장은옥을 보았다.
어릴 때 옆집 엄마가 자기 아들 하고 친하게 지내라고 오백 원짜 리를 줬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친구 엄마, 아니 장은 옥이 친하게 지내라고 해서 마음 에 안 드는 사람과 친구가 될 생 각은 없었다.
다만…….
강진은 트럭 쪽을 보았다. 트럭 은 어느새 건물 쪽으로 이동해 있었고, 거기에서 새 에어컨 두 대가 내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에어컨을 신기 한 눈으로 보거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와! 이제 여름에 시원하게 지 내는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아이들의 외침과 남궁문의 말에 에어컨 설치 기사로 보이는 사람 이 웃으며 말했다.
“이게 전기 1등급 제품이라 다 른 제품들보다 전기를 많이 먹지 않습니다. 처음 트실 때 세게 틀
어서 온도 떨어뜨리고 선풍기 사 용하면 전기 많이 안 먹습니다.”
설치 기사도 보육원의 아이들이 에어컨을 보며 좋아하는 것을 보 고 기분이 좋은 듯했다.
자기 돈 들여서 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육원에 설치를 하는 것이니 말이다.
비록 강상식의 갑질로 일요일에 설치를 하게 됐지만 말이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저게 마음에 좀 걸렸다.
아주 나쁜 놈이면 신경 끄겠는 데 장희섭을 도와준 것도 있고, 보육원에 신경 써주는 게 영 걸 렸다.
처음에야 황민성과 자신의 관계 때문에 잘 보이려고 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황민성이 아니라 자신이 오고 싶어서 보육원에 오 고, 도와주고 싶어서 돕는 것이 다.
잠시 에어컨을 보던 강진이 장 은옥을 보았다.
“제가 친해지려고 아부를 하거 나 다가가지는 않을 겁니다.”
“아......"
장은옥이 작게 탄식을 토하는 것을 보며 강진이 말을 이었다.
“대신…… 저하고 한잔하고 싶 다고 하면 거절하지는 않겠습니 다.”
“정말이세요?”
“네.”
강진의 말에 장은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도련님이 한 끼식당에 가면 제가 바로 말씀드 릴게요. 강진 씨가…… 나와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좀 해 주시겠 어요?”
“술값만 낸다면야 그 정도 호객 행위는 해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장은옥이 환하게 웃었다.
“우리 도련님 돈은 많아요.”
장은옥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으며 에어컨을 보았다.
“에어컨 최신식인 것을 보면 그 런 것 같네요.”
작게 중얼거리며 에어컨을 볼 때, 보육원으로 차 두 대가 들어 오기 시작했다.
부릉!
익숙한 차의 모습에 강진이 웃 으며 그쪽을 보았다. 황민성의 차였다.
‘그나저나 늦으셨네?’
일찍 올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12시 가까이에 온 것이다.
부릉!
푸드 트럭 옆에 멈춘 차에서 황 민성이 어머니를 모시고 내렸다.
“어머니, 오셨어요?”
강진의 인사에 조순례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강진아.”
자신을 알아보는 푸근한 미소에 강진이 웃었다.
‘어머니 지금은 멀쩡하시네.’
치매 증상이 지금은 보이지 않 는 것이었다.
“인사 제대로 해야 하는데 김밥 을 싸는 중이라서요.”
“나도 김밥 잘 싸는데.”
“그럼 올라오셔야죠.”
강진의 말에 조순례가 웃으며 푸드 트럭 뒤로 오르려 하자, 황 민성이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강진도 조순례를 부축해서 옆에
앉히곤 김밥 재료를 가리켰다.
“어머니 김밥이 또 맛있지요.”
강진의 말에 조순례가 환하게 웃었다.
“내가 분식집 하면서 싼 김밥을 길게 늘어뜨리면 서울에서 제주 도까지 이어질 거야.”
“부산도 아니고 제주도까지요? 대단하세요.”
강진의 말에 조순례가 웃으며 김을 올리고는 밥을 펴기 시작했 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황민성은 어느새 옥난을 조순례 앞에다 조심히 놓고 있었 다.
“이걸 여기까지 가지고 오셨어 요?”
“당연하지.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
부채를 꺼내 어머니 쪽으로 살 살 부치기까지 하던 황민성이 힐 끗 강상식을 보았다.
“쟤는 왜 여기 있어?”
“보육원 에어컨 낡았다고 사 왔 더라고요.”
강진이 트럭 쪽을 가리키자, 황 민성이 그쪽을 보았다.
“나 오는 줄 알고 온 건가?”
“저 없을 때도 몇 번 와서 봉사 하고 기부도 하고 가는 모양이에 요.”
“그래?”
황민성이 강상식을 보았다. 강 상식도 황민성이 온 줄 아는지 힐끗힐끗 이쪽을 보다가 그와 눈
이 마주치자 작게 고개를 숙여 아는 척을 했다.
그에 황민성도 작게 고개를 숙 여 인사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