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375화 (373/1,050)

374화

김충호가 화장실로 가자 배용수 가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적응이 빠르네.”

“귀신보다 나쁘고 흉악한 사람 들 인터뷰도 하고 그랬다잖아.”

“그런가?”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것 을 아는 거지.”

그러고는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그래도 무서움은 여전한 것 같 지만.”

“ 나온다.”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돌린 강 진은 손을 털며 나오는 김충호를 보았다.

손의 물기를 털은 김충호가 의 자에 앉으며 물었다.

“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 니다.”

“말씀하세요.”

“귀신이 흔합니까?”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귀신이라는 건…… 한이 많아 서 남는 것입니다. 귀신이 될 정 도로 한을 가지기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한이라면…… 제가 생각하는 그겁니까?”

“맞을 겁니다.”

귀신에 대한 것은 잘 몰라도 한 이 뭔지는 알 테니 말이다.

“한이라……

강진의 말에 김충호가 자세를 바로하고는 소주를 따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강진을 보았다.

“저……

뭔가 말을 할 듯 잠시 머뭇거리 던 김충호가 입맛을 다시고는 말 을 이었다.

“효정 씨에게도 귀신이 있습니 까?”

“귀신?”

“제가 효정 씨 전남편이었다 면…… 정아와 수아, 그리고 효 정 씨가 마음에 걸려서 죽어도 눈을 못 감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김충호가 재차 물었 다.

“혹시…… 효정 씨한테 남자 귀 신이 있습니까?”

김충호의 물음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분이 있더군요.”

“아......"

강진의 답에 김충호가 잠시 멍 하니 있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군요.”

“마음에 안 드세요?”

강진의 물음에 김충호가 고개를 저었다.

“저보다 김진배 씨가 먼저입니 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한테 왜

여기 있냐고 할 수 있나요.”

그러고는 김충호가 미소를 지었 다.

“아니, 오히려 마음이 좋습니

다.”

강진이 쳐다보자 김충호가 웃으 며 말했다.

“귀신으로 남을 정도로 그녀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분이니까요.”

그러고는 김충호가 강진을 보았 다.

“저 죄송하지만 저녁 예약 좀 해도 되겠습니까?”

“지금요?”

“이왕 귀신을 보게 됐는데……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 인사……

잠시 김충호를 보던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김충호의 인사에 강진이 말했

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를 해 주 셨으면 합니다.”

“주의요?”

“효정 씨나 아이들에게는 김진 배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마 세요. 알게 되면 마음이 아프실 겁니다.”

강진의 말에 김충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진배 씨한테는 미안하고 효 정 씨한테는 비겁하지만, 저도

이야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고는 김충호가 참치김치찌 개를 보았다.

“이 김치찌개 먹고 난 후에 효 정 씨가 우울해하더군요. 김진배 씨가 자주 끓여 줬다는 음식 하 나로도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옆 에 있다는 걸 알면……

김충호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를 안 만나 줄 것 같습니 다.”

한숨을 쉰 김충호가 김치찌개를 떠서 먹었다.

“이렇게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 일 줄 아는 분이 귀신이 돼서 옆 에 남아 있다고 하면…… 저 같 은 것이 눈에 보이겠습니까? 비 겁하지만 저는 효정 씨 옆에 있 고 싶습니다.”

“자신감을 좀 가지세요.”

강진의 말에 김충호가 웃으며 말했다.

“자신감은 있어요. 근데…… 죽

은 사람을 상대로 이길 자신은 없습니다.”

그러고는 김충호가 김치찌개를 떠서 먹고는 웃었다.

“이렇게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 이는 데다, 죽어서도 아내 옆을 지키는 사람을 어떻게 이깁니 까?”

김충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연락해서 오시라고 하세 요.”

강진의 말에 김충호가 핸드폰을 꺼내서는 전화를 걸었다.

“효정 씨, 식사하셨어요? 그렇 죠. 아직 저녁때가 아니죠. 혹시 괜찮으시면 애들하고 전에 왔던 한끼식당에 식사하러 오시겠어 요? 오늘은 제가 음식을 해 드리 려고요. 저희 집이나 효정 씨 집 에서 제가 밥을 하면 정아하고 수아가 싫어할 것 같아서요. 그 래서 오늘은 제가 음식을 좀 해 드리고 싶습니다. 네. 아! 알겠습 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는 김충호를 보며 강진이 물었다.

“오신대요?”

“딸들한테 물어본다는군요.”

곧 김충호의 핸드폰에서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그에 핸드폰을 본 김충호가 미소를 지 었다.

“온다는군요.”

김충호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그럼 음식은 어떻게 하시겠어

요?”

그에 김충호가 잠시 김치찌개를 보다가 말했다.

“제가 해 보겠습니다.”

“요리 잘하시나 봐요?”

강진의 말에 김충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취를 오래 하기는 했는 데…… 밥을 해 먹지를 않아서 잘 할 줄 모릅니다.”

“그럼 뭘 하시려고요?”

“일단은…… 제가 해 보겠습니 다.”

김충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한다는 것이 중요하겠 죠.”

‘음식은 마음이니까.’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자리에 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도 메뉴는 정해야 하지 않 겠어요?”

강진의 말에 김충호가 잠시 생 각을 하다가 의견을 꺼냈다.

“참치김치찌개는 제가 잘 하게 됐으니 그거 하고, 계란말이하고 소시지…… 계란 입혀서 구우면 어떨까요?”

“소시지 계란 입힌 건 그렇다 쳐도, 계란말이는 실력이 조금 필요한데.”

“그런가요? 그냥 계란 풀고 말 면 되는 것 아닌가요?”

쉬운 것 아니냐는 듯 말하는 김

충호를 보며 강진이 웃었다.

“해 본 적 없으시죠?”

“집에서 밥을 잘 안 먹어서

“해 보면 알겠죠.”

말을 하며 강진이 주방으로 들 어가자, 김충호가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아!”

돌연 좋은 생각이 난 듯 강진이 김충호를 보았다.

“나물 좀 해 보시겠어요?”

“ 나물요?”

“봄 하면 나물이죠.”

말을 하며 강진이 냉장고에서 뭔가가 담긴 검은 봉지를 꺼냈 다.

봉지를 열자 그 안에서 냉이가 모습을 보였다.

“마침 어제 냉이가 좀 들어왔는 데 냉이무침 어떠세요?”

“해 본 적이 없는데……

“계란말이도 해 본 적 없으시잖 아요.”

“그건 그런데……

나물이라는 이름의 벽에 김충호 가 어려움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하긴, 요리 한 번 해 본 적이 없 는 사람에게 나물 요리는 좀 부 담스러울 것이다.

김충호가 자신 없어 하자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생각 보다 아주 간단해서 깜짝 놀라실

거예요.”

강진의 말에 김충호가 숨을 고 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 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긴장되세요?”

“좀 그러네요.”

김충호가 미소를 지으며 냉이를 손으로 쥐어 코에 가져갔다.

“향 좋네요.”

“봄나물의 향은 꽃보다 좋죠.”

강진의 말에 김충호가 향을 맡

다가 말했다.

“제 입에 들어갈 거면 그냥 생 으로 씹어 먹겠는데…… 효정 씨 와 애들이 먹을 거라고 생각하니 긴장되네요.”

“내 입에 들어가는 것과 남의 입에,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은 다를 수밖 에 없죠.”

강진의 말에 김충호가 냉이를 놓았다.

“그럼 뭐부터 할까요?”

강진이 냉이를 가리켰다.

“일단 볼에다 냉이 담고 손질부 터 하시죠.”

“볼? 공요?”

볼이 뭔지 모르는 김충호 대신 강진이 큰 사이즈의 볼을 싱크대 에 놓아 주었다.

“갈 길이 참 멀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충호가 입맛을 다셨다.

“집에서 밥을 잘 안 먹어서

그러고는 김충호가 볼에 냉이를 쏟았다.

* *  *

한끼식당 앞에 멈춘 택시에서 이효정과 두 딸이 내렸다.

“무례해.”

둘째 김수아의 말에 김정아가 그녀를 보았다.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

“무슨 약속을 당일에, 그것도 저녁 먹기 전에 잡아?”

투덜거리는 김수아를 보며 김정 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아저씨가 엄마하고 우 리한테 밥 해 주고 싶다 하시잖 아.”

“누가 밥 못 먹고 사는 줄 아 나?”

“직접 해 주시고 싶다잖아.”

“그건 좀 괜찮네.”

김수아의 말에 김정아가 엄마를 보았다. 이효정은 상가 유리창을 통해 자신을 살피고 있었다.

‘‘이뻐.”

“얘는 무슨…… 그냥 옷 정리한 거야.”

웃으며 말을 한 이효정이 김정 아를 보았다.

“그런데 이뻐?”

“그래. 그만 들어가자.”

김정아의 말에 이효정이 웃으며 두 딸의 손을 잡고는 한끼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띠링!

문을 열고 들어간 이효정은 달 그락거리는 소리만이 들리는, 텅 빈 홀을 볼 수 있었다.

곧 홀로 김충호와 강진이 모습 을 드러냈다.

“오셨어요?”

강진의 인사에 이효정이 작게 고개를 숙였다.

“이리 앉으세요.”

반갑게 이효정을 보던 김충호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이효정의 뒤에 서 있는 김진배를 본 것이 다.

꿀꺽!

김충호의 시선이 흔들렸다.

‘뭐가…… 이렇게 잘생겼어.’

애들이 자기 아빠 엄청 잘생겼 다고 하던 이야기를 몇 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연예인이잖아.’

방송국 보도국에서 일하다 보니 잘생긴 연예인들을 자주 보는 그 였다.

꼭 연예인이 아니라, 아나운서 만 해도 잘생긴 남자들이 많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김진배 는 김충호가 본 잘생긴 사람들을 모두 얼굴로 씹어 먹고 있었다.

‘피를 먹었나 입술이 왜 저렇게 붉어? 속눈썹은 뭐 붙인 건가?’

김진배를 보며 김충호는 어쩐지 자신감이 팍팍 깎이는 것을 느꼈 다.

저렇게 잘생긴 사람과 살던 이 효정이 왜 자신을 만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충호 씨?”

자신을 멍하니 보고 있는 김충 호의 모습에 이효정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이효정의 말에 김충호가 급히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앉으세요.”

그에 이효정과 아이들이 자리에 앉았다. 김충호가 그녀들에게 물 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제가 음식을 한 번 해 드리고 싶어서 모셨습니다. 음식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고마워요.”

이효정의 말에 김충호가 김정아 와 김수아를 보았다.

“조금만 기다려 줘.”

“알았어요.”

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 충호가 주방으로 향하며 다시 한 번 김진배를 보았다.

김충호의 시선에 김진배가 의아 한 듯 그를 보았다. 그러자 배용 수가 다가가 그를 주방으로 데리 고 들어왔다.

주방에서 김충호는 입구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김진배가 들어 오자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김충호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것에 김진배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어?”

“김충호 씨가 귀신을 볼 수 있 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진배가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다 김진 배의 시선이 김충호로 옮겨갔다.

“귀신을 원래 봅니까?”

“원래는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김진배의 물음에 강진이 말했 다.

“저희 가게에서 귀신이 먹는 소 주를 드셨거든요.”

“그거 먹으면 귀신을 봅니까?”

“계속은 아니고 잠시 동안은 요.”

강진의 말에 김진배가 놀란 눈 을 할 때, 김충호가 말했다.

“김진배 씨와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 다.”

김충호의 말에 김진배의 눈에 어려 있던 놀람이 사라졌다. 그 러고는 진중한 얼굴로 김충호를 보았다.

“효정이가 갑자기 약속이 잡혀 서 이상하게 생각을 했는데…… 청혼이 아니라 저 때문이었군 요.”

“청혼?”

“갑자기 약속을 잡아서 효정이

가 ‘프러포즈?’라고 하더군요.”

“혹시…… 좋아……하던가요?”

김충호의 말에 김진배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중에 확인하세요. 저한테 묻는 건 좀 아닌 것 같습 니다.”

“아…… 죄송합니다.”

죽었다고 해도 남편인 김진배 다. 그에게 이효정이 자신의 청 혼을 좋아할지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 고 싶으십니까?”

김진배의 말에 김충호가 멈칫하 고는 그를 보다가 입맛을 다셨 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는데 생각나는 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뭡니까?”

김진배의 물음에 김충호가 고개 를 숙였다.

“효정 씨와 정아, 수아…… 제

목숨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겠습 니다.”

김충호의 말에 김진배가 그를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잠시 한숨을 쉰 김진배가 입을 열었다.

“효정이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 다.”

김진배의 말에 김충호가 그를 보았다.

“날씨 좋은 날 한강 공원 걸으 면 그렇게 좋아합니다. 말없이 그냥 걸으세요. 그럼 가장 좋아 합니다. 그리고 효정이가 화가 났을 때도 말 걸지 마세요. 효정 이는 혼자 풀 시간이 필요합니 다. 또……

김진배의 입에서 이효정이 좋아 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것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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