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 화
강진은 점심 장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릇들을 정리해서 주방 으로 옮기던 강진의 귀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강진이 들어온 이 를 확인하곤 반기며 몸을 돌렸 다.
“오셨어요?”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김윤자 와 신수호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것은 이목한이고 말이다.
“어서 오세요.”
강진의 인사에 신수호가 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시죠.”
신수호의 말에 김윤자가 강진에 게 미소를 지었다.
“잘 지냈어요?”
“저야 잘 지냈습니다. 할머니는 잘 지내셨어요?”
“저야……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은 김윤 자가 자리에 앉자 신수호가 강진 을 보았다.
“방금 법정에서 오는 길입니 다.”
“법정? 오늘 재판 날이었나요?”
“네.”
“재판이 이렇게 빨리 이뤄지는 건가요?”
“이런 일은 길면 길수록 지저분
해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재판 날짜를 받았습니다.”
“확실히 변호사님이 실력이 좋 으시군요.”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다 잘 되신 겁니 까?”
“김윤자 씨와 그 자식들 간의 호적은 정리가 됐습니다. 이제 남입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왕래를 안 하 고 살 수도 있지만, 김윤자는 아 예 그들과의 호적을 정리했다.
김윤자 입장에서는 더 이상 그 아이들과 연을 맺고 싶지 않았 고, 신수호 입장에서는 훗날 김 윤자가 죽었을 때 그녀가 남긴 유산이 그쪽으로 가지 않도록 막 은 것이다.
“그리고 유산 반환 소송도 이겼 습니다.”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자식에겐 이목한의 유산에 대한 권리가 있으니 말이다.
“쉬웠습니다. 저에게는 이목한 씨가 남긴 빚에 대한 자료가 있 으니까요. 유산을 받으면 빚을 갚아야 하고, 빚을 갚고 싶지 않 으면 유산을 토해내야 합니다. 어찌 됐든 그들은 돈을 내야 하 는 상황입니다.”
그러고는 신수호가 강진을 보았 다.
“강진 씨도 앞으로 무슨 서류에 사인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저에게 상의를 하고 하십시오.”
“사인요?”
“서류에 사인을 한 것으로도 억 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신수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김윤자를 보았다.
“괜찮으세요?”
강진의 말에 김윤자가 한숨을 쉬었다.
“모르겠어요. 그 애들이 나한테
한 걸 생각하면 섭섭하고 화가 나는데…… 그래도 옛날에는 착 했는데.”
씁쓸한 듯 말하는 김윤자의 모 습에 신수호가 그녀를 보았다.
“보험을 생각하십시오.”
신수호의 말에 김윤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모습에 강진이 신 수호를 보았다.
“보험요?”
강진의 물음에 이목한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일단 우리 마누라 밥부터 좀 주지. 내가 이야기해 줄게.”
이목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윤자를 보았다.
“식사부터 하시죠. 아직 식사 전이시죠?”
점심을 먹기엔 조금 늦은 시간 이었지만, 이목한이 밥 주라고 한 것을 보면 식사 전일 것이다.
“밥 생각 그리 없어요.”
“그래도 식사하셔야죠.”
강진의 말에 이목한이 그를 보 았다.
“멸치 육수에 묵은지 넣고 끓인 것 우리 마누라 좋아합니다.”
강진이 그를 보자 이목한이 말 을 이었다.
“그렇게 해서 주면 개운하다고 좋아합니다.”
이목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윤자를 보았다.
“제가 알아서 음식 해 드릴게 요. 좀 드세요.”
“고마워요.”
김윤자의 말에 강진이 이목한과 함께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냄비에 뜨거운 물을 올리고는 멸 치를 넣고는 끓였다.
끓이는 동안 묵은지를 꺼낸 강 진이 김치를 통으로 냄비에 집어 넣었다.
‘멸치 김치찜이야 이게 끝이지.’
간단하게 멸치 육수 김치찜을 준비한 강진이 이목한을 보았다.
“근데 보험은 무슨 말이에요?”
강진의 물음에 이목한이 입맛을 다셨다.
“변호사님이 아내 이름으로 알 아보니 큰애하고 둘째가 애 엄마 이름으로 보험을 들어 놨더군.”
“실비나 암 보험은 원래 애들 이……
말을 하던 강진이 눈을 찡그렸 다. 부모님 실비나 암 보험을 들 어두는 것은 자식들이 많이들 한 다.
효도 개념도 있고, 나중에 큰
병 걸렸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현운 남매의 싹수를 생각하면 들 이유가 없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찾아가지 않던 자 식들이니 김윤자가 아프든 죽든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암에 걸렸다고 해도 신경을 쓰 지 않을 사람들이 매달 돈이 들 어가는 보험을 김윤자 이름으로 든다? 말이 안 된다.
“설마 사망 보험 든 겁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배용수가 놀 라 하는 말에 이목한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망 보험을 들었더라고.”
“아......"
배용수가 작게 탄식을 토했다. 사람이 죽으면 보험금이 나오는 것을 할머니 모르게 들어놓다 니…… 마치 언제 죽을지 기다리 고 있던 것 같지 않은가?
“악마가 박수를……
툭!
강진이 배용수의 어깨를 살짝 쳤다. 악마가 박수를 보낼 행동 이기는 해도…… 그래도 자식이 다.
부모 앞에서 자식 욕해서 좋을 것이 없었다.
한숨을 쉬던 이목한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마누라 나이도 많아서 보 험 들기도 어렵고, 보험금도 얼 마 안 나올 텐데…… 그걸 어떻 게 들어놨더군요.”
“할머니는 모르셨고요?”
고개를 젓는 이목한의 모습에 강진이 물었다.
“그럼 그 보험은 어떻게 하기로 하신 건가요?”
“사망에 특화되어서 다른 약관 은 걸지도 않았더군요. 그래서 해지해 버렸습니다. 마누라 죽고 나서 돈이 무슨 소용입니까?”
보험을 든 사람이 자식이라도 본인 앞으로 든 보험이니, 자신 이 싫다고 하면 해지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모르면 몰랐을까, 알았는데 이 런 보험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 다.
“잘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홀을 보았다.
“끝까지…… 할머니 속을 아프 게 하는군요.”
“어쩌다 애들이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책감이 느껴지는 이목한의 모
습에 강진이 말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자식 농 사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까 요.”
강진의 말에 이목한이 한숨을 쉬었다.
“나쁜 놈들……
한숨을 쉬는 이목한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지옥에 갈 거야. 지옥에……
이현운 남매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은 강진이 김치찜을 살피고는 말했다.
“할머니 좋아하는 음식 더 없어 요?”
“있기야 하지만…… 지금은 많 이 먹으면 체할 겁니다. 지금은 개운하고 깔끔한 이거면 됩니 다.”
이목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끓고 있는 냄비를 보다가 말했다.
“밥을 살짝 끓여서 드릴까요?”
“ 밥을요?”
“예전에 저희 어머니가 속 안 좋을 때 밥 끓여서 김치에 올려 먹었거든요.”
강진의 말에 이목한이 작게 한 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 실 이목한도 메뉴를 고민하고 싶 은 생각은 없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는 있지만, 이목한도 김윤자만큼이 나 속이 안 좋은 것이다.
그런 이목한을 보며 강진이 배
용수를 보았다. 그 시선에 배용 수가 냉장고에서 JS 소주를 꺼내 놓았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힘들 때는 이것만 한 것이 없죠.”
쪼르륵!
배용수가 소주를 따라 건네자 이목한이 얼떨결에 잔을 받아들 었다. 곧 그의 얼굴에 놀람이 어 렸다.
소주잔이 실제로 손에 잡히니 말이다. 처음 JS 물건을 만진 귀
신들은 다들 비슷한 반응을 보였 다.
배용수가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자 이목한이 소주를 마셨다. 지금은 놀람보다 진짜 소주를 마 신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꿀꺽! 꿀꺽!
소주를 두 모금에 나눠 마신 이 목한이 입맛을 다셨다.
“후! 좋군요.”
쪼르륵!
배용수가 소주를 다시 따라주고 는 냉장고에서 JS 소시지를 꺼내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서 놓았다.
“같이 드세요.”
“고맙습니다.”
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 강진이 김치찌개를 확인하고는 이목한을 보았다.
“김치찜 살짝 서걱거리는 것 좋 아하세요? 아니면 완전히 흐물흐 물해지는 것 좋아하세요?”
돼지고기 넣고 끓일 때는 김치
가 흐물흐물해지도록 푹 익히면 맛이 좋고, 개운하게 멸치 넣고 끓였을 때는 살짝 서걱거리는 것 이 맛이 좋다.
하지만 그것 역시 사람마다 취 향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취향 을 물어본 것이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할머니가 음식 주실 때 어땠어 요?”
“마누라가 줄 때는 살짝 서걱거 렸던 것도 같은데……
“혹시 어르신은 서걱거리는 것 좋아하세요?”
할머니가 자신의 취향은 아니더 라도 이목한의 취향에 따라 음식 을 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아무렇게나 상관없습니 다.”
이목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걱거리는 것 좋아하시 겠네요.”
불을 끈 강진이 쟁반에 음식들
을 담고는 팔팔 끓인 밥을 국그 릇에 담아 홀로 가지고 나왔다.
“음식 나왔습니다.”
강진이 끓인 밥을 조심히 김윤 자의 앞에 놓고는 신수호에게는 밥을 따로 주었다.
그리고 음식들을 놓자 김윤자가 의아한 듯 말했다.
“끓인 밥이네요?”
“속이 안 좋으실 것 같아서요. 이렇게 드시면 개운하고 편하실 겁니다.”
강진의 말에 김윤자가 그를 보 다가 한숨을 쉬었다.
‘몇 번 보지도 않은 분도 이렇 게 나를 생각해 주는데……
애들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랜 세월 열심히, 그리 고 사랑을 주면서 키웠는데…….
고개를 저은 김윤자가 숟가락으 로 죽 같은 밥을 떠서 입에 넣었 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 김윤자의 눈가
에 눈물이 고였다.
“혹! 흑!”
작게 눈물을 흘리며 밥을 떠서 먹는 김윤자의 모습에 강진이 한 숨을 쉬었다.
그녀는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의 배신, 아니 패륜에 몸과 마음이 너무 춥고 아픈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마음이 담긴 밥을 먹으니 위안을 얻은 모양이었다.
눈물을 홀리며 밥을 먹는 김윤 자를 보던 강진이 부엌에 들어갔
다.
그러고는 자신의 밥을 떠 와서 는 맞은편에 앉았다.
“할머니, 저도 배고프네요. 같이 밥 먹어도 될까요?”
강진의 말에 그를 본 김윤자가 미소를 지었다. 같이 밥을 먹자 는 말…… 그리고 자신에게 할머 니라고 하는 강진의 말이 너무 예쁘고 고맙게 느껴졌다.
“그래요. 같이 먹어요.”
김윤자의 말에 웃으며 강진이
가위로 김치의 꽁지를 잘랐다.
그러고는 밥에 김치를 한 조각 크게 올려서는 입에 넣었다.
사각! 사각!
입안에서 느껴지는 사각거리는 식감과 멸치 육수 특유의 향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제가 만들기는 했는데 참 맛있 네요. 드셔 보세요.”
말을 하며 강진이 김치를 손으 로 찢어 내밀자 김윤자가 웃으며 밥을 떠서는 내밀었다.
“많이, 그리고 맛있게 드세요.” 강진이 밥 위에 김치를 올려주
자 김윤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게 많이 먹을게요.”
그러고 입에 밥을 넣고 씹는 김
윤자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종종 입맛 없으실 때 오세요.
제가 맛있는 밥 해 드릴게요.”
“고마워요.”
눈물을 닦으며 김윤자가 밥과 김치를 먹기 시작하자, 강진도
맛있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다 먹은 김윤자에게 따뜻 한 믹스 커피를 타 준 강진이 이 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이목 한이 중얼거렸다.
“우리 윤자 이제 외로워서 어떻 게 하나?”
이목한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그 를 힐끗 보고는 다시 김윤자를 보았다.
‘가족이 없다고 하셨지?’
하긴 형제들이 있었다면 그녀의 자식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만 있 지는 않았을 것이다.
잠시 김윤자를 보던 강진이 슬 며시 입을 열었다.
“혹시 동물 좋아하세요?”
“ 동물?”
따뜻한 믹스 커피를 마시던 김 윤자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