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화
자리에 황희승 가족들이 앉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식사하셔야죠.”
“해야죠. 근데 입구에 보니 저 녁 메뉴가 나물이던데요.”
황희승이 아이들을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이 나물은 안 좋아하겠 죠?”
황희승이 한 말의 의미를 안 강 진이 황미소의 머리를 쓰다듬었 다. 황태수는 뭐든 잘 먹는 편이 지만, 황미소는 아직 어려서 그 런지 반찬 투정이 좀 있는 편이 었다.
그리고 황미소는 고기를 좋아한 다.
“우리 단골 오셨는데 특식 만들 어야죠. 미소, 돼지고기 좋아하 지?”
“네!”
“우리 가게에서 소금 돼지구이 안 먹어봤지. 그거 맛있어. 금방 해 줄게.”
“네!”
환하게 웃는 황미소를 보던 강 진이 황희승을 보며 물었다.
“선생님은 쑥국 괜찮으시겠어 요?”
“좋아합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주방에서는 배용수가 이미 돼지 앞다리 살을 꺼내 칼 질을 하고 있었다.
스륵! 스륵!
배용수의 손길에 고기가 썰리는 것을 보며 강진이 웃었다.
“게임에 빠진 줄 알았는데 그래 도 할 일은 하네?”
“오토 사냥 되니까. 켜 놓기만 해도 돼.”
“그래? 근데 화면은 왜 계속 봐?”
“누가 내 캐릭터 치나 안 치나 는 봐야지.”
답을 하던 배용수가 가림막 너 머로 고개를 슬쩍 내밀어 홀을 보고는 외쳤다.
“아주머니!”
배용수의 외침은 거침이 없었 다. 귀신과 강진 말고는 자신의 말을 들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아이들 뒤에 있던 귀신이 그를 보고는 들어왔다.
“아저씨 몸 좀 아파 보이는데
요?”
배용수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한숨을 쉬며 남편을 보았다. 그 는 황태수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 다.
“태수, 공부는 잘 하고 있지?”
“네.”
“그래. 우리 태수는 머리가 좋 아서 교과서만 잘 봐도 충분히 잘할 수 있어.”
“네.”
“앞으로도 열심히 하는 거야.”
황희승의 말에 강진이 작게 웃 었다.
“태수가 공부를 잘하나 보네 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미소를 지었다.
“아직 어리기는 한데…… 백 점 만 받아요.”
“공부 잘하네요.”
“잘하는 만큼 뒷바라지를 해 줘
야 하는데……
“뒷바라지 없어도 잘 해낼 거예 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고개를 저었다.
“공부 잘해도 뒷바라지 없으면 힘들어요. 요즘 머리 좋은 애들 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잘 아시네요?”
“학교 가면 저와 비슷한 신세를 가진 귀신들이 몇 있거든요. 그 아줌1기•들하고 하면
하! 공부도 돈이더라고요.”
“그쪽에도 학부모 네트워크가 있나 보네요?”
“거기도 자식 있는 귀신들이 있 으니까요. 거기서 들었는데 아무 리 공부 잘해도 돈 들인 애들 못 따라간대요.”
“에이! 저도 과외 하나 안 받고 서신대 들어갔어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주위에 그런 친구 또 있어요?”
“그야……
강진이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야 사정이 그 랬으니 과외는커녕 학원도 다닐 형편이 안 됐지만…… 같은 학교 다니는 애들은 학원은 기본에 과 외도 받고 그랬던 것 같았다.
“주변 애들은 다닌 것 같네요.”
“옛날 저희 때는 학교 가서 한
글 배우고 숫자 배웠는데, 요즘 아이들은 학교 들어가기 전에 곱 하기도 배우고 간다고…… 그래 서 학교 선생님들도 애들이 배우 고 왔다는 걸 전제로 진도를 넘 긴다 하더라고요.”
“그럼 태수는?”
“다행히 태수가 머리가 좋아서 금방 배우고 따라갔어요.”
“하긴, 백 점을 맞으니까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태수가 요즘은 미소 공 부도 가르쳐줘요. 제가 남편 복 은 없는데 자식 복은 있나 봐 요.”
“왜요. 아저씨도 열심히 일하시 는 것 같은데 남편 복도 있는 거 죠.”
강진의 말에 그녀가 한숨을 쉬 며 남편을 보았다.
“저 작은 몸으로 애들 먹이겠다 고 공사장에서 일하는 것 보 면…… 그렇기는 해요.”
아주머니 귀신이 웃으며 말했 다.
“다른 집 남자들은 노름도 하고 술도 먹는다는데 우리 남편은 그 런 것은 안 하거든요.”
“담배는 하시나 봐요?”
“그건…… 일이 힘들어서 그런 지 못 끊더라고요.”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좋은 일만 하며 살 수 있나요.”
그러고는 배용수가 말을 이었 다.
“어쨌든 아저씨 몸 안 좋아 보 이던데?”
처음 나왔던 물음으로 돌아오 자, 아주머니 귀신이 한숨을 쉬 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당뇨가 좀 있어요.”
“당뇨라…… 심하신가요?”
“약은 잘 챙겨 먹는데…… 아무 래도 공사장 일이 힘들고 스트레 스도 심하니 좋아지지 않나 봐
요.”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다.
“허 선생님 모셔서 진맥이나 좀 해 드려라. 그리고 당뇨에 좋은 식재도 추천해 드리고.”
“그래야겠네. 아버지가 건강하 셔야 태수하고 미소가 행복할 테 니까.”
그러고는 강진이 허연욱을 불렀 다.
화아악!
허연욱이 모습을 드러내자 강진 이 고개를 숙였다.
“계속 저 필요할 때만 모시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사람 진맥하고 진료 하고 치료하는 것……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겁니다.”
허연욱이 웃으며 하는 말을 듣 던 강진이 홀에 있는 황희승을 가리켰다.
“저분 몸이 좀 안 좋으신 것 같 아서요.”
“제가 한 번 보겠습니다.”
정확한 것은 진맥을 해 봐야 알 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대략적인 몸 상태는 확인할 수 있었다.
허연욱이 홀로 나가는 것을 보 며 강진이 음식들을 보았다.
“당뇨에 좋나?”
“나물이잖아. 나물은 어디든 다 좋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양념을 보았다.
“양념은?”
“당뇨 환자한테는 조금 짤 수도 있는데…… 이 정도도 안 먹을 거면 저염식 해야지.”
“저염 식?”
“오래 살겠다는 사람들이 하는 것 있어. 근데…… 그건 사람 먹 을 맛이 아니다.”
“건강에는 좋고?”
“소금을 극단적으로 줄여서 먹 는 거니 몸에는 좋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서둘러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딱히 음식 준비라고 할 것도 없 었다. 이미 나물 무침은 완성되 어 있고 쑥국도 다 끓었으니 말 이다.
남은 것은 배용수의 소금 돼지 구이 하나뿐이었는데, 그것도 거 의 다 익어서 담기만 하면 되었 다.
강진은 음식을 담은 그릇들을 쟁반에 올린 뒤 홀로 들고 나갔
다.
“음식 나왔습니다.”
강진이 테이블에 음식들을 놓 자, 황희승이 웃었다.
“나물이 많군요.”
“봄 하면 역시 나물 아니겠어 요?”
“그렇죠. 옛날에는 봄에 바구니 하나 들고 논두렁에 나물 캐러 다녔었는데.”
“요즘은 길거리에 있는 나물 캐
먹으면 오염 물질 때문에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럴 겁니다.”
웃으며 황희승이 나물 무침을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고는 미 소를 지었다.
“맛있네요.”
황희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황미소를 보았다.
“고기 먹어 봐.”
“네!”
황미소가 돼지고기를 한 점 먹 어 보더니 활짝 웃었다.
“짜면서 달면서 맛있어요.”
“단짠의 진수지. 맛있게 먹어.”
웃으며 강진이 몸을 돌릴 때, 황희승이 말했다.
“저기,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드시죠.”
“그러시죠.”
손님하고는 식사를 가급적 안 하는 강진이지만, 황태수의 아버
지라면 말이 달랐다.
자신이 살펴 주는 아이의 아버 지이니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저녁 장사를 하 기 전에 밥을 먹기는 해야 하고 말이다.
강진이 밥과 국을 떠서 가지고 와 앉자, 황희승이 웃으며 말했 다.
“아이들에게 잘 해 주신다는 이 야기 들었습니다.”
“그런 말씀 들으니 민망하네요.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그럴까요?”
황희승이 밥을 떠서 먹자 강진 도 밥을 먹으며 아이들을 보았 다.
황태수는 여전히 반찬들을 가리 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태수는 나물도 잘 먹네.”
“나물 맛있어요.”
웃는 황태수를 보며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고기도 먹어. 고기 많이 했으 니까.”
“먹고 있어요.”
황태수가 고기를 집어 먹는 것 을 보며 강진도 밥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크으! 좋다.’
고춧가루를 넣고 끓인 쑥 된장 찌개는 칼칼하니 꼭 해장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쑥 향도 좋고…….
‘역시 봄은 쑥이지.’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강진은 그릇들을 주방으로 치우고는 홀 에서 황희승과 이야기를 나누었 다.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드리겠습 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계속 그 런 말씀을 하시면 제가 민망합니 다. 그냥 밥 준 것뿐이에요.”
“그것이 감사합니다.”
황희승이 한쪽에서 TV를 보고 있는 두 아이를 보며 말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 사장님 이 주신 밥은 그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정이었 을 겁니다. 그래서 더 감사합니 다.”
황희승의 말에 그를 보던 강진 이 힐끗 허연욱을 보았다.
‘어때요?’
강진이 작게 입 모양으로 묻자
허연욱이 말했다.
“진맥부터 해 보지요.”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희승에게 말했다.
“괜찮으면 손 한 번 잡아도 되 겠습니까?”
“손요?”
황희승이 자신의 손을 들어 보 이자 강진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 가 어렸다.
그의 손은 상당히 거칠었다. 손
바닥 안에 거칠고 두꺼운 굳은살 도 박여 있는 것이, 현장 아르바 이트를 할 때 보던 아저씨들의 손과 같았다.
강진의 시선이 손에 닿자 황희 승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비볐 다.
“일이 거칠어서 그런지 손도 거 칩니다.”
“아버지의 손이죠.”
강진의 말에 황희승이 뒷머리를 긁었다. 이런 말이 어색한 것이
다.
그런 황희승을 보며 강진이 손 을 내밀었다.
“손 좀.”
“그런데 손은 왜……
황희승이 의아해하면서도 손을 내밀자 강진이 손목을 잡으며 말 했다.
“제가 사이비이기는 한데 진맥 을 좀 하거든요.”
“진맥요?”
“조금 배웠습니다. 재미로 한 번 보세요.”
강진이 맥을 잡는 시늉을 하자, 허연욱이 그 손을 잡았다. 그렇 게 잠시 맥을 짚던 허연욱이 한 숨을 쉬었다.
“제 생각대로 당뇨가 있습니다. 그리고 간도 좋지 않습니다.”
허연욱의 말을 강진이 전달해 주자 황희승이 웃으며 손을 당겼 다.
“다른 곳은 괜찮은 겁니까?”
“생각보다 다른 곳은 좋습니다. 대신 간은 피로하면 더 쉽게 상 하니 좀 쉬면서……
허연욱의 말을 전해주던 강진이 눈을 찡그리며 중간에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강진이 하던 말을 멈추는 것에 황희승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 다. 그 시선에 강진이 고개를 저 었다.
“아닙니다. 그냥 몸 좀 살피시 면 좋겠습니다.”
강진이 말을 멈춘 이유…… 그 것은 황희승이 쉬기 어렵다는 것 을 알기 때문이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가장인 그가 일을 쉬면 금전적으로 문제 가 생길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이제는 봄이다. 만물이 깨어나는 봄은…… 건설 현장이 바빠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여건 상 지금의 그는 누가 쉬라고 해도 쉴 수 없을 것이었 다.
‘쉬면 좋은 것을 모르는 환자가 어디에 있나? 쉴 환경이 안 되니 그렇지.’
병원에 가면 흔히 하는 말…… 술 담배 줄여라, 스트레스 받지 말아라, 일을 좀 줄이라는 말.
모두 옳은 말이다. 하지만 스트 레스 받고 싶어서 받는 사람 없 고,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 은 없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 야만 하는 것이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생각보 다 몸이 좋으세요. 당뇨는 약 잘 챙겨 드시고, 간은……
강진이 허연욱을 보자 그가 미 소를 지었다. 강진이 말을 멈췄 던 이유를 안 것이다.
“의사 생활 수십 년인데…… 제 가 아직도 환자 사정을 살필 줄 모르네요. 사장님이 저보다 더 좋은 명의십니다.”
허연욱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의사 선생님들이 하는 말이 정 답이기는 한데…… 정답대로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이죠. 짜고 매 운 것이 맛있고, 술은 입에 단 데.’
의사 말대로 살면 건강하게 살 지는 몰라도, 참 인생 재미없는 삶인 것이다.
맛있고 즐거운 건 모두 몸에 안 좋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