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숯불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을 가 운데에 두고 귀신들은 옹기종기 목욕탕 의자에 앉아 고기를 먹으 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크악! 좋다!”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소주야.”
“소주뿐만 아니라 삼겹살도 마 찬가지 입니다.”
“에잉! 장례식을 강남에서 했어
야 했는데. 자식들 아무 소용이 없어. 이왕이면 강남에다 장례식 장 하면 얼마나 좋아.”
노인 귀신이 아쉽다는 듯 투덜 거리며 삼겹살을 먹었다. 강남에 서 장례를 치렀으면 저승식당고} 가까우니 자주 가서 먹을 텐데, 하는 것이다.
노인 귀신의 투덜거림에 강진이 웃으며 소주를 옆에 가져다 놓았 다.
“어르신이 여기서 돌아가셨으니 그런 것 아니에요?”
“그럼 장례식장만 강남으로 하 면 되잖아.”
“객사나 혼자 돌아가신 것 아니 면 병원에서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렀을 텐데요.”
강진의 말에 노인 귀신이 입맛 을 다셨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많이 드세요.”
“하하하! 내가 원래 공짜로 뭐 먹고 하는 사람은 아닌데, 이거 염치없지만 많이 먹어야겠어.”
노인 귀신의 말에 강진이 웃었 다.
‘사실 공짜는 아닙니다.’
먹는 만큼 그들의 잔고에서 돈 이 빠져나가니 말이다.
“그나저나 좀 얼큰한 것 먹고 싶은데…… 뭐 없나?”
“김치 있고 양념 있고, 거기에 고기도 있으니 김치찌개는 바로 가능한데 하나 해 드릴까요?”
“하하하! 고마워.”
노인 귀신의 말에 강진이 자리 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김치찌개 드실 분?”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한국 사람으로서 김치찌개 싫어하는 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솥에 한 차 례 초벌을 한 삼겹살을 넣고는 빠르게 뒤집다가 김치를 넣었다.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김치가 익을 수 있게 돼지기름에 먼저
볶는 것이다.
촤아악! 촤아악!
김치가 어느 정도 익자 강진이 옆에 끓고 있는 물을 덜어 솥에 넣었다.
김치찌개가 끓기를 기다리며 강 진이 파와 마늘을 준비했다. 그 리고 MSG를 넣었다.
‘확실히 MSG는 있어야 해.’
가게에서 끓일 때는 육수를 만 들어서 대신하지만, 야외에서까 지 육수를 만들어서 쓸 수는 없
으니 말이다.
요리하는 사람이 MSG에 의지 하면 안 될 것 같지만, 배용수도 마땅히 재료가 없을 때는 쓰기도 하고…….
김치찌개가 끓어오르자 강진이 파와 마늘, 그리고 매운 고추를 파파팟! 썰어 넣었다.
맛있는 김치찌개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강진이 미소를 지으며 귀신들에게 말했다.
“김치찌개 다 됐습니다. 드시고
싶은 만큼 덜어가세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서둘러 와서는 김치찌개를 식판에 덜어 가 먹기 시작했다.
“급하게 만들어서 입에 맞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맛있습니다.”
“으아! 칼칼하고 좋네요.”
귀신들이 웃는 것을 보며 강진 이 미소를 지었다. 여기 있는 귀 신들은 대부분 저승식당 음식을 처음 먹어 보는 귀신들이라 맛에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취함은 강진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자신의 음식을 먹고 행복해하는 사람, 아니 귀 신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늘 기 분이 좋았다.
그런 귀신들을 볼 때, 한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오늘도 성업 중이십니 다.”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린 강진의 눈에 강두치가 웃으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강두치의 뒤에는 그와 같은 복장을 한 직원들이 여럿 있었다.
그 모습에 강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또 단체 손님인가?’
평소 혼자 다니는 JS 금융 직원 들이 이렇게 몰려오는 걸 한 번 본 적이 있는 강진이었다.
교통사고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 을 때였는데, 사망자 중에는 헌
혈로 VIP가 된 이아영도 있었다.
‘아영 씨 부모님은 잘 지내고 계시려나?’
딸의 죽음에 슬퍼하던 이아영의 부모님을 떠올리던 강진에게 강 두치가 다가왔다.
“삼겹살 냄새 좋네요.”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그와 직 원들을 보다가 직원들 사이에 있 는 젊은 남자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JS 금융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데?’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귀 신 여직원들이 놀란 눈으로 젊은 남자를 보았다.
“어머!”
“장설하잖아.
직원들의 말에 강진이 그녀들을 보았다.
“ 알아요?”
“몰라요?”
놀라 되묻는 그녀들에게 강진이
물었다.
“유명한 사람이에요?”
“유명하죠. 아이돌 하다가 연기 자로 전향한, 유명한 연예인이에 요.”
여자 귀신들의 말에 강진이 장 설하를 보았다.
‘연예인이라 그런가…… 잘생기 기는 했네.’
얼굴은 하얗고 입술은 붉으며 눈썹은 새까맸다. 거기에 딱 맞 는 검은 슈트를 입은 그는 몸도
좋아 보였다.
“얼마 전에……
“ 쉿.”
뭔가 이야기를 할 듯한 여자 귀 신에게 다른 귀신이 눈짓을 주며 말을 끊었다.
강진이 장설하를 볼 때, 강두치 가 말했다.
“저희도 한 자리 주십시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푸드 트 럭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빈자리는 없고, 여기 앞에서 서서 드셔야 할 것 같습니다.”
“원래 푸드 트럭의 명당은 여기 아니겠습니까.”
강두치가 어묵 꼬치를 하나 먹 으며 직원들을 보았다.
“먹자고.”
“대리님이 사시는 건가요?”
“어묵 정도는 내가 사지.”
“다른 건요?”
“같은 월급쟁이들끼리 무슨 소
리야?”
강두치의 말에 직원들이 어묵을 하나씩 집었다. 그 사이 강두치 가 어묵을 하나 집어 장설하에게 내밀었다.
“드세요.”
강두치의 말에 장설하가 잠시 주저하다가 꼬치를 받았다.
“고맙습니다.”
장설하는 꼬치를 받아 들곤 천 천히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던 강진이 강두치를 보았다.
“그런데 어디 사건 사고 있나 요?”
“사건 사고요?”
“JS 금융 직원들이 이렇게 단체 로 다니는 건…… 손님들이 많아 서 그런 것 아닌가요?”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우리가 사건 사고 를 몰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니고…… 전처럼 여러
손님 모시러 가는 건가 해서 조 금 걱정이 되어서요.”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다시 웃 었다.
“사람 죽고 사는 일을 너무 심 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은 태어나고 죽습니다. 평생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그냥 자연 의 섭리일 뿐입니다.”
“그건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 섭리가 조금 무겁네요.”
“하긴, 얼마 안 되셨으니까요.”
말을 한 강두치가 웃었다.
“이 사장님 오래 본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아직 일 년도 안 됐 네요.”
“팔월에 시작했으니 팔 개월쯤 됐네요.”
강진이 문득 웃었다.
“왜 웃으세요?”
“팔 개월밖에 안 됐는데 참 많 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서요.”
“이쪽 세상이 좀 다사다난하기
는 하죠.”
웃으며 말을 한 강두치가 장설 하를 보았다. 장설하는 다른 JS 금융 직원들과 함께 배용수가 준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한편, 삼겹살을 보던 강두치는 제법 큰 고기 한 점을 집어 먹고 는 말했다.
“어쨌든 단체 손님 모시러 나온 것은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그건 저희 입장에서도 다행입
니다. 단체 손님 나오면 저희 쪽 도 서류 작업할 것이 많거든요.”
“그럼 오늘은?”
“오늘 장설하 씨 가시는 날이라 식사라도 제대로 하고 가시라고 같이 왔습니다.”
“VIP 세요?”
“VIP 입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장설하를 보았다.
“연예인이라고 하시던데 좋은
일 많이 하셨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장설하가 소주를 마시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JS VIP면 정말 좋은 일 많이 하셔야 되실 텐데. 부럽네요.”
장설하가 겸손한 반응을 보인다 생각을 한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그가 머리를 긁었다.
강진은 그가 부끄러워서 그러나 싶어 불판에서 구워지는 김치를 덜어 그릇에 올려놓았다.
“김치도 좀 드세요. 저희 김치 가 맛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설하의 말에 강진이 강두치를 보았다.
“VIP는 마중도 여럿이 가서 하 시나 봐요?”
“그건 아니고…… 제가 장설하 씨 팬이라 따라왔습니다.”
“ 팬?”
“장설하 씨는 제 담당이 아니거
든요.”
웃으며 강두치가 한 직원을 보 자, 그가 강진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눈 강진이 강두치를 보았다.
“그럼 연예인 보러 따라오신 건 가요?”
“그럼요. 저희도 드라마도 보고
예능도 보고 사람이 하는 건 다 하는데…… 팬심이라고 없겠어 요?”
웃으며 말을 한 강두치가 문득 강진을 보았다.
“‘복숭아꽃’ 보셨어요?”
“봤습니다.”
강진은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아 는 것은, 여자 귀신들이 본방 사 수를 한다고 가게에서 드라마를 볼 때 종종 같이 보았기 때문이
었다.
“그거 정말 재밌었는데…… 그 거 끝나서 이제 또 뭘 봐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드라마를 좋아하시는구나.”
“이쪽 일이 좀 지루한 감이 있 잖아요. 그래서 쉬는 시간에는 드라마 자주 봅니다.”
웃으며 강두치가 장설하를 보았 다.
“장설하 씨의 드라마도 무척 좋 아합니다. 팬입니다.”
“고맙습니다.”
강두치가 장설하를 보다가 미소 를 지으며 그 어깨를 손으로 툭 툭 쳤다.
“힘내요.”
장설하가 그를 보자, 강두치가 웃으며 말했다.
“장설하 씨는 좋은 곳에 갈 겁 니다.”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하 던데……
자살이라는 말에 강진이 힐끗 그를 보았다.
‘자살?’
그리고는 강진이 푸드 트럭 옆 에 있는 여자 귀신들을 보았다. 그 시선에 이혜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은 몰랐지만 TV와 핸드폰 을 달고 사는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강진이 살짝 놀랄 때, 강두치가 장설하에게 말했다.
“자살은 지옥에서 크게 다루기 는 하는데…… 장설하 씨 경우에 는 실력 있는 변호사 만나면 자 살이 아니라 타살로 처리해 줄 겁니다.”
“타살……요? 저는 스스로
말을 하던 장설하가 입을 다물 자, 강두치가 소주를 한 잔 따라 마시고는 말했다.
“혀로 지은 죄를 처벌하는 지옥 이 있어요.”
“혀?”
“사람을 해치는 건 물리적인 것 만은 아니죠. 입으로, 혀로 사람 을 해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을 다치게 하지요.”
그러고는 강두치가 슬며시 잔을 들자, 장설하가 그를 보다가 소 주병을 들어 한 잔 따라주었다.
그에 강두치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내가 장설하에게 술을 다 받아
보네.’
장설하 팬인 강두치는 그에게 술을 받자 기분이 좋았다. 웃으 며 장설하를 보던 강두치가 소주 를 마시고는 그의 잔에도 소주를 따라주었다.
“남을 비방하고 욕하고 평판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실제 당 하는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받고 아파합니다. 그래서 입으로 하는 죄도 지옥에서는 다루지요. 처벌 도 무척 큽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혓바닥을 늘려서 농사를 지어 버리니…… 으! 끔찍해.’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강 두치가 말했다.
“그런데 장설하 씨는 그 혀로 된 칼, 아니 지금은 손으로 된 칼이라고 해야겠네요. 그 칼로 수백, 수천 명에게 찔렸으니
강두치가 안쓰러운 듯 장설하를 보았다.
“그리고 장설하 씨는 VIP입니 다.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왜 VIP인가요?”
장설하가 의아한 듯 물었다. 나 쁜 짓 하고 산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은 일을 많이 하지도 못한 삶이었다.
“장설하 씨의 노래는 여러 사람 에게 희망을 주었고 즐거움을 주 었습니다.”
“제 노래가요?”
“어떤 사람은 병상에서 당신의
노래를 듣고 삶의 의욕을 찾았 고, 어떤 사람은 좌절에 빠져 있 다가 희망을 얻었습니다. 최소한 당신의 노래는 사람들에게 즐거 움이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강두치가 장설 하를 보았다.
“그래서 당신은 VIP입니다. 사 람들에게 당신은 꿈과 희망, 그 리고 기쁨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