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화
가게 안으로 들어오던 황민성과 강상식은 오자명 쪽을 보고는 잠 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숙였다.
원래는 서로 아는 척을 하지 않 았지만, 전에 최종훈의 급여를 떼먹은 사장을 혼내 주면서 안면 을 익혀서 모른 척하기도 민망한 것이다.
“황 사장님도 한잔하러 오신 모 양입니다?”
“가볍게 한잔하고 가려 합니 다.”
“그럼 어떻게, 합석할까요?”
“합석?”
안면은 익혔지만 그렇다고 서로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데 합석을 하자고 하니 황민성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할 이야기도 있고…… 괜찮으 면 합석하시지요.”
할 이야기라는 말에 황민성이 오자명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
다.
오자명과 같은 사람이 자신과 같은 사업가에게 할 이야기라는 것이 뭔지 궁금한 것이다.
황민성이 테이블 한쪽을 잡자 강상식이 와서는 반대쪽을 잡아 오자명 쪽과 테이블을 붙였다.
그에 강진이 주방에 가서 그릇 과 반찬, 김치찌개를 가지고 나 왔다.
그런 강진에게 황민성이 작게 속삭였다.
“ 용수는?”
그에 강진이 주방을 보았다.
“주방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일 때 띠링, 하는 알람이 울 렸다. 그에 황민성이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
〈제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흐흐 흐 계란 프라이 해 드릴까요?〉
〈좋지. 고맙다.〉
배용수와 문자로 인사를 한 황 민성이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오 자명에게 고개를 숙였다.
“급한 문자라 죄송합니다.”
사람을 앞에 두고 문자를 나눴 으니 사과를 한 것이다.
“괜찮습니다.”
오자명이 소주병을 들어 내밀자 황민성이 잔을 들었다.
쪼르륵!
소주를 따른 오자명이 강상식에 게도 병을 내밀자 그도 잔을 들 어 술을 받았다.
“요즘 두 분이서 좋은 일 하신 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오자명의 말에 황민성이 강상식 과 눈을 한 번 마주치고는 의아 한 듯 물었다.
“혹시 저희 보육원에 봉사활동 하는 것 들으셨습니까?”
황민성의 말에 오자명이 의아한 듯 두 사람을 보았다.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하십니 까?”
“웅?”
오자명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무슨 좋은 일을 말씀하시 는지?”
황민성의 말에 오자명이 웃었 다.
“좋은 일을 많이 하셔서 감이 오지 않는 모양이십니다.”
오자명의 말에 이유비가 황민성 을 보며 말했다.
“황 사장이야 좋은 일 많이 하 지요.”
이유비의 말에 오자명이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보았다.
“모르십니까?”
“황 사장하고 나하고 겹치는 관 심 분야가 없어서 나야 잘 모르 지.”
“황 사장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 해 학교도 만들고, 치매 연구에
거액의 투자도 하십니다.”
황민성에 대해 잘 아는 듯한 이 유비의 말에 오자명이 고개를 끄 덕였다.
“치매…… 좋은 일 하시는군 요.”
꽤 나이가 있는 오자명에게 치 매라는 말이 강하게 다가오는 듯 했다.
“투자를 할 뿐입니다.”
“그래도 돈 되는 다른 분야도 많을 텐데……
오자명의 말에 황민성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소주를 마셨다.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 사람들 에게 아픈 어머니 이야기를 할 그가 아니었다.
빈 잔을 내려놓은 황민성이 물 었다.
“그런데 할 이야기란 것은?”
황민성의 말에 오자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황 사장님께서 고순도 불화수 소 생산에 투자를 하신단 이야기
들었습니다. 곧 생산을 하신다고
요?”
“맞습니다.”
이제 상당히 진척이 돼서 다른 기업들도 이에 대해 알고 있으니 감출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 이야기 듣고 참 기분이 좋 더군요. 다른 기업들은 중국과 독일 등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는 것으로 활로를 열려 하는데 황 사장님과 강 이사님은 국산화를 추진하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 다.”
오자명이 황민성에게 합석하자 고 청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일 본의 수출 규제로 말도 많은 이 시국에 국산화를 하려는 시도가 참으로 기특하고 마음에 드는 것 이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핵심 재료의 경우 언제든 이런 사태가 또 터 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것 역시 투자일 뿐입니다.”
“어쨌든 좋은 일입니다. 우리나 라에서 만들어서 팔 수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하지요.”
오자명의 말에 이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게다가 이런 일은 일자리 창출도 되는 일이니 더 좋지요.”
두 사람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 을 다시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합 니다. 다만…… 그냥 투자일 뿐 입니다.”
좋은 일이 아니라 투자라고 선 을 긋는 황민성의 모습에 오자명
이 웃으며 소주를 따라주었다.
“투자든 사업이든 어떻습니까. 황 사장님이 돈을 버는 일이 나 라에 이득이 되고 청년들에게 일 자리가 생긴다면 서로 좋은 일이 지요.”
그러고는 오자명이 강상식을 보 았다.
“초기 시설 투자에 돈이 많이 들었을 텐데 오성화학이 큰 결심 을 했습니다.”
오자명의 말에 강상식이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 도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자명과 이유비와의 친분은 강 상식에게 좋은 인연이었다.
그렇기에 그 둘과 연을 만들어 서 나쁠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 려 좋았다.
이유비는 제1 야당의 중진 의원 이고, 오자명은 무소속이기는 해 도 여야 의원들과 두루두루 친하 니 말이다.
강상식의 말에 오자명이 웃으며 소주를 따라주고는 말했다.
“자, 그럼 한 잔 거국적으로 합 시다.”
오자명의 말에 사람들이 잔을 들고는 술을 마셨다.
“강진아!”
강진이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 다.
배용수가 접시에 그림처럼 동그 랗고 예쁜 계란 프라이를 얹었 다.
“이쁘게 잘 만들었네.”
“공 좀 들였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계란 프라이를 보았다. 계란 프 라이는 겉에 탄 흔적 하나 없이 촉촉하고 부드럽게 익어 있었다.
‘쪽 빨아 먹으면 부드럽게 한 입에 들어오겠네.’
입맛을 다시며 강진이 쟁반에 계란 프라이가 놓인 접시를 담아 홀로 나왔다.
“계란은 서비스입니다.”
강진이 계란 프라이 접시를 하 나씩 내밀자 사람들이 그것을 받 았다.
“오! 프라이가 참 먹음직스럽습 니다.”
오자명이 웃으며 계란 프라이를 받는 것에 강진이 웃었다.
“어르신은 참 계란 프라이 좋아 하시네요.”
“우리 마누라한테 계란 프라이 하나 해 주오, 했더니 앞뒷면으 로 바짝 구워서 주더군요.”
웃으며 오자명이 계란 노른자를 수저로 떠서 입에 넣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 사장님 계란 프라이는 참 좋아요.”
“언제 사모님 한 번 모시고 오 세요. 온다, 온다 하시면서 한 번 도 안 모시고 오시니 서운합니 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제가 다음 에는 꼭 한 번 우리 마누라 데리 고 오겠습니다.”
그러고는 오자명이 주방 쪽을 보았다.
“이왕 먹는 거 주방에 일하시는 분도 나와서 같이 드시지요.”
오자명의 말에 강진이 멈칫했 다.
“주방요?”
“주방에만 일하시면 얼마나 답 답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여기 자 주 오는데 한 번도 인사를 못 했 군요.”
말을 하며 오자명이 주방 쪽에
다 말을 했다.
“괜찮으시면 나와서 같이 한잔 하시지요.”
오자명의 말에 강진이 급히 말 했다.
“주방에서 일하는 분이 낯을 많 이 가려서요.”
주방에 사람이 없다는 말은 하 지 않았다. 홀에서 이야기를 하 는 사이에 주방에서 배용수가 음 식 한다고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으니 말이다.
“낯을 많이 가립니까?”
“저하고 친한 친구인데 낯을 많 이 가려서 다른 곳에서는 일을 못 합니다.”
“이런......"
오자명이 작게 중얼거리며 주방 을 보았다.
‘낯을 얼마나 가리면……
오자명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강상식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주방에서 일
하시는 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 군요.”
강상식도 이미 주방에 다른 사 람이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었 다.
자주 오는 그인 만큼, 모르기가 더 힘들 것이다.
점심 장사 할 때 강진은 홀에서 일을 하는데도 주방에서는 음식 이 나오니 말이다.
“낯을 많이 가립니다.”
다시 한 번 강진이 하는 변명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 자명에게 말했다.
“아까 말씀하신 불화수소 설비 준비가 다음 주 목요일이면 완료 가 됩니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관심 을 주기보다는 오자명과 이유비 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강 상식이 화제를 돌렸다.
그 덕에 배용수에 대한 변명을 더 하지 않아도 된 강진이 속으 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강상식이 이렇게 도움이 되네.’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오 자명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빨리 됩니까?”
“저희 기존 설비에 몇 가지 장 치만 더 설치하는 것이라서요.”
“오성화학의 기술이 대단하군 요.”
“사실 저희 기술은 아닙니다. 황 사장님께서 기술을 가진 중소 기업과 연결을 해 주셔서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잘 됐군요.”
오자명의 말에 황민성이 말했 다.
“우리나라에 특허가 있어도 물 건을 만들지 못하는 중소기업들 이 많습니다. 나라에서 그런 훌 륭한 중소기업에 지원을 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오자명이 웃었 다.
“이거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중 소기업에도 관심을 가지겠습니
다.”
황민성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강상식이 말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중국에서 불화수소 원재료가 들어오니 늦 어도 수요일부터는 시험 생산을 시작할 것입니다.”
강상식의 말에 오자명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화수소가 국산화에 성공하면 일본 놈들의 얼굴이 볼만하겠습 니다.”
“그럴 것입니다. L전자와 하이 반도체, 거기에 저희 그룹에서 수입하는 양을 저희 오성화학에 서 커버한다면 일본 기업은 치명 적입니다.”
강상식의 말에 오자명이 미소를 지었다.
“좋은 일입니다.”
미소를 짓던 그가 황민성을 보 았다.
“그런데 보육원에 봉사를 가십 니까?”
“인연이 닿아서…… 가고 있습 니다.”
황민성이 간략히 말하자 오자명 이 웃었다.
“뉴스나 사진 같은 것 안 돌아 다니는 것 보면 조용히 다녀오시 는 모양이군요.”
황민성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그가 봉사 활동에 대해 그다지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눈치 챈 강진이 슬며시 말을 돌렸다.
“그런데 두 분이서 어떻게 같이 오세요?”
“불화수소를 생산하면 사갈 업 체 사장님들과 거래 이야기를 하 고 왔어.”
“아직 생산도 안 했는데 벌써 판로를 준비하는 거예요?”
“만들고 쌓아 놓으면 그게 다 인건비고 창고 비용이야. 만들면 바로 팔아야지.”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건 누가 가장 먼저 생산해서 팔기 시작하느냐가 이 슈가 되는 것이니 생산과 함께 바로 팔아야 합니다.”
일본의 갑질에 맞서서 국내 최 초로 상용화가 가능한 불화수소 를 생산해낸 기업이라는 좋은 이 미지가 강상식의 목적이니 말이 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강진을 보던 황민성이 오자명을 보았다.
“합석을 한 김에 저도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뭡니까?”
“이번 국회에서 소방관 국가직 이 통과되는 겁니까?”
황민성의 물음에 오자명이 고개 를 끄덕였다.
“확실한 것은 그날 돼 봐야 알 겠지만 될 겁니다.”
오자명의 말에 황민성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미소를 지었다.
“오늘 술값은 제가 내지요.”
“황 사장이요?”
오자명의 물음에 황민성이 미소 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자명은 그저 소방관이 국가직 으로 전환된다는 좋은 이야기를 해 준 것이지만, 그 말을 들은 황민성의 머릿속에는 여러 투자 계획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소방과 관련된 회사 주식에 투 자를 하면 되겠군.’
전국에 있는 여러 소방서들의
설비는 다 제각각이었다.
즉 규격화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각 지방단체의 기준에 따라 설비가 마련되어 있으니 말 이다.
하지만 국가직으로 전환이 되면 모든 소방서의 설비들이 규격화 가 된다. 그럼 그 규격화를 맞추 기 위해 소방 관련 제품들을 사 들여야 할 테니... 소방 관련
회사들의 매출이 늘어날 것이었 다.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 하나로
황민성은 몇 십억 가치를 가진 투자 정보를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