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화
아침 일찍 강진은 작은 쇼핑백 을 들고 가게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배용수와 여자 귀신들이 서 있었다.
“호철 형은 정말 안 갈 거야?”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고개를 저었다.
“이따가 최광현 씨하고 용산 가 기로 했어.”
“살아서도 형사고 죽어서도 형 사네요.”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죄짓는 놈들도 싫지만, 죄짓고 잘 사는 놈들은 더 싫어. 내가 귀신이라 그놈들도 죽으면 벌을 받을 것을 알지만…… 살아서도 벌을 받았으면 좋겠어. 그게 피 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일 테니까.”
그러고는 최호철이 강진을 보았 다.
“그래도 네가 조에서 연필 사다 줘서 의사소통 잘 되고 좋더라.”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에서 연필도 파는 것을 발견해 그것을 사서 최호철 에게 준 것이다.
전에는 강진이 최호철에게 정보 를 듣고 최광현에게 말을 했다 면, 지금은 현장에서 연필을 통 해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최광현이 귀신에 대해 많이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익숙 해져서인지 어쨌든 잘 지내면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강진이 최호철과 이야기를 나눌 때, 자동차 두 대가 한끼식당 앞 에 섰다.
“강진아.”
창문이 열리며 황민성이 자신을 부르자 강진이 차에 다가가며 귀 신들을 보았다.
“제주도 가서 부를게요.”
“알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여자 귀신들이 환
하게 웃었다.
“제주도다.”
“난 수학여행 때 한 번 가 보고 못 가 봤는데.”
“나는 남자 친구하고 거기 서……
여자 귀신이 웃으며 말을 하다 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남자 친구하고 뭐요?”
배용수의 말에 여자 귀신이 눈 을 찡그렸다.
“뭐기는 뭐예요. 그냥 여행 갔 다는 거지.”
“호오! 당일치기는 아니었겠네 요.”
“누가 미쳤다고 제주도를 당일 치기로 가요.”
귀신들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피식 웃고는 황민성에게 다 가갔다.
“저 어디에 타요?”
“여기에 타. 뒤차에는 이슬 씨 하고 어머니 타고 계셔.”
황민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뒤차로 다가갔다.
강진이 다가오자 창문이 내려갔 다.
“어머니.”
“강진아.”
환하게 웃고 있는 조순례와 그 옆에 있는 김이슬에게 고개를 숙 이며 강진이 말했다.
“이따가 다시 인사드릴게요.”
“그래. 어서 타.”
조순례의 말에 강진이 황민성이 탄 차의 뒷좌석 문을 열고는 안 으로 들어갔다.
강진이 차에 타자 황민성이 손 을 내밀어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출발할까요?”
운전기사인 오 실장의 말에 황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하세요.”
황민성의 말에 오 실장이 차를 출발했다.
부릉!
차가 출발하자 뒤에 있던 차도 따라 출발했다.
“그런데 짐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쇼핑백을 들어 보였다.
“여기요.”
“그거면 돼?”
“남자가 갈아입을 속옷만 있으 면 되죠. 형은 짐 많이 챙겼어 요?”
“나도 간단하게 챙기려고 했는 데 이슬 씨가 캐리어 하나를 채 우더라.”
“1박 2일인데 뭘 그렇게 많이 챙겨요?”
“몰라.”
그러고는 황민성이 작게 속삭였 다.
“용수하고 직원들 제주도 갈 수 있다며?”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어떻게…… 아! 용수가 이야기 했어요?”
“새벽에 용수가 문자 보냈더 라.”
말을 하며 황민성이 문자를 보 여주었다.
〈형 저도 제주도 갑니다!〉
〈그래. 제주도 가면 자연산 회
에 한잔하자.〉
〈형님, 제주도는 흑돼지죠. 제가
맛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좋고. 형 이제 잔다.〉
〈푹 주무십쇼!〉
“새벽에 문자를 보내서 놀랐 어.”
들뜬 기색이 느껴지는 배용수의 문자에 강진이 웃었다.
어제 저승식당 영업시간에 귀신 들에게 물어보았다. 귀신이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말이
다.
그런데 방법이 있었다. 그냥 부 르면 되는 것이었다.
귀신은 혼자 멀리 갈 수 없지 만, 상대가 부르면 그것을 촉매 로 거리에 상관없이 그 자리에 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거리가 너무 멀면 그 자리 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잠시간 있다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귀신들은 유난히 들뜬
모습이었다. 짧게라도 제주도에 놀러 갈 수 있으니 말이다.
공항에 도착한 강진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사람들이 트렁크 에서 짐들을 꺼내 카트에 실었 다.
“비행기 표입니다.”
오 실장이 표를 받아 들며 그것 을 확인했다. 오 실장은 운전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황민성의 수 행비서 역할도 하는 것이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직원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 자, 황민성과 강진 일행이 그 뒤 를 따랐다.
“어머니, 제가 모실게요.”
조순례가 탄 휠체어의 손잡이를 강진이 잡으며 말했다.
“어머니, 제주도 가 보신 적 있 으세요?”
“친구들하고 한 번 가 본 적 있
지.”
“저는 한 번도 안 가 봤는데.”
“제주도 좋아. 바다도 이쁘고 산도 좋고.”
조순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기대 많이 되네요.”
강진의 말에 조순례가 손을 들 어 휠체어를 미는 강진의 손을 토닥였다.
공항에 도착하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직 원들이 미리 수속을 다 밟아 놓 은 상태라서 신분 확인만 하고 바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게이트를 통과하던 강진은 김이 슬 옆에서 같이 걷는 젊은 여자 를 보았다.
황민성 식구라 할 수 있는 장 여사님과 오 실장님이야 익숙했 지만, 그녀는 처음 보는 사람이 었다.
“저분은 누구세요?”
강진이 슬쩍 묻자 황민성이 여 자를 보고는 말했다.
“의사.”
“ 의사요?”
“아무래도 어머니 건강이 걱정 돼서 응급의학과 선생님 한 분 모셨어.”
“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의사를 보자, 그녀가 살짝 고개를 숙였 다.
그런 강진에게 황민성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귀신 붙어 있거나 하지는 않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붙어 계시네요.”
자신의 말에 안도를 하는 황민 성을 보며 강진이 웃었다.
“수호령은 사람한테 해 안 끼쳐 요.”
“알기는 아는데…… 좀 그렇잖 아.”
“귀신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무서운 건 아니고…… 그냥 남 이 우리를 계속 보는 게 불편해 서 그렇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모르는 사람이 여행에 끼 면 불편하기는 하겠네. 그것도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면 더 그럴 테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휠체어 를 밀며 비행기로 탑승했다.
비즈니스 석에 탄 강진이 주위 를 두리번거릴 때, 황민성이 말 했다.
“비행기 처음 타 보는 소감은 어때?”
“비행기라고 해서 좁을 줄 알았 는데 자리 좋네요.”
“비즈니스니까.”
“비즈니스면 비싼 자리 아니에
요?”
“ 조금.”
그러고는 황민성이 어머니가 있 는 곳을 보았다.
“어머니, 불편하시면 말씀하세 요.”
“ 괜찮아.”
조순례의 말에 황민성이 김이슬 을 보았다. 그 시선에 김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잘 볼게요.”
“부탁해요.”
옥난 덕에 어머니 몸이 좋아지 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행기를 타는 거라 황민성도 조금은 긴장 이 되는 것 같았다.
기내에 식물을 들고 올 수가 없 어서 옥난을 수화물로 보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는 사이 승무원이 비행 안 내를 하고는 곧 비행기가 이륙했 다.
비행기가 뜰 때 뭔가 움찔한 기 분에 강진이 몸을 움츠리자 황민 성이 웃었다.
“하늘에 올라가고 나면 괜찮 아.”
“형은 비행기 자주 타요?”
“자주 타지. 외국에 투자할 때 는 직접 가서 보고 결정하니까.”
웃으며 창밖을 보던 황민성이 주위를 보다가 말했다.
“비행기 안에는 귀신 없어?”
“귀신에 민감하시네요?”
“그냥 궁금해서.”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행기 안에도 귀신 은 몇 있었다.
물론 떠돌아다니는 일반 귀신은 아니었고 수호령들로 보였다.
‘하긴 귀신은 멀리 못 가니까.’
“수호령 몇 분 계시기는 하네 요.”
“그래?”
황민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조금 몸이 편안해지는 것 을 느꼈다.
황민성의 말대로 비행기가 하늘 에 뜨니 이상한 기분이 사라졌 다.
“이제 괜찮지?”
“네.”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 승무 원들이 카트를 끌고 복도를 지나 가며 사람들에게 음료를 주기 시 작했다.
그것을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제주도는 가까워서 기내식은 없을 거야.”
“기내식 맛있어요?”
“맛보다는 비행기 타면 먹는 거 니까. 그게 재밌는 거지.”
이야기를 나눌 때, 승무원이 다 가왔다.
“음료 드릴까요?”
“물 주세요.”
“ 저도요.”
승무원이 고개를 숙이고는 물을 두 잔 서비스 해준 뒤 이동했다.
그런 승무원을 보던 강진이 힐 끗 옆을 보았다. 강진의 옆에는 아저씨 귀신 한 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승무원 수호령인가?’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많아서 누구의 수호령인지 잘 모르겠지 만, 승무원의 뒤를 졸졸 따라다 니는 것을 보면 그분의 수호령인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물을 마신 강 진이 의자에 몸을 깊숙이 눕혔 다.
“의자 편하네요.”
“한숨 자. 눈 뜨면 제주도일 거 야.”
황민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의자를 뒤로 젖히고는 누 웠다.
“저기요. 저기요.”
눈을 감고 있던 강진은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가 흠칫 놀랐다.
눈앞에 한 아저씨 귀신이 그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놀래라.’
자다가 눈앞에 사람 얼굴이 있 어도 놀랄 일인데, 귀신 얼굴이 떡하니 있으니 심장이 철렁했다.
그래도 다행히 비명은 지르지 않은 강진이 그를 볼 때, 아저씨 귀신이 고개를 숙였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 요?”
강진이 자신에게 말을 걸자 아 저씨 귀신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정말 귀신을 보고 대화를 하는 군요.”
“어디서 듣고 오셨어요?”
강진의 말에 아저씨 귀신이 한 쪽에서 귀신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정주현을 가리켰다.
“저 노인 말이, 그쪽이 귀신과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군요.”
강진이 슬쩍 고개를 돌려 정주 현을 보았다. 그는 비행기에 있 는 수호령 셋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승식당을 안 가 봤어요? 이 거, 이거 저승식당에 가면 음식 이 정말 맛있거든요. 하하하! 그 럼요.”
정주현은 수호령에게 공손히 존 대를 하며 말을 하고 있었다. 그 의 생전 나이는 다른 귀신들보다
많겠지만, 죽고 나서는 오 년 정 도밖에 되지 않아서 비교적 어린 귀신에 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주현은 다른 귀신들에 게 존대를 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수호령들은 보통 사람에게 붙어 서 이동을 한다. 그렇다 보니 일 반 귀신들보다 더 외롭게 지낸 다.
다른 귀신들은 귀신들끼리 모이 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지내 는데, 그들은 오직 수호령으로
붙은 사람의 옆에만 있으니 말이 다.
그래서 이렇게 수호령끼리 모인 김에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것이 다.
그런 수호령들을 보던 강진이 아저씨 귀신을 보았다.
“그런데 저는 왜?”
“제 동생이 저 애입니다.”
수호령이 가리키는 곳에는 아까 자신에게 물을 건네준 승무원이 있었다.
“쟤가 집에를 안 갑니다.”
“집?”
의아한 듯 보는 강진에게 수호 령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머니와 사이가 나쁩니다.”
“그래서 집에 안 가나요?”
“이모한테 연락이 왔는데……
잠시 머뭇거리던 수호령이 동생 을 보며 재차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가 아프십니다.”
“그런데요.”
“엄마 죽어도…… 연락하지 말 라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수호령의 말에 강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런 강진을 보며 수 호령이 간절한 눈으로 그를 보았 다.
“동생을 좀…… 집에 보내주세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