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394화 (392/1,050)

393 화

“동생을 좀…… 집에 보내주세 요.”

동생을 집으로 보내 달라는 수 호령의 말에 강진의 얼굴에 난감 함이 어렸다.

어떤 상황인지는 짐작이 되었 다.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은 딸 이 집에 안 가는 것이다.

엄마가 죽어도 연락하지 말라는 말…… 무척 패륜적이고 제삼자

가 듣기에 “이런 나쁜!”이 절로 나올 말이다.

하지만 그 가족의 사연을 모르 는 이상은 뭐라고 말을 할 수 없 었다.

강진에게 좋은 형인 황민성도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면 직접 패 죽이겠다고 화를 낸 적이 있으니 말이다.

있으면 안 되지만 부모 같지 않 은 부모도 있고, 자식 같지 않은 자식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정을 모르는 강진으로 서는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저씨 귀신을 보던 강진이 승 무원을 보았다. 친절한 미소를 지은 채 손님이 부탁한 음료를 가져다주는 그녀를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딸은 보통 엄마하고 친하게 지 내는데.’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아저씨 귀신을 보았다.

“어머니와 딸이 그렇게 사이가 안 좋다면 사정이 있을 것 같은 데…… 제가 어떻게 도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강진의 말에 아저씨 귀신이 잠 시 머뭇거렸다.

“그렇겠죠.”

급한 마음에 강진에게 도와달라 고 하기는 했지만, 그도 이게 어 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사실 저도 엄마와 동생을 화해 시키려고 몇 번이나 노력했지

만…… 제가 죽을 때까지도 하지 를 못했습니다. 이런 난감한 부 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들이고 오빠인 자신도 하지 못한 것을 남이 해결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다.

한숨을 쉬며 아저씨 귀신이 몸 을 돌리자 강진이 그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았다.

아저씨 귀신을 보던 강진이 옆 을 보았다. 황민성은 어느새 안 대까지 끼고 잠을 자고 있었다.

“형.”

강진이 툭 하고 그를 치자, 황 민성이 작게 기지개를 켰다.

우두둑! 우두둑!

근육질의 몸에서 뼈마디 부서지 는 소리가 났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안대를 벗은 황민성이 창밖 을 보았다.

“제주도야?”

“아직요.”

강진의 말에 창밖을 보던 황민

성이 입맛을 다셨다. 창밖으로는 바다만이 보이고 있었다.

“근데 왜?”

“할 말이 있어서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승무원을 부르는 버 튼을 눌렀다.

그에 승무원이 다가오자 황민성 이 물을 한 잔 부탁하고는 물었 다.

“제주도까지 얼마나 남았습니 까?”

“15분 정도 남았습니다. 더 필 요하신 것이 있으신가요?”

“괜찮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승무원이 물을 가지러 가자, 강진이 그녀를 작 게 가리키며 황민성에게 말했다.

“방금 저 승무원 수호령이 말을 걸었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승무원의 뒷모습을 보다가 물었다.

“저 승무원한테 수호령이 붙어 있어?”

“오빠인 것 같은데……

강진이 사정을 말하자 황민성이 작게 탄식을 토했다.

그러고는 입맛을 다셨다.

“뭐라고 말을 못 하겠는데.”

다시 돌아온 승무원이 물을 건 네주자 황민성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더 필요하신 것 있으신가요?”

“괜찮습니다.”

그에 승무원이 자리를 비키자, 황민성이 중얼거렸다.

“김승희.”

“네?”

“저 여자 이름.”

“어떻게 알았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가슴 쪽 을 손으로 툭 치고는 말했다.

“명찰.”

아.”

강진이 미처 못 봤다는 듯 승무 원의 뒷모습을 볼 때, 김이슬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진 씨.”

강진이 김이슬을 보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관심 있으면 말 걸어 보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김이슬의 말에 강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이 김승희를 힐끗힐 끗 보는 게 관심이 있어서인 줄 아는 것이다.

“아니에요.”

강진의 말에 김이슬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강진 씨 매력 있어요. 자신감 가지고 파이팅!”

김이슬의 말에 강진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고는 황민성으로 고 개를 돌렸다.

황민성은 뭔가 생각을 하고 있 었다. 그러고는 강진에게 말했다.

“어떻게 도울 거야?”

“돕고 싶어도 무슨 사정인지도 모르고…… 이제 곧 제주도인데 언제 또 볼지도 모르잖아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잠시 생 각을 하다가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정말 개자식이 아닌 이상은 자식이 부모를 미워 하지 않아.”

“그렇죠.”

“자식이 부모 죽을 때도 찾아가 지 않겠다고 말을 할 정도면 타 인은 생각하지 못하는 사연이 있

을 거야.”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 자신도 쉽게 도와준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진이 이해한 것 같자, 황민성 이 승무원을 호출했다. 승무원이 다시 다가와 살짝 몸을 숙이며 물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승무원의 말에 황민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비스 잘해 주셔서 감사인사

를 좀 하고 싶어서요.”

“아닙니다.”

미소를 지으며 승무원이 고개를 숙이고 가려 하자, 황민성이 명 함을 꺼내 내밀었다.

황민성이 건네는 명함에 승무원 이 웃으며 그것을 받았다.

대표 황민성〉

명함을 받은 승무원이 그것을 주머니에 넣을 때, 황민성이 말 했다.

“아! 명함 주면서 작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네?”

승무원을 보며 황민성이 김이슬 과 조순례를 가리켰다.

“아내하고 가족 여행 중입니 다.”

“아……

“감사해서 그런데 혹시 승무원 분들 시간 되시면 화이트 홀 호 텔에 초대를 하고 싶습니다.”

“화이트 홀요?”

“네.’’

황민성의 말에 승무원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말했다.

“크루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러세요.”

승무원이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 의 자리로 돌아가자 황민성이 강

진을 보았다.

“연락 오면 저녁에 이야기 좀 해 봐.”

“고맙습니다.”

“연락 안 올 수도 있어.”

“시도는 해 본 거죠.”

그러고는 강진이 승무원의 뒤를 따라가는 아저씨 귀신을 보았다. 강진의 시선을 느꼈는지 아저씨 귀신이 그를 보고는 고개를 숙였 다.

안전벨트를 매고 비행기 착륙을 대비하는 김승희는 명함을 꺼내 보았다.

“언니, 명함 받았어요?”

옆에서 앉아 있던 후배의 말에 김승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비즈니스 석에 앉은 손님 이 주셨어.”

“명함 줄 정도면 꽤 괜찮은 사 람인가 봐요.”

승무원을 하다 보면 가끔 손님 들이 작업을 걸어올 때가 있었 다.

“전화번호 뭐예요?”로 시작을 해서 “이뻐요. 혹시 남자 친구 있어요?”까지 다양했다.

그러다가 정말 마음에 들면 연 락도 하고 밖에서 따로 만나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물론 대부 분은 웃으며 듣고 귓등으로 흘려 버렸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중에 능력이 있는 사 람들은 명함을 내미는 경우가 있

었다.

명함 보고 그쪽에서 마음에 들 면 연락을 주세요, 라는 식으로 말이다.

최소한 대놓고 명함을 줄 정도 라면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후배의 말에 김승희가 명함을 보여주었다.

“MS 투자? 투자 회사 대표네

요.”

“혹시 알아?”

“나는 잘 모르겠는데…… 사무 장님 주식하니까 물어보면 알지 않을까요?”

명함을 보던 후배가 김승희를 보았다.

“잘생겼어요? 몇 번 자리예요?”

관심을 보이는 후배의 모습에 김승희가 웃었다.

“근데 결혼했대.”

“결혼했다고 그래요?”

“아내하고 가족 여행 가는 중이

래.”

“그런데 왜 명함을 줘요?”

작업하는 것도 아닌데 왜 명함 을 줬나 싶은 것이다.

“서비스 고맙다고 화이트 홀 호 텔에 초대하고 싶대.”

“ 언니를요?”

뭔가 오해를 하고 인상을 쓰는 후배를 보며 김승희가 고개를 저 었다.

“아니. 우리 크루 전부.”

“화이트 홀 호텔에 우리 전부를 요?”

"응."

“와! 대박.”

후배가 좋아하는 것을 보며 김 승희가 말했다.

“좋아?”

“좋죠. 거기 호텔 레스토랑 엄 청 맛있잖아요. 그리고 수영장도 따뜻한 물로 해 놔서 온천 하는 것 같잖아요.”

가 본 적이 있는 듯 좋아하던 후배가 물었다.

“그래서 갈 거예요?”

명함을 받은 건 김승희이니 그 녀의 의사가 중요했다.

“크루한테 묻고 결정하자.”

“물어보나 마나 화이트 홀에 초 대해 주는 건데 다 좋다고 하겠 죠. 이럴 줄 알았으면 수영복 가 져올걸.”

수영복 걱정을 하는 후배를 보 던 김승희가 피식 웃었다.

그녀 생각에도 크루 사람들이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오늘 잡 혀 있는 국내선 비행만 해도 여 섯 개다. 마지므I 비행이 김포에 서 제주도로 오는 것이니 타이밍 도 괜찮고 5성 호텔에서 쉴 수 있는 기회이니 크루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가족 여행을 온 사람의 초대라 여자로서 부담이 되지도 않고 말이다.

강진과 황민성 일행은 제주도 바닷가를 구경하고 해녀가 직접 낚아 왔다는 해물로 점심을 먹었 다.

바다 바로 옆에서 먹는 전복과 해삼은 확실히 맛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강진의 옆에는 귀 신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바다 너무 좋다.”

“해삼도 맛있어요.”

여자 귀신들이 웃으며 해삼을 집어 먹는 것을 보며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한끼식당에서 자주 먹지 못하는 것이 바로 회 종류였다. 그래서 제삿밥처럼 먹는 회기는 하지만 귀신들은 맛있게 먹었다.

그런 귀신들과 함께 앉아 회를 먹던 강진이 조순례를 보았다.

“전복이 맛있네요.”

강진의 말에 조순례가 고개를 끄덕였다.

“꼬들꼬들한 것이 맛이 좋네.”

“해삼 좀 드셔 보세요. 몸에 아 주 좋대요.”

조순례가 미소를 지으며 해삼을 먹고는 바다를 보았다.

“바다를 보니 좋네.”

조순례의 말에 강진도 바다를 보다가 황민성을 보았다. 황민성 은 옥난을 품에 소중히 껴안은 채 조순례의 옆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 너무 많이 드시지는 마세요. 점심도 드셔야죠.”

“이것도 먹고 점심 먹으면 되 지.”

조순례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일 때, 강진이 물었다.

“점심 어디 예약하셨어요?”

“갈치조림 맛있다는 곳으로 예 약해 놨지.”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제주도가 또 갈치조림이 죽이 지.”

강진이 배용수를 보며 작게 물 었다.

“먹어 봤어?”

“그럼 당연하지. 내가 또 숙수 님하고 전국 팔도 맛집이란 맛집 은 안 가 본 곳이 없어.”

웃으며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 다.

“그리고 제주도 갈치조림은 다 른 곳과 다르다.”

“뭐가 다른데?”

“회가 같이 나온다.”

“회?”

“그것도 잘 나와.”

입맛까지 다시는 배용수를 보던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왜?”

황민성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잠시 좀 돌아보고 오려고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돌린 강진이 걸 음을 옮기자 배용수가 그 뒤를 따라왔다.

“같이 가자.”

강진과 함께 걸음을 옮기던 배 용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귀신한테 가는 거야?”

배용수가 가리키는 곳에는 젊은 남자 귀신이 바다를 보고 서 있 었다.

"응."

“왜?’’

“제주도 저승식당이 어디에 있 는지 물어보려고.”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는 거기가 어디인지 모르네. 그럼 언제 가려고?”

“오늘 점심, 저녁은 아무래도 민성 형 식구하고 먹어야 할 것 같고…… 저녁 먹고 잠시 갔다 오든가 하려고.”

그러고는 강진이 남자 귀신에게

슬며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강진의 말에 남자 귀신은 고개 를 돌리지도 않고 멍하니 바다를 보았다.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걸 거라 곤 생각을 못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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