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화
박문수와 이야기를 나눈 강진은 저녁에 다시 보기로 하고는 명함 을 받은 뒤 가게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못 올 경우가 생기면 전화를 해야 하니 말이다. 가게 를 둘러보던 강진이 박문수를 보 았다.
“그럼 이따가 오겠습니다.”
“전화 주고.”
“네.”
고개를 숙인 강진이 나가려 하 자, 박문수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택시 잘 안 와.”
“콜 부르려고요.”
“됐어. 내가 태워다 줄게. 어디 로 가?”
“그냥 택시 다니는 곳까지만 태 워주세요.”
“됐어.”
웃으며 박문수가 차 열쇠를 챙
겨서는 밖으로 나오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 나왔다.
일출봉 인근에서 내린 강진이 박문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일출봉 올라가도 뭐 볼 것 없 어. 그냥 밑에서 올려다만 봐.”
“알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박 문수가 차를 출발시키자 강진이
손을 한 번 흔들고는 주위를 둘 러보다가 황민성에게 전화를 걸 었다.
“형 어디세요?”
[나 여기 일출봉 입구.]
“그쪽으로 갈게요.”
그러고는 강진이 사람들에게 물 어 일출봉 입구로 걸음을 옮겼 다.
입구 쪽에 가까워지자, 멀리서 황민성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 다.
사람들 시선을 의식한 강진은 말없이 손만 마주 흔들고는 그쪽 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 좋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출봉을 보았다.
“어머니는 못 올라가서 여기에 서 구경만 해야 할 것 같아.”
미안해하는 황민성의 말에 강진 이 웃었다.
“산을 꼭 올라야 맛인가요. 멀
리서 보는 것도 맛이지.”
강진이 기지개를 켜며 일출봉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힐링 되네요.”
봄이라 초록으로 가득 차 있는 일출봉은 무척 보기가 좋았다. 물론 사람들이 엄청 많아서 시끄 러운 감이 있기는 하지만 관광지 에서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것 이었다.
시끄러운 것이 싫으면 집에 있 어야 할 테고 말이다. 물론 남이 시끄럽게 한다고 나도 시끄럽게 할 이유는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녹음이 펼쳐진 일출봉을 보던 강진이 주위를 보았다. 일 출봉뿐만 아니라 주변 땅도 잔디 가 보기 좋게 깔려 있었다.
“좋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씨도 좋고 딱 좋다.”
미소를 지으며 황민성이 어머니 를 보았다.
“어머니, 어떠세요?”
“아주 좋네.”
어머니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 다.
“너도 앉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일출봉 쪽으로 놓여 있는 벤치에 앉으며 말했다.
“저녁 식사 자리 예약하셨어 요?”
“오늘 저녁은 호텔에서 먹으려 고 하는데, 왜?”
“제주도 저승식당 주인이 초대 를 해 주셔서요.”
강진이 작게 말하자 황민성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제주도 저승식당?”
“전국에 귀신들이 없는 곳이 없 으니……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을 담당하는 식당이 있거든요.”
“그럼 제주도 저승식당도 너처 럼……
“귀신에게 밥을 해 주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 다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는 참 내가 모르는 것들 이 많은 것 같다. 그럼 저승식당 이 몇 개나 있는 거야?”
“전국 팔도에 하나씩 있다고 하 니까. 여덟 개는 넘겠죠.”
“난 하나인 줄 알았는데…… 많 네.”
작게 중얼거리던 황민성이 말했 다.
“그럼 거기 다녀온 거야?”
“제주도 쉽게 올 수 없는 곳이 잖아요. 업계 선배한테 인사드리 고 왔죠.”
“그럼 거기서 먹자. 너희 가게 와 비숫한 곳이면 맛있겠네.”
“맛있을 거예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 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너처럼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그러실 거예요. 좀 성격이 강 해 보이기는 하시는데 좋은 분
같더라고요.”
그러고는 강진이 황민성을 보며 말했다.
“원래는 어부셨대요.”
“어부?”
“어부 하시다가 전대 저승식당 주인한테 물려받으셨대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황민성이 물었다.
“그런데 승무원들은 어떻게 하
지?”
“왜요?”
“그 사람들 5시에 근무 끝나고 온다고 했거든. 명색이 우리가 초대했는데 저녁 같이 먹어야 하 지 않겠어?”
“그럼 그 사람들도 그쪽으로 오 라고 하면 되죠.”
“그럼 열한 명 되겠네.”
“식당이라 열한 명 식사도 문제 없을 거예요.”
“그래도 연락드려. 인원이 많아 서 당황해하실 수 있으니까.”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문수에게 전화로 인원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럼 이제 이동할까요?”
황민성이 휠체어를 잡고는 밀자 조순례가 말했다.
“여기 참 좋구나.”
“건강하기만 하세요. 앞으로 좋 은 곳 많이 보여 드릴게요.”
“그래. 고맙구나.”
웃으며 조순례가 사람들을 보았
다. 가족, 혹은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웃으며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던 조순례가 말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많구 나.”
“요즘 중국 사람들이 제주도에 많이 오니까요. 우리가 일본 가 는 것하고 비슷해요.”
“그렇구나.”
두 사람의 말에 강진이 관광객 들을 보았다. 확실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중국어가 많이 섞여 있
었다.
큰 소리로 들리는 중국어를 들 으니 더 이국적인 느낌이었다.
‘하긴, 전에 이지선 씨가 중국 귀신들 때문에 시끌시끌하다고 했었는데.’
처녀 귀신인 이지선이 했던 말 을 떠올리며 강진이 관광객들을 볼 때, 조순례가 슬며시 손을 내 밀어 황민성의 손을 잡았다.
“아이는 어떻게 됐니?”
입양에 관해 묻는 조순례를 보
며 황민성이 말했다.
“가족이 생기는 일이라 신중하 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가족이 생기는 거니 까, 신중하게 생각하고 아이 마 음을 먼저 생각해 줘야 한다.”
“알겠어요.”
“그래. 잘 하겠지.”
조순례가 자신의 손을 토닥이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휠 체어를 밀며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진 일행은 일출봉을 구경한 뒤 관광지를 한 곳만 더 구경했 다.
조순례의 컨디션을 생각해서 체 험이 아닌 구경하는 선에서 모든 일정을 마무리한 것이다.
여행이라고 해도 많이 이동하는 것은 어머니 몸에 안 좋을 수 있 으니 말이다.
그래서 최대한 이동 거리가 적 은 관광지를 구경했다.
오늘 일정의 마지막은 삼다식당 이었다. 미리 연락을 하고 가게 로 향하자, 가게 앞에서 박문수 가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 다.
“하하하! 어서 오십시오.”
박문수가 웃으며 환영을 하자 황민성이 고개를 숙였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종 업계 친구가 가족 같은 분들과 여행을 왔다는데 당연히 제가 모셔야지요.”
웃으며 박문수가 황민성에게 슬 며시 말했다.
“이쪽 업계에 대해 아신다고 하 더군요.”
저승식당에 대해 말하는 박문수 를 보며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 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박문수가 조순례를 보고는 웃으 며 다가갔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 까?”
박문수의 말에 조순례가 슬며시 농원 쪽을 보았다.
“귤 농장인가요?”
“소일거리로 귤 농사도 좀 하고 있습니다. 구경 좀 하시겠습니 까?”
“그래도 된다면 그러고 싶네 요.”
“아직 철이 아니라서 귤이 나지 는 않는데 나무들이 많아서 보기 에는 좋을 겁니다.’’
그러고는 박문수가 일행들을 보 며 말했다.
“혹시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으 면 주문 먼저 하시지요.”
“제주도에 왔으니 제주도 음식 을 먹어 보고 싶은데요.”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 려 주세요.”
박문수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 귤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나 왔다.
그것을 황민성에게 내밀며 박문 수가 말했다.
“저희 농원에서 나오는 귤입니 다. 농약 안 친 것이니 껍질째 먹어도 됩니다.”
그러고는 박문수가 보라는 듯 귤을 하나 집어 껍질째 씹어 먹 기 시작했다.
귤을 껍질째 먹는 박문수의 모 습에 일행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껍질이 부드러워서 이렇게 먹 어도 맛있습니다.”
박문수의 말에 황민성이 귤을 보다가 껍질째 씹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요.”
황민성이 바구니를 장 여사에게 건네고는 귤을 집어 손안에 넣고 는 주물럭거렸다.
적당히 말랑말랑해지자 황민성 이 귤을 조순례에게 내밀었다.
“어머니는 껍질 까서 드세요.”
“고맙다.”
조순례가 귤을 받아 까자 강진 이 말했다.
“까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조순례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의사 선생님 말이, 손 많이 움 직이는 것이 좋대.”
웃으며 조순례가 껍질을 까서는 알맹이를 입에 넣었다.
“맛이 좋네요.”
“정성을 다해 키우고 있습니 다.”
조순례의 말에 황민성이 농원을 보다가 말했다.
“귤 파시기도 하십니까?”
“이 많은 귤을 저 혼자 다 먹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귤 좀 제가 사고 싶습니 다.”
“그러면 저야 좋지요.”
싱긋 웃으며 박문수가 사람들을 데리고 농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 다.
그런 박문수의 뒤를 따르던 강 진이 물었다.
“혹시 귤 껍질째 드시는 것 일 부러 그러시는 건가요?”
강진의 말에 박문수가 웃었다.
“그럴 때마다 육지 사람들이 깜 짝 놀라는 게 재밌거든.”
박문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처음에는 걸걸한 성격의
노인으로 보였는데, 지금 보니 그저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다가 박문수가 황민성을 힐 끗 보고는 말했다.
“부자지?”
“어떻게 아세요?”
“가족 여행에 운전기사와 일 도 와주는 사람 둘을 데리고 다닐 정도면 부자겠지.”
“날카로우시네요.”
“낚싯배 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 들을 다 보게 되니까. 딱 보니까 알겠더라고.”
말을 한 박문수가 웃었다.
“귤 좀 많이 사 갔으면 좋겠 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 는 대로 아니셨나요?”
강진의 말에 박문수가 웃었다.
“그렇게 살면 좋기는 하겠지만 돈 버는 것 싫어하는 사람이 있 겠어? 없으면 없는 대로 어떻게
든 살지만, 있으면 있는 대로 편 한 것이 돈 아니겠나.”
“그건 그렇죠.”
강진의 답에 박문수가 농원에 있는 귤나무들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귀신들이 열심히 농사 지어서 수확한 귤이 창고에 처박 혀만 있으면 안쓰럽잖나. 먹으라 고 만들었으니 사람이 먹어 줘야 지.”
“귤 많이 쌓여 있어요?”
“꽤 많이 쌓여 있지. 우리 농원
이 꽤 크거든.”
웃으며 박문수가 조순례에게 귤 농원을 구경시켜 주었다. 구경을 마치고, 박문수는 한쪽에서 마른 나뭇가지와 마른 풀을 주어다가 불을 피웠다.
그러고는 귤을 굽자, 강진이 그 랬던 것처럼 황민성과 일행이 놀 란 눈으로 구워지는 귤을 보았 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박문수가 흐 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귤을 구워 먹고 농원에서 나오 던 강진은 승무원들이 삼다식당 앞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 다.
승무원들을 본 황민성이 웃으며 다가갔다.
“초대를 해 놓고 기다리게 했습 니다.”
“아닙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리고 자동차 보내 주 셔서 감사합니다.”
김승희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 말을 해서 공 항으로 김승희와 승무원들을 태 울 차를 보낸 것이다.
이야기를 나눌 때, 강진은 김승 희의 수호령인 아저씨 귀신과 한 쪽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왜 동생분이 어머니를 싫어하 시는 건가요?”
김승희와 어머니 사이가 틀어진 이유를 알아야 둘을 화해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아저씨 귀신이 한 숨을 쉬고는 말했다.
“어머니가……
잠시 머뭇거린 아저씨 귀신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저에게 잘해 주셨습니다.”
“그거야 자식이니 잘해 주셨겠 죠.”
강진의 말에 아저씨 귀신이 우 물쭈물하다가 재차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와 동생을 차별해서 키우셨 습니다.”
“차별요?”
“그래서…… 동생이 어머니한테 쌓인 것이 많습니다.”
아저씨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고 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어머니가 두 분 을 차별해서 키운 것은 맞는 모 양이었다.
다만…….
‘얼마나 차별을 해서 키웠길래
딸이 엄마를 이렇게까지 싫어하 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