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화
당황해하는 강진을 보며 아저씨 귀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는 김승태라고 합니다.”
“저는 이강진입니다.”
서로 자기소개를 할 때, 황민성 이 말했다.
“강진아, 들어가자.”
“먼저 들어가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사람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맛집이라 초대를 했는 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 다.”
“농원 옆에 있어서 운치 있고 좋네요.”
승무원들이 웃으며 말을 했지 만, 황민성은 작게 입맛을 다셨 다. 사람을 상대하며 투자를 하 는 그는 상대의 속내를 잘 알아 채는 편이었다.
승무원들의 얼굴에는 미세하게 나마 실망감이 어려 있었다.
화이트 홀 호텔에서 식사할 거 라 생각을 했는데, 시골 변두리 라고 하기 뭐한 농원 옆 식당에 서 밥을 먹게 생겼으니 실망한 것이다.
승무원들의 성격이 이상해서라 기보다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 것이다.
그들의 속내를 간파한 황민성은 웃으며 말했다.
“일단 들어가시죠.”
자신이 맛집이라고 설명하기보 다는 직접 맛을 느껴 보는 것이 빠르니 말이다.
황민성의 말에 승무원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 들이 들어가자 강진이 김승태를 보았다.
“어머니가 차별을 심하게 하셨 나요?”
“그때는 당연하다 생각을 했는 데…… 지금 생각해 보면 승희가
이러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많이 심하셨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김승태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다녀오면 제 책상에는 간 식이 있었어요. 빵도 있고 과일 도 있고……. 어느 날 동생이 그 것을 먹고 혼이 났습니다. 오빠 먹을 걸 왜 네가 먹냐고. 그래서 ‘그냥 먹으라고 해.’ 하고 운동 다녀왔는데 동생이 울고 있더라 고요. 왜 자기는 간식이 없냐고 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내 책상
에 놓였던 간식을 동생은 받아본 적이 없다는 걸요.”
김승태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동생은…… 안 주고 그쪽만 준 겁니까?”
강진의 말에 김승태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더군요. 그래도 제가 알고 난 후에는 동생한테 나눠 줬습니 다.”
변명하는 김승태를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게 더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지.’
세상에 가장 치사한 것이 먹는 거로 차별하는 거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도 있는데 그 작은 것조차 나누지 않고 혼자 먹으라고 준 것은 치사한 것이 다.
그런데 엄마는 아들인 김승태에 게만 대놓고 음식 차별을 했으니 김승희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거기에 엄마가 준 것을 김승태 가 김승희에게 나누어줬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오히려 더 속상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음식 가지고 차별을 했 다면 다른 것도 차별을 많이 했 을 것이다.
“근데 왜 차별을 한 거죠?”
강진의 물음에 김승태가 재차 한숨을 쉬었다.
“승희 태어나는 날 아버지가 병 원 오시다가…… 사고로 돌아가
셨습니다.”
김승태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 었다.
애 낳는 것 보러 오던 남편이 죽었으니…….
“하지만 애 잘못이 아니지 않습 니까? 사고는 사고잖아요.”
“어머니도 알고 있습니다.”
한숨을 쉬며 김승태가 말했다.
“어머니도 승희에게 미안해했습
니다. 한밤중에 많이 울기도 하 셨고, 특히 승희 자고 있을 때면 미안하다고 우셨어요. 하지 만…… 변하지는 않으셨죠. 승희 도 아마 알 겁니다.”
김승태의 말에 강진이 재차 입 맛을 다셨다. 그런 강진을 보며 김승태가 말했다.
“지금 생각을 해 보면 어머니가 그때 아프셨던 것 같습니다.”
“아프셨어요?”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팠던 겁
니다. 아마 산후 우울증을 겪으 셨던 것 같습니다.”
“우울증이라……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남편과 양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축 복받는 출산을 해도 산모들은 우 울증이 올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산모들이 산후 우울증으로 힘들 어한다.
“지금은 산모들이 산후 우울증 치료를 위해 상담도 많이 받지 만, 그때는 이런 우울증이라는 개념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상담받으러 가는 것 자체가 정신병자로 오해받기도 했습니다.”
김승태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네요. 요즘에야 우울 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걸 하나의 증상으로 보고 상담과 약물치료 를 하지만, 옛날에는 이런 것을 비정상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 으니까요.”
정신병원에는 말 그대로 정신병 자들이 간다는 인식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정신병원 을 대화나 고민 상담을 위해 가 는, 일종의 휴식처처럼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병원 내부를 편 안한 커피숍처럼 인테리어를 해 서 거리감도 많이 줄었고 말이 다.
“그럼 어머니는 상담을 받아 본 적이 없으시겠네요.”
“제가 아는 한 없으십니다. 그 리고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저와 동생을 키우느라 아침에 일하시
고 저녁에는 집에서 부업까지 하 셔서 그런 곳에 갈 시간도, 돈도 없으셨습니다.”
김승태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우울증은 무서운 병이다. 심리 학과 졸업생인 강진은 그 위험성 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학문으로 배우지 않았어 도, 뉴스에 우울증을 앓던 사람 이 가족들과 함께 자살했다는 이 야기도 많으니 말이다.
김승태의 어머니는 우울증 환자 였고, 김승희는 그 증세의 피해 자인 셈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강진이 김승 태를 보았다.
“그런데 두 분 나이 차이가 꽤 나시는 것 같은데……
“승희하고는 세 살 차이입니 다.”
김승태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김승태는 딱 봐도 아저씨 같았다.
적어도 사십 대 중반은 되어 보 였는데, 이십 대로 보이는 김승 희와 나이 차이가 겨우.......
“세 살요?”
강진이 놀란 눈을 하자 김승태 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만졌 다.
“제가 좀 노안입니다. 그리고 승희는 동안이고요. 그래서 둘이 같이 다니면 남매가 아니라 삼촌 과 조카처럼 많이들 봤습니다.”
“그렇군요.”
잠시 김승태를 보던 강진이 한 숨을 쉬었다.
“일단 상황 봐서 이야기해 보겠 지만…… 어머니와 승희 씨 사이 에 있는 골이 깊어서 풀어내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아니, 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김승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식당으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그런데 두 분은 사이 좋으셨어
요?”
강진의 물음에 김승태가 미소를 지었다.
“저와 승희는 사이가 아주 좋았 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승희 를 거의 업어 키웠습니다.”
말을 하는 김승태의 눈빛은 추 억에 젖은 것 같았다.
“승희가 어렸을 때는 제가 죽은 척하면 막 울고 그랬습니다.”
김승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김승태와 차별 대우를 받았으니 그에 대한 감정 이 안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수호령이 되어서 옆에 남을 정도라면 둘의 우애가 아주 큰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식당 안으로 들어 갔다.
식탁 세 개를 붙여 놓은 자리에 는 귤과 귤 차가 놓여 있었다.
“강진아, 앉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빈자리를 보았다. 그 옆에는 김승희가 자 리하고 있었다.
아마도 황민성이 일부러 자리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모양이었다.
강진이 자리에 앉을 때, 김이슬 이 살짝 윙크를 해 보였다.
“파이팅.”
작게 속삭이는 김이슬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아직도 오해하시네……
여전히 자신이 김승희에게 관심 이 있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 리고 황민성이 자리를 이렇게 배 치한 것을 보고는 거의 확신하는 것 같았다.
그에 강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강진이 자리에 앉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호텔에서 식사할 수도 있었지 만, 제주도까지 왔는데 호텔 음 식은 아닌 것 같아서 이쪽으로 초대했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승무원들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 를 끄덕일 때, 박문수가 음식들 을 가지고 나왔다.
“음식 나왔습니다.”
박문수의 말에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다음에 모임 할 때 네가 일해. 오늘은 내가 할 테니까.”
싱긋 웃은 박문수가 음식들을
놓고는 주방에 들어갔다가 다시 음식들을 내왔다.
삼다식당 주 종목이 수산물이라 고 하더니 탁자에는 여러 해산물 요리가 놓이고 있었다.
회와 해삼, 전복과 같은 음식들 이 놓이자 박문수가 사람들을 보 았다.
“제가 음식점 하기 전에 어부 생활을 해서 회와 이런 음식을 잘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차려보 았습니다.”
그러고는 박문수가 회를 보며 말했다.
“물 좋은 회로 준비를 했으니 조금씩 드셔 보십시오. 그리고 소금에 한 번 찍어 드셔 보십시 오. 맛이 색다를 겁니다.”
박문수가 앞에 놓인 소금을 가 리키자 강진이 호기심 어린 눈으 로 소금을 보았다.
“회를 소금에 찍어 먹나요?”
“회는 보통 간장, 초장, 된장 이 런 식으로 찍어 먹지요?”
박문수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박문수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소금에 찍어 먹는 건 많이들 모르시더군요. 소금에 찍 어 먹으면 맛이 또 다르니 찍어 드셔 보십시오.”
“그럼 더 맛있나요?”
승무원 한 명이 호기심 어린 눈 으로 소금을 보자 박문수가 웃으 며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는 회 찍어 먹을 때 간
장이 좋아요? 아니면 초장이 좋 아요?”
“저는 간장요.”
승무원의 말에 박문수가 웃으며 말했다.
“어떤 사람은 초장에 찍어 먹는 것이 더 맛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겠죠.”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소금 에 찍어 먹으면 그 특유의 맛이 있지만, 그게 싫은 분이 있을 수 도 있고, 좋은 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드셔 보 시라는 겁니다. 소금이 입에 맞 으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실 테니까요.”
“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 문수의 말대로 소금에 찍어 먹어 봐서 맛있으면 앞으로 그렇게 먹 으면 되고, 맛이 없으면 먹던 대 로 초장이나 간장에 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박문수가 말했다.
“지금 내 온 것은 제가 차려 드 리고 싶은 음식이고, 지금부터는 손님들이 드시고 싶은 음식을 해 드리겠습니다. 드시고 싶은 음식 이 있으시면 주문해 주십시오.”
박문수의 말에 황민성이 물었 다.
“사장님도 강진이 가게처럼 손 님이 원하는 음식을 해 주시는 겁니까?”
황민성의 물음에 박문수가 웃으 며 강진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이 식당도 그렇지만 저희 업계 식당은 손님들이 원하는 음 식을 가능한 해 드리는 편입니 다.”
박문수의 말에 황민성이 조순례
를 보았다.
“어머니는 뭐 드시고 싶으세
요?”
황민성의 말에 조순례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따뜻한 미역국이 먹고 싶구
나.”
“미역국에 뭘 넣어서 해 드릴까 요?”
“소고기요.”
“마침 질 좋은 미역이 있는데 잘 됐습니다.”
박문수가 수첩을 꺼내 내용을 적고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그 에 사람들이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하나둘씩 이야기했다.
메뉴를 적던 박문수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잠시 말을 멈춘 박문수가 다시 웃었다. 손님들이 김치찌개, 된장 찌개, 계란말이와 같은 것만 주 문한 것이다.
“제가 이렇게 토종 한국 요리만 할 것 같이 생겼지만, 프랑스부 터 이탈리아 요리까지 다 가능합 니다. 그리고 맛도 훌륭하니 제 얼굴 보지 마시고 정말 드시고 싶은 걸로 말씀하십시오.”
박문수의 말에 승무원들이 의아 한 듯 그를 보았다. 사실 그의 말대로 가게와 주인의 겉모습을
보고 평범한 음식을 주문한 것이 다.
“정말 이태리 음식이 가능하세 요?”
“그럼요. 일단 드셔 보시면 깜 짝 놀랄 겁니다.”
박문수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 으며 하는 말에 승무원들이 서로 보다가 말했다.
“그럼 저는 로제 파스타에 안심 스테이크……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가능하다는 말에 승무원이 놀란 눈으로 박문수를 볼 때, 다른 승 무원이 말했다.
“여기 회 보니까 초밥이 먹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그럼 초밥에 된장 국으로 해 드리겠습니다.”
말하는 메뉴가 모두 된다고 하 자,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자신 이 주문한 것을 취소하고 새로운 메뉴를 말했다.
‘승희 씨는 뭐가 먹고 싶으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