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 화
맥주를 마시며 강진은 최대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친구분 혼자 오신 건가 요?”
“제 기일에는 늘 혼자 왔다 갑 니다.”
“혼자 오시는데…… 호텔에서 투숙을 하세요?”
남자 혼자 비싼 호텔에 묵는 게
보통은 아니었다. 보통 남자들은 자는 것에 그리 돈을 안 쓴다.
찜질방만 되어도 불편하지 않게 자고, 혹시 시끄럽거나 사람들이 신경 쓰이면 여관이나 모텔 정도 에서 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혼자 와서 호 텔에 묵으니 조금 신기했다.
“제 기일에만 호텔에서 묵습니 다.”
“그래요?”
“어렸을 때 돈 벌면 폼 나게 살
자고 했거든요. 그래서 늘 화이 트 홀 호텔에서 저를 부르더군 요. 그 덕에 호텔에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구경도 하고 있습니 다.”
말을 하던 최대식이 피식 웃었 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취업 준비하 는 놈이 속 못 차리고 비싼 호텔 이라니……
“아르바이트?”
강진의 물음에 최대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취업하기 어렵잖아요. 그 래서 주유소에서 먹고 자고 하면 서 취업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호텔 비쌀 것 같은데?”
“하룻밤 자는 것치고 비싸죠. 한 십삼만 원 하니까요. 거기에 이것저것 부대시설 이용하면 이 십만 원 정도 할 겁니다.”
이십만 원이라는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아니, 무슨 취업 준비생이 하룻
밤에 이십만 원을 태워?’
이십만 원이면 예전 강진의 한 달 식비였다. 그런 돈을 하룻밤 잠자는 데 쓴다는 것에 놀란 것 이다.
경비로 20만 원이면 크지 않은 것 같지만, 그게 어디까지나 숙 박비 만이라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곧 강진은 그 친구의 마 음이 이해가 되었다.
“대식 씨한테 정말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군요.”
강진의 말에 최대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에게 폼 나게 사는 거 보여 주고 싶었나 봅니다. 내가 폼 나 게 살아 보지 못하고 죽었어도,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다면서요. 근데…… 우습잖아요. 이럴 시간 에 공부나 좀 더 해서 취업 준비 나 할 것이지.”
“그런데 피부 관리 받는다고 하 지 않았어요? 주유소 아르바이트 를 하면서 피부 관리는 어떻게?”
피부 관리면 돈이 많이 들지 않
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강 진의 말에 최대식이 고개를 저었 다.
“저 녀석 하는 것 보니까 돈은 많이 안 들더라고요. 귀찮아서 그렇지.”
“그래요?”
“아침에 일어나면 수분 크림 바 르고, 밖에 나갈 때는 선크림 바 르고, 나갔다 와서는 깨끗하게 씻고 거기에 오일 바르고 로션 바르고, 잘 때 팩 하고. 그러더라 고요.”
말을 하며 고개를 젓는 최대식 의 모습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무척 부지런하군요.”
“그 부지런함의 반만 공부에 썼 어도 벌써 취업이 됐을 텐데
“그것보다는 자기 관리라고 봐 야죠.”
강진의 말에 최대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최대식을 보던 강진이 잠시 있다가 말했다.
“그래도 친구가 의리가 있네요. 십삼 년 동안 매년 이렇게 찾아 오고요.”
강진의 말에 최대식이 옅은 미 소를 지었다.
“저희 집에도 명절날마다 가는 모양이에요.”
“집에도요?”
“오면 저희 가족하고 찍은 사진 하고 집안일들 이야기해 주고 갑 니다.”
최대식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친구네요.”
“좋은 친구죠.”
싱긋 웃은 최대식과 이야기를 나누던 강진이 문득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런데 중국 귀신들이 안 보이 네요?”
“중국 귀신요?”
“아는 처녀 귀신 분이 여기 왔 다가 중국 귀신들이 시끄럽다고
하신 적이 있거든요.”
강진의 말에 박문수가 대신 말 했다.
“외국 귀신들은 수요일 날 와.”
“날짜를 따로 정하신 건가요?”
강진의 물음에 박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들이 조용히 하라고 해도 말을 안 듣더라고. 그래서 수요 일로 날짜를 정했어.”
“그게 되나요? 저승식당은 손님
가릴 수는 없는 걸로 아는데?”
“누가 그래?”
“네?”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박문수 가 말했다.
“귀신이라고 다 불쌍한가? 귀신 중에도 나쁜 놈들 많아.”
“그건 그렇겠죠.”
귀신이 불쌍한 건 승천하지 못 하고 구천을 떠돌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떠돌다 보니 늘 배고프
고 안정을 취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귀신 중에 선 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린애 라고 다 착하지 않은 것처럼 말 이다.
어린애 중에도 어른이 보기에 이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나쁜 짓을 하는 애들도 많다.
친구들 때리고 돈 뜯는 것은 애 교고, 뉴스에 가끔 나오는 입에 도 담지 못할 정도의 악행을 하 는 애들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강진의 식당에는 아직 나쁜 귀신이 오지는 않았지만, 귀신 중에도 그런 독하고 나쁜 놈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들면 쫓아내 면 돼.”
“그게 되나요?”
“그럼 당연하지. 손님만 가게 고르라는 법 있나? 식당도 당연 히 손님 가릴 권리가 있는 법이 지.”
“그래도 귀신 안쓰럽잖아요.”
“안쓰럽고 불쌍하다고 행패 부 리고 욕하는 놈까지 밥 차려 줘 야 하나?”
“그건…… 아니죠.”
“나는 그런 놈들한테 밥 안 줘. 당장 쫓아 버리지. 배고프다고 왔으면 밥이나 잘 먹고 가면 되 는 거지. 술 먹고 행패 부려? 귀 신이고 사람이고 그런 놈들은 손 님 자격이 없어.”
박문수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저희 가게는 오는 손님 막지
말라고 정해져 있는데……
“복래 누님 성격이 너무 좋아서 나쁜 놈들도 밥을 챙겨 주셨는 데, 나한테는 안 통하지.”
“그럼 저희 가게 규칙은?”
“복래 누님이 정하신 거겠지.”
“그렇군요.”
그러고는 박문수가 웃으며 말했 다.
“예전에 복래 누님 자식들하고 술 먹고 행패 부리는 귀신들하고
많이 싸웠지.”
“싸워요?”
“그 녀석들 성격도 보통이 아니 거든. 행패 부리는 귀신들 보면 그 녀석들이 가만히 안 뒀지.”
박문수가 문득 천장을 보았다.
“복래 누님이 애들이 매일 귀신 들하고 치고 박고 싸운다고 그렇 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박문수의 말에 강진은 뭔가 하 나 알 것 같았다. 한끼식당에 나 쁜 귀신들이 오지 않는 이유는
나쁜 귀신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 신 씨 남매에게 혼이 나서인 것 같았다.
‘하긴, 신수조 씨 성격도 대단하 다고 했으니까.’
강진이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울 때는 신수조가 와서 가게를 보았 는데, 말을 들어 보면 성격이 장 난 아니라고 했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고개 를 끄덕였다.
“그래서 외국 귀신들은 수요일
에만 오는 건가요?”
“이것들이 말을 안 들어. 한국 귀신들하고 술 마시고 싸움을 막 해서…… 수요일에만 오라고 했 어.”
“그럼 한국 귀신들은 수요일에 안 오나요?”
“수요일은 외국 귀신들의 날이 니까. 정말 배고프거나 사정 모 르는 애들만 오고 여기 자주 오 는 애들은 수요일은 피해서 오 지.”
박문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외국 귀신들은 많이 오나요?”
“제주도에 관광하러 오거나 일 하러 온 외국 사람들이 많아. 그 래서 죽는 애들도 많고.”
“불쌍하네요.”
타지, 그것도 다른 나라에서 죽 어 귀신이 되다니…….
“그건 그렇지. 한국 귀신은 그 래도 집에라도 가끔 가서 보고 오는데 말이야.”
박문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어서도 가족이 보고 싶을 텐데 한국 땅에서 죽었으니 보고 싶어도 못 보는 것이다.
물론 제삿날에는 부를 테니 그 때는 보겠지만…… 가족을 일 년 에 한 번 보는 것은 참 슬픈 일 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던 귀신들이 하나둘씩 일어 나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알아서들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 까지 하는 귀신들의 모습에 강진
이 물었다.
“여기는 귀신들이 알아서 정리 를 하네요?”
“음식이야 저승식당이니 내가 해 주지만, 정리는 먹은 놈들이 해야지. 내 나이가 몇인데 그런 서비스까지 해 줄 수는 없지.”
웃으며 박문수가 강진을 보았 다.
“낚시하러 갈 건데 같이 갈 텐 가?”
“낚시? 이 시간에요?”
“내일 먹을 물고기 잡아야지.”
“그래도 술도 드신 것 같은데?”
“평소에는 배 타고 나가서 잡는 데 오늘은 술 마셨으니 방파제에 가서 잡아야지. 갈 거야?”
“그러고 싶기는 한데 제가 너무 늦으면 같이 온 식구들이 걱정할 것 같아서요.”
“그럼 그러든가. 따라와. 지하실 로 데려다줄게.”
강진이 JS 금융을 통해 갈 것을 아는 박문수의 말에 강진이 몸을
일으키다가 서울 귀신들을 보았 다.
“숙소 가서 불러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고개를 저었다.
“온 김에 근처 좀 구경하고 갈 게.”
“그럼 서울 가서 불러 드려요?”
그에 이혜미가 웃었다.
“사장님보다 저희가 먼저 서울
에 도착해 있을걸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죽은 곳에서 먼 거리에 있는 귀신들은 시간이 지나면 원래 있던 곳으로 끌려가 는 것이다.
그러니 내일 강진이 서울에 도 착했을 때쯤에는 그들이 먼저 도 착해 있을 것이다. 물론 귀신들 죽은 곳이 다 제각각이라 거기서 한끼식당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도창복을 보았
다.
“다음에 한 번 저희 식당에 오 세요. 저희 식당 음식 대접해 드 리겠습니다.”
“멀어서……
멀어서 못 갈 것 같다는 도창복 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식당 오고 싶으면 사장님 한테 저에게 연락해 달라고 하세 요. 그럼 제가 저희 식당으로 불 러 드리겠습니다.”
“아! 그런 방법이 있군요.”
도창복이 환하게 웃는 것에 배 용수가 피식 웃었다.
“놀러 와. 맛있는 것 해 줄 테 니까.”
“ 알았다.”
두 귀신의 대화에 강진이 박문 수를 보았다.
“가시죠.”
강진의 말에 박문수가 가게 문 을 열고는 뒤쪽에 있는 땅을 가 리켰다.
땅에는 문이 하나 놓여 있었다. 말 그대로 땅바닥에 문짝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이었다.
“이건‘?’’
“JS 금융 가는 문.”
그러고는 박문수가 지갑에서 명 함을 하나 꺼내 문에 대고는 열 었다.
화아악!
그러자 JS 금융의 모습이 보였 다.
“지하에 있는 문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군요.”
“땅속에 있는 문이면 어떤 거든 가능하니 이렇게 땅에 붙어 있는 문도 가능한 거지.”
“저는 이때까지 근처 지하에 있 는 노래방을 이용했는데……
“문 하나 시켜서 집에 둬. 쓸 때만 바닥에 깔고 안 쓸 때는 세 워두면 공간도 많이 차지 안하니 까.”
“아! 좋은 팁이네요.”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문에 발을 내밀려 하자 박문수가 그를 잡았다.
“워, 워!”
“네?”
“이렇게 들어가면 자빠져.”
“자빠져요‘?”
“유식한 말로 하면 여기하고 안 쪽하고 중력 작용하는 방향이 바 뀌잖아.”
“아……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바닥에 위치해 있으니, 들어갈 때 중력이 순간적으로 바뀔 것이 다. 마치 계단이 있는 줄 모르고 발을 내디뎠다가 밑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처럼.
강진이 이해를 하자 박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어들어간다 생각하고 들어 가.”
박문수가 시범을 보여 주듯이 바닥에 쪼그리고는 손을 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바닥을 손으로
지지하고는 천천히 몸을 넣었다 가 고개를 돌려 강진을 보고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알겠습니다.”
박문수가 나오자 강진이 몸을 쪼그리고는 그가 한 것처럼 천천 히 문 안으로 손을 넣고는 기어 들어갔다.
화아악!
JS 금융 바닥에 손을 디딘 채 착지한 강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문 너머로 박문수가 자신을 내려 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묘한 감각에 잠시 멍하니 있 던 강진에게 박문수가 말했다.
“잘 가고 또 놀러 와.”
“알겠습니다. 사장님도 한 번 놀러 오세요.”
강진의 말에 박문수가 웃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닫았다.
덜컥!
문이 닫히자 강진이 호텔에 있
는 자신의 방을 떠올리고는 문을 열었다.
화아악!
방문 너머로 슬쩍 고개를 내민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밖으 로 나왔다.
거실에는 뜻밖에도 사람들이 아 직 안 자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 다.
조순례만 빼고 여행을 온 사람 들이 모두 모여 앉아 다소 거한 안주와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었
다.
“아직 안 주무셨어요?”
“모처럼 여행인데 일찍 자는 것 도 손해지. 너도 한잔해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으려다가 한쪽 빈자리에 앉아 있는 정주현 을 보았다.
정주현도 맥주를 마시고 있었 다. 그의 앞에는 맥주 캔이 몇 개 개봉된 채로 놓여 있었다.
강진의 시선을 눈치챈 정주현이
맥주 캔을 들어 보였다.
“황 사장이 센스가 있어. 이렇 게 까놓고는 마시라 하더라고.”
정주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은 음식 주인이 준다고 말을 해야 먹을 수 있다.
아마도 황민성이 어머니에게 붙 어 있는 정주현 생각이 나서 이 렇게 음식을 깔아 놓고 먹으라고 말을 한 모양이었다.
그럼 정주현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민성 형도 이제는 이쪽 세상에 많이 익숙해졌네.’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맥주를 집어서는 마시기 시작했다. 저녁 에도 술을 마시고, 삼다식당에서 도 술을 마셔 얼큰하게 취하기는 했지만…… 여행 마지막 날은 역 시 기분 좋게 마시고 뻗는 것이 좋으니 말이다.